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 커지는 홍상수·김민희 월드

베를린에서는 ‘총아’ 한국만 불륜타령?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홍상수 감독이 또 하나의 낭보를 전해왔다. 제71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 각본상을 받았다는 소식이다. 지난해 영화 <도망친 여자>로 은곰상 감독상을 받은 데 이어 2년 연속 상을 받은 것. 2017년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통해 김민희가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까지 더하면 홍 감독은 무려 5년 사이에 3번이나 수상한 셈이다. 적수가 없는 ‘베를린의 총아’다. 
 

▲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시대를 깨뜨린 영화로 추앙받는다. 소설 작가 효섭(김의성 분)과 그가 사랑하는 유부녀 보경(이응경 분), 보경의 남편인 동우(박진성 분), 효섭을 짝사랑하는 민재(조은숙 분)를 다큐멘터리처럼 관찰하는 구성인데, 한국 최초의 시도로 기록된다.

시대를 깨다

네 명의 인물의 이야기를 담지만, 옴니버스 장르처럼 교차하는 형태가 아닌 효섭과 보경, 동우, 민재 순으로 분절된 채 진행된다. 

기승전결의 형태로 특정한 사건 중심의 갈등이 형성되는 방식이 아닌, 사람들의 일상을 다소 객관적인 시점에서 보여주는 영화다. 심지어 시간 순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기존 국내 영화계에는 없던 방식의 내러티브라는 점에서 ‘관습적 내러티브’를 깬 영화로 평가받는다. 

홍 감독 특유의 무미건조한 묘사와 정적인 카메라, 속물적인 지식인 계층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 홍 감독 영화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술자리 장면이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부터 시작한다. 당대 영화인들은 이 영화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홍 감독은 이 영화 하나로 국내 영화계에서 주목받는 감독으로 발돋움한다. 


이후 홍 감독은 수많은 걸작을 내놓는다. <오! 수정>과 <생활의 발견> <남자는 여자의 미래다> 등 초기작부터 시작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하하> <옥희의 영화> <북촌방향>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지금은 맞고 그 때는 틀리다>까지, 그의 영화는 전 세계 유수 영화제의 초청을 받았다.

비록 대중적이지는 않았지만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그의 대부분 영화가 자전적인 이야기로 불륜 등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연애가 소재의 주를 이루지만, 매번 독특하고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남자 주인공에게서 벌어지는 작은 사건을 통해 인생을 통찰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장기를 보여왔다. 

인물들은 대체로 지질했다. 김상경, 유지태, 하정우, 김태우, 이선균, 유준상 등 젠틀하고 깔끔한 이미지의 배우들이 홍 감독의 카메라 앞에서는 여지없이 지질한 남자로 변했다. 엄지원, 추상미, 고현정, 문소리, 정유미, 정은채와 같이 자기 주도적인 느낌의 여배우들 역시 사랑에 얽매여 주체성이 흔들리는 여성을 연기했다. 

현대인들이 평소에 드러내지 않는 구질구질한 속내를 마치 까발리듯이 전면에 드러내는 표현력은 홍 감독만의 전유물로 꼽힌다. 숨기고 있던 내면을 마치 확 들춰낸 것 같은 느낌을 주다 보니 그의 영화를 불편해하는 관객도 적지 않았지만, 많은 영화광이 홍 감독의 작품을 지지했다.

관습 깬 홍 감독이 구축한 ‘지질의 역사’
여배우와 사랑 이후 찾아온 영화적 전환기

수많은 걸작을 내놓은 홍 감독의 가장 큰 영화적 전환기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를 통해 인연을 맺은 배우 김민희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이”라며 연인임을 공개한 이후다.


이때부터 홍 감독이 만드는 영화의 소재의 폭은 점점 더 좁아진다. <밤에 해변에서 혼자>부터 <강변호텔>까지는 연인 공개 후에 그가 느낀 삶의 총체를 정리한 일기로 보인다. 

