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매년 5월은 부담스럽다. 각종 기념일마다 선물을 준비하고 어떤 계획을 잡아야 할지 고민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선택의 폭이 줄어들었다. 이전과 달라진 가정의 달 세태에 대해 알아봤다.
코로나19는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이지 않으면서 여럿이 만나는 것보다는 비대면으로 안부를 묻거나 선물을 보내주는 문화로 바뀐 것이다. 코로나19가 지속되자 가정의 달인 5월도 변하고 있다. 5월5일 어린이날, 5월8일 어버이날, 5월15일 스승의 날 등 기념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비대면이 일상화가 된 지금 과거와는 다른 기념일을 보낼 전망이다.
나들이 없는
어린이날
지난해부터 지자체나 기관·단체 등은 매년마다 해왔던 어린이날 기념행사를 취소했다. 집에서 ‘어린이날’을 보내는 어린이가 늘었다. 반면 행사 참여나 나들이를 대신해 선물 구입만 이뤄질 수 있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 휴원기간이 길어지는 곳도 있다.
사상 유례없는 감염병 사태로 바깥 외출이 쉽지 않았던 탓에 어린이날 선물을 사러 나오는 것보단 인터넷쇼핑을 할 가능성도 크다.
오프라인 매장은 온라인 시장과 가격 면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신제품 위주로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장난감 체험 공간을 곳곳에 마련해서 어린이 손님을 공략할 전망이다.
매년 5월 1년 중 복지 시설에 후원금과 후원품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달이었다. 하지만 경기도의 한 아동 생활 시설은 작년 어린이날 아이들에게 선물을 ‘1인당 하나씩’도 주지 못했다. 어린이날 후원품이 코로나19 이전 어린이날과 비교했을 때 절반도 받지 못했다.
후원 자체가 금지된 건 아니지만 직접 방문을 막아놓으니 후원 체가 들어오지 않는다.
코로나 사태가 계속되자 주머니 사정이 좋아지지 않자 복지원 아이들은 선물 자체를 받지 못할뿐더러 복지원 재정 상황도 여유가 없다. 후원은 많이 줄었는데 학교나 어린이집에 나가지 못하니 식비가 더 나가는 상황이 연출됐다.
충남 서산의 한 보육원은 연례행사이던 어린이날 동물원·놀이공원 나들이를 조촐한 과자 파티로 대체했다.
‘아픈 어린이’들도 별반 상황이 다르지 않다. 큰 병원의 경우 매년 어린이날 행사를 열었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열리지 않는다. 큰 대학병원의 경우 공연, 캐리커처 그리기, 타투 스티커 붙이기 등 크고 작은 행사를 열어 어린이들에게 놀거리를 제공했다.
보육원 후원물품 급격히 줄어
선생님께 영상감사 인사 전해
이런 어린이들에 대한 ‘심리 방역’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이들이 계속 집안에만 있다보면 짜증이 늘고 예민해진다. 특히 남자아이 경우 외부활동을 통해 에너지를 분출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게 되니 아이들끼리 힘겨루기로 인해 다툼이 날 수 있다.
어버이날은 명절처럼 고향에 부모님을 뵈러 가는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부모님을 만나 뵙지 못하는 모양새다. 서울에 사는 자녀들은 지방에 있는 부모님을 뵙지 못해 마음이 무겁다. 명절에 이어 부모님들도 내려오지 말라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아직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어버이날 풍경도 과거와 달라질 전망이다. 지방에 거주하는 부모들은 타향살이하는 자녀들이 걱정돼 “오지 말라”며 말리고, 자녀들은 나름대로 감염 우려 때문에 부모님을 만나 뵈러 갈지 고민하는 등 코로나19가 어버이날 가족 모임에까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각 지역 온라인 맘카페 등에서 “이번 어버이날에 어떻게 하시나요” “어버이날에 시댁 가실 건가요” “코로나19 때문에 어버이날에 부모님 댁에 가야 할지 고민이네요” 등 내용의 글이 여럿 올라왔다.
코로나19 상황이 전반적으로 안정세를 보이자 부모의 만류에도 고향 등을 방문하겠다며 나서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난해 결혼한 직장인 A씨는 어버이날인 토요일에 양가 어른들을 뵙기 위해 KTX를 타고 고향에 다녀올 계획이다.
비대면 효도
어버이날
A씨는 “양가 부모님이 이런 시기에 꼭 내려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결혼하고 맞는 처음 어버이날 얼굴을 뵙지 않으면 마음이 좋지 않을 것 같아 주말에 꼭 다녀오려고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급여가 줄어드는 등 경제적 타격을 입은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에게는 올해 어버이날 선물도 부담이다.
인천에 사는 주부 B씨는 남편이 다니는 회사가 지난 3월 열흘간 무급휴직에 들어가 월급이 30% 깎였다. B씨 부부는 매년 어버이날 양가 부모님께 용돈을 드렸다. 하지만 올해는 지갑 상황이 좋지 않아 드리지 않을 예정이다.
