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이력서> (29·30) 오이, 우엉

수많은 작품에 등장

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오이 ⓒpixabay

오이

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조의 셋째 아들인 조식(曹植)의 군자행(君子行)으로 이야기 시작해보자. 

군자행은 군자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몸가짐을 이르는데 조식은 이에 대해 ‘君子防未然 不處嫌疑間 瓜田不納履 李下不正冠(군자방미연 불처혐의간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이라 했다. 

이는 ‘군자는 매사를 미연에 방지해 혐의로운 지경에 처하지 않으니, 오이 밭에서 신 끈을 고쳐 매지 않고, 오얏나무 아래선 갓끈을 고쳐 매지 않는다’는 말로 오이 밭에서 허리를 굽혀 신 끈을 고쳐 맬 경우 오이 딴다는 의심을 받게 되고, 오얏나무 아래서 두 손을 들어 관을 고쳐 쓸 경우 오얏을 딴다는 의심을 받게 되므로, 그런 혐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뜻에서 한 말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오이 이야기를 해보자.


바야흐로 고려가 건국되던 해인 918년에 일이다. 

후백제의 기병장인 홍유·배현경·신숭겸·복지겸 등이 포악한 왕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왕건의 집을 방문한다.

이미 그들의 방문 사유를 감지한 왕건이 부인 유씨(柳氏, 신혜왕후)에게는 그 일을 알리지 않으려고 유씨에게 “동산에 아마 새 오이가 열렸을 테니 그것을 따 오시오”라 말한다.

이에 따라 유씨는 자리를 뜨지만 동산으로 가지 않고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다. 

그러기를 잠시 후 그들의 왕위 추대를 한사코 만류하던 왕건에게 유씨가 등장해 “의로운 군사를 일으켜 포학한 임금을 대체함은 예로부터의 일입니다. 지금 여러 장수들의 의논을 들으니 저도 오히려 분기가 일어나는데, 하물며 대장부이겠습니까”라고 말하며 손수 갑옷을 가져다 왕건에게 입혀주고 고려가 탄생된다.

왕건의 첫째 부인으로 유천궁의 딸인 유씨 부인은 왕건이 오이를 따오라 했던 그 말의 의미를 간파했던 것이다.

오해 살 일을 하지 않겠다는 왕건에게 신발 끈을 고쳐 매게 함으로써 왕건은 고려의 시조가 된다.


이뿐만 아니라 오이는 우리 역사에 자주 등장한다.

고려 조 문학가요 정치가였던 정서(鄭敍)는 자신의 후원에 정자를 짓고 오이를 심고는 자신의 호를 과정(瓜亭)이라 명명할 정도였다.

아울러 그의 작품인 정과정곡(鄭瓜亭曲)은 고려 유일의 가요로 우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건강한 남성의 생식기를 상징하기도 하는 오이는 오랫동안 이 민족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오이에 대한 현대의학 적 관점에서 효능은 차치하고 서거정의 작품으로 대신한다.

黃瓜(황과) 
오이

瓜子纍纍著早霜(과자누누착조상)
이른 서리 내려앉은 주렁주렁 달린 오이
摘來靑玉滿盤香(적래청옥만반향)
따 담으니 푸른 옥이 쟁반 가득 향기롭네
調氷解渴功尤妙(조빙해갈공우묘) 
얼음에 띄우면 해갈의 공이 더욱 뛰어나니 
不數江南荔子漿(불수강남여자장)
강남 여자의 즙은 아랑곳하지 않네

상기 작품에 흥미로운 부분이 등장한다.

調氷(조빙)으로 얼음과 함께 한다는 의미인데 이는 곧 우리가 즐겨먹는 오이 냉채를 지칭한다.

그리고 그를 먹을 경우 중국 광동성 지방의 특산물로 붉은 색을 띄고 있는 달콤한 과일인 여자(荔子)가 울고 갈 정도라 한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배낭에는 언제고 오이가 함께 하고 있다.

오이가 갈증 해소에는 그만임을 입증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이응희의 작품에서도 나타나는데 그 역시 감상해보자.