홍상수와 공개 연인임을 인정한 김민희의 시점에서 그녀가 갖고 있던 고뇌를 단숨에 풀어놓은 듯한 <밤의 해변에서 혼자>, 아내와 새롭게 알게 된 여성 사이에서 홍 감독의 생각을 정리한 듯 보이는 <그 후>, 커피숍에 있는 사람들을 대중에 빗대, 타인의 상황을 잘 모르면서 쉽게 조롱하는 사람들을 비판한 <풀잎들>, 이혼한 아버지가 자식들과 만나 헤어진 아내에 대한 속내를 전하는 <강변호텔>까지, 그의 영화는 철저히 2016년을 기점으로 바뀐다. 
 

▲ 영화 인트로덕션 ⓒ전원사

<강변호텔>에서 주인공인 배우 기주봉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4편을 통해 공개 연인 발표 이후 지난했던 이야기의 종지부를 찍겠다는 홍 감독의 의지로 해석했다. 더 이상 김민희와의 연인 관계를 소재로 영화화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보였다는 것. 

이 예상은 맞아떨어진 듯 보인다. <도망친 여자>부터는 앞선 네 편의 톤과는 다른 결로 진행된다. 

<도망친 여자>는 남편이 출장을 간 사이 감희(김민희 분)이 세 명의 친구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진행된다. 

타인에게 가면을 쓴 채 말하고 행동하는 등 본질로부터 도망치던 감희가 세 친구와의 만남 이후 개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내면을 찾아간다는 메시지가 엿보인다. <도망친 여자>에서는 앞선 네 편에서 보인 자전적인 이미지가 희미하다. 

이번 제71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 각본상을 수상한 <인트로덕션>도 <도망친 여자>와 비슷한 구성이다. 이번에는 한 남자(신석호 분)가 여자친구와 어머니, 아버지를 만나는 여정을 그린다. 

공개 연인 이후 홍 감독의 페르조나로 작품의 전면에 나섰던 김민희가 조연으로 물러났으며, 제작 팀장이 돼 스태프로서 홍 감독의 영화를 지원했다. 

홍 감독의 25번째 영화 <인트로덕션>는 세계적인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고 있다. 베를린 영화제 심사위원들은 “인간의 삶 속에 숨은 진실이 밝고 분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을 포착한 영화”라고 평가했으며, 미국 잡지 <버라이어티>는 “홍 감독 영화 세계의 확장판”이라고 치켜세웠다. 

거장의 변주

네 편을 통해 굵직한 사건의 생각을 정리한 홍 감독은 <도망친 여자>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한 장면을 보여주면서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다짐을 드러낸 바 있다. 예전처럼 새로운 영화를 제작하겠다는 갈망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연이어 두 편이 영화인들의 찬사를 받았다. 최근 그의 작품으로만 미뤄봤을 때, 영화인 홍 감독은 연인 김민희와 함께 그가 감수하기로 한 고통을 조금씩 극복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그의 영화 세계는 더욱 더 단단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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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에 다시 건넌 탄핵의 강

