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5주년 특집> '절대강자는 없다' 대기업 서열 전쟁 막전막후

'오르락내리락' 피 튀는 승강전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5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및 공시대상기업집단’을 발표해왔다. 직전년도를 기준으로 자산 5조원이 넘는 대기업집단을 공개하는 것이다. 여기에 포함됐다는 건 ‘대기업’으로 분류됐음을 의미한다. 회사가 양적 성장을 거듭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및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정은 재벌에 의한 시장경쟁 저해를 막기 위해 1987년 첫 도입됐다. 초창기에는 자산총액 4000억원이 기준이었지만, 2002년 2조원, 2009년 5조원으로 상향 조정됐다. 여기에 포함되면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상호지급보증 금지 출자 총액 제한, 상호출자 금지 등 규제가 가해진다.

상위권
그대로

해당 기준은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 수정됐다. 2017년 7월11일 자산 5조원 이상인 공시대상 기업집단의 지정을 위한 세부기준이 담긴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데 따른 변화였다.

개정안은 석달 전 공표된 개정 공정거래법의 위임 사항을 규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공시의무와 사익편취 규제의 적용 대상을 기존 자산 10조원 이상의 상호출자제한집단 외에 자산 5조원 이상의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분류하는 게 핵심이다.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정 절차는 기존 상호출자제한집단의 내용을 그대로 사용했다. 자산총액 산정은 직전 사업연도 대차대조표상의 자산총액 합계로 이뤄지며, 금융·보험사는 자본총액과 자본금 중 큰 금액에 따른다.


대신 금융·보험업만을 영위하는 기업집단이나 회생·관리절차가 진행 중인 소속 회사의 자산총액이 전체의 50% 이상인 기업집단 등은 지정대상에서 제외된다.

지난 1일 기준 상호출자제한집단 및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이름을 올린 기업은 총 71곳. 이는 전년(64개) 대비 7개 증가한 수치다. 상호출자제한집단으로 분류된 기업은 40곳으로, 전년 대비 6개 늘었다.

계열회사수는 지난해 2284개보다 328개 늘어난 2612개로 집계됐고, 공정자산은 지난해 2176조원보다 160조원 증가한 2336조원이었다. 상위 10개 기업집단의 공정자산 비중은 2019년 69.7%에서 올해 66.9%로 줄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시중 유동성이 크게 증가해 자산가치가 급등하며 지정집단이 대폭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명단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상위권 대기업들의 순위에 변동이 없었다는 점이다. 1위(삼성)부터 17위(부영) 사이에 이름을 올린 대기업은 지난해와 동일한 순위를 나타냈다. 롯데(2020년 121조5240억원→2021년 117조7810억원)를 제외한 16곳은 전년 대비 공정자산이 증가했다.

올라가고
내려가고

대신 네이버(27위), 넥슨(34위), 넷마블(36위) 등 IT 기업들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신규 지정이 두드러졌다. 이로써 카카오(18위)를 비롯해 국내 IT·게임 기업 가운데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된 곳은 총 4개사로 늘었다.


IT기업이 상호출자제한기업에 지정된 것은 2016년부터다. 공정위는 당시 대기업집단에 카카오를 포함시켰고, 이듬해 네이버와 넥슨, 2018년 넷마블이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포함됐다. 카카오는 2019년 공정자산 10조원을 넘기면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편입됐다.

IT기업들은 코로나19 확산과 이에 따른 비대면 수혜로 인해 보유주식 가치 상승, 수익 증가 혜택을 톡톡히 봤다. 이 영향으로 4대 IT기업의 공정자산은 전년 대비 20% 이상 성장했다.

실제로 IT 기업 4곳은 동반 순위 상승을 나타냈다. 카카오의 공정자산 기준 순위는 지난해 23위에서 5계단 올라섰고, 네이버는 14계단 수직상승했다. 넥슨은 8계단, 넷마블은 9계단 순위를 끌어올렸다.

셀트리온(24위)는 가장 높은 순위 상승을 나타냈다. 셀트리온은 3조1000억원 규모의 원주식 출자를 통해 계열회사를 신규 설립했고, 사업이익도 증가했다. 이를 토대로 순위를 21단계 끌어올렸다. 

새롭게 편입된 7개 새얼굴
동일인 변경 기준은 무엇?

지난해 9조원대 공정자산을 기록했던 호반건설(37위), SM(38위), DB(39위) 역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1년 새 공정자산을 7300억원~1조5000억원가량 늘리는 데 성공했다. 호반건설(2020년 44위)의 순위 상승이 두드러졌고, SM과 DB는 전년과 동일한 순위를 나타냈다.

특히 호반건설은 2017년 자산 5조원을 넘기며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지정된 지 3년여 만에 자산이 두 배 이상 늘었다. 부영, DL, HDC에 이어 건설그룹으로서 네 번째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포함됐다.

이들과 달리 대우건설(42위)과 코오롱(40위)은 공정자산 감소로 인해 순위 하락이 두드러졌다. 대우건설은 부채 감소로 인해 자산이 10조원을 밑돌면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명단에서 제외됐다. 지난해 33위에 위치했던 코오롱은 약 1300억원 감소한 공정자산으로 인해 순위가 7계단 하락했다.

