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릴루아카스의 다큐멘터리 ‘지구촌’ ①후쿠오카

인천-후쿠오카 1시간 남짓, 주말에 일본 산책 떠나볼까

<일요시사=조진민 여행작가> 후쿠오카 하카타는 옛날부터 손님을 접대하는 도시로 우리나라와 중국대륙을 향해 열려있는 문 역할을 했으며, 이곳을 오고 간 사람이나 물품을 통해 새로운 문화가 들어와 일본 전역으로 퍼져 나간 곳이다. 최근 우리나라 메이저 항공사를 비롯하여 저가항공도 모자라 부산에서 후쿠오카로 향하는 크루즈까지 가세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쉽게 후쿠오카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후쿠오카 여행의 시장은 하카타역 교통센터로부터
두근구근 설렘 ‘에키벤’덕분에 2배로 즐거워

아름다운 자연과 도시의 매력이 동시에 공존하고 조화를 이루고 있는 후쿠오카. 후쿠오카 공항에서 공항선 지하철로 2정거장, 5분이면 도착 하는 곳. 후쿠오카 교통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하카타역이다. 하카타역은 신칸센, 열차, 버스로 사가현, 나가사키현, 구마모토현, 오이타현 등 지역이동이 간단하고 편리한 게이트웨이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의 오래된 명물
교통수단 노면전차

이번 여행은 “도대체 우리나라에서도 난리가 날대로 난 ‘나가사키 짬뽕’은 어떤 맛일까?”라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출발한 여행이었지만, 기대 이상으로 아름답고 매력적인 도시였다.

하카타에서 나가사키로 이동하기 위해서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여행의 설렘을 달래기 위해선 에키벤(역과 도시락의 합성어)을 빼놓을 수가 없다. 오밀조밀 먹기도 아까울 정도로 예쁘게 만들어서 정성스레 포장해 놓은 에키벤은 기차나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역에서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참을 감탄하며 제일 맘에 드는 에키벤 하나를 사서 버스승강장으로 향했다. 각 지역의 도착지가 적힌 버스승강장이 나란히 늘어서 있고, 전광판에도 안내가 잘 되어 있어 편리하다. 버스로 한 사람이 왕복할 때와 여러 사람이 왕복 시 회수승차권으로 교통비를 아낄 수 있으니 승차권 구매 시 고려해 보자.

빌딩 숲을 지나 얼마쯤 달렸을까? 차창 밖에 펼쳐진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감상하며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가끔 낯선 곳에서 즐기는 잠깐의 여유가 나를 또 여행하게 만드는 것 같다. 가는 도중 허허 벌판에 덩그러니 자리잡고 있는 작은 휴게소도 너무 반갑다. 깜빡 잠들었는데 종착역인 나가사키에 도착했다. 하카타역에서 약 3시간 정도 걸렸다.

나가사키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1910년대 운행하던 전차를 지금까지 운행하고 있는 나가사키의 명물 ‘노면전차’였다. 전차는 1, 3, 4, 5호선 (2호선 제외) 4개의 노선이 나가사키 주요관광지 곳곳을 누빈다. 역 사이 거리가 짧고, 1회 탑승 시 120엔인 것을 감안하면 일일승차권(500엔/1일무제한)을 구매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나가사키역 여행안내소에서 구매할 수 있으며 일일승차권은 노선도가 첨부되어 있어 전차 이용 시 편리하다. 전차를 타는 것만으로도 저렴하게 나가사키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나가사키는 예로부터 대륙과 일본을 잇는 창구역할을 했던 곳이다. 생활양식, 풍습, 음식, 건물 등에 유럽문화의 자취가 남아 있고, 이것이 일본 전통문화와 잘 어울려 동서양의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일본의 쇄국정책이 펼쳐졌던 에도시대에도 네덜란드나 중국에게 유일하게 개방되어 있던 항구였다. 2차 세계대전 때는 히로시마에 이어 두 번째로 원폭을 당한 도시라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나가사키는 일본에서 가장 이국적인 도시이며, 역사유적 등 다양한 볼거리와 맛집이 많아 즐겨 찾게 되는 도시이다.