8년 만에 다시 건넌 탄핵의 강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2016년 12월9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야당이 발의하고 여당 의원 일부가 찬성표를 던져 가결됐다.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 파면’이라는 결과를 낳은 국정 농단 사태의 ‘결정적 순간’이다. 8년 뒤 국회 본회의장서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11일 만이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다. 시동이 걸린 탄핵 열차는 국회를 지나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향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헌재의 시간이다. 두 번 만에 직무 정지 지난 14일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재적의원 300명 가운데 300명이 참석해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로 가결됐다. 대통령 탄핵안 가결 요건은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 즉 200명 이상의 ‘가’표다. 범야권으로 분류되는 192표 외에 국민의힘의 8표가 필요했다. 이날 본회의서 나온 찬성 204표 중 국민의힘서 12표의 이탈표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탄핵안 표결 전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의원 수인 7명보다 많다. 기권과 무효표 역시 국민의힘서 나왔다고 계산하면 23명의 의원이 당론인 ‘탄핵 반대’와 다른 선택을 한 셈이다. 탄핵안 가결 이후 우원식 국회의장은 탄핵소추의결서를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에게 전달했다. 정 위원장은 탄핵소추의결서 정본과 사본을 각각 헌재와 대통령실로 보냈다. 14일 오후 7시24분 탄핵소추의결서가 대통령실에 전달되면서 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다. 탄핵안이 가결된 지 2시간여 만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맡는다. 한 총리는 탄핵안 가결 이후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온 힘과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한 총리는 현재 내란 혐의 관련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만일 야당의 탄핵소추로 한 총리의 직무가 정지되면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통령·국무총리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피청구인’이 된 윤 대통령의 운명은 헌재에 달렸다. 헌재는 탄핵소추의결서를 접수한 직후 ‘2024헌나8’의 사건번호를 부여했다. 사건명은 ‘대통령(윤석열) 탄핵’이다. 사건은 재판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재판부에 회부됐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신속하고 공정하게 재판하겠다”고 말했다. 헌재는 탄핵소추의결서를 접수한 날부터 180일 이내에 대통령 탄핵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노 전 대통령 때는 63일, 박 전 대통령 때는 91일 만에 헌재의 최종 판단이 나왔다. 헌재가 탄핵안을 인용하면 윤 대통령은 파면되고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 기각하면 탄핵안은 즉시 파기되며 윤 대통령은 국정에 복귀할 수 있다. 헌재의 결정에 따라 이르면 내년 4월, 늦게는 8월에 조기 대선이 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비상계엄 이후 11일 만 국민의힘 이탈표로 가결 문제는 헌재가 현재 ‘6인 체제’라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이종석 헌재소장과 이영진·김기영 재판관이 퇴임했지만 여야가 추천 인원수를 두고 다투면서 3명을 임명하지 못했다. 헌재법 23조1항은 헌재가 사건을 심리하기 위해서는 재판관 7명의 출석이 필요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6인 체제서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헌재는 앞서 탄핵소추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낸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해당 조항의 효력을 임시로 정지시켰다. 그러면서 현재 6인 체제서 이 위원장의 탄핵 심판뿐만 아니라 헌재에 계류된 다른 사건의 심리를 모두 진행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사건도 같은 방식으로 처리가 가능한 상황이다. 다만 대통령 탄핵 심판이라는 헌정사에 중요한 사건을 6인 체제로 진행하는 게 헌재 입장서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6인 체제로 결론을 내릴 경우 만장일치가 돼야 한다. 헌재가 어떤 결론을 내리든 정당성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치권은 헌재를 ‘완전체’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형성한 상태다. 국민의힘은 여당 몫 후보로 조한창 변호사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정계선 서울서부지방법원장과 마은혁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를 각각 추천했다. 인사청문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인사청문회를 거친 뒤 국회 본회의서 임명동의안이 통과되면 대통령이 임명하는 절차다. 현재로선 한 총리가 이들을 임명하게 된다. 헌재로 공을 넘긴 정치권은 그야말로 시계 제로(0) 상태다. 지난 7일 1차 탄핵안이 정족수 미달로 ‘투표 불성립’된 이후 일주일 만에 가결로 결과가 바뀌면서 본격적인 탄핵 정국에 돌입했다. 탄핵안 가결의 ‘키’를 쥐고 있던 국민의힘은 혼돈 그 자체다. 보수 진영 대통령이 두 번 연속 탄핵 심판대 위에 서게 되면서 ‘궤멸’ 위기에 직면했다. 끝까지 반성 없어 지도부 붕괴는 가시화됐다. 탄핵안 가결 이후 국민의힘 선출직 최고위원 5명(김민전·김재원·인요한·장동혁·진종오)은 모두 사의를 표명했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선출직 최고위원 5명 가운데 4명이 사퇴할 경우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넘어가게 된다. 한동훈 대표는 직무 수행 의지를 드러냈지만 의원총회서 사퇴 요구가 나오는 등 입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퇴를 선언했다. 당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친윤(친 윤석열)계와 당권을 쥔 친한(친 한동훈)계 간의 책임론 공방은 국민의힘을 극심한 내홍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친박(친 박근혜)계와 비박(비 박근혜)계가 갈등을 벌이다가 분당 사태까지 벌어졌던 8년 전과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국민의힘은 문재인정부 이후 5년 만에 정권교체로 간신히 회복한 국민 신뢰를 또다시 잃게 됐다. 