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만 잡는’ 잔혹한 혈우병 신약, 왜?

치료 실패해야 주사 맞을 기회 준다고?

[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국내 승인된 혈우병 신약 중 혈우병의 출혈을 예방할 수 있는 최초 피하주사형 예방 요법이 국내에 등장했다. 인슐린 주사처럼 주사하기 쉽고, 효과도 좋아 국·내외적으로 호평받고 있는 약제다. 그러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이 요양 급여와 관련해 12세 미만은 면역관용요법(응고인자에 대한 항체를 없애기 위한 치료)이 실패할 경우’라는 나이 제한 조항을 추가하자, 어린 혈우병 환자의 보호자들이 ‘독소조항’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혈우병은 대부분 선천적으로 혈중 8번과 9번 응고인자가 결핍돼 작은 충격으로 출혈이 발생하는 병이다. 출혈이 반복 발생하면 합병증이나 사망까지 이를 수 있는 희귀질환으로, 아직까지 뚜렷한 완치법이 없다. 

이러지도 

혈우병의 치료는 보통 항체가 없는 경우 8번과 9번 응고인자제제의 출혈 시 보충요법(응고인자를 보충하는 치료법)이나 평소 치료제를 통한 예방요법을 사용한다. 응고인자에 대한 항체가 있는 경우 우회요법(응고인자의 존재와 무관하게 작용하는 활성인자를 활용한 치료법)을 사용한다.

국내 혈우병 환자는 2000명 수준으로 파악되고 있다. 혈우병 치료는 치료를 받는다고 끝나지 않는다.

A씨의 아이도 혈우병을 앓고 있다. 아이는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혈우병을 진단받았고, 작은 접촉에도 몸이 멍울지고, 출혈이 멈추지 않아 지속적으로 병원에 가서 출혈을 예방하는 정맥주사를 맞았다. 그럼에도 차도가 없자 A씨의 아이는 피검사를 했는데 응고인자에 대한 항체가 생겼다는 중증 A형 혈우병 진단을 받았다.


1년 넘게 우회인고응자를 활용하는 약제를 통해 정맥주사를 주3회 투여했다. 출혈이 멈추지 않아 매일 병원을 찾아간 경험도 있다.

어린 아이는 혈관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주사를 맞는 과정에서 혈관을 여러번 찌르는 경우가 빈번하다. 주사를 한 번 맞은 정맥 부위는 오랜 시간이 지나야 맞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부위의 정맥에 주사를 맞아야 한다.

A씨의 아이 역시 정맥주사를 맞는 것을 많이 힘들어 해 한 번 맞을 때도 쉽지 않았다. 주사의 효과가 오래 가는 것도 아니다. 접종이 이뤄지면 그 주는 주사에 대해 반감기가 생기고 결국 주사를 맞아야 하는 주기도 점점 짧아진다.

출혈 예방 최초 피하주사형 등장
‘12세 미만…’ 심평원 조항 발목

아이의 고통을 지켜보다 못한 A씨는 혈우재단의 권유로 정맥주사를 맞는 방법이 아니라 면역관용요법을 진행해 항체를 없애는 방법을 강구했다. 그러나 심사기관은 아이의 항체가 생기고 1년 이상 5년 이내의 기준에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며 A씨의 아이를 심사에서 탈락시켰다.

이후 1년이 지났지만 재단에서는 면역관용요법을 시행하자는 제안이 없었다고 한다. 아이는 다시 정맥주사를 맞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고통의 시간을 보내던 A씨의 아이는 한 제약회사의 기부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피하주사형 주사제 신약을 맞을 수 있었다. 일주일에 3회 맞던 주사는 2주~ 4주에 한번으로 횟수가 줄었다.


근육에 놓는 피하주사였기 때문에 아이에게 주사제를 투여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고, 주사를 맞은 뒤 빈번하게 생겼던 멍이나 출혈도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1월 병원을 찾았을 때 약과 관련된 규정이 개정돼 더 이상 신약을 처방받을 수 없게 됐다. 12세 미만 아이에게는 면역관용요법 실패 시 처방했을 때 요양 급여가 가능하다는 조항이 신설된 것.

신설된 조항은 만 1세 이상과 만 12세 미만이 면역관용요법에 실패한 경우와 면역관용요법 대상자 기준에 부합하나, 시도할 수 없음이 투여 소견서를 통해 입증되는 경우에 신약의 요양 급여가 적용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A씨의 아이는 신약을 사용하지 못해 다시 몸 이곳 저곳에 멍이 생기고 있다고 한다.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
환아들은 고통 속 생활 

A씨는 “신약을 통해 아이의 삶이 많이 개선됐는데 나이 조항 때문에 다시 멍투성이로 돌아가라는 것은 학대와 같다”고 청와대 국민청원에 게시글을 올렸다. 심평원에 직접 찾아가 조항의 개정을 호소하기도 했다.

심평원의 담당 공무원을 찾아 약을 맞을 수 있는 요건과 주치의의 소견에 따라 처방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조항과 관련해서는 담당 교수와 심의위원에게 호소하라는 답만 돌아왔다고 한다. 

이 같은 조항에 대해 현직 의사는 환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행위라며 비판했다. 혈우병 환자에게 의사가 면역관용요법을 권했다 해도 실제 선택은 환자와 보호자가 한다.

의사가 마음대로 해당 치료법을 강제로 진행할 수 없음에도 면역관용요법을 시행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어놨다는 점은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그동안 신약이 없을 때는 예방요법을 하지 못하는 항체 환자들의 경우 어쩔 수 없이 우회요법을 통해 정맥주사를 맞아야 하는 고충이 있었다.

하지만 신약이 출시된 이후 출혈을 예방할 수 있어 환자와 의사 입장에서도 훨씬 수월해졌다고 한다. 혈우병의 치료는 환자들이 면역관용요법을 하거나 정맥주사를 맞는 것을 선택하는 데 해당 조항의 삽입으로 환자의 선택 폭을 좁히는 조항은 환자에게 치료법에 있어 선택권이 없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시선도 있다.

현직 의사는 조항의 주치의 소견서 제출 조항에도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약의 경우 의사가 소견서를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도할 수 없었음을 투여 소견서를 통해 입증을 거쳐 다시 심사하는 점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일요시사>와 통화한 심평원 관계자는 “해당 조항들이 부족한 점이 있겠지만, 객관적 사실을 토대로 보고해 보건복지부에서 합리적으로 결정한 사항”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해당 의견이 제시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모든 사항을 담지 못한 부분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투여소견서 조항 부분도 이뤄진 것인데, 앞으로 더 개선할 부분에 대해 짚어볼 예정”이라고 전했다. 

심평원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학회나 보고서, 가이드라인에는 신약의 투여가 면역관용요법의 시작, 중간, 이후 또는 요법을 대신해 시행해야 하는 점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저러지도

한편 세계혈우연맹(WFH)은 지난해 7월 신약을 새로운 혈우병 치료 가이드라인으로 권장했다. 전문가들 역시 신약에 대해 약효와 투약 편의성을 바탕으로 환자들의 삶의 질을 대폭 개선해줄 예방 치료제라는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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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