공시대상 기업집단 명단에서는 신규 지정된 기업들이 눈에 띈다. 쿠팡(60위), 반도홀딩스(62위), 대방건설(66위), 현대해상화재보험(67위), 한국항공우주산업(68위), 엠디엠(69위), 아이에스지주(70위), 중앙(71위) 등 7곳이 여기에 해당한다. 

반도홀딩스와 아이에스지주는 주식·부동산 등으로 자산가치가 상승했다. 대방건설은 사업이익 증가와 사업용 토지 취득, 엠디엠은 회사 인수와 자산 신규 취득 등으로 신규 지정됐다.

중앙은 주식·부동산 등 자산가치가 증가했고, 쿠팡은 매출액과 유형자산이 늘었다. 한국항공우주산업과 현대해상화재보험은 사업이익 증가 등으로 공시대상 기업에 신규 지정됐다.

반면 KG는자회사 간 합병으로 회계상 자산총액이 감소해 지정된 지 1년 만에 제외됐다. KG는 지난해 공정자산 5조2560억원을 기록하며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63번째 순번으로 이름을 올린 바 있다.


곳곳에
새얼굴

기존 공시대상 기업집단 가운데 가장 높은 순위 상승을 기록한 곳은 HMM(48위)였다. HMM은 1년 새 공정자산을 2조2600억원 늘린 데 힘입어 재계 순위를 다섯 단계 끌어올렸다. 지난해 공정자산 6조5280억원으로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이름을 올린 지 1년 만에 50위 내로 진입한 것이다.

HMM과 달리 OCI(43위), 태영(44위), 이랜드(45위) 세아(46위) 등은 눈에 띄게 순위가 하락했다. 9단계 하락한 이랜드가 순위 변동폭이 가장 컸고, OCI는 8단계, 태영은 7단계, 세아는 6단계 뒷걸음질했다. 태영을 제외한 3곳은 공정자산도 감소했다. 

기업의 순위 변동만큼이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동일인(총수) 지정이었다. 공정위는 1987년부터 대기업집단 정책을 시행하며 동일인을 지정해왔다. 동일인 지정은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와 순환출자, 일감 몰아주기 같은 재벌의 폐해를 차단하기 위함이다.

올해는 현대자동차와 효성에서 동일인 변경이 목격됐다. 현대자동차는 정몽구 명예회장에서 정의선 회장으로, 효성은 조석래 명예회장에서 조현준 회장으로 동일인을 변경했다.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2세들을 동일인으로 판단해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정몽구가 보유한 주력회사(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지분 전부에 대한 의결권을 정의선에게 포괄 위임했고 정의선이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임원 변동, 대규모 투자 등 주요 경영상 변동이 있었던 점 등을 고려했다.


효성의 경우 조현준이 지주회사 효성의 최다출자자이며 조석래가 보유한 효성 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조현준에게 포괄 위임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현준이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지배구조 개편, 임원 변동, 대규모 투자 등 주요 경영상 변동이 있었던 점 등이 반영됐다.

동일인 변경 가능성이 점쳐졌던 LS, DL(옛 대림산업), 현대중공업, 코오롱 등은 기존 체계가 유지됐다. LS의 경우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이 동일인으로 등록돼있다. 구자홍 회장은 2012년 구자열 당시 LS전선 회장에게 LS 회장직을 넘겨줬지만, 10년 가까이 동일인은 바뀌지 않았다.

DL도 현재 총수는 이준용 명예회장이지만, 사실상 지배자는 지난해 말 기준 52.26%의 주식을 보유한 이해욱 회장이다. 정몽준 전 회장(아산재단 이사장)에서 정기선 부사장으로 경영권 승계 작업을 진행 중인 현대중공업과 이웅열 전 회장의 퇴진 이후 이규호 부사장이 경영 일선에 나선 코오롱도 비슷한 형국이다.

쿠팡의 경우 사실상 총수라고 봐도 무방한 김범석 의장이 동일인에서 제외됐다. 김범석 의장은 미국 쿠팡의 지분 10.2%를 들고 있지만, 의결권 기준으로는 76.7%를 보유하고 있다. 국내 법인은 미국법인의 지배를 받는 구조다.

그럼에도 김범석 의장이 동일인 지정을 피한 건 미국 국적이라는 특수성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총수로 지정될 경우 외국 자본이 투입된 기업들이 ‘총수 없는 대기업’으로 지정된 전례와 상충된다는 이유에서다.

만약 김범석 의장이 총수로 지정됐다면 매년 제출하는 자료에 대한 책임은 물론이고, 배우자나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 등 특수관계인과의 거래에 대한 공시의무가 생긴다. 김범수 의장은 이에 대한 의무를 피할 수 있게 됐다.

개선 필요한
애매한 기준

공정위는 "이번 지정을 계기로 동일인 정의·요건, 동일인 관련자의 범위 등 지정제도 전반에 걸친 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연구용역 등을 통해 동일인의 정의·요건·확인과 변경 절차 등 동일인에 관한 구체적 제도화 작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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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