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두천 1.5℃맑음
  • 강릉 4.4℃맑음
  • 서울 3.2℃맑음
  • 대전 0.9℃맑음
  • 대구 5.7℃맑음
  • 울산 5.9℃맑음
  • 광주 6.6℃맑음
  • 부산 6.5℃맑음
  • 고창 5.1℃맑음
  • 제주 12.9℃흐림
  • 강화 2.6℃맑음
  • 보은 -0.8℃맑음
  • 금산 -0.3℃맑음
  • 강진군 9.1℃맑음
  • 경주시 5.8℃맑음
  • 거제 6.5℃맑음
기상청 제공

1351

2021년 12월04일 12시39분

일요초대석


<일요초대석> 유준상 한국정보기술연구원장

URL복사

“이제 3막1장…인생 마라톤은 계속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실패를 극복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가지각색이다. 누군가는 실패를 딛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면, 또 다른 누군가는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주저앉는다. 유준상 한국정보기술연구원 원장은 전자였다. 올해로 여든이 된 유 원장은 “내 인생의 마라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lt;일요시사&gt;와 대담 나누는 유준상 한국정보기술연구원장 ⓒ고성준 기자

유준상 한국정보기술연구원 원장은 지난달 17일 치러진 41대 대한체육회 회장 선거에서 낙선했다. 이기흥 현 대한체육회장에 맞설 단일 후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그 벽을 넘지 못했다. 그로부터 꼭 한 달 만인 지난 16일 여의도 한국정보기술연구원 사무실에서 유 원장을 만났다. 

포기는 없다

대한체육회장 선거의 소회를 묻자 유 원장은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후보 등록일 마지막 날까지 고심을 거듭했던 그는 결국 직접 출마 쪽으로 가닥을 잡고 두 번째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도전했다. 자신보다 젊고 유능한, 도덕적으로 깨끗한 후보를 지원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지만 여의치 않았다. 

대한롤러스포츠연맹회장·대한요트협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겪은 대한체육회 행정의 미숙함, 갑질 행위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게 유 원장의 의지였다. 또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의 성폭력 피해 사건, 고 최숙현 트라이애슬론 선수가 동료와 감독으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한 끝에 자살한 사건도 영향을 미쳤다. 

유 원장은 “당초 내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후보 단일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그 과정에서 원칙·실리·명분도 없는 행위들이 반복됐다. 끝내 4파전으로 선거가 치러졌고, 나는 참패했다. 하지만 내가 제시한 정책과 아이디어가 대한체육회 운영에 반영되길 바라는 마음에 죽을 각오로 완주했다”고 말했다. 

‘정책 선거’ ‘깨끗한 선거’를 목표로 한 그의 도전은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았다. 몇몇 언론에서는 비난과 고소, 고발이 난무하면서 진흙탕 선거로 변질된 이번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유일한 진주로 유 원장의 완주를 꼽기도 했다. 

그는 “선거에 출마해 완주한 점은 지금도 후회하지 않지만 주변에서 도와주신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또 지인들이 많은 아쉬움을 표하고 있어 역시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또 초지일관 출마를 반대했던 가족들에겐 많은 핀잔을 받고 있어 사실 상당히 괴롭다”고 말했다.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낙선
후보단일화 노력했지만 고배

그럼에도 유 원장은 이제 인생의 3막1장이 끝났을 뿐이라고 했다.

4선 국회의원, 한국 화이트 해커의 아버지, 영원한 스포츠맨 등 그를 수식하는 무수한 칭호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국회의원 활동을 기점으로 인생의 1막과 2막이 나뉘고, 마라토너로서의 삶을 시작하면서 3막이 열렸다. 

특히 유 원장의 삶에서 스포츠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중심축이다. 그는 1974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 국가대표 전지훈련 단장으로 처음 체육계와 인연을 맺었다. 30대 후반 최연소 호남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이후에도 1988 서울 올림픽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체육계 전반에 관심을 기울였다. 

