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이력서> (25·26) 시래기, 아욱

서민들의 희망

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시래기 ⓒpixabay

시래기

조선 후기 박제가·유득공·이서구와 함께 사가(四家)로 명성을 날렸던 이덕무의 작품, 농촌 집에서 씀(題田舍, 제전사) 중 일부로 이야기 시작해보자.

菁葉禦冬懸敗壁(정엽어동현패벽)
겨울 넘기려 시래기 누추한 벽에 매달고
楓枝賽鬼挿寒廚(풍지새귀삽한주)
액 막음하려 단풍가지 차가운 부엌에 꽂네

상기 글에 흥미로운 부분이 등장한다.

집안에 액을 막기 위해 즉 나쁜 귀신을 몰아내기 위해 단풍나무 가지를 부엌에 꽂았다는 대목이다.


과거 우리 선조들이 집안에 액운을 쫓아내기 위해 행했던 여러 이야기를 들었지만 단풍나무 가지로 액을 쫓는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다.

그런데 그 구절에 함정이 숨어있다.

楓(풍)이란 글자 단독으로 쓰이면 단풍나무를 의미하지만 구절 전체 내용을 살피면 단풍나무가 아닌 신나무를 지칭한다. 신나무는 단풍나무 과의 한 종으로 과거 액운을 쫓는다는 기록들이 심심치 않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위 글에 등장하는 楓枝는 단풍나무 가지가 아니라 신나무 가지로 해석해야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풍나무 가지로 해석한 이유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그 뜻을 한 번 더 새겨보라는 의미에서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물론 상기 글에 등장하는 菁葉(정엽) 즉 시래기에 대해서다.

菁葉에서 菁은 ‘순무’를, 葉은 물론 ‘입’을 의미하며 시래기는 푸른 무청을 겨우내 말린 것이다.


이 대목에서도 눈여겨봐야 할 단어가 등장하는데 바로 무청이란 단어다.

무청은 한자로 蕪菁으로 ‘순무’를 의미하는 蕪와 ‘우거지다’라는 의미의 菁이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해당 단어에 등장하는 菁은 ‘정’이 아닌 ‘청’의 음가를 지닌다.

여하튼 시래기 하면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집이 가난해서 시래기죽도 못 먹을 형편’이란 말이다.

이 말은 시래기가 지난 시절 구황식품으로 서민들로부터 각광받았었음을 의미한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필자 역시 어린 시절부터 시래기와 상당히 친숙했었다.

초가 처마 여기저기에 볏짚을 꼬아 엮은 새끼줄에 매달아 놓은 시래기와 노르스름한 흙벽이 조화를 이루고 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게 그려질 정도다.

당시에는 시래기로 주로 된장국을 끓여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간혹 시래기와 선지를 함께 넣고 끓인 시래기 선짓국을 먹기도 했다.

시래기 된장국도 고소했지만 선지를 넣고 끓인 시래기 선짓국은 참으로 별미였었다.

이 대목에서 잠시 선지에 대해 이야기하자.


지금이야 선지를 손쉽게 구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주변에 도살장이나 정육점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 자주 구입할 수 없었다.

그런데 동네를 드나들던 장사들 중에 지게에 혹은 짐자전거에 커다란 깡통에 가득 담은 선지를 가지고 와서 팔고는 했었다.

어린 시절 동네 어귀에서 선지 장사의 출현을 애타게 기다리고는 했다.

저만치에서 선지 장사가 모습을 드러내면 급하게 어머니를 찾고 어머니는 어김없이 선지를 구입하여 ‘시래기 선짓국’을 만들어 주시고는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먹을 음식이 다양해지자 시래기는 우리네 실생활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그저 소수의 가난한 사람들의 전유물로 전락했고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가난했던 시절에 추억의 단편으로 물러섰다.


그랬던 시래기가 현대에 들어 별미 식품 또 건강식품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른다.

시래기에 함유돼있는 영양 성분 때문임은 불문가지다.

