[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성과급은 특정한 성과를 쌓았을 때 받는 ‘보상’이다. 실적이 낮으면 당연히 받지 못한다. 그러나 공공기관에서 성과급의 의미는 다르게 해석된다. 보상보다는 당연히 받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1984년 처음 시행된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잘못에 따른 책임을 성과급과 연계해 경영 효율성과 책임경영을 유도하기 위함에 있다.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 주도하에 공공기관은 매년 경영평가를 받고 있다. 경영평가 등급은 탁월(S등급)부터 아주 미흡(E등급)까지 6개로 나뉜다.
빚도 성과?
성과급은 보통 공공기관이 평가에서 ‘C 등급’ 이상을 받았을 경우 지급된다. 그러나 부채가 상당하고 경영실적이 낮은 공공기관도 성과급을 직원들에게 지급해 논란이 촉발됐다. 실적과 평가점수가 낮은 데 비해 높은 성과급을 받아서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성과급 전수조사 자료(더불어민주당 이소영 의원실 제공)에 따르면 산업통산부 산하 공공기기관장 성과급 지급 순위는 ▲한국수력원자력(1억1751만원) ▲한국남동발전주식회사(1억1322억원) ▲한국서부발전(1억72만원) ▲한전KPS(9934만원)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9600만원) 등의 순이다.
대부분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 자회사가 기관장의 순위가 높은 편이다. 특히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기관장의 성과급은 연봉과 비슷했다. 한전은 올해 경영평가에서 최우수 기업으로 선정된 바 있다.
그러나 한전의 상황도 밝지만은 않다. 2019년 말 기준 128조7081억원에서 5조원 이상 증가한 132조4753억원이다. 또 한전은 자회사 대부분의 부채를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 한전의 자회사인 한수원의 부채는 2019년 34조768억원에서 16억원이 증가해 지난해 36조784억원을 기록했다.
한국중부발전도 부채비율이 재정 건정성 기준인 200%을 돌파했다. 한전KPS, 한전KDN은 부채비율이 크진 않지만 지난해 부채가 증가했다.
성과급을 과도하게 지급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공기업은 비단 한전뿐만이 아니다. 부채가 많고 경영평가 점수가 높은 편이 아님에도 공기업 성과급을 타는 게 정해진 수순처럼 보인다. 이를 두고 관련 업계에서는 공기업의 ‘성과급 파티’가 올해도 이어졌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국석유공사의 경우 경영평가에서 지난해 C 등급을 받은 데 이어 올해 D 등급을 받았다. 그럼에도 지난해 140억원의 자체 성과급을 직원들에게 지급했다. 올해 이미 직원들에게 42억원을 지급했고, 올해 말까지 나머지를 지급할 예정이다.
한국석유공사(이하 석유공사)도 부채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과거 MB(이명박)정부 시절, 무리한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참여하면서 위기를 맞은 까닭이다.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약 18조600억원이다.
석유공사는 큰 금액의 이자 부담과 보유 유전의 가치 하락에 따라 지난해 자본잠식에 빠진 상태다. 감사원은 석유공사에게 “재무상태가 더 악화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석탄공사(이하 석탄공사)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석탄공사는 현재 ‘빚 돌려 막기’ 중이다. 부채만 자산의 243%에 달해 완전 자본잠식 상태다. 해당 기관의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2조1058억원이다.
현재 기업어음(CP)을 발행해 운영자금을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석탄공사가 한 해 부담해야하는 이자 비용만 300억원으로 추산된다. 기업평가는 2019년 D 등급, 지난해 C 등급을 받았다. 석탄공사 역시 경영평가에 따른 성과급을 각각 2019년 8억원, 지난해 14억원이 기관장과 임직원에게 지급됐다.
‘눈먼 돈’ 챙기는 게 임자
평가 등급 낮고 부채 많아도 지급
오래된 경영평가제도도 변화 필요
한국광물자원공사(이하 광물자원공사)는 더욱 심각하다. MB정부 시절에 부실 자원외교로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2016년 반기 기준 약 1만453%의 부채비율을 기록한 뒤 자본잠식에 들어갔다. 이후 이자를 갚기 위해 막대한 혈세가 투입되고 있는 중이다.
특히 광물자원공사는 재기를 모색하기에도 어려운 지경이다. 지난해 4958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하면서 무려 1조301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부채도 지난해 말 6조7500억원까지 치솟았다. 광물자원공사도 앞선 공공기관과 마찬가지로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낮은 실적과 평가에도 성과급의 액수가 큰 까닭이다. 최악의 경영사태를 맞았지만 지난해 지급한 자체 성과급 규모는 76억원이다.
광물자원공사는 자체 성과급에 대해 “성과에 따라 차등지급하는 상여금”이라며 “통상임금에 속하는 전환상여금”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회사 수익에 따라 지급하는 성과급과는 차별된다”고 밝혔다.
공공기관들이 낮은 평가를 받아도 성과급을 가져가는 이유는 부채비율의 점수 비중 탓이다. 해당 점수의 배점은 100점 만점 중 5점에 불과하다. 일자리 창출 부분 배점인 7점보다 작은 점수다.
또 법원 판례에 따르면 공공기관의 경영평가 성과급은 ‘평균임금’에 해당한다. 따라서 일정한 조건에 성과급은 근로의 대가인 임금 성격이 강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평균임금이란 3개월간 근로자에게 지급된 임금 총액을 날짜로 나눈 금액이다. 이는 퇴직 등으로 인해 근로관계가 단절된 뒤 퇴직금 등을 산정하는 방식이다.
결국, 정부의 공공기관 예산편성지침 등 공공기관 임금체계를 개선하지 않는 한 성과급 과다 지급 논란은 매년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기재부는 전문가, 공공기관, 관계부처 등으로 ‘경영평가제도개선 TF(이하 TF)’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평가제도 개편 작업에 착수에 나서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기재부가 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안을 검토하고 시행에 나서면 38년 만에 전면 개편이 이뤄진다. TF는 평가지표를 단순화하고 기관 유형별로 각기 다른 평가지표를 적용하는 방안을 예고했다. 평가 방식도 기관별 평가 방식에서 교차 평가 방식을 도입하는 등 객관성과 전문성을 제고할 예정이다.
사회와 경제 추이 등 변화에 맞춰 평가 지표도 개편할 방침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의견을 듣는 단계”라며 “이와 관련해 성과급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충분히 듣고 있다”고 말했다.
낭비 그만!
이소영 의원도 공공기관의 개선을 촉구했다. 이 의원은 “경영실적도 낮은 공공기관이 성과급을 지급하는 게 이치에 맞지 않다”며 “국민의 삶과 밀접한 공공기관이 바뀌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강도 높은 조치와 패널티를 부과해 성과급 낭비를 줄여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