黃瓜(황과)
오이

隙地開新圃(극지개신포) 
자투리 땅에 새 채마밭 만들어 
鋤瓜寄興深(서과기흥심)
오이 가꾸니 재미 깊어 지네
數寸垂碧玉(수촌수벽옥)
몇 촌의 푸른 옥이 매달리니
盈尺耀黃金(영척요황금)
한척 크기 황금빛 빛나네
短斫宜燔炙(단작의번자) 
짧게 썰면 전 부쳐 먹기 좋고 
全盛可水沈(전성가수침)
통째로는 김치 담그기 좋네
最愛關當暑(최애관당서)
여름과 관련하여 가장 좋은 건
餤嚼滌煩襟(담작척번금)
씹어 먹으면 답답한 가슴 상쾌해지네 

건강한 남성의 생식기 상징… 등산가들의 필수품
아삭한 식감과 풍부한 이눌린… 신장 기능에 으뜸

우엉

먼저 한 시 한수 감상해보자.
유 개성 구(玽)가 우엉과 파와 무를 섞어서 담근 김치와 장을 보내오다(柳開城 玽。 送牛蒡,蔥,蘿蔔幷沈菜醬)’ 중 일부다. 


春風下種形初茁(춘풍하종형초줄) 
봄에 파종하면 형상이 처음 싹 트고 
秋露收根體自津(추로수근체자진)
가을에 뿌리 수확하면 몸통에 진액 차네
工部一聯時三復(공부일련시삼복)
공부의 시 세 번 반복해 읊으며
回頭錦里不全貧(회두금리불전빈)
전혀 가난하지 않았던 금리를 회상하네

상기 시는 고려말 대유학자인 이색의 작품이다.

고려와 조선조에 걸쳐 관직을 역임했던 유구(柳玽, 1335∼1398)가 우엉과 파와 무로 담근 김치를 보내오자 그에 대한 사례의 의미로 지은 작품이다.

工部(공부)는 당나라의 시인인 두보(杜甫)를 가리키고 錦里(금리)는 두보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상기 작품은 우엉만 있어도 굶지는 않을 것이라는, 不全貧(불전빈)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필자가 굳이 상기 작품을 인용한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우엉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풀어내고자 함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엉이 중국과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식용되었는데 한국에서는 최근에 식용으로 재배되고 있다 믿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엉이 오래전부터 식용되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기 위함이다.

참고로 이색의 다른 작품에서도 ‘牛蒡洗削可朝蒸(우방세삭가조증)’이란 글이 등장한다.

이는 ‘우엉은 씻어서 깎아 조찬으로 쪄내는 게 가하다’라는 의미로 우엉을 식용하는 방법 중 하나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또 조선후기 실학자인 이규경은 우엉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우방은 일명 서점으로, 속명은 와응이다. 뿌리는 순무 같고, 조리해 먹으면 맛이 훌륭하다.
牛蒡。一名鼠粘。俗名臥應。其根如菁。作菜食甚佳

여하튼 상기 작품 제목에 등장하는 牛蒡(우방)이 우엉을 지칭한다. 牛는 물론 소를, 蒡은 우엉을 의미한다.

아울러 蒡이란 한 글자로도 우엉을 의미하는데 굳이 牛를 덧붙인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필자는 우엉의 모습이 소의 꼬리와 흡사하여 그리 명칭을 정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엉은 아삭아삭한 식감은 물론이고 당질의 일종인 이눌린이 풍부해 신장 기능을 높여준다고 한다.

또 우엉을 자르면 끈적거리는 물질이 나오는데 이게 바로 리그닌이라는 성분으로 장내 발암물질을 흡착해 체외로 배출하는 작용을 하고 변비와 다이어트에 이롭다고 한다.

우엉과 관련해 흥미로운 이야기 해보자.

우엉의 씨를 한자로는 牛蒡子(우방자)라고 하는데 한방에서는 이를 惡實(악실) 즉 ‘악하다’ 혹은 ‘나쁘다’라는 의미가 강한 열매라 지칭한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열을 내리고 월경(月經)이 나오게 하는 등 소중한 약재로 사용되는 우엉 씨의 이름을 그렇게 정한 데에는 우엉의 생김에서 비롯된다.

우엉의 씨가 형상이 좋지 못하고 구자(鉤刺, 약간 구부러진 가시)가 많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라 한다.

그런 경우라면 악실이 아닌 ‘모양이 추하다’라는 의미에서 추할 추를 사용해 醜實(추실)이라 하는 게 어떨까 하며 씁쓰레하게 웃고 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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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