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추부터…’ 국수본 하명 수사 의혹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05.10 13:23:09
  • 호수 1322호
  • 댓글 0개

‘윗선 사인’ 알아서 받들어모셨나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는 취지가 있기 마련이다. 올해 출범한 국가수사본부(국수본)도 경찰 권력을 분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대북전단 살포 관련해 김창룡 경찰청장의 구체적인 지시로 인한 위법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올해는 경찰에게 의미가 있는 해다. 올해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른 경찰개혁 제도화가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경찰개혁 법안으로 인해 경찰 조직은 세 가지로 나누어졌다. 국가경찰, 수사경찰, 그리고 자치경찰이다. 이와 함께 국가수사본부(이하 국수본) 신설, 대공 수사권 이관 등이 이뤄졌다.

안보수사대
수사팀 편성

정부는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 수사를 총괄할 국수본을 출범하는 등 경찰개혁 방침을 확정하고 이에 따른 후속 권력기관 개혁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불과 몇 개월밖에 되지 않긴 하지만 국수본에서 이렇다할 눈에 띄는 성과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 사건에 770여명이란 거대한 인력을 투입했지만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지방자치단체장 10명 등 공무원 157명, 국회의원 5명, 지방의원 40명 등에 대해 수사했지만 괄목할만한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구속자가 경기 포천시 공무원, LH 직원 등 6명에 불과했다.


과거 1, 2차 신도시 투기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올린 성과와 비교될 수 밖에 없다. 더욱이 부동산 투기의 구조적 비리 규명에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국수본은 임무 수행 결과뿐 아니라 사건 처리 속도에서도 아쉬운 점을 보여줬다. 일반 형사 사건 처리 속도도 지속적으로 둔화하고 있다고 집계됐다.

대검 형사정책담당관실이 공개한 검·경 수사권 조정 운영 현황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경찰이 검찰에 사건을 송치(기소 의견)하거나 사건 기록을 송부(무혐의 의견)한 사건은 총 22만7241건이었다. 

전년 동기 29만874건의 78.1% 수준에 해당한다. 처리 사건이 21.9% 감소했다는 의미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형사 사법체계 전반이 바뀌면서 국가 전체의 수사 역량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 수치로 증명됐다. 

최근 국수본은 대북 관련 수사를 지시했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지난달 25일부터 30일까지 ‘북한 자유 주간’을 맞아 2회에 걸쳐 50만장의 대북전단을 날려 보냈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와 관련해 지난 2일 한국과 미국을 협박하는 담화 3건을 내놨다. 시작은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었다. 

김여정 협박 담화 후 전단살포 수사
경찰청장이 지시? 수사권 독립 논란

김 부부장은 “남조선 탈북자 쓰레기”라며 “우리가 어떤 결심과 행동을 하든 책임은 (탈북자)쓰레기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않은 남조선 당국이 지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이어 북한 외무성의 권정근 미국국장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의회 연설을 두고 시비를 걸었다.


김 부부장의 협박 담화가 나오자, 통일부는 대북전담금지법이 이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몇 시간 뒤 김 청장은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해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엄정 처리하라고 안보수사대에 지시한 사실이 전해졌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김 청장에 대한 지시 사항과 관련해 위법 논란이 제기됐다.

경찰청은 기자들에게 “김 청장은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엄정 처리할 것을 지시했다”는 문자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1월 시행된 개정 경찰법 14조에 따르면 경찰청장은 개별 사건의 수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휘·감독할 수 없다고 규정돼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비대해진 경찰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개별 사건의 수사는 독립된 국가수사본부가 맡는다는 취지다.

하지만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지난 3일, 박 대표 등 대해 신변보호를 거부한 채 잠시 이탈해 대북전단을 살포했는지 확인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대북전단법
최대 3년

남 본부장은 서울경찰청 안보수사대에서 수사팀을 편성해 대북전단을 매단 풍선 날렸는지, 시점·장소 등을 확인할 예정이다. 이후 확인이 되면 법규에 따라 조치할 계획이다.

