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구와 <머니게임> 온라인 달구는 '현실 막장쇼'

사람 모이면 땡? 추악한 폭로전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옳고 그름을 떠나 사람들이 가장 재밌어하는 게 싸움 구경이다. 싸우는 당사자들은 괴롭겠지만, 먼발치서 지켜보는 구경꾼들에게는 아드레날린이 솟는다. 일종의 길티 플레저다. 최근 인기 BJ들 사이에서 두 개의 큰 싸움이 발생했다. 철구와 그의 아내 외질혜의 이혼을 둘러싼 갈등과 웹 예능 <머니게임>에 출연한 파이의 폭로전이다. 워낙 자극적인 소재라 구경꾼들이 몰리고 있다. 

인기 BJ 철구와 철구 아내 외질혜

일부 명작으로 불리는 영화나 드라마 중에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는 경우가 많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은 연쇄살인의 이야기를 다루며, 나홍진 감독의 영화 <추격자>는 싸이코패스를 소재로 한다. 국내 장르물 중 매우 호평을 받은 SBS 드라마 <마을:아치하라의 비밀>은 매우 끔찍한 가족사를 소재로 했다. 하지만 거론된 작품은 막장이 아닌 명작으로 불린다. 

명작
졸작

반대로 SBS <펜트하우스>는 막장 드라마로 불린다. 앞선 작품들과 <펜트하우스>는 자극적인 소재를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평가가 크게 갈리는 이유는 시청자들이 신뢰할만하고 개연성이 있다고 느끼는 핍진성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사건과 사건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물의 감정과 행동, 그 외 상황이 쉽게 이해되지 않을 때 ‘막장’이라는 좋지 못한 수식어가 붙는다. <펜트하우스>는 ‘순옥드’(김순옥 작가 드라마)라고 불릴 정도로 개연성에 신경쓰지 않는다. 작품의 기본적인 구성을 포기한 형태로 드라마가 진행된다. 인기는 있지만, 평가는 박하다. 

핍진성을 높이기 위해 드라마 작가나 감독이 자주 활용하는 소재가 실화다. 실화 바탕의 소재를 작품에 자주 활용하는 이준익 감독은 “작가의 상상력은 실화가 주는 이야기의 깊이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밝힌 바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은 아무리 소재가 자극적이어도, 실제 벌어진 사건이기 때문에 상상으로 대체할 수 없는 현실성이 있어서다. 

이혼과 불륜, 그 외 수많은 폭로가 뒤섞인 갈등이 현실에서 벌어졌다. 말 그대로 실화다. 최근 국내에서 거의 생중계되다시피 하는 두 가지 싸움이 있다. 

인기 BJ 철구(본명 이예준)와 그의 아내 외질혜(본명 전지혜)의 이혼을 둘러싼 갈등과 <머니게임> 출연자인 BJ 파이(본명 강다온)의 폭로와 또 다른 출연자인 전기(본명 김건호), 공혁준, 니갸르, 가오가이 등의 반박이다. 두 싸움은 현재 진행형이다. 

철구-아내 외질혜 막가는 설전
남의 집 불구경…구경꾼들 몰려

먼저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출신이자 BJ 경력이 10년 이상 되는 철구는 걸어다니는 대기업이라 불릴 정도의 스트리머다. 아프리카TV가 유명해지는 데 가장 큰 공로를 받는 인물이면서도 반대로 악명 높은 방송인이다. 

자극적인 콘텐츠와 막말, 엽기적인 행위로 온갖 논란의 중심에 있다. 범법 행위는 아니지만, 윤리적으로 입방아에 오르내릴 만한 행위가 많았다.

머니게임 포스터

고인 모욕이나 최근 인기 연예인에 대한 비하, 여성 비하 등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을 언행을 일삼았다. 심지어 ‘철구 방송 본다’고 하면 주변 지인들이 피하는 현상까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미지가 좋지 않다. 


그런 가운데 지난 2014년 결혼하며 슬하에 딸도 있는 철구는 지난 23일 아내 외질혜와 이혼을 선언하며 폭로하기 시작했다. 외질혜가 결혼 중에 스트리머인 BJ 지윤호와 외도를 하고 있다고 밝힌 것.

철구는 같은 달 13일 이혼을 선언했다가 번복한 후 다시 재점화했다. 

철구는 방송을 통해 “2주 전 새벽 2시에 외질혜가 통화한 목록이 있어 확인했더니 다른 남자가 받았다”며 “그 남자와 통화를 녹음했다. 외질혜도 이실직고했다”고 상대방이 바람을 피웠다고 주장했다. 이어 외질혜가 부부생활 중 성관계를 거부하고 낙태했다는 주장도 했다.