이 대목에서 시래기란 명칭에 대해 언급하고 넘어가자.

그 어원은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과거에는 거친 채소 즉 식용하기에 변변하지 않은 채소들을 모두 시래기라 칭한 바 있다.

그를 염두에 둔다면 왜 시래기란 이름이 생긴 지 알 듯하다. 

구황식품으로 각광, 가난했던 시절 추억의 단편
숙취가 사라지고, 새로운 기운이 솟구치는 느낌

아욱

필자가 정치판에, 한나라당 중앙사무처 축구부 감독으로 있을 당시에 일이다.

토요일이면 새벽같이 국회 운동장으로 달려가 축구시합을 벌이고는 사우나에 들러 땀을 씻어내고 어김없이 찾아가는 집이 있었다.

바로 아욱국 전문 집이었다.

된장에 아욱을 넣고 끓인 국인데 먹고 나면 전날 숙취가 사라지고 새로운 기운이 은근하게 솟구치는 느낌이 일어나 언제나 아욱국을 찾았었다.

그런데 필자만 그런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응희 역시 다음과 같은 작품을 남긴다.

葵(규)
아욱

綠葵盈樊圃(녹규영번포)
녹색 아욱 채마밭에 가득하니田家屬暮春(전가속모춘)
농가는 늦은 봄이로세沃葉津多滑(옥엽진다활)
기름진 잎에 진액 많고柔莖味更新(유경미갱신)
부드러운 줄기 맛 더욱 산뜻해氣踰蘇子筍(기유소자순)
기운은 소자의 죽순보다 낫고香過季鷹蓴(향과계응순)
향기는 계응의 순채보다 낫네王公知此物(왕공지차물) 
왕공이 이 물건 알았다면 安得入吾脣(안득입오순)
내 입에 어찌 들어올 수 있겠나

이응희에 의하면 규 즉 아욱의 기운은 소자의 죽순보다 낫고 향기는 계응의 순채보다 낫다.

소자는 중국 송(宋)나라의 소동파 즉 소식(蘇軾)을 가리키는데 그의 시 ‘녹균헌(綠筠軒)’에 ‘밥에 고기가 없는 것은 괜찮으나, 사는 곳에 대나무가 없어서는 안 되네. 고기가 없으면 사람을 파리하게 할 뿐이나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을 속되게 하지. 사람의 파리함은 살찌울 수 있지만, 선비의 속됨을 고칠 수가 없다네.’ 한데서 온 말로 아욱이 그 죽순보다 뛰어다는 의미다.

또 계응(季鷹)은 진(晉)나라 장한(張翰)으로 그는 혼란한 세상에 벼슬살이를 나갔다가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고향의 별미인 농어회와 순채국을 그리워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인물이다.

즉 아욱 향기가 계응이 그리워했던 순채보다 월등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왜 葵(규)를 아욱이라 칭했을까.

그 답은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 나타난다.

‘俗名아옥’이라는 즉 葵의 속명은 ‘아옥’이라 기록되어 있는 점을 살피면 왜 이름이 아욱인지 능히 짐작되리라 본다.

중국에서는 아욱이 채소의 왕으로도 불린다고 하는데 그 이유 충분히 알 듯하다.

이를 위해  내친김에 이규보 작품 아욱(葵, 규) 감상해보자. 

公儀捘去嫌爭利(공의준거혐쟁리)
공의휴가 밀쳐버린 건 이익 다투기 싫어서고
董子休窺爲讀書(동자휴규위독서)
동자가 돌보지 않음은 책 읽기 위해서네
罷相閑居無事客(파상한거무사객)
재상 그만두고 일없이 한가하게 지내는 사람
何妨養得葉舒舒(하방양득엽서서)
잎이 무성해진들 무슨 관계 있겠는가

公儀(공의)는 중국 춘추 시대 노(魯) 나라의 재상인 공의휴(公儀休)로 재상으로 있으면서, 국록을 먹는 자들이 백성들과 이익을 다투는 것을 꺼렸다.