호남에서 내리 4선을 한 유 원장은 공천 탈락, 낙선 등의 실패를 경험한 이후 정치와 인연을 끊었다. 체육계 활동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딘 시점도 이때다. 유 원장은 마라톤에 매료돼 현재까지 풀코스를 수십회나 완주했고, 633㎞ 국토 종주 및 울트라마라톤에도 참가해 여러 차례 완주에 성공했다. 

▲ 유준상 한국정보기술연구원장 ⓒ고성준 기자

그는 “정치라는 마약을 마라톤으로 끊었다. 마라톤 코스를 완주하면서 생긴 자신감으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에너지를 얻었다”고 말했다. 유 원장이 만든 독도수호마라톤은 올해로 13년째 그 명맥을 잇고 있다.

대한요트협회장 인준 과정에서 대한체육회와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 소송을 벌이면서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 2019년 9월에야 대한요트협회장으로 정식 취임한 그는 재정자립도 최하위 종목단체라는 불명예를 극복하고 운영을 내실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을 받았다. 

유 원장은 “스포츠로서의 요트, 국민 레저로서의 요트, 그리고 산업으로서의 요트의 완성이라는 새롭고 알찬 성장과 발전을 위해 짧은 시간이나마 쉼 없이 노력해왔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선수와 감독을 위한 제도적 지원 방안을 마련했고, 요트인의 염원인 국제대회 유치도 이뤄내는 등 적지 않은 결실을 맺었다”고 덧붙였다. 

이기흥 회장에 “소통과 화합 필요”
“앞으로도 할 일 많아. 100세까지”

그는 한국정보기술연구원 원장으로서 사이버 강국의 취약점을 보강하기 위해 세계 최초의 화이트 해커 양성 프로그램 BoB(BEST of BEST)를 도입해 10여년간 수많은 사이버 보안 교육생을 배출했다. 그를 ‘한국 화이트 해커의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다. 

유 원장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대한체육회장 낙선 이후 의기소침해질 법도 했건만 그는 벌써 다음 스텝을 준비하고 있다.

유 원장은 “한국의 보안리더를 세계의 보안리더로 키우는 교육에 집중하려 한다. 또 방송통신대학에서 중국어를 배우는 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운영위원장으로서 방통대가 세계의 온라인 교육을 선도하는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는 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블록체인, K-BoB 활동도 유 원장 앞에 놓인 과제다.

체육계 원로로서 새로 출범한 이기흥호(號)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유 원장은 “대한체육회는 회장 혼자 이끌어 갈 수 없다. 낙선한 후보자들과의 진정한 화합과 소통을 통해 그들의 정책과 아이디어를 반영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뜻이 맞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모시는 일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다음에는 과감한 인적쇄신과 혁신을 통해 대한체육회를 일단 확 바꿀 필요가 있다. 최근 배구계 학교폭력 사태가 벌어졌는데, 그런 일들이 체육계 전반에 숨겨져 있다. 지금 이것을 뿌리째 뽑지 못하면 앞으로도 절대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1920년대 조선체육회에서 시작해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멈춰있는 대한체육회의 정관과 규정,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며 “대한체육회를 체육인의 체육회가 아니라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체육회로 만들어서, 행복하면서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게 체육회장으로서의 역할”이라고 당부했다.

계속 앞으로

유 원장은 “코로나19로 인해 세계는 뉴노멀 시대로 바뀌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문화가 몰락하고 아시아가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이 시점에, 한국이 중심국가로 가는 데 내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긍정적인 사고를 원동력으로 삼아 앞으로 인생의 3막이 끝날 때까지 달리겠다. 내 인생의 마라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00세까지 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준상의 마라톤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배너


설문조사

가상자산 과세 연기 및 1주택자 양도세 완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참여기간 2021-12-03~2021-12-31