이와 관련해 이혼 문제를 두고 방송으로 기록을 남기는 것에 불만을 제기한 시청자들에 대해 “방송을 켜지 않으면 이혼을 번복할 것 같아 방송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따금 이혼을 소재로 콘텐츠를 만들어온 철구가 이번만큼은 확실히 이혼하겠다는 다짐을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철구의 폭로에 외질혜 역시 수위 높은 내용으로 반박했다. 외질혜 역시 개인 방송을 통해 철구와 있었던 속사정을 털어놨다.

그는 “지윤호와 깊은 관계가 아니다. 서로 호감만 있을 뿐”이라며 “가정 파탄의 이유는 나의 불륜이 아닌 철구의 상습 성매매와 도박이다. 철구는 내가 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성매매를 했다. 그때부터 잠자리를 갖기 싫었다. 또 철구가 매일 도박을 했다. 돈을 다 잃어 내 돈으로도 빚을 갚아줬다”고 밝혔다. 

성매매, 도박
낙태, 불륜…

또 상습적인 폭행이 있었으며, 싸울 때마다 집안의 물건들을 부쉈다고도 밝혔다. 외질혜는 “ 한 대만 때렸다고 하는데 죽도록 맞았다”며 “길거리, 차 안, 그리고 집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때렸다”고 말했다.

머니게임에 출연했던 파이

이에 대해 철구는 다시 해명 방송을 했다. 이날 방송에서 철구는 성매매 사실과 가정 폭력도 일부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도 비록 잘못이 있지만, 나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히면서 이혼할 것을 재차 내비쳤다.

두 사람의 ‘치킨 게임’에 걱정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철구의 경우 ‘원조 초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청소년 구독자가 많은 방송인이다. 폭로 영상 및 댓글에는 청소년에게 그릇된 영향력을 끼치는 내용도 다수 포함돼있다. 

특히 철구의 두 번째 해명방송은 동시접속자가 무려 37만명을 넘겼다. 두 사람 사이에는 8살의 딸(본명 이연지)이 있는데, 훗날 아이가 커서 서로를 욕하는 부모의 영상을 봤을 때를 걱정하는 시청자들도 다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신종 아동학대’라는 주장도 나온다. 

또 하나의 사건은 <머니게임> 출연자 파이의 폭로전이다. 진용진 채널에서 공개된 <머니게임>은 배진수 작가의 동명 웹툰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총 8명의 출연자가 14일 동안 제작진이 설계한 공간에서 지내는 것을 관찰 형태로 만든 예능이다. 


인간의 본능을 억제하는 공간을 만든 만큼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극대화해, 그곳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그리려는 게 기획 의도다. 그 가운데서 1번 출연자인 공혁준과 4번 출연자 전기와 다른 출연자들간의 큰 갈등이 벌어졌다.

욕설이 난무했고, 인격모독도 있었다. 워낙 극심한 스트레스였기 때문에 본능이 표출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후 5화에서 여성 출연진이 집단퇴소하는 모습이 그려지면서 종영했다가, 6화부터는 남성 출연자가 여성 출연진에게 자존심을 숙이는 장면이 나왔다.

갑작스럽게 상황이 뒤바뀐 이후 논란은 심화됐다. 

이 가운데서 니갸르를 제외한 2번 출연자 육지담과 5번 이루리, 6번 파이가 도마 위에 올라 시청자들로부터 강한 비난을 당했다. 육지담과 이루리는 시청자들에게 사과하며 일단락했지만, 파이는 “나는 그렇게 잘못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시청자들을 조롱하는 모습을 보였다.

충격의
폭로쇼

<머니게임>에서 드러난 모습에 대해 일관된 태도를 지녀온 파이에 대해 시청자들의 비난 수위는 더욱 심해졌다. 악성 댓글만 무려 수만개가 달릴 정도였으며, <머니게임> 이전부터 파이를 지지한 열혈 팬들마저도 등 돌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자 파이는 지난 24일 2시간여의 생방송 스트리밍을 통해 그간 모아놨던 대다수 녹취록을 풀며 폭로를 감행했다. 자신이 당하고 있는 비난에 대한 억울함을 토로하겠다는 게 요지였다.