한번은 자기 집 밭에 난 아욱을 삶아서 먹어 보고 맛이 있음을 알자 남김없이 뽑아버렸다는 고사가 있다.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로서 농민들이 재배한 채소를 사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지의 발로라 한다.

동자(董子)는 중국 전한시대의 대학자인 동중서(董仲舒)로 한때 학문에 열중해 3년 동안이나 자기 집 아욱 밭을 들여다보지 않기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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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특검 ‘검사 파견’ 대폭 줄인 이유

종합특검 ‘검사 파견’ 대폭 줄인 이유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2차 종합특별검사팀 출범했다. 이제 수사팀을 꾸린 뒤 내란 관련 혐의 17개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 내란 외에도 김건희·채 해병 등 각 특검팀에서 매듭짓지 못한 사건들도 들여다볼 방침이다. 이번 특검팀은 과거 특검팀과는 사뭇 다르다. ‘검사 파견’을 대폭 줄였다. 이는 일부 특검팀에서 야기된 내부 갈등을 피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2차 종합특별검사팀은 3대 특검(내란·김건희·채 해병) 수사로 결론을 내지 못한 사안과 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블랙리스트, 부정선거 관련 유언비어 의혹 등을 재수사한다. 사무실을 정하고 수사팀을 꾸리는 데만 한 달여의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분주한 움직임 윤석열·김건희에 의한 내란·외환 및 국정 농단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종합특검법)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추천받은 날부터 3일 이내에 특검을 임명해야 하기에 지난 5일 특검을 임명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지난 2일 특검 후보자에 전준철 변호사를, 조국혁신당은 같은 날 특검 후보자에 권창영 서울대학교 법전원 겸임교수를 각각 추천했다. 전 변호사는 검찰 출신으로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장, 수원·대전지검 특수부장, 대검 인권수사자문관 등을 거쳤다. 반면 권 교수는 판사 출신으로 대법원 노동법실무연구회 편집위원 및 간사, 중대재해자문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특검팀 사무실 구성과 인력 파견 요청 등 출범 작업은 곧바로 진행되고 있다. 종합특검팀은 수사 대상이 광범위한 만큼 초반에는 사건별 우선순위와 수사 분담을 정하는 정리 작업이 핵심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종합특검팀은 수사 대상을 총 17개로 규정했다. 크게 보면 기존 3대 특검이 다뤘지만 규명이 미진했던 사건을 다시 수사하는 한편, 당시 특검 범위에 없던 의혹을 추가로 다룬다. 구체적으로 ▲12·3 불법 계엄 관련 내란·외환 의혹 7개 ▲김건희씨 관련 1개 ▲채 해병 관련 1개 ▲관련 고소·고발 및 수사 과정에서 인지한 사안 2개 등으로 분류된다. 종합특검팀도 앞선 특검팀들과 마찬가지로 인지수사가 가능해 수사 범위가 더 넓어질 수 있다. 과거 특검수사 못한 대상 총 17개로 규정 주로 12·3 내란 사안…‘정보기관’도 포함 종합특검팀이 다룰 불법 계엄 관련 의혹 상당수는 내란 특검팀 수사 과정에서 다뤄졌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거나, 내란 특검팀이 무혐의·각하로 종결했던 사건들이다. 대표적으로 ▲무장 헬기의 북방한계선(NLL) 위협 비행 의혹 ▲삼청동 안전 가옥(안가) 회동 ▲일부 지자체의 계엄 동조 의혹 등이다. 이 밖에도 종합특검팀은 내란 특검팀이 마무리하지 못해 채 군검찰로 이첩한 일부 외환 의혹, 계엄 준비 정황이 담겼다는 ‘노상원 수첩’ 의혹, 국군 방첩사령부의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 등을 재수사할 계획이다. 종합특검팀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사건들로는 계엄 당일 계엄사령부 구성을 위해 육군본부 간부들이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서울로 이동하려 했다는 이른바 ‘계엄 버스’ 의혹이 있다. 