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마저 조절하고 싶었어요” 배우 진기주의 또 다른 도전장

삼성전자 퇴사 후 언론 지망생·모델 거쳐 결국 연기자로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배우 진기주는 눈치도 많이 보고 텐션도 낮으며, 수줍음도 많다. 곱고 참한 이미지지만 연예인의 끼가 돋보이는 타입은 아니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늘 밝은 웃음으로 공기를 환하게 한다. 조곤조곤한 말투지만 화법은 솔직함으로 무장해 있다. 단단한 내면이 엿보인다. 대기업과 언론을 거쳐, 모델을 한 뒤 배우가 된 독특한 이력은 부드럽고 강한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아닐까. 진기주는 신작 <미드 나이트>에서 여러 악조건을 극복하고 밝게 살고자 하는 농아로 또 한 번의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금 도전해보지 않으면 10~20년 뒤에 후회할 것 같은 꿈이 있어 용기를 내서 결심했습니다. 적응은 무서운 체념을 부른다고 하더군요. 더 늦기 전에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굳건한 초심

취업준비생이라면 누구나 입사하고 싶은 기업인 삼성전자에서 3년 동안 직장생활을 한 26세 진기주는 퇴사 전날 동료 직원들에게 이렇게 메일을 보냈었다. 함께 일한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 자신이 왜 퇴사를 하게 됐는지 설명한 것이다. 

커다란 우연으로 맺게 된 인연에 대한 소중함을 표현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추구하고자 한다는 솔직한 욕망도 담았다. 진심 어린 그의 메일을 보고 응원하지 않은 동료가 있었을까.

이 메일을 보낼 때 진기주의 마음에는 연기자라는 꿈이 있었다. 하지만 연기적인 트레이닝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에, 친한 친구들에게조차 말하지 못했다. 조롱당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으로 향한 길은 기자였다. 아버지가 기자였고, 친구들 대부분이 언론 지망생이었기에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웬만한 사람들도 버티지 못하는 가혹한 취재 훈련인 사스마와리를 3개월간 거치자마자 기자를 포기했다.

서 있다가 잠에 빠질 정도의 고된 훈련을 더 할 자신이 없었다.

일반적인 직장인 생활을 견딜 자신이 없었던 진기주는 비로소 연예인으로서 행보를 시작한다. 슈퍼모델 대회에 나가 3위를 기록한 뒤 연기자로 전향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오디션에서 1차 탈락했다.

돌아오는 질문은 “나이가 이렇게 많은데 경력이 없네요?”였다. 비교적 뒤늦게 연기를 시작한 것에 대한 사회의 냉혹한 반응이었을까. 여린 그에게는 상처가 됐다. 

상처가 쌓여가고 있었지만, 자신의 꿈을 펼쳐보고자 계속 오디션의 문을 두드렸다. “재능이 있는데 왜 이렇게 눈치를 봐?”라는 김형식 PD의 말이 그간의 고생을 눈 녹듯이 녹였다. 김 PD는 tvN 드라마 <두 번째 스무 살>에 진기주를 캐스팅한다. 

2015년, 27세의 나이에 연기에 첫발을 들인 진기주는 무려 6년 만에 영화 주인공이 된다. 연쇄살인범 소재를 다룬 스릴러 장르 <미드 나이트>다. 

진기주가 가혹한 세상의 악조건을 이겨내고 자신의 꿈을 위해 성큼 다가선 것처럼,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농아임에도 밝은 삶을 꿈꾸는 경미를 연기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와 드라마 <오! 삼광빌라> 등에서 내공을 쌓은 그는 <미드나이트>에서 주인공으로서 손색없는 연기자임을 입증한다. 


영화 <미드 나이트>로 첫 주연 도전
인물의 본질을 탐구한 똑똑한 여배우

“제가 농아 연기를 하는데, 사실은 음성이 들리잖아요. 촬영 직전까지 고민과 걱정이었어요. 의도적으로 청각을 조금이라도 누르려고 했어요. 소리에 둔해지려고요. 이어플러그롤 꼽고 자고 일어나면 평소와 다른 아침, 다른 공간이 감각적으로 와요. 계속 소리를 무시했어요. 어떤 소리에도 쉽게 반응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저도 모르게 반응하는 것들을 막아보고자 했어요.”

평범한 인간에게 존재하는 무의식조차 조절하려고 한 자세가 깊이 있는 연기를 만들어냈나 보다. 무모한 도전일 수도 있는데, 결과만 놓고 보면 기어코 해낸 셈이다. 인간의 본질을 똑똑하게 탐구한 덕에, 수어부터 불완전한 발음으로 전하는 구어까지 완벽에 가깝게 해낸다.

그 안에는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도 적절히 스며들어 있다. 

“수어를 가르쳐주신 농인 선생님들이 본인의 목소리를 내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제 대사를 읽어주시길 부탁했어요.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연구를 많이 했죠. 손바닥에 입을 대고 파동으로 발음을 안다거나, 입 모양을 세심하게 보기도 했고요. 농인이 처음 글을 배울 때 어떻게 배우는지 고민했어요. 마치 세종대왕처럼. 하하.”

진기주에게는 도전자의 이미지가 뒤따른다. 자신이 쥐고 있는 걸 모두 내려놓고 다른 영역에서의 새 출발을 세 번이나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번에도 첫 스릴러, 첫 주연이다. 

“저는 도전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에요. 다른 분들은 도전하는 이미지로 보시겠지만요. 스릴러도 좋아하지 않아요. 무서워서요. 그럼에도 도전할 수 있었던 건 경미가 좋아서였어요. 농인인데도, 세상에 굴복하지 않은 강단이 있잖아요. 경미를 쫓아가다 보니까 스릴러에 도전하게 된 거예요.”

진기주가 연기한 경미는 일반적인 청각 장애인의 이미지를 부순다. 장애 때문에 힘들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누구보다도 단단하게, 멋있고 밝게 살아간다. 사람을 죽이는 데 조금의 죄책감이 없는 도식(위하준 분)보다 더 강해 보일 때도 있다. 

“완성된 영화를 보니까 감독님의 의중을 알겠어요. 제가 감정을 완전히 토해내는 장면이 있는데, 그걸 다 날리셨더라고요. 물어보니까 경미가 조금이라도 약하게 보이지 않길 바라셨대요. 저 역시 공포에 굴복하지 않는 경미를 표현하려 했거든요. 비록 장애가 있어도, 굴복하지 않는 경미가 정말 멋있었는데 잘 표현된 것 같아요.”

단아하고 곱상한 듯 여린 면도 엿보이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고된 훈련을 받았다. 삼성에서의 합숙과 기자 초년병일 때의 취재 훈련 등이 그것이다. 그때의 고생이 단단한 진기주를 만들고 있다.

변하지 않아

“기자 생활하면서 너무 고생해서 그런지 지금 저는 어떤 힘든 스케줄을 소화해도 기자 때보다는 힘들지 않아요. 할만해요. 저는 연기만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원하는 장르 캐릭터도 없어요. 연기자의 직업만 유지했으면 해요. 초심은 그대로입니다. 달라지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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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