국민은 윤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탄핵안 가결에 이르기까지 11일 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모습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 특히 지난 7일 1차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국회 본회의장을 떠나는 모습은 국민 분노에 불을 지폈다. 결국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보수 진영으로부터도 비판이 쏟아졌다. 윤 대통령은 헌재뿐만 아니라 국민 여론·수사기관·정치권 등에 완전히 포위된 ‘사면초가’ 상황에 빠졌다. 탄핵안 가결 이후 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서 “저는 지금 잠시 멈춰 서지만 지난 2년 반 국민과 함께 걸어온 미래를 향한 여정은 결코 멈춰 서서는 안 될 것이다. 저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숨통 죄는 내란 혐의 그러면서 자신의 국정운영 성과를 강조했다. 정치권과 국민에 대한 당부 발언도 내놨다. 하지만 탄핵안 발의 배경인 12·3 비상계엄 선포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끝까지 국민에 대한 사과나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윤 대통령의 태도에 비판이 제기됐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앞서 진행한 네 번의 대국민 담화서도 그는 모든 상황의 원인을 ‘야당 탓’으로 돌리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 정례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탄핵 표결 직전 11%까지 떨어졌다. 부정 응답은 85%까지 치솟았다. 긍정 응답은 60세 이상을 제외한 모든 연령층서 한 자릿수를 기록했다. 헌재 탄핵 심판서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다 해도 국정 동력을 기대할 수 없는 수치다.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TK(대구·경북)도 16%에 그쳤다. 검찰·경찰·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특검 등 수사기관도 윤 대통령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현재 내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미 구속된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등 관련자가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직접 진두지휘했다는 취지의 증언을 쏟아내고 있다. ‘내란 우두머리’로 지목되고 있는 상황이다. 내란죄는 외환죄와 함께 대통령 불소추특권의 예외 범죄다. 내란 우두머리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뿐이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과정서 그에게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적용했다. 지난 14일 구속된 여인형 방첩사령관도 같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들이 ‘윗선’ 즉, 내란 우두머리로부터 지시를 받았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이다. 여당은 궤멸 직전에 몰려 헌재 9인 체제 결론 내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명태균씨 관련 수사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최근 몇 개월 새 이른바 ‘명태균 녹취록’이 민주당을 통해 일부 공개되면서 윤 대통령과 배우자 김건희 여사는 수세에 몰리는 상황이었다. 명씨의 행보에 윤 대통령 부부의 뒷배가 작용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 그 후폭풍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두 번 만에 탄핵안 가결을 이끌어낸 야권은 공세를 이어간다는 입장이다. 그간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국회 과반 의석(192석)을 무기로 윤 대통령을 압박해 왔다. 김 여사 특검법은 이미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황서 윤 대통령은 더이상 거부권을 쓸 수 없다. 내란 혐의를 받는 일부 국무위원과 군‧경 관계자에 대한 탄핵소추도 일사천리로 국회 문턱을 넘고 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탄핵안 가결 이후 “12·3 내란 사태는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며 “내란 수괴 윤석열의 직무 정지는 사태 수습을 위한 첫걸음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을 비롯해 내란 가담자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로 사태의 전모를 밝혀내고 처벌이 내려질 때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 사흘 만에 내놓은 대국민 담화서 법적·정치적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조기 퇴진 제안에도 ‘하야보다는 탄핵이 낫다’는 입장을 보이며 거절 의사를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이나 박 전 대통령은 탄핵 심판 당시 한 차례도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지만 율사 출신인 윤 대통령은 직접 변론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앞선 대국민 담화서 비상계엄의 당위성에 대해 거듭 이야기했다. 헌재서도 자신이 왜 최후의 수단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는지 그 배경을 밝히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만큼 고도의 통치행위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국회와 윤 대통령의 치열한 공방전이 예상되는 지점이다. 문제는 이 과정서 표류할 ‘대한민국호’의 상황이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각종 경제지표가 곤두박질치면서 이는 고스란히 국민의 짐으로 얹어지고 있다. 헌재 판결, 조기 대선 등 향후 이어질 정치 일정서 일어날 갈등도 국민에겐 피로감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국민이 극복하긴 했지만 피로 지켜온 민주주의가 상처 입은 점도 뼈아픈 대목이다. 피해는 국민 몫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윤 대통령의 이기적인 계엄령 도박에 대한 대가는 한국의 5100만 국민이 할부로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비상계엄 선포부터 탄핵안 가결까지 걸린 시간은 열흘 남짓이다. 향후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최대 8개월까지 이 국면이 계속될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에게 청구될 계산서에는 얼마가 쓰여 있을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