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최근 MBC에서는 <다큐플렉스-전원일기2021>을 방영했다. 이는 각종 OTT와 유튜브에서 MZ세대를 기반으로 이른바 옛날 드라마를 다시 보는 미디어 소비 문화에 대한 반응으로 기획됐다. <전원일기> 뿐 아니라 <제5공화국> <대조영> <야인시대>와 같은 작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른바 OTT의 대중화로 인해 문화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으로 ‘마이픽’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전에 TV나 영화관을 통해 소비하며 같은 것을 공유하는 방식을 ‘대중픽’이라고 하면, 마이픽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MZ세대 열광
콘텐츠 홍수 속에서 자신의 취향을 고르는 방식은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방송된 일명 ‘옛날 드라마’들이 입소문을 타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
가요계에서 EXID나 브레이브걸스, 라붐, SG워너비 등 차트 역주행이 화제가 된 것과 같은 흐름이다.
MBC <전원일기>를 필두로 MBC <제5공화국>, KBS1 <대조영>, SBS <야인시대> 등의 시대극이 높은 인기를 얻고 있으며, MBC <커피프린스 1호점> <불새> <내 이름은 김삼순>과 같은 로맨스 드라마도 사랑받고 있다.
무려 20년에 가깝거나 그보다 더 시간이 지난 작품이 1020 세대의 관심을 받는 이유에는 여러 분석들이 나온다. 먼저 유튜브와 OTT 등 시간과 상관없이 작품을 누릴 수 있는 플랫폼이 대중화되면서, 이른바 ‘본방 사수’의 개념이 사라진 것이 이 같은 현상의 이유라는 의견이다.
요즘 넷플릭스나 왓챠 등 OTT 뿐 아니라 유튜브에서도 손쉽게 옛날 드라마를 볼 수 있다. SBS는 ‘빽드-스브스 옛날 드라마’로 과거 인기를 모은 작품을 10분가량 영상으로 재가공해 공개하고 있다. KBS와 MBC도 각각 ‘옛날티비-KBS 아카이브’와 ‘옛드:옛날 드라마’를 운영 중이다.
각각 20여만 구독자를 모았으며, 일부 영상은 50만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이처럼 유튜브 채널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밈’ 현상이 한몫한다. ‘밈’의 본원이라 할 수 있는 <야인시대>는 ‘사딸라’ ‘내가 고자라니’ 등 명장면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끊임없이 게재된다.
<제5공화국> <허준> 등의 작품의 주요 장면도 ‘짤방’으로 번지고 있다. 대중의 손을 거쳐 자연스럽게 생긴 흥미와 관심이 유튜브와 OTT를 통해 드라마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요즘 마이픽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취향대로 콘텐츠를 찾아본다. 익숙함을 넘어서 주류 방식으로 변해가고 있다. 아마도 옛날 드라마나 명작 드라마를 다시 보는 문화가 생겨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취향대로 ‘마이픽’ 문화…거꾸로 가는 시계
지나친 경쟁이 준 피로 “힐링 위해 찾는다”
최근 국내 드라마계에는 장르물이 대세로 떠올랐다. tvN <빈센조> <마우스>, SBS <모범택시> JTBC <언더커버> <로스쿨>, OCN <타임즈> 등 각 드라마 채널에서 장르물을 방영했거나 방영 중이다.
장르물의 특성은 대부분 살인 등 강력 범죄를 소재로 해 매우 자극적인 대사나 장면이 노출된다. 아울러 빠른 속도로 진행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집중해야만 서사를 따라갈 수 있다. 워낙 강한 힘이 압축돼있어 보기만 해도 진이 빠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장르물에 지친 시청자들이 쉽게 말해 멍 때리면서 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거나, 지나친 개인화와 경쟁으로 인해 요즘 한국 사회에서는 접하기 힘든 관계에서의 의리와 낭만을 느끼기 위해 옛날 드라마를 찾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요즘 한국드라마들은 전반적으로 너무 강하다. 힐링이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최근 KBS2 <오월의 청춘>이나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반응을 얻은 건 작품이 가진 휴머니즘 덕분으로 본다”며 “<야인시대>나 <전원일기>에서도 사람 간의 예의와 낭만을 느낄 수 있다. 현실에서의 느끼는 괴로움을 드라마를 통해 위로받고 있는 현상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예상 밖의 성과에 이를 패러디한 예능 콘텐츠까지 나왔다. 주인공 김두한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안재모가 <야인시대> 속 캐릭터로 등장하는 카카오TV <야인 이즈 백>이 대표적인 예다. 개인 SNS를 통해 남다른 사랑을 드러낸 개그맨 이진호, 래퍼 사이먼 도미닉 등도 출연 중이다.
안재모가 과거 <야인시대>에서 함께 연기한 쌍칼 역의 박준규, 가미소리 역의 이상인을 만나 페이커 다큐멘터리 형태의 연기를 선보인다. 온라인상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MBC는 <전원일기>의 추억을 되돌아보는 것과 함께 출연했던 배우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다큐플렉스-전원일기2021>로 쏠쏠한 재미를 봤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전원일기>에 관련된 글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심지어 ‘아재 개그’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최불암 시리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1983년 양파값 폭락이 사회적 이슈였을 때 양파를 모두 갈아엎는 장면을 내보낸 것이 군부 정권의 심기를 건드려 2주 동안 방영되지 못한 사례는 특히 눈길을 끌었다. 그 다음주 <전원일기> 방송 시간엔 사전고지도 없이 ‘대통령 기자회견’이 특별방송으로 편성됐고, 또 그 다음 주에는 뜬금없이 미인대회 방송이 전파를 탔다는 내용은 당시의 사회상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강한 호기심
윤 교수는 “요즘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이 유행이다. 어린 세대들이 ‘라떼 시절’에 대한 관심으로 보인다. 감성 혹은 직감에 충실한 세대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며 “아날로그 문화에 대한 대중적 동경이 레트로 열풍과 맞물리면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