국방부가 최근 당시 버스 탑승 간부들에게 일제히 중징계를 내린 만큼 종합특검팀은 이 사건을 형사 처벌할 수 있는지, 지시·보고 라인이 있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것으로 보인다. 김씨 관련 의혹에서는 이전 특검팀이 정해진 기간 내 수사를 끝내지 못해 경찰에 넘긴 사건들이 종합특검팀에 다수 포함됐다. 대표적으로 ▲대통령 관저 이전 의혹 ▲양평고속도로 종점 변경 의혹 등이 꼽힌다. 종합특검팀은 관저 이전 의혹과 관련해 김씨와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을 윗선으로 봤지만 수사 기한이 임박한 시점에 조사가 이뤄지면서 윤 의원은 기소 여부를 결론 내지 못했다. 종합특검팀이 윤 의원 등을 상대로 조사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수사 막바지에 착수해 핵심 관련자 조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이른바 ‘김건희 수사 봐주기’ 의혹과 사실상 손을 대지 못했다는 창원 국가첨단산업단지 지정 과정의 부당 개입 의혹 등도 수사 대상이다. 또 김건희·채 해병 특검팀에서 중복 수사 대상이었지만 규명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이른바 ‘구명 로비’ 의혹 역시 종합특검팀이 결론을 내야 할 사안이다. 정치적 계산 확연한 차이 종합특검팀을 둘러싼 가장 큰 변화는 단연 검사 파견 규모의 축소다. 과거 특검팀이 수십명에서 많게는 백여명의 현직 검사를 파견받아 운영됐던 것과 달리, 종합특검팀은 검사 파견을 최소화하고 외부 인력 중심으로 이뤄지는 수사 구조를 택했다. 정치권과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를 두고 “검찰 이후 시대를 염두에 둔 구조적 실험”이라는 평가와 “수사 역량을 스스로 약화시킨 선택”이라는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단순한 인력 운용의 변화라기보다, 종합특검팀의 성격과 권한, 검찰과의 관계 설정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동안 특검은 형식적으로는 독립기구였지만, 실제 운영은 검찰 조직에 크게 의존해 왔다. 수사 실무와 기획, 영장 청구와 공소 유지까지 대부분의 과정이 파견 검사들에 의해 이뤄졌고, 특검은 사실상 ‘검찰의 별도 수사본부’에 가까웠다는 지적이 거셌다. 검찰로부터 검사를 파견받으면 대형 수사를 빠르게 진행하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수사 대상에 전·현직 고위 공직자, 검찰 출신 정치인, 혹은 검찰이 과거 불기소하거나 수사했던 사안이 포함될 경우 “검찰의 셀프 수사”라는 비판이 지속됐다. 특검이 검찰의 판단을 다시 들여다보는 구조 자체가 모순이라는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이번 종합특검팀의 수사 대상에는 전직 대통령과 고위 권력층, 과거 검찰 수사와 직·간접적으로 얽힌 사안들이 다수 포함돼있다. 검사 파견을 대규모로 유지할 경우, 수사 결과와 무관하게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공격을 피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내부 갈등 의식했나 종합특검팀은 검사 수를 최소화하는 대신, 특검보를 중심으로 한 지휘 체계와 외부 수사 인력을 대폭 늘리는 방식을 택했다. 경찰, 국세청, 감사원, 금융·회계·디지털 포렌식 전문가 등 비검찰 인력 비중을 확대해 복합 사건에 대응한다는 구상이다. 이는 단순히 인력 구성을 바꾼 것이 아니라, 검찰 권한 축소 이후 특검의 새로운 모델을 시험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검찰이 더 이상 모든 대형 수사의 중심이 아닌 상황에서, 특검마저 검사 중심으로 운영된다면 검찰개혁의 취지가 무색해진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검찰이 아닌 방식으로도 대형 권력형 비리를 수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검사 파견 축소에는 분명한 정치적 계산도 담겨있다. 종합특검팀은 출범 단계부터 ‘정치 보복’ ‘선택적 특검’이라는 야당의 반발에 직면했다. 이 과정에서 검사 중심 특검은 가장 공격받기 쉬운 지점이다. 여권으로서는 ‘검찰이 주도하지 않는 가장 독립적인 특검’이라는 명분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검사 파견을 줄이면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최소한 절차적 중립성에 대한 방어 논리는 강화된다. 