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부활 30년' 걸어온 길 가야할 길

풀뿌리 민주주의 이제 꽃피울 차례

[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흔히 지방자치제도(이하 지방자치)를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한다. 지난 1991년 재출범된 이래로 지방자치가 부활한지 30년이 지났다.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룩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여전히 무늬만 존재한다는 비판도 공존하고 있다. 

지난 1988년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이 이루어진 이후 32년 만에 처음으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지난해 12월9일 통과됐다. 전부개정안의 통과로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의 역할 확대에 대한 기대감이 상승했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본격적인 지방자치2.0 시대의 막을 열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참여 확대
자율성 보장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은 국회에서 처리하려 했으나 지난해 회기가 만료돼 폐기된 법안이다. 지자체 부활 30주년이라는 시점과 맞물린 상황에서 지방자치법 개정을 미룰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오자 관련 법안이 지난해 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된 법안의 주요 내용은 지방의회의 ▲주민참여권 보장 및 강화 ▲지자체 역량 강화 및 자치권 확대 ▲투명성·책임성 확보 ▲중앙과 지방 간 협력관계 정립 등이다.

개정된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주민의 지방행정 참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는 것을 지방자치법에 목적으로 명시했다. 


이에 따라 지방의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 대한 주민의 참여권이 더욱 보장됐다. 과거에는 조례안을 제정할 경우 단체장에게 제출했지만 법이 수정되면서 주민이 직접 의회에 조례안을 발의할 수 있는 권한도 생겼다. 

주민감사와 소송에 관한 부분도 완화시켰다. 기존 19세 이상 주민만 가능했지만 법률의 변경으로 18세로 하향 조정해 참여요건을 완화, 주민 참여가 더욱 쉬워졌다는 관측도 있다. 그 밖에도 단체장 중심으로 획일화돼있던 기관의 구성을 주민투표를 거쳐 기관구성의 선택권을 보장하도록 법이 수정됐다. 

주민들 적극 참여 시스템 마련
지역사회 문제 해결 자체 모색

주민자치기구의 조성은 기존 제도와 차별성과 운영방식에 대해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개정안에서 제외했다. 중립성과 주민의 대표기구로 실질적인 참여를 보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읍·면·동 단위에서 지역주민들의 의견이 수렴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주민자치기구에 대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성이 있음을 언급한 바 있다. 

지자체의 역량 강화도 이뤄졌다. 행정안전부는 자치권을 확대해 중앙정부에 쏠린 권한을 분배한다는 방안을 내놨다. 중앙정부의 자의적인 사무배분을 막기 위해 지역의 사무가 지역에 우선 배분하는 법안이 마련됐다. 

인사권과 관련한 사항도 개정됐다. 기존 시·도지사가 소유한 임용권을 시·도의회의 의장에게 권한을 줘 의회의 독립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다. 지방의원의 자치입법, 예산심의, 행정사무감사 등을 지원하는 전문 인력의 도입 근거도 정립됐다.


뿐만 아니라 행정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로써 특정 업무를 수행한다는 부단체장을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둘 수 있는 법적근거가 생겼다. 전문 인력제도를 통해 보좌 인력을 의원 정수의 절반까지 확보가능하다.

이외에도 인구 100만 이상의 도시에는 특례시라는 행정 명칭을 부여해 행정의 특수성을 인정한다. 지자체의 자율성과 역량을 강화해 자치권을 확대하겠다는 게 변경된 법안의 취지다. 

그래도 
갈길 멀다

그러나 현직 도의원은 인사권과 전문 인력과 관해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허소영 강원도의회 의원은 인사권이 직원 수를 지방 의원의 재정이나 규모, 인구 수에 따라서 조례로 정하도록 돼있지 않다는 점에서 미흡하다고 밝혔다. 인건비를 고려한다는 명목으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둔 점은 인사권을 의장에게 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 조직의 통제권은 중앙정부에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 인력의 제공을 의원 2명당 1명으로 제공한다는 점도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고 있다며 전문 보좌 인력의 확대를 촉구했다. 지방의회의 역량강화를 위해 법안을 개정한 데 비해 제도 도입의 취지를 반영하지 못한 점이 있어 사무와 정원에 관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정할 필요가 있음으로 풀이된다.  

지방의회와 관련된 법안도 바뀌었다. 지방의회의 의정활동, 집행부 조직, 재무 등 지자체의 정보를 제공하고, 정보공개 시스템을 구축해 주민의 정보 접근성을 높여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겠다는 법안도 마련됐다.

더불어 미약했던 처벌을 예방하는 등 지방의회의 윤리와 책임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윤리특별위원회를 설치를 의무화시켰다.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윤리심사자문위원회를 설치해 의원에 대한 징계를 철저히 하겠다는 게 골자다. 시·군·구의 잘못된 사무 처리에 대해 시·도가 조치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국가에서 명령을 내려 위법한 행정에 대한 정부의 관리 감독이 강화된다. 

이밖에도 지방의원이 겸직을 할 경우 내역 공개를 의무화해 실효성을 제고시키겠다는 뜻을 밝혔다. 

개정된 점 의미 있지만
풀어야할 숙제도 많아

중앙과 지방의 협력관계 정립과 행정 능률성을 제고시키기 위한 법률도 제정됐다. 지방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 주요 정책 결정과정에 있어 지방의 주요 주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지방자치법에 근거해 중앙과 지방의 협력회의가 가능한 법을 제정, 대통령과 시·도지사 간 간담회 개최를 제도화했다. 