많이 본 뉴스

더보기

일요시사 주요뉴스

<단독> 꿈나무마을 아동학대 의혹 '삼가면 힐링농장'의 비밀

[단독] 꿈나무마을 아동학대 의혹 '삼가면 힐링농장'의 비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소년은 매일 새벽 신에게 기도했다. “하느님은 뭘 하고 계십니까. 저 좀 도와주십시오. 너무 힘듭니다.” 소년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닿지 않았다. ‘엄마’를 자처한 수녀들은 소년의 아픔을 외면했다. “삼가면으로 가라”는 말과 함께 소년에게 주어진 건 버스표 한 장. 돌아오는 버스표는 없었다. 보육교사는 서준(가명)이 고속버스에 타고 나서야 몸을 돌렸다. 휴대폰 하나만 달랑 들고 나온 서준이는 자신이 어디에 내려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정차한 버스에 멍하니 있던 서준이에게 한 수녀가 다가왔다. 또 다른 차를 타고 한참 동안 다시 어딘가로 향했다. 도착했을 땐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밤이었다. 버스 태워 일단 가라 서준이의 초등학생 시절은 끔찍한 기억으로 얼룩져 있다. 부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이 되기 전, 서울 꿈나무마을로 올라온 그는 보육교사로부터 가혹한 학대를 당했다.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문제를 풀지 못한다는 이유로 고문에 가까운 기합이 4~5시간씩 이어졌다. 보육교사는 화장실 바닥에 물을 뿌렸다. 서준이는 엉덩이를 45도 들고 손을 앞으로 나란히 한 채 맨발로 서 있어야 했다. 나란히 내민 팔 위엔 무거운 책이 놓였다. 보육교사가 화장실 불을 끄면서 사위가 고요해졌다. 서준이의 작은 움직임에 물소리가 울렸다. 보육교사의 휴대폰 손전등이 서준이를 향했다. 무거운 책 묶음이 더 얹어졌다. 엉덩이를 45도 들고 앞으로 나란히, 엉덩이를 45도 들고 반짝반짝, 엎드려뻗쳐 등 한창 자라야 할 초등학생 시절에 서준이가 당했던 기합이다. 무거운 책을 팔에 얹는 건 덤이었다. 그 후유증은 허리와 목디스크로 나타났다. 허리디스크 판정을 받은 날 서준이는 집에 오는 내내 하염없이 울었다. 또 다시 ‘불행한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서준이에게 가해진 보육교사의 학대는 잔인하고 집요했다. 성경 쓰기를 빨리 끝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엉덩이를 45도 들고 앞으로 나란히 자세를 취하게 한 후 온몸에 빨래집게를 집어두기도 했다. 웃통을 벗긴 후 턱, 눈썹, 입술, 목, 팔 등에 빨래집게를 집어두고 같은 자세로 버티게 한 것이다. 또 거실 가운데 서준이를 앉혀두고 집단 린치를 가하도록 다른 아이들에게 지시했다. 또 다른 보육교사는 플라스틱 봉을 물도록 한 뒤 떨어뜨릴 때마다 폭행을 가했다. 너무 세게 깨물어 봉이 망가지자 그걸 버리게 됐다며 또 혼냈다. 서울서 6시간 거리 ‘강제노동’ 도망칠 곳도 없는 농장서 열흘 수녀에게 방을 바꿔 달라 요구했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서준이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고등학생이 돼서야 자신이 당한 일이 잘못된 일이라고 인식한 서준이는 가출을 하기에 이른다. 도저히 시설에서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매번 잡혀와도 다시 도망쳤다. 가출은 서준이가 보내는 일종의 SOS였다. 하지만 아무도 서준이에게 가출의 이유를 묻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경찰에 잡혀 시설로 보내져도 바로 다시 거리로 나갔다. 그런 일이 반복되던 중 가출을 했다 밤늦게 잡혀온 다음 날 사무실에서 서준이를 불렀다. 서준이 앞에 놓인 건 버스표 한 장. ‘벌칙’이라면서 삼가면으로 가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삼가면은 꿈나무마을 아이들에게 공포의 장소였다. 삼가면에 가면 농사일을 하고 컨테이너 박스에서 잔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서준이는 믿지 않았다. 그로부터 24시간이 안 돼 서준이는 앞서 삼가면에 다녀온 아이들의 말을 확인하게 된다. 그는 “밤에 도착해 컨테이너 박스 같은 곳으로 들어갔는데 정말 말도 안 되게 추웠다. 난방을 세게 틀고 잤는데, 다음 날 관리하는 분이 와서 ‘난방을 틀지 말라’고 혼냈다”고 했다. 옆에는 수녀를 위해 만든 신축 건물이 있었지만 서준이는 식사시간 외에는 그곳에 발을 들일 수 없었다. 