나가사키의 대표 음식을 꼽으라면 가장 먼저 짬뽕을 꼽을 수 있다. 예로부터 무역항인 나가사키에는 외국의 영향을 받은 음식이 발전하였는데 가난하고 배고픈 중국 유학생들을 위해 다양한 채소를 듬뿍 넣은 면요리를 만든 것이 나가사키 짬뽕의 원형이다. 창업한 지 100년이 넘은 가장 유명한 나가사키 짬뽕 전문점인 시카이로(四海樓)는 그 유명함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멋진 외관과 건물 2층에 ‘짬뽕박물관’까지 갖추고 있다.

레스토랑에 들어가 나가사키 항구의 전망이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았다. 가게에는 현지인보다는 관광객이 많은 듯 보였다. 유명한 나가사키 짬뽕과 사라우동 그리고 생맥주를 주문했다. 우리나라의 짬뽕은 맵고 칼칼함이 매력이라면, 나가사키 짬뽕맛은 부드러운 국물맛이 일품이었다. 약간의 느끼함 정도는 생맥주와 잘 어울리는 궁합으로 여겨졌다.


나가사키 짬뽕 이외에 토루코라이스도 추천하고 싶다. 조금은 생소한 토루코라이스(토루코:터키의 일본발음) 는 스파게티, 라이스, 돈까스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음식이다. 킷친세지라는 이 토루코라이스 전문점은 실제 운행하던 전차를 이용하여 전차 타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나가사키 전차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사진들과 만화방 같은 내부 인테리어가 정겹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천만불짜리 야경

어르신들을 향수에 젖게 하는 장소이자, 처음 와본 사람들에게는 나가사키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전차를 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곳에서 토루코라이스도 즐기고 만화책도 보고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즐긴 후에 전차에서 내리면 된다.

해발 333m의 이나사야마공원은 나가사키의 중심부는 물론 날씨가 좋은 날에는 멀리 운젠다케, 고토, 아마쿠사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공원이다.

산 정상까지 로프웨이로 5분, 360도의 조망을 즐길 수 있는 원형 전망대에서는 시간과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태양이 바다를 붉은 노을로 물들이는 석양도 아름답지만, 깜빡거리는 불빛이 마치 보석과 같아 ‘천만불짜리 야경’은 특히 아름답다. 하코다테, 고베와 더불어 일본의 3대 야경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확 트인 전망대에서 나가사키를 아름답게 수놓은 불빛을 바라보며 여행의 추억을 되새겨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다.

나가사키 여행은 나가사키역으로부터 시작된다. 주요관광지를 모두 돌아보려면 하루가 빠듯하기 때문에 가고 싶은 곳 몇 군데만 돌아보기로 하자.

3, 4, 5호선 스와진자마에(諏訪神社前) 하차. 도보 5분.
제일 먼저 들른 곳은 일본의 여느 신사와는 다른 분위기의 스와진자(諏訪神社)였다. 중국 절에 와있는 느낌을 주는 이 신사는 아마도 나가사키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을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어쩐지 신사에 오면 고요한 분위기 탓인지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신사에 오면 꼭 하게 되는 오미쿠지(길흉을 점치기 위해 뽑는 제비로 신사나 절의 한편에 매달아 놓은 종이)도 매달아 놓으면 행운을 가져다 줄 것 같은 기대감으로 행복해 진다.

1, 4호선 간코도리 하차.
칸코도리는 나가사키를 대표하는 쇼핑거리이다. 가로, 세로로 길게 뻗은 아케이트 아래로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특유의 세련되고 예쁜 인테리어의 옷가게들과 아기자기한 소품들, 이국적인 분위기의 음식점도 많아 내안의 지름신이 강림할 수 있으니 주의하자.

