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부활 30년' 걸어온 길 가야할 길

풀뿌리 민주주의 이제 꽃피울 차례

[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흔히 지방자치제도(이하 지방자치)를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한다. 지난 1991년 재출범된 이래로 지방자치가 부활한지 30년이 지났다.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룩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여전히 무늬만 존재한다는 비판도 공존하고 있다. 

지난 1988년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이 이루어진 이후 32년 만에 처음으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지난해 12월9일 통과됐다. 전부개정안의 통과로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의 역할 확대에 대한 기대감이 상승했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본격적인 지방자치2.0 시대의 막을 열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참여 확대
자율성 보장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은 국회에서 처리하려 했으나 지난해 회기가 만료돼 폐기된 법안이다. 지자체 부활 30주년이라는 시점과 맞물린 상황에서 지방자치법 개정을 미룰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오자 관련 법안이 지난해 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된 법안의 주요 내용은 지방의회의 ▲주민참여권 보장 및 강화 ▲지자체 역량 강화 및 자치권 확대 ▲투명성·책임성 확보 ▲중앙과 지방 간 협력관계 정립 등이다.

개정된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주민의 지방행정 참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는 것을 지방자치법에 목적으로 명시했다. 


이에 따라 지방의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 대한 주민의 참여권이 더욱 보장됐다. 과거에는 조례안을 제정할 경우 단체장에게 제출했지만 법이 수정되면서 주민이 직접 의회에 조례안을 발의할 수 있는 권한도 생겼다. 

주민감사와 소송에 관한 부분도 완화시켰다. 기존 19세 이상 주민만 가능했지만 법률의 변경으로 18세로 하향 조정해 참여요건을 완화, 주민 참여가 더욱 쉬워졌다는 관측도 있다. 그 밖에도 단체장 중심으로 획일화돼있던 기관의 구성을 주민투표를 거쳐 기관구성의 선택권을 보장하도록 법이 수정됐다. 

주민들 적극 참여 시스템 마련
지역사회 문제 해결 자체 모색

주민자치기구의 조성은 기존 제도와 차별성과 운영방식에 대해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개정안에서 제외했다. 중립성과 주민의 대표기구로 실질적인 참여를 보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읍·면·동 단위에서 지역주민들의 의견이 수렴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주민자치기구에 대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성이 있음을 언급한 바 있다. 

지자체의 역량 강화도 이뤄졌다. 행정안전부는 자치권을 확대해 중앙정부에 쏠린 권한을 분배한다는 방안을 내놨다. 중앙정부의 자의적인 사무배분을 막기 위해 지역의 사무가 지역에 우선 배분하는 법안이 마련됐다. 

인사권과 관련한 사항도 개정됐다. 기존 시·도지사가 소유한 임용권을 시·도의회의 의장에게 권한을 줘 의회의 독립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다. 지방의원의 자치입법, 예산심의, 행정사무감사 등을 지원하는 전문 인력의 도입 근거도 정립됐다.


뿐만 아니라 행정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로써 특정 업무를 수행한다는 부단체장을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둘 수 있는 법적근거가 생겼다. 전문 인력제도를 통해 보좌 인력을 의원 정수의 절반까지 확보가능하다.

이외에도 인구 100만 이상의 도시에는 특례시라는 행정 명칭을 부여해 행정의 특수성을 인정한다. 지자체의 자율성과 역량을 강화해 자치권을 확대하겠다는 게 변경된 법안의 취지다. 

그래도 
갈길 멀다

그러나 현직 도의원은 인사권과 전문 인력과 관해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허소영 강원도의회 의원은 인사권이 직원 수를 지방 의원의 재정이나 규모, 인구 수에 따라서 조례로 정하도록 돼있지 않다는 점에서 미흡하다고 밝혔다. 인건비를 고려한다는 명목으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둔 점은 인사권을 의장에게 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 조직의 통제권은 중앙정부에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 인력의 제공을 의원 2명당 1명으로 제공한다는 점도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고 있다며 전문 보좌 인력의 확대를 촉구했다. 지방의회의 역량강화를 위해 법안을 개정한 데 비해 제도 도입의 취지를 반영하지 못한 점이 있어 사무와 정원에 관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정할 필요가 있음으로 풀이된다.  

지방의회와 관련된 법안도 바뀌었다. 지방의회의 의정활동, 집행부 조직, 재무 등 지자체의 정보를 제공하고, 정보공개 시스템을 구축해 주민의 정보 접근성을 높여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겠다는 법안도 마련됐다.

더불어 미약했던 처벌을 예방하는 등 지방의회의 윤리와 책임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윤리특별위원회를 설치를 의무화시켰다.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윤리심사자문위원회를 설치해 의원에 대한 징계를 철저히 하겠다는 게 골자다. 시·군·구의 잘못된 사무 처리에 대해 시·도가 조치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국가에서 명령을 내려 위법한 행정에 대한 정부의 관리 감독이 강화된다. 

이밖에도 지방의원이 겸직을 할 경우 내역 공개를 의무화해 실효성을 제고시키겠다는 뜻을 밝혔다. 

개정된 점 의미 있지만
풀어야할 숙제도 많아

중앙과 지방의 협력관계 정립과 행정 능률성을 제고시키기 위한 법률도 제정됐다. 지방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 주요 정책 결정과정에 있어 지방의 주요 주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지방자치법에 근거해 중앙과 지방의 협력회의가 가능한 법을 제정, 대통령과 시·도지사 간 간담회 개최를 제도화했다. 