일과는 단순했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묵주기도한 뒤 밭일을 했다. 점심을 먹은 뒤에도 똑같았다. 땅을 파고 양파 모종을 심는 등 부산 소년의집에서 왔다는 또 다른 아이와 함께 서준이는 종일 농사일을 해야 했다. 서준이는 말 그대로 기약 없이 삼가면에 머물러야 하는 처지였다. 학교도 계속 결석 상태였다. 경남 합천군 삼가면 양전리 일대. 마리아수녀회가 1999년경 후원자로부터 증여받은 곳이다. 마리아수녀회는 2013년 4월8일 해당 장소에서 ‘삼가면 수녀원’ 축복식을 가졌다. 그리고 같은 해 수녀들이 머물 수 있는 건물을 짓고 ‘삼가홈(삼가면에 자리한 집)’이라고 칭했다. 학대 피해 가출했지만… 삼가면까지는 서울 꿈나무마을에서 자동차로 최소 3시간57분, 부산 소년의집에서는 1시간42분이 걸린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5시간49분, 2시간45분 등 각각 2시간, 1시간 이상 늘어난다. 특히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실제 장소까지 가려면 차편에서 내린 후 1㎞는 걸어야 한다. 입구와 출구가 같아 들어간 그대로 돌아서 나와야 하는 구조다. 갈림길에서 도로와 연결되지 않은 다른 길로 가면 저수지가 나온다. 뒤편은 산이다. 서준이는 길 오른쪽에 넓게 펼쳐진 밭에서 농사일을 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지역 관리인에 따르면 논과 밭이 각각 1000평에 달한다. 삼가면에 다녀왔거나 보고 들은 이들은 공통적으로 ‘벌칙’과 농사일을 언급했다. 시설에서 문제를 일으킨 아이들을 삼가면에 보내 농사일을 하도록 했다는 설명이다. 서준이의 경우 잦은 가출이 삼가면에 가게 된 원인으로 보인다. 중학생 때 여러 차례 삼가면에 다녀왔다는 한 제보자는 “수녀님들에게 많이 반항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벌칙의 위력은 대단했다. 어떤 문제아도 삼가면에 다녀오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주변 친구들을 포함해 최소 8명가량이 삼가면에 다녀온 것을 봤다는 또 다른 제보자는 “엄청난 문제아가 있었는데 삼가면에 다녀온 뒤 정말 조용해졌다. 삼가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말하지 않았지만 힘들다는 말은 빠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서준이의 경우 열흘 만에야 서울 꿈나무마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시설에 도착하자마자 서준이는 “원래(삼가면에) 한 달 이상 보내려고 했는데, 학교 상담 선생님이 연락해서 빨리 풀려난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정신병원에 갇혔던 지훈이(가명)와 마찬가지로 상담 선생님의 구조로 벌칙에서 벗어난 셈이다. 서준이가 상담 선생님에게 연락한 과정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서준이는 삼가면에 도착하자마자 휴대폰을 ‘제출’했다. 아침에 일어나 농사일을 하는 하루가 기약 없이 이어지자 ‘학교 선생님에게 전화를 해야 한다’는 말로 휴대폰을 받아 전화를 걸었다. 상담 선생님은 서준이가 학교에 오지 않은 이유도 모르고 있었다. 서준이는 상담 선생님과의 통화에서 ‘살려달라’고 말했다. 이후 상담 선생님은 꿈나무마을에 서준이의 상황을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20년 전 존재했던 곳 2009년경을 기점으로 마리아수녀회의 운영 방식이 변화되면서 외부인사가 개입할 수 있는 통로가 만들어진 게 영향을 끼친 셈이다. 과거 마리아수녀회에서 운영하는 미혼모 시설인 마리아모성원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대부분 부산 소년의집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생활한 뒤 반 전체가 서울 소년의집(현 꿈나무마을)으로 옮겨오는 구조다. 이들은 다 같이 알로이시오초등학교(2015년 2월 폐교)를 다니다가 졸업 이후 다시 부산 소년의집으로 간다. 부산에 알로이시오중학교(2016년 1월 폐교), 알로이시오전자기계고등학교(2018년 3월 폐교) 등 중·고등학교가 있기 때문. 그리고 18세로 보호 종료가 되면 사회로 나간다. 하지만 서준이는 초등학교까지만 알로이시오초등학교를 다녔고 중·고등학교는 외부로 다녔다. 