5호선 오우라텐슈도시타(大浦天主堂下) 하차.
오우라성당(大浦天主堂) 은 1864년 프랑스 선교사에 의해 세워졌고 정식명칭은 일본26성인순교성당이다. 돌계단을 오르며 성당의 이국적인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성당으로 서양식 건물로는 유일하게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100년이 넘었는데도 소박하지만 인상적인 스테인드글라스가 하이라이트이다.

5호선 오우라텐슈도시타(大浦天主堂下) 하차.
오우라성당을 둘러보고 나오면 그라바공원(グラバ-園) 입구로 이어진다.  멀리 스코틀랜드에서 건너온 토마스, 블레이크, 글로버가 이곳 미나미야마테 언덕에 저택을 건설한 것은 1863년. 당시 나가사키 거리에는 일본의 새로운 여명을 꿈꾸는 사람들로 열기가 넘쳐흘렀는데 그로부터 100년 이상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곳에는 글로버와 그의 가족들이 살았던 당시의 기억들이, 저택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라바 저택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양옥으로 오페라 <나비부인>의 배경이 된 곳으로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그라바 저택과 더불어 링거 주택, 올트 주택은 국가지정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니 꼭 둘러보길 권한다.


주택 이외에 옛날 미츠비시조선소 승무원들이 머물던 시설인 제2도크 하우스 베란다에서 나가사키 항구와 시내의 풍경을 바라보면, 살며시 낭만이 넘치던 그 시절의 향수에 빠져들게 만든다.

 

[ 여행 Tip ]

나가사키 시내로 들어오기!
나가사키 공항에서 시내까지 리무진 버스로 약 1시간 소요 : 4, 5번 승강장에서 나가사키역행 탑승 (요금 : 편도 800엔)
하카타역에서 기차 JR특급카모메 약 2시간 소요, 버스 약 3시간 소요

[ 나가사키 주요 관광지 ]

평화공원 : 원폭 투하 당시 숨을 거둔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원, 평화의 샘에서 기념상으로 가는 길 좌우에 세계 각국으로부터 온 평화의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 공원 내 원폭 자료관도 관람할 수 있다.
우라카미 성당 : 1925년 완공당시 가장 큰 성당이었지만 원폭 투하 후 석조기둥만 남아 1959년 현재 위치에 새롭게 건립되었다. 성당 입구에 부서진 돌조각과 깨진 석상 등을 전시해 놓고 있다.
데지마 : 1634년 쇄국정책의 일환으로 개항 때 들어오는 외국인들을 격리시켜 일본인들에게 기독교의 전파를 막기 위하여 만든 작은 인공섬이다. 최근에는 당시 모습의 1/15로 축소해서 데지마 자료관으로 공개하고 있다.
데지마 와프 : 데지마 주변의 재개발로 2000년 4월에 개장한 곳으로, 바다쪽으로 설치한 테라스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아름다운 나가사키항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로 거듭났다.
신치차이나타운 : 대규모 차이나 타운 중 하나로 중국 특유의 흥겨운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곳
메가네바시 : 나가사키 시내를 가로지르는 강에 있는 가장 오래된 돌다리. 안경다리라는 뜻으로 두 개의 아치가 물에 비치면 안경모양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 기타 참고 ]

·후쿠오카 고속버스 예약 서비스  http://www.rakubus.jp/hangeul/
·나가사키전차 시간표 및 안내   http://www.naga-den.com/kikaku/zikoku/jikoku_kikaku.html
·구라바엔 안내 http://www.glover-garden.jp/foreign/korean.html
·나가사키 짬뽕 전문점 시카이로 http://www.shikairou.com/index.htm
·나가사키 로프웨이 안내  http://www.nagasaki-ropeway.jp/pdf/Korean.pdf
·가이드북 : 2012-2013 여행박사 북큐슈vol.3 가이드북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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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