그는 “당사자가 (신변보호를)거부한다면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어 한계가 있다”며 “신변보호조가 배치돼있었으나 본인이 거부하고 이탈해 잠적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는 김 청장이 갑자기 ‘신속·철저 수사’를 지시한 것은 수사 가이드라인을 내렸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남 본부장은 경찰청이 대북전단 살포 관련해 구체적 지시가 아닌 일반적인 지휘로 보고 있다. 김 청장은 접경지역 주민의 신체에 대한 위기가 우려돼 경찰청장으로서 일반적 지휘권에 근거해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엄정 조치하는 취지로 보여진다.

이와 관련해 경찰 관계자는 “구체적 수사 지휘는 어떤 사건의 피의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라든지, 어떤 내용을 수사하라는 것이고, 일반적 지휘는 ‘신속하게 수사하라’ ‘인권 절차를 준수하라’는 형태”라며 “경찰청장의 지시는 구두로 이뤄진 일반적 지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맥락에 따라 김 청장의 지휘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선 지시 내용 자체는 일반적인 지휘로 볼 수 있지만, 북한의 비판 성명이 나오자마자 주말 오후에 급히 ‘철저·신속 수사’를 지시한 것은 맥락상 강하게 처벌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고 분석했다. 


청와대·통일부발 입김 작용?
규정상 구체적 수사 지휘 불가

경찰은 이에 따라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엽합 대표가 공개한 영상 속 장소와 시점을 확인하고, 가담자도 찾아낼 방침이라고 밝혔다. 박 대표 등 대북전단을 살포한 사람들에게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을 적용할 수 있다고 경찰은 밝혔다. 

박 대표는 “돈이 없어서 3000만원은 못내도 징역 3년은 기꺼이 살겠다”며 “징역 30년이 떨어지더라도 전단을 계속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지난 3월30일 시행에 들어간 대북전단금지법의 첫 적용 사례가 된다. 해당 법 위반 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전단이 북으로 날아가지 않아 결과적으로 ‘대남전단 살포’가 됐기 때문에 법 적용이 애매해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살포 미수도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다”며 수사 의지를 보이고 있다.

무리한 사법 처리는 첫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외교적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결국 경찰은 지난 6일 박 대표 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에 나서는 등 본격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와 경찰 등에 따르면 경찰은 이날 오전 박 대표 사무실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서울경찰청 안보수사대는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지난달 25~29일 두 차례에 걸쳐 50만장의 대북전단을 뿌렸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등 내사에 착수해왔다.

그러나 경찰은 최근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남북관계발전법) 위반 혐의로 박 대표를 입건해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로 박 대표가 전단을 뿌렸는지 여부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말을 아꼈다.

특히 이번 살포 사례는 개정법 시행 이후 처음이라는 면에서 관심받고 있다. 개정법상 처벌 조항 적용 여부와 방향에 대한 고려, 적용 후 법적 다툼 가능성 등에 관한 검토가 이뤄질 전망이다.

일반적 지휘
가능하다고?

경찰은 박 대표가 전단 살포 시 처벌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강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도 실정법이 이미 마련된 만큼 별도의 고발조치 없이 법에 따라서 처리한다는 의미다. 

통일부 역시 북한을 포함한 어떤 누구도 한반도에서 긴장을 조성하는 행위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굳이 ‘북한을 포함한 어떤 누구도’라는 단서를 달아 긴장 조성 당사자에 북한뿐 아니라 전단 살포 단체도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게 여지를 남겼다.

통일부 차원의 별도 수사의뢰 조치는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처벌법이 있는 만큼 엄정 수사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대북전단금지법은 국내 일각에서 ‘김여정 하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해 6월 “그 쓰레기들의 광대놀음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라”는 김 부부장의 담화 직후 발의됐기 때문이다. 이번이 첫 사례인 만큼 법 적용 과정에서는 통일부 차원의 해석 등 협력 가능성도 있다.