행정구역과 생활구역이 달라 어려움을 겪는 주민들에게 불편을 해결할 수 있도록 중앙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해결하는 절차도 수립됐다. 지방자치단체간의 협력을 통해 교통과 환경분야에서 지역들의 공동대응이 필요한 부분을 해결할 수 있도록 협력촉진을 위한 국가차원의 지원근거가 신설됐다.

이외에도 단체장 인수원회가 제도화됐고, 행정구역 결정의 절차가 개선되도록 하는 법안들이 시행 예정이다.

32년 만에 법이 전면개정됐음에도 여전히 지자체의 권한이 더 확대되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나온다. 지방분권의 가장 큰 핵심은 재정분권이다. 지자체가 중앙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완전한 지방분권이 실현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율적
독립적

지방자치는 1991년 지방의회선거와 1995년 동시 지방선거로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가 열렸다. 행정정보 공개, 주민참여 예산제도 등 민주적 제도의 주민 눈높이 지방행정으로 주민의 삶의 질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방자치는 지역주민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했다. 

지방자치는 실질적 법치제도 확립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평가가 있다. 1992년 기초의회에서 지방자치 조례를 제정하면서 정보공개를 통해 주민의 알권리를 제공했다.  


지방자치의 부활은 사회 질서를 확립했다. 지방자치의 핵심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데 있다. 지역마다 문화가 다르고 가지고 있는 고유 자원이 다른 점을 활용해 각 지역의 개성의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지방자치와 관련해서 정부가 진보, 보수정권을 막론하고 지방분권을 위해 법을 제정해왔다. 2003년 노무현정부의 지방분권특별법, 2008년 이명박정부의 지방분권촉진에 관한 특별법 2010년 지방행정제체 개편에 관한 특별법, 2013년 박근혜정부의 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등을 통해 지방분권의 명맥을 이어갔다. 

그에 따라 중앙행정권한의 지방이양은 어느 정도 이뤄졌다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시·도의원과 지방공무원의 비리와 기업에 대한 특혜, 중앙정부의 지자체의 자치역량에 대한 의구심과 불신 등으로 무늬만 자치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박기관 한국지방자치학회 회장은 “주민참여 차원에서 볼 때, 많은 진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며 “주민투표법 등 직접참여제도가 있지만, 현행 주민 발안제를 더욱 실질화하고, 주민소환제 등으로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제도의 도입 차원인 상태에서 실질적으로 법안이 기능하기 위해서는 세부적으로 많은 연구와 실천이 뒤따라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방자치법이 개정된 지금도 지방자치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이 풀뿌리 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했으며 부족한 부분은 즉각 반영해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방자치법의 개정으로 지방정부가 강화된 위상과 권한으로 지역발전을 위한 정책의 혁신적 시도가 필요하다는 관측이다.

주민에게 
더 가까이

김정태 서울시의회 운영위원장은 “지방자치 30년 역사는 곧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이고, 지방의회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산실임이 입증됐다”며 “지방자치법의 개정은 주민 참여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시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혼란의 시대’ 1991년 전 지방자치는?

1948년 제헌헌법에서 지방자치가 제도적으로 보장됐고, 제헌의회는 지방자치법  제정을 논의했다. 그러나 지방자치의 즉각적 실시를 주장하는 국회와 1년 이내의 기간에 대통령령으로 실시 시기를 정해 시행하자는 정부의 의견대립으로 지연되다가 1949년 지방자치법이 공포됐다. 

이후 정부는 치안유지와 국가의 안정, 국가건설과업의 효율적 수행 등을 이유로 지방자치의 실시를 연기하다가 1952년 지방의원 선거를 통해 지방자치를 시행했다.

당시는 지방의원과 달리 지자체장을 통해 초기에 기초 간선제와 임명제를 적용함으로써 완전한 지방자치가 제도적으로 구현되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다.

도입기의 지방자치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다양한 제약과 한계가 존재했다.

또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지방자치는 중단이라는 기로에 섰다. 군사혁명위원회는 도입기의 지방자치가 민주주의의 기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문제를 야기한다고 판단했다.

선거를 둘러싸고 발생한 파쟁과 민심 분열, 금품매수, 이권청탁, 정실행정, 예산낭비 등의 문제와 지방의회의 자치단체장 불신임권 남용으로 효율적인 지방행정의 수행이 곤란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정부는 지방행정의 능률화를 위해서는 새로운 방향의 정립이 필요하고, 지방자치의 구현보다는 지역개발의 추진에 중점을 두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결국 군사혁명위원회는 지방의회를 해산하고 지방의회의 기능을 상급기관장이 대신하게 함으로써, 지방자치제도가 중단됐다.

정부는 헌법 개정을 통해 지자체장의 선거 관련 규정이 삭제됐고, 지방의회의 구성 시기는 법률로 정한다는 부칙 규정이 신설됐다.

개정헌법으로 삼권분립에 근거한 대통령중심제가 채택됨에 따라, 이전의 헌법보다 대통령의 권한이 강화된 중앙집권체제가 마련된 셈이다. 이후 1972년에 또다시 헌법 개정을 통해 지방의회의 구성을 보류해, 지방자치의 부활은 1991년이 되기 전까지 불가능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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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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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