또 다른 부부는 코로나19로 인해 수입이 불안정해지자 양가 부모님 선물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저렴한 선물을 하자니 서운해 하실 것 같고 비싼 선물을 준비하자니 여윳돈이 없어서 걱정하고 있다.
지난해 스승의날 학생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한 유치원생들은 두 팔로 하트를 만들며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외치는 영상을 찍어 선생님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전라도의 한 고등학생들은 ‘스승의 은혜’ 노래를 한 줄씩 이어 부른 것을 붙여서 ‘감사 노래 릴레이’ 이벤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1년 대기한 뒤 올해 부임한 한 초등학교 선생님은 첫 스승의 날을 맞았지만 별 감흥이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들쭉날쭉한 등교 일정으로 학생들 얼굴을 긴 시간 보지 못해서다.
화상으로
스승의 날
‘스승의 은혜’ 노래도, 카네이션도, 서툰 손편지도 없는 스승의 날을 보낼 예정이다. 학생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교사들은 학적정보 시스템에 올라와 있는 학생사진을 보면서 아쉬움을 달랜다.
그래도 매일 학생들과 통화하며 어려움을 공유하고 애틋한 마음을 나누고 있다. 일주일에 2번씩 20분가량 학급 학생 28명과 통화를 하다 보니 목이 쉴 정도다. 처음에는 얼굴도 모르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어색했던 학생들도 이제는 쾌활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영상으로만 공부하다 보면 학습 능률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간단한 퀴즈도 나누면서 함께 복습하고 있다.
수업 중에는 학생들의 집중력을 향상하기 위해 우쿨렐레 연주를 하고 구연동화 실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핵심 내용을 잘 잡아서 시각적으로 돋보이는 자료를 제작해야 학생들의 학습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파워포인트(PPT) 공부도 열심이다.
학교도 조용한 분위기다.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외부인 통제에 들어간 대부분의 학교는 졸업생들이 찾아올까 봐 스승의 날에는 교문 통제를 더욱 엄격히 하기로 했다.
각 지역 맘카페에는 어린이집 스승의 날 선물을 고민하는 글이 여럿 올라오고 있다.
그냥 넘기는
부부의 날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에 두 살 아이를 보낸다는 한 주부는 “어린이집 측에서 스승의 날 선물을 챙기지 말라는 얘기가 달리 없는 상황이라 선물을 보내려는데 무엇을 사는 게 좋을지 고민”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선물하기 좋은 물품의 종류와 가격 등 정보를 공유하는 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5월21일은 둘이 하나가 되는 의미인 부부의 날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부부들은 외식대신 서로 집에서 식사하며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풍경으로 바뀔 전망이다. 지난해와 올해 자가 격리나 재택근무로, 부부간 물리적 거리가 훨씬 좁혀진 날들이 이어져왔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부인과의 접촉이 줄어든 것에 비례해 가족 구성원 간 접촉은 현저히 늘어났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지만 가까이 다가가게 되면 상대 단점이 더 잘 보인다. 고립된 공간에서 오랜 시간 함께 지내다 보면 처음에는 잘 지내다가 사소한 일로 감정조절이 안 돼서 불안, 분노, 적대감이 커지고 극단적 상황까지 이르는 경우가 있다.
남극에 파견됐던 사람들에게서 처음 발견됐다 해서 심리학에선 ‘남극형 증후군(winter-over syndrome)’이라고도 한다. 부부 역시 가정 내 관계 밀착변화는 피로감을 넘어 불만으로 때로는 불화로 이어질 수 있다.
반복되는 가사와 육아에 답답해 남편에게 바람 쐬러 가자고 했다가 시비가 붙어 아내가 폭행을 당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등 불미스러운 사례가 속출하는가 하면, 폭력까지 가진 않더라도 ‘집안일과 육아를 남일 보듯 하는 남편과 언성을 높이며 싸우게 된다’ ‘아내의 사사건건, 시시콜콜 잔소리에 미쳐버릴 것 같다’는 등 각자의 하소연이 온라인에 줄을 잇고 있다.
부부끼리 외식보다 홈술 대화
대학서 주최하는 행사 사라져
물론 코로나 사태로 부부 사이가 나빠진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이들도 있다. 그간 일 때문에 바빠 소홀했던 남편, 혹은 아내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결혼 생활이 더 행복해진 경우도 있다.
매년 5월 셋째주 월요일 하면 ‘성년의 날’이 떠오른다. 이날은 성인이 된 청년들에게 사회인으로서 책임감을 생기게 하고 성인으로서 자부심을 보여주기 위한 기념일이다. 언젠가부터 대학가에서 이날을 ‘성인식’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장미, 향수 그리고 키스가 성년의날 선물로 유명하다. 서울의 대학가에서 성년의 날을 자축하고자 20세가 된 성인이 나왔다. 꽃과 케이크를 양손에 든 채 음식점으로 향하거나 카페에 가서 즐겁게 지냈다. 코로나19 전에는 술집이나 클럽에서 새로운 인연을 찾기도 했다.