통일부는 유관기관과 긴말하게 협력할 계획임을 밝혔다. 또 개정법 입법 취지에 맞게 대처해 나갈 예정이다. 

관련 단체와 일부 국제사회 등의 문제제기 등 반발을 전망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특히 최근 일부 단체, 미국 등 일부 국제사회에서 남북관계발전법 비판 목소리를 낸 점 등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당시 법원은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북한 측 위협 담화, 2014년 10월 경기 연천에서 살포 이후 북한이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부근을 포격한 점 등을 토대로 “대북전단 살포 행위와 휴전선 부근 주민들의 생명, 신체에 급박한 위험을 발생시키는 북 도발 행위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인다”고 판시했다.

이 같은 판례는 법 개정에 대한 정부 입장으로 연결된다. 정부는 남북관계발전법 개정 취지를 접경 지역의 주민 생명과 안전, 북한 주민 알 권리 증진 등 여러 인권 가치의 조화로운 운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쿵 하면 짝?
코드 맞췄나

대북전단을 살포한 박 대표의 법률 대리인인 이헌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 공동대표도 “경찰청장의 수사지휘를 하명처분으로 보고 있으며, 향후 위법·부당성을 따져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은 누구?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1968년 2월16일 북한의 양강도 혜산시가 고향인 북한 출신으로 북한의 명문대 김책공업종합대학 학생이었다.

1999년 그는 탈북에 성공했으나 북한에 있는 친척들이 보위부로 끌려가서 고문 끝에 사망했다는 비통한 소식을 알게 되면서 2005년부터 북한의 독재정권에 대항해 ‘대북전단 배포’ 등 북한자유민주화를 위한 통일운동을 하고 있다.

2013년에는 국제인권상 바벨상을 수상했다.

최근에는 미하원 산하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에 출석해 북한 인권상황과 대북전단 살포 활동에 관해 소신을 발표했다.

지난 3월31일부로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남북관계발전법(대북전단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북한으로 전단을 날려 보냈다고 밝힌 단체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같은 그의 용기있는 행동은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에 따라서 3년 이하의 징역과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위법행위 적용 시 구속될 것으로 예상이 된다. <구>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잔칫상 오를 그 밥에 그 나물