마리아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나온 한 제보자는 아이들이 철창 없는 감옥에서 18세까지 사는 셈이라고 말했다. 다 같이 소풍을 가거나 161번 버스를 타고 시민회관에서 하는 행사에 가는 것을 제외하곤 바깥 구경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했다. 심지어 병원(알로이시오 기념병원)에 갈 때도 나가는 시각과 들어오는 시각을 체크했다. 모든 상황이 마리아수녀회의 통제 아래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을 삼가면에 보내 농사일을 시켜도 학교에서 문제 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서준이처럼 삼가면에서 농사일을 한 사람이 과거에도 상당수 존재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 중학생 때 삼가면에 다녀왔다는 한 제보자는 “삼가면에 가 있는 동안 학교에 가지 않았는데, 출석은 인정됐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아침 먹고 일, 점심 먹고 일 “컨테이너 같은 시설서 지내” 삼가홈 관리자는 서울, 부산 등지에서 삼가면으로 오는 아이들을 자신이 픽업해왔다고 인정하면서도 농사일은 시키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시설에서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격리시키는 과정이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지내기에 불편함이 조금도 없는 곳이라고 해명했다. 마리아수녀회 측은 “아이들 중에 학교에서 불미스러운 일로 정학 등 등교 제재를 받는 경우가 있다. 아이들이 갖게 되는 좋지 못한 감정, 외로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등교 제재를 받은 기간 동안 시설을 떠나 심신을 휴식할 수 있도록 삼가홈을 방문하도록 권유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계절에 따라 수녀님들이 하시는 농사일을 거들었을 수는 있겠으나 일체의 강제는 없었으며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며 “‘벌칙에 대한 노동’ ‘컨테이너 박스’ 등은 어느 것 하나 사실이 아니며, 삼가홈에 대한 어떠한 오해도 없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이 삼가면에 간 것은 인정하면서도 강제로 농사일은 시키지 않았다는 해명이다. 전문가는 서울 꿈나무마을, 부산 소년의집 등에서 아이들을 벌칙 명목으로 삼가면에 보낸 행위가 법에 저촉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복단 종합법률사무소 대정 변호사는 “근로기준법 64조에서는 15세 미만의 노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18세 미만의 경우도 근로시간과 업무영역에 제한이 따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동을 보호하고 있는 기관에서 벌칙 명목으로 가해진 2주~한 달의 노동 행위가 ▲시설에서 상당한 거리가 떨어진 장소에서 노동이 이뤄진 점 ▲컨테이너 박스 등 임시 거처에서 지내게 하면서 노동을 하도록 한 점에서 단순한 벌칙을 넘어 강제노동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는 “삼가면 문제는 시설폐쇄 사유를 넘어 법인설립 허가취소 사유에 해당될 수도 있을 만큼 중대한 문제로 보인다. 그만큼 반인륜적인 행위라는 뜻”이라며 “해당 시설에 대한 운영권을 재단이 아니라 보건복지부, 서울시 등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거들었을 뿐 노동 아니다” 이어 “나도 보육원 출신이고 어린 시절 많은 학대를 당했다. 그때는 이게 내 운명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수모나 모욕, 학대는 대한민국 헌법에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우리 사회, 모든 국민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누군가 여러분의 입을 막으면 시설 앞에라도 찾아가 항의하겠다. 불만을 이야기해야만 치유된다. 용기를 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jsjang@ilyosisa.co.kr>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