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이력서> (59·60) 홍어, 황태

만드는 과정 힘들지만 맛은 일품 

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식재료 이력서>엔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이 담겨 있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pixabay

홍어

1990년대 중반 필자가 집권당이었던 신한국당 연수부장으로 근무할 때에 일이다.

전라남도 신안지구당 당직자들이 교육받기 위해 연수원을 방문하여 아이스박스 하나를 건네며 은근하게 입을 열었다.

‘선생님(김대중 전 대통령)이 드시는 진짜 홍어’라고.

당시에는 홍어가 상당히 귀해 일반인들은 맛보기 힘들었던 터였다.


게다가 선생님(우리 측에서는 존경이 아닌 비하의 의미로 그리 불렀음)이 드시는 홍어라는 말에 그 자리에서 아이스박스를 개봉하고 그야말로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내 입안은 시쳇말로 걸레로 변한다.

물론 이전에도 홍어회(주로 가오리)랍시고 먹고 나면 입천장이 벗겨지는 경험을 하고는 했는데 그날은 입천장 정도가 아니라 혀까지 벗겨지는 곤혹스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 일로 내 입안은 그야말로 홍어 좆이 되고 마는데 이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넘어가자.

우리는 흔히 ‘만만한 게 홍어 좆’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 말의 유래는 정약전의 <자산어보>에서 비롯된다.

「수놈에는 양경이 있다. 그 양경이 곧 척추다. 모양은 흰 칼과 같은데, 그 밑에 알주머니가 있다. 두 날개에는 가는 가시가 있어서 암수가 교미할 때에는 그 가시를 박고 교합한다. 낚시를 문 암컷을 수컷이 덮쳐 교합하다가 함께 잡히기도 한다. 결국 암컷은 먹이 때문에 죽고, 수컷은 간음 때문에 죽어 음(淫)을 탐내는 자의 본보기가 될 만하다.」


이런 특징을 가진 홍어 수컷은 크기도 암놈보다 작고 맛도 별로다.

그래서 뱃사람들은 거추장스러운 홍어 수놈의 생식기가 조업에 방해 될 뿐만 아니라 잘못하면 생식기에 붙어 있는 가시에 손을 다치게 된다. 

따라서 별 실속 없는 수컷이 잡히면 생식기를 잘라 바다에 던져버리기 일쑤였고 그래서 ‘만만한 게 홍어 좆’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즉 사람이 제대로 사람 대접 받지 못할 때 내뱉는 푸념으로 홍어를 먹은 내 입이 제대로 입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됐으니 홍어 먹고 내 입이 홍어 좆이 된 것이다.

홍어를 재료로 만든 식품 중 홍어회무침이 대표적인 바 이를 먹으면 홍어가 지닌 맛과 효능을 고스란히 섭취하지만 필자가 경험했던 곤혹스런 일과는 전혀 상관없다.

그런 이유로 각종 행사의 뒤풀이에 홍어회무침이 약방에 감초 식으로 등장하는 게다.

이제 이응희의 홍어(洪魚) 감상해본다. 

狀貌殊群錯(상모수군착) 
얼굴 모습 다른 무리들과 어긋나고 
形容異衆鮮(형용이중선)
생긴 모습 다른 생선들과 다르네
身洪難起動(신홍난기동)
몸 넓어 움직이기 어렵고
體重未輕遷(체중미경천)
몸 무거워 이동하기 쉽지 않네
軟骨宜專嚼(연골의전작) 
뼈 부드러워 씹기 알맞고 
豐肌可入煎(풍기가입전)
풍부한 살 국으로도 가하네
跳梁無一勇(도량무일용) 
함부로 날뛸 용기 없으니
跋扈似登天(발호사등천) 
뛰고 날아도 하늘 오르기 어렵네

맛과 효능 뛰어나지만… 입안은 초토화
명태를 말리면 색이 노랗게 변해 ‘황태’

황태

먼저 황태란 명칭에 대해 언급하고 넘어가자. 황태를 한자로 黃太라 표기하는 데 이름에 대한 혼돈을 막기 위해서다. 

앞서 콩자반에서 콩을 이야기할 때 우리나라에서는 콩을 두(豆)라 하지만 太(태)라고도 한다 했었다.


그런 사연으로 오래전부터 黃太는 노란 콩 즉 메주콩의 별칭으로 사용했었다. 하여 고문서에서 황태를 검색하면 예외 없이 콩을 의미하는 황태만 등장한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함경도 지방, 엄밀하게 언급해서 명태란 이름이 탄생한 함경북도 명천으로 추정되는 지역에서 명태를 말리면 색이 노랗게 변해 노란 명태, 즉 황태라 지칭하기 시작했고 그 이름이 고착화됐다.

이른바 동명이인(同名異人)이 아닌 동명이체(同名異体)가 등장하게 된 게다. 

이를 염두에 두고 명태(明太)에 접근해보자.

앞서 명란젓에서 언급한 바 있어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명태의 변화에 따른 이름에 대해 살펴본다. 

명태는 북쪽에서 잡힌다고 해서 북어(北魚)로도 불리는데 이를 말리게 되면 다양하게 변화되면서 새로운 이름을 얻는다.


명태가 바닷가에서 바닷바람을 맞아 마르면 일반 북어가 되고 온도 변화 없이 낮은 온도에서 마르면 백태 그리고 상온에서 말리면 색깔이 진한 먹태로 변한다. 

그렇다면 명태가 어떻게 황태로 변화되는 걸까.

그 과정은 까다롭기 짝이 없다.

반드시 그에 합당한 지리적 조건과 기후가 수반돼야 가능한 일로 황태가 최초로 탄생되기 시작했던 함경북도 명천과 동일한 환경 조건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남한에서 황태가 탄생하게 된 과정을 추적해가보자.

발단은 한국전쟁 즉 6·25로부터 시작된다.

6·25 동난으로 함경도에서 월남한 사람들이 고향에서 자주 접했던 황태를 잊지 못해 속초, 묵호 등지에 정착해 황태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물론 이전에도 황태는 존재했었다.

현지에서 잡은 명태를 함경북도로 가져가 황태로 만들어가지고 오고는 했던 터였다.

그러나 휴전선으로 인해 더 이상 함경도로 갈 수 없었던 실향민들이 대관령에서 그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일이 그리 쉽지 않았고, 실패를 거듭하는 과정에 1958년 한 사람이 대관령 일대를 누비며 풍속 습도 온도 등을 샅샅이 살피고는 횡계리 화새벌이란 장소를 찾아내어 그곳에서 최초로 황태 말리기 작업을 시작하여 황태를 생산해낸다.

뒤를 이어 또 다른 함경도 실향민들이 대관령 근처에서 장소를 물색하던 중 용대리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황태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대한민국 최초로 덕장을 만들고 급기야 1964년에 대관령 황태덕장마을이 생기게 된다. 

이후 용대리 황태 덕장은 전국에서 생산되는 황태의 70%를 웃도는, 명실공히 이 나라 황태덕장의 명소로 그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다. <끝>


그동안 <식재료 이력서>를 애독해주신 독자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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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