잔칫상 오를 그 밥에 그 나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압도적인 기세를 앞세워 쟁점 법안들을 한순간에 처리하려고 한다. 수많은 위험과 과제를 풀어야 하는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엔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주요 후보 4명이 출마할 예정이다. 약점도 4인 4색이다.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다음 달 19일 충북 청주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국민의힘 김용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임기 만료로 물러난 이후 주목받았던 유력 당권주자는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한동훈 전 대표 ▲안철수 의원 ▲나경원 의원 등 4명이다. 이어 친한(친 한동훈)계 좌장으로 알려진 6선 조경태 의원과 장성민 경기 안산갑 당협위원장도 출마를 선언했다. 돌고 돌아 4파전 예고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에겐 매우 어려운 숙제들이 수북하게 쌓여 기다리고 있다. 이재명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새 정부 출범 직후의 기세와 압도적인 의석수를 토대로 ▲노란봉투법 ▲방송 3법 ▲농업 4법 ▲상법 추가 개정안 등 쟁점 법안을 이달 임시국회에서 서둘러 처리할 예정이다. 아울러 지난달 11일엔 검찰을 완전히 폐지한 후 기존 권한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옮기는 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의 의석수는 107석에 불과해서 실질적으로 해당 법안을 막을 힘이 없다. 또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민주당 당 대표 유력 후보 중 1명인 박찬대 전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국민의힘을 겨냥해 “내란범을 배출한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을 끊는다”는 내용이 담긴 법안을 발의했다. 이를 놓고, 박 전 원내대표는 “아직도 반성 없이 내란을 옹호하는 정당에 국민 혈세가 투입돼 내란을 옹호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내란 종식에 역행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정당해산심판 청구 및 인용 가능성을 피부로 느끼도록 위협하면서 자금줄을 끊는 조치라고 해석할 수 있다. 김건희 특검팀은 같은 날 지난 2022년 재보궐선거 공천 개입 의혹을 받는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의 자택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특검팀은 지난 7일엔 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을 받는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의 출국을 금지했다. 특검의 수사 상황에 따라 ‘줄초상’이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이 승부수로 제시했다가 좌초된 5대 개혁안에 담긴 국민의힘의 체질 개선 문제도 새 당 대표의 골머리를 썩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 친윤(친 윤석열)계는 5대 개혁안을 좌초시키면서 친윤계 일원인 송언석 의원을 원내대표로 당선시키는 등 여전한 힘을 드러냈다. 5대 개혁안 중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당론 무효화 추진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에 대한 당무감사는 국민의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안건이었다. 신임 당 대표가 이를 완전히 무시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숙제는 내년 6월 진행될 지방선거다. 국민의힘이 승리할 가능성은 벌써 낮게 진단되고 있다. 실제로 패배하면, 다음 달 선출되는 당 대표는 이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쓰고 사퇴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많은 숙제와 뻔한 죽음이 예상되는 ‘독이 든 성배’라고 할 수 있다.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4명은 대권주자급 위상을 가진 정치인들로 이들 모두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다. 앞으로 국민의힘은 어려운 숙제를 잔뜩 안고,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새 정부와 거대 여당을 상대해야 한다. 그래서 대권주자급 위상을 가진 대표가 절실히 필요하다. 전대 다가오는데 또 같은 얼굴들 대표 유력 주자 약점 들춰보니… 하지만 후보 4명은 각자 결함과 한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새 지도부가 구성됐다고 해서 저 많은 과제가 술술 풀릴 가능성은 매우 작다. 국민의힘 대선후보였던 김 전 장관은 지난 4일 서울희망포럼 강연에서 “이재명 대통령에 맞서 내가 싸우겠다”며 “국민이나 당이 위축될 때 침묵하지 않고 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사실상의 당 대표 출마 선언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전 장관은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매개로 김 전 비대위원장을 지명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이 시도했던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에 대한 당무감사는 김 전 장관의 이해관계와 직결되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이를 회의적으로 생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 전 장관의 측근인 국민의힘 김재원 전 대선후보 비서실장은 지난달 13일 YTN <뉴스파이팅>에 출연해 “국민의힘은 이재명정부의 국정 전횡을 전혀 제어하지 못하는 등 야당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며 “당무감사가 지금 당장 시급한 일인지 회의적”이란 견해를 밝혔다. 