이 방송은 무려 21만명의 동시접속자를 기록했다. <머니게임>이 얼마나 파급력이 있으며, 또 실제 현실판 싸움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고 있는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머니게임 포스터

파이의 폭로 내용에는 <머니게임> 내 제작진의 섭외와 개입, 육지담과 니갸르의 남성 출연자 비하, 여성 출연자들 앞에서 사과하는 제작진과 공혁준, 이 외 다른 출연자간의 갈등 등을 모두 드러냈다. 유튜브 채널 ‘파이.D’에 올라온 녹취록만 무려 3시간이 넘는다. 

하지만 파이는 자신을 공격하는 시청자들의 민심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대부분 녹취록이 그간 다른 출연진과 제작진이 반박한 내용을 오히려 확인시켜주는 내용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신의 편이 돼준 육지담이 뒤에서 얼마나 못된 행동을 했는지만 드러났으며, 오히려 공혁준과 전기 등 파이 입장에서 상대편인 사람들을 더 호의적으로 만들었다. 

이와 관련해 파이를 비롯해 다른 출연자들을 감싸 안아왔던 공혁준은 분노를 감추지 못하며 파이를 비난했다. 공혁준은 “자기가 생각할 땐 힘들고 그랬을 거 같다. 나도 욕먹어서 안다”며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주위 사람들을 찍어누르면서까지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왜 본인한테 불리한 얘기는 안 하냐. <머니게임>에서 본인이 제작진과 협의 룰을 바꾼 건 왜 말을 안 하냐. 심지어 돈까지 받아 갔으면서”라고 분노했다. 

네 편 내 편 없는 파이 논란 증폭
동시접속자 40만…걱정되는 악영향

파이의 방송에 반박하겠다고 밝힌 전기는 지난 25일, 약속대로 해명 방송을 했다. 이 방송에는 무려 38만명 이상의 동시접속자를 기록했다. 

<머니게임> 내에서 공혁준과 함께 인기를 얻은 전기는 “파이의 방송에서 딱히 해명할 내용이 없다”며 약 30분간 자신의 소회를 밝혔다. 별다른 내용이 없었음에도, 시청자들은 그를 후원하는 목적으로 ‘슈퍼챗’은 500만원 이상을 쐈다. 

‘현실판 머니게임’으로 불리고 있는 파이의 폭로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파이는 대다수 녹취록을 공개했음에도 오히려 시청자들의 반응은 더 악화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파이는 제작진을 향해 폭로전을 이어나갈 것임을 예고해 이 싸움은 지속될 전망이다.  

그런 가운데 두 사건 내에서 보인 동시접속자 수는 놀라움을 준다. 세 스트리밍 방송만 무려 100만 시청자가 동원됐다. 축구나 야구와 같은 인기 스포츠의 결승전에도 세 사람이 기록한 동시접속자 수를 기록하긴 쉽지 않다. 

인터넷 방송 플랫폼 트위치 내 압도적 1위 스트리머인 침착맨(본명 이병권)의 동시접속자가 2만명 내외인 점과 국내 최고의 인기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 대회인 2021 MSI(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 결승전도 5만명 내외의 동시접속자를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이들의 기록은 어마어마한 수치다. 

머니게임에 출연했던 유튜버 전기

뉴미디어의 발달과 더불어 워낙 자극적인 내용으로 다투고 있어 이러한 현상이 가능한 것으로 해석된다. 인간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극단의 추악한 모습이 그대로 전파를 타고 있다. 뉴미디어의 영향력이 더욱 강해지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폭로전이 많은 사람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올드미디어에서는 다룰 수 없는 ‘막장쇼’가 뉴미디어에서는 쉽게 다뤄진다. 유튜브 내에서 사회의 물의를 일으키는 방송에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미흡하다는 게 중론이다. 

아울러 유튜브 내에서는 악성 댓글이 극심한 단계에 이르렀다. 특히 <머니게임>으로 인해 엄청난 비난을 받은 파이와 관련한 댓글에는 인격모독을 넘어 매우 비윤리적인 댓글도 달리고 있다. 심지어 “파이 시체 보고 싶다” “자살해라” 등의 충격적인 댓글도 보인다. 

때로 건설적인 비판도 있기는 하나, 이 같은 모욕적인 글을 정화하는 기능이 없다는 건 뉴미디어가 가진 한계점으로 지적된다. 

“자살하거라”
도넘은 악플

한 방송 관계자는 “매우 자극적인 유통하는 인터넷 사업체나 유튜브 등에서는 오히려 클릭이 많이 나와 이런 자극적인 방송을 모른척한다. BJ 개인을 처벌하기보다 무분별하게 방송을 하도록 방관하는 사업체, 유튜브 등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는 등 규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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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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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