이는 향후 수사 과정이나 결과 발표 시 정치적 공방을 완화하기 위한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반대로 야권은 이미 “검사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특검은 정치 쇼에 불과하다”는 프레임을 꺼내 들고 있다. 검사 파견 축소가 수사의 공정성이 아니라 수사 역량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무적으로 보면, 검사 파견 축소는 분명한 부담 요소다. 대형 특검 수사에는 압수수색영장 청구, 구속영장 판단, 법리 구성 등 고도의 형사법 경험이 요구된다. 검사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외부 인력 중심 구조에서는 수사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 검 아닌 경찰·국세청·감사원 조사관 비중 확대 “정보사 의혹 수사 시간 오래 걸릴 수도” 우려 특히 수사 이후 공소 유지 단계에서 검찰과의 협조가 원활하지 않을 경우, 재판 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특검들이 검사 파견을 중시했던 이유는 ‘기소와 유죄 입증’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건희 특검팀에서 벌어졌던 내부 갈등을 의식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김건희 특검팀에 파견됐던 검사들의 ‘원대 복귀 희망’ 입장문 파동이 종합특검팀에서 재발할 경우 내부 수습에 시간을 빼앗길 수 있다. 당시 입장문이 외부에 유출되며 ‘항명’ ‘집단 반발’ 등으로 알려졌지만, 특검팀 지휘부와 수사팀장들은 ‘하소연 취지’였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한다. 민주당은 파견 검사들을 겨냥해 “징계와 형사 처벌 대상”이라고 비판하고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국민에게 항명했다”고 규정한 것과 달리, 실제론 태업이나 이탈 없이 수사와 공소 유지를 차질 없이 진행했다. 파견 검사들은 검찰에서부터 최대 1년 넘도록 동일한 사건을 수사하며 피로감에 쌓였다. 이들은 검찰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수사를 매듭지으려 노력했다. 다만 재판에 넘겨진 주요 피고인들의 공소 유지 업무가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예측할 수 없다. ▲일선 검찰청의 민생 사건 적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의 ‘직관(수사 검사가 공판에 직접 관여) 제한’ 방침 ▲기존 특검 관례 등을 고려하면 최소 인력만 공소 유지 업무를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검 지휘부도 공소 유지 단계에선 복귀를 희망하는 검사들을 강제로 붙잡을 순 없다고 보고, 효율적인 인력 운용 방안을 고심했다. 지휘부가 입장문을 작성하기 2~3주 전부터 김건희 특검 내 일부 수사팀에선 ‘진행 중인 사건을 조속히 마무리한 후 일선으로 복귀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기로 뜻을 모으기도 했다. 종합특검팀은 수사 결과 이전에 이미 하나의 시험대에 올라 있다. 검찰 없이도 대형 권력형 비리를 수사할 수 있는가, 특검이 검찰개혁 이후의 사법 질서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실패하면 역풍 불가피 만약 종합특검팀이 의미 있는 수사 성과를 낸다면, 향후 특검은 검사 중심 구조에서 벗어난 새로운 표준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성과가 미진할 경우, “그래서 결국 검사가 필요하다”는 역설적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검사 파견 축소는 정치적 선택이자 제도적 실험인 셈이다. 이번 종합특검팀은 단순히 몇 건의 의혹을 밝히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검찰 이후 한국 사법 시스템이 어디까지 작동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분기점이라는 점에서, 그 성패는 수사 대상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