김 전 장관이 몰두하는 것은 ‘빅텐트’다. 김 전 장관이 사실상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면서 제시한 비전은 ▲권력의 잘못에 맞설 수 있도록 107명이 제대로 뭉친 국민의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낙연 전 총리·바른미래당 손학규 전 대표 등과의 빅텐트 및 연대였다. 하지만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의 주요 과제 중 하나는 당 체질 개선이란 측면에서 김 전 장관의 ‘빅텐트’에 대한 집착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선이 나오고 있다. 김 전 장관은 대선후보 시절에도 빅텐트를 거론했다. 김 전 장관은 이 전 총리의 지지 선언은 이끌었지만,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는 끝내 성사시키지 못했다. 한덕수 전 총리와의 단일화도 스스로 제안했다가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후 태도를 바꿔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의 불씨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김 전 후보와 친윤계의 갈등이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대선에서 41%를 득표하는 등 비교적 선전했지만, 이 ‘비교적 선전’은 국민의힘의 처참한 상황에 비해 선전했다는 것일 뿐, 진짜로 선전했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여전히 빅텐트에 집착하고 있다. 빅텐트 정당은 다양한 세력을 묶고 그 이해관계를 조율할 수 있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대선후보 시절 당내 화합조차 제대로 끌어내지 못했다. 국민의힘의 전신 새누리당을 탈당해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자유통일당을 창당했단 치명적인 약점도 있다. 다시 빅텐트 김문수 집착 심지어 김 전 장관이 대선후보 시절 구상했던 빅 텐트엔 전 목사 등 광장 세력도 포함됐다. 이처럼 상황 판단을 정확히 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관악산에서 열심히 턱걸이를 해도 고령에 따른 판단력 문제가 따라다닐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김 전 장관이 윤석열정부 당시 경제사회노동위원장과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연이어 발탁됐던 이유로는 “고령의 보수 정치인에 대한 예우”란 평가가 계속 나왔다. 이 평가엔 “정치적 영향력과 지도력이 사실상 사라졌기 때문에 부담 없이 발탁했다”는 의미가 있다. 대선후보 교체 시도 당시 당사 후보실을 점거하는 등 젊은 시절 노동운동을 연상시키는 과감한 선택은 일부 돋보였다. 하지만 과감한 정치적 선택도 정확한 판단력과 맞물려야 그 빛을 발한다. 대권·당권주자가 없단 약점이 있는 친윤계가 그나마 지향점이 비슷한 김 전 장관을 당 대표로 옹립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중도를 공략해 다시 정권을 되찾으려면 당 체질은 필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따라서 김 전 장관이 빅텐트에 집착하는 옛 관성을 버리지 못하면, 여당과 제대로 맞설 제1야당 대표가 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남는다.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해선 “어려운 상황에서 정면 승부하는 결기가 부족하다”는 일부의 평가가 있다. 한 전 대표는 중요한 정치적 고비마다 편한 길을 가려는 경향을 보였다. 지난해 22대 총선에서 민주당 이재명 당시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당시 대표를 심판 대상으로 규정한 ‘이조 심판론’이란 구호를 내걸었다가 ‘108석 당선’이란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여당 대표가 야당 대표들에 대한 심판을 총선에서 승리해야 할 이유로 제시한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전 대표가 정치 인생에서 제일 빛났던 순간은 지난해 12월3일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였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반대하면서 “국민과 함께 이를 막겠다”고 천명했다. 이어 친한계 의원들을 국회로 소집한 후 민주당과 협조해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등 원로 인사들은 한 전 대표를 극찬했다. 조 대표는 지난 2월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여당 대표가 계엄을 좌절시키긴 어렵다”며 “보통 이런 걸 ‘별의 순간’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친윤계와 합의해 지난해 12월7일 진행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1차 표결 불참을 결정했다. 이어 다음날엔 한 전 총리와 함께 “총리와 여당 대표의 당정 협의를 강화해 국정 공백을 메운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헌법재판소가 한 전 총리 탄핵 심판 결정에서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각계각층에선 한 전 대표를 일컬어 “권력 찬탈을 시도한 것 아니냐”는 취지로 격렬하게 비판했다. 한동훈 급부상 당시 한 전 대표는 ▲조속한 직무 정지 ▲탄핵소추 표결 불참 ▲탄핵 찬성 등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의견을 계속 바꿨다. 그러다가 탄핵소추가 가결된 직후 친윤계의 반발과 최고위원 전원 사퇴 등이 이어지면서 당 대표직에서 쫓겨나듯 물러났다. 이후 한 전 대표는 대선후보 경선 패배 후 대선 유세에 참여했고, 친한계를 움직여 대선후보 강제 교체 반대에 참여하는 등 일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친윤계와의 뿌리 깊은 갈등은 여전하고, 당 대표 출마에 대한 의견을 뚜렷하게 밝히지 않는 등 ‘결기 부족’이란 일각의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3일까지 김민석 총리 지명 철회 등을 요구하면서 국회 로텐더홀에서 농성을 진행했다. 