행정구역과 생활구역이 달라 어려움을 겪는 주민들에게 불편을 해결할 수 있도록 중앙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해결하는 절차도 수립됐다. 지방자치단체간의 협력을 통해 교통과 환경분야에서 지역들의 공동대응이 필요한 부분을 해결할 수 있도록 협력촉진을 위한 국가차원의 지원근거가 신설됐다.

이외에도 단체장 인수원회가 제도화됐고, 행정구역 결정의 절차가 개선되도록 하는 법안들이 시행 예정이다.

32년 만에 법이 전면개정됐음에도 여전히 지자체의 권한이 더 확대되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나온다. 지방분권의 가장 큰 핵심은 재정분권이다. 지자체가 중앙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완전한 지방분권이 실현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율적
독립적

지방자치는 1991년 지방의회선거와 1995년 동시 지방선거로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가 열렸다. 행정정보 공개, 주민참여 예산제도 등 민주적 제도의 주민 눈높이 지방행정으로 주민의 삶의 질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방자치는 지역주민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했다. 

지방자치는 실질적 법치제도 확립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평가가 있다. 1992년 기초의회에서 지방자치 조례를 제정하면서 정보공개를 통해 주민의 알권리를 제공했다.  


지방자치의 부활은 사회 질서를 확립했다. 지방자치의 핵심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데 있다. 지역마다 문화가 다르고 가지고 있는 고유 자원이 다른 점을 활용해 각 지역의 개성의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지방자치와 관련해서 정부가 진보, 보수정권을 막론하고 지방분권을 위해 법을 제정해왔다. 2003년 노무현정부의 지방분권특별법, 2008년 이명박정부의 지방분권촉진에 관한 특별법 2010년 지방행정제체 개편에 관한 특별법, 2013년 박근혜정부의 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등을 통해 지방분권의 명맥을 이어갔다. 

그에 따라 중앙행정권한의 지방이양은 어느 정도 이뤄졌다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시·도의원과 지방공무원의 비리와 기업에 대한 특혜, 중앙정부의 지자체의 자치역량에 대한 의구심과 불신 등으로 무늬만 자치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박기관 한국지방자치학회 회장은 “주민참여 차원에서 볼 때, 많은 진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며 “주민투표법 등 직접참여제도가 있지만, 현행 주민 발안제를 더욱 실질화하고, 주민소환제 등으로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제도의 도입 차원인 상태에서 실질적으로 법안이 기능하기 위해서는 세부적으로 많은 연구와 실천이 뒤따라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방자치법이 개정된 지금도 지방자치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이 풀뿌리 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했으며 부족한 부분은 즉각 반영해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방자치법의 개정으로 지방정부가 강화된 위상과 권한으로 지역발전을 위한 정책의 혁신적 시도가 필요하다는 관측이다.

주민에게 
더 가까이

김정태 서울시의회 운영위원장은 “지방자치 30년 역사는 곧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이고, 지방의회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산실임이 입증됐다”며 “지방자치법의 개정은 주민 참여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시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혼란의 시대’ 1991년 전 지방자치는?

1948년 제헌헌법에서 지방자치가 제도적으로 보장됐고, 제헌의회는 지방자치법  제정을 논의했다. 그러나 지방자치의 즉각적 실시를 주장하는 국회와 1년 이내의 기간에 대통령령으로 실시 시기를 정해 시행하자는 정부의 의견대립으로 지연되다가 1949년 지방자치법이 공포됐다. 

이후 정부는 치안유지와 국가의 안정, 국가건설과업의 효율적 수행 등을 이유로 지방자치의 실시를 연기하다가 1952년 지방의원 선거를 통해 지방자치를 시행했다.

당시는 지방의원과 달리 지자체장을 통해 초기에 기초 간선제와 임명제를 적용함으로써 완전한 지방자치가 제도적으로 구현되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다.

도입기의 지방자치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다양한 제약과 한계가 존재했다.

또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지방자치는 중단이라는 기로에 섰다. 군사혁명위원회는 도입기의 지방자치가 민주주의의 기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문제를 야기한다고 판단했다.

선거를 둘러싸고 발생한 파쟁과 민심 분열, 금품매수, 이권청탁, 정실행정, 예산낭비 등의 문제와 지방의회의 자치단체장 불신임권 남용으로 효율적인 지방행정의 수행이 곤란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정부는 지방행정의 능률화를 위해서는 새로운 방향의 정립이 필요하고, 지방자치의 구현보다는 지역개발의 추진에 중점을 두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결국 군사혁명위원회는 지방의회를 해산하고 지방의회의 기능을 상급기관장이 대신하게 함으로써, 지방자치제도가 중단됐다.

정부는 헌법 개정을 통해 지자체장의 선거 관련 규정이 삭제됐고, 지방의회의 구성 시기는 법률로 정한다는 부칙 규정이 신설됐다.

개정헌법으로 삼권분립에 근거한 대통령중심제가 채택됨에 따라, 이전의 헌법보다 대통령의 권한이 강화된 중앙집권체제가 마련된 셈이다. 이후 1972년에 또다시 헌법 개정을 통해 지방의회의 구성을 보류해, 지방자치의 부활은 1991년이 되기 전까지 불가능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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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