갓 스무살이 된 사람들끼리 새로운 만남을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성년의 날 풍경이 바뀌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대학교에서 하는 행사는 사라지고 오후 10시 영업제한으로 영업으로 인해 이성 간의 즉석만남을 기반으로 하는 술집 영업이 힘들어졌다.
올해는 이날을 기념해 친구들끼리 랜선 술자리를 가진다. 평소 술자리는 안주 선택의 폭이 적지만 랜선 술자리는 자유롭게 원하는 메뉴를 주문해 먹을 수 있다. 갓 성인들은 각자 주문한 치킨 등을 자기 자리에 올려 먹으면서 대화한다.
랜선 술자리
성년의 날
집이라는 공간적인 특성으로 깜짝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영상 속에 부모나 반려견이 등장할 수도 있다. 그럼 친구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지기도 한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코로나19 이후…가정폭력 늘었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가정폭력은 크게 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재택근무가 늘어남에 따라 집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난 점이 원인으로 꼽힌다.
경기남부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8월까지 범죄 신고통계를 집계한 결과 5대 강력 범죄는 모두 9만812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0만6544건보다 8422건 줄었다.
반면 이 기간 아동학대 건수는 증가했다. 2019년 기준 2151건에서 지난해 2243건으로 신고 건수가 4.3% 증가했다.
잇따른 개학 연기와 비대면 수업 증가로 가정폭력 등 아이들 안전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학교가 가정 내 학대를 감지하기 어려워진 점 역시 가정폭력의 증가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온라인 수업에선 학생 대부분이 얼굴 등 신체 일부만 보여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신체학대도 발견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아동학대 사건에서 학교 측이 피해 아동으로부터 학대 정황을 발견하지 못한 사실이 알려지며 교육 당국의 현행 아동관리 시스템에 허점이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 지난해 5월 경남 창녕에서 불에 달군 쇠젓가락으로 발바닥을 지지고 물이 담긴 욕조에 머리를 담그는 등 초등학생 자녀를 상습적으로 학대한 사실이 알려지며 국민적 공분을 산 ‘창녕 아동학대 사건’에서도 학교 측은 아동학대 의심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
피해 아동은 계부와 친모에 의한 학대가 가정에서 자행되고 있는 동안 온라인으로 진행된 원격수업에 매일 출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카메라를 켜는 화상 대면 수업이 아닌 탓에 학교 측은 학대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 교사는 50여 차례 아이의 부모와 문자 혹은 전화 등을 주고받기도 했다.
부모는 아이가 잘 있고 온라인 교육을 잘 받고 있다고 전했고 교사는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집 머무는 시간 늘면서
아동학대 등 크게 증가
지난 2월 인천 중구에서 한 초등생 여아가 집에서 온몸에 상처와 멍이 든 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아이는 계속해서 온라인 원격수업에 참여한 사실이 확인됐다.
등교 수업을 하는 날에 부모가 가정 학습이나 체험 학습을 하겠다며 학교에 관련 서류를 제출해 출석 인정을 받았다. 이에 아이는 교육부의 미인정결석 학생 관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피해 아동이 장기간 등교 수업에 참여하지 않아 학교 측이 가정 방문을 요구했을 당시에도 부모는 여러 이유를 들며 가정방문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말이 돼서야 교사가 피해 아동과 통화를 할 수 있었지만, 학교 측은 통화만으로는 학대 정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며 가정 내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도 크게 늘었다.
코로나19로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각종 불확실성이 생겨난 가운데 집에서 서로 밀접하게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며 상대적으로 약자인 여성이 폭력의 대상이 된 것이다.
지난해 한국여성의전화를 통해 여성폭력 피해를 호소한 상담 건수는 3만9000건에 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가정폭력 상담 비중도 큰 폭으로 늘었다.
2020년 총 상담 건수는 3만9363건으로 이중 가정폭력은 1만5755건으로 나타났다. 성폭력(1만8462건) 다음으로 많은 수치다.
상담소는 지난해 1월 전체 상담 건수 중 26%를 차지한 가정폭력 상담 건수 비중은 코로나19 확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월부터 40%로 증가한 모습을 보였다고 밝혔다.
가정폭력 상담 건수 중 배우자가 가해자인 경우가 58.3%(277건)로 가장 많았으며 부모가 19.4%(92건)로 뒤를 이었다. 형제·자매인 경우는 6.1%(29건)로 확인됐다. 부모가 가해자인 경우 친부모에 의한 폭력 피해는 90건, 계부모는 2건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코로나19 장기화로 가정폭력이 증가했지만 대개 집 안에서 발생하는 가정폭력의 특성상 발견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에 주위 이웃들의 관심이 가장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