하지만 안 하느니만 못한 농성이 되고 말았다. 나 의원은 냉방이 잘 되는 국회 로텐더홀에서 비교적 가격이 비싼 김밥과 유명 메이커 커피를 곁들이고 탁상용 선풍기까지 갖췄다. 이런 상황을 알린 사람은 이 모든 것을 촬영해 스스로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나 의원 자신이었다. 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지난달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캠핑이나 바캉스 같다”고 비웃었다. 지난 2018년 5월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면서 단식 농성을 했던 자유한국당 김성태 전 원내대표도 지난 1일 MBC <뉴스외전>에서 “로텐더홀에서 출판기념회 하듯이 농성한다”고 비판했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도 “피서 농성”이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나 의원은 “주말엔 로텐더홀에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달 30일 YTN <신율의 뉴스 정면승부>에 출연해 “나 의원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는 것”이라며 “국민의힘 지지자들에게 자신의 인상을 남기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지층에게 인상을 남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 남는다. 정작 농성의 대상인 김 총리는 같은 날 나 의원을 방문해 “식사는 했느냐”면서 “단식은 하지 말라”고 비웃었다. 김 총리의 기세는 하나도 꺾이지 않았고, 민주당은 지난 3일 김 총리 임명동의안을 가결했다. 대선 경선 그대로 옮겨지나 수많은 난제…독이 든 성배? 그러자 나 의원은 다음날 농성을 해제했다. 나 의원이 6일 동안 진행한 농성은 나 의원이 당 대표에 당선된 후 진행될 대정부 투쟁의 회의적 가능성을 드러냈을 뿐이다. 당 대표 당선 가능성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지 의문이 커진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 7일 오전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 임명된 후 겨우 8분 만에 사퇴했다. 안 의원은 지난 2일 혁신위원장 내정 당시엔 “국민의힘은 악성 종양이 뼈와 골수까지 전이된 말기 환자”라면서 “메스를 들어 보수 정치를 오염시킨 고름과 종기를 적출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안 의원은 송 비대위원장에게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와 관련해 권영세 전 비대위원장과 권성동 전 원내대표에 대한 인적 청산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건의를 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중도·수도권·청년 중심으로 혁신위를 구성하려던 안 의원의 구상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 의원은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국민의힘 혁신 당 대표가 되기 위해 도전할 것”이라며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다. 안 의원은 혁신위원장 내정 이전부터 당 대표 출마 가능성이 크게 점쳐졌다. 따라서 혁신위원장 내정 당시엔 “친윤계와 손을 잡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어 일찌감치 “친윤계가 이전처럼 혁신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텐데, 왜 혁신위원장 자리를 받아들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함께 돌아다녔다. 안 의원은 “‘쌍권(권영세·권성동)’ 숙청을 혁신안으로 제시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사실을 직접 공개했다. 따라서 “혁신하는 당 대표가 될 수 있다”는 명분은 챙겼다. 하지만 여전히 안 의원은 국민의힘에서 나 홀로 버티고 있다. 친윤계와의 연대설이 돌아다녔던 이유도 안 의원에게 세가 없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안 의원도 김 전 장관처럼 친윤계와 치명적으로 갈등한 이력이 생겼다. 김 전 장관과 달리 타협할 수 있는 지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명분은 얻었을지 몰라도, 실리는 스스로 걷어찬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당 대표로 당선되더라도, 메스를 들어 고름과 종기를 적출할 수 있을지 큰 의문이 남는다. 현역 의원 20명 안팎 계보를 거느린 한 전 대표도 친윤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당 대표직에서 사퇴했기 때문이다. 조 의원과 장 당협위원장의 출마 선언은 주요 후보 4명에 비하면 비중 있게 취급되진 않는다. 다만 조 의원에 대해선 “한 전 대표가 불출마하고, 좌장인 조 의원이 대신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수장과 좌장이 동시에 출마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많은 숙제 뻔한 결말? 여러 폭탄을 끌어안고 죽을 가능성이 더 큰 당 대표가 될 것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출혈은 피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정부와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제대로 혁신하지 못하는 틈을 타 압도적인 기세를 타고 쟁점 법안들을 연이어 처리하려고 한다. 그런 가운데 독이 든 성배 취급을 받는 국민의힘 대표 자리에 앉게 될 사람은 누구일까? 자중지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 내부의 먹구름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