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이력서> (25·26) 시래기, 아욱

서민들의 희망

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시래기 ⓒpixabay

시래기

조선 후기 박제가·유득공·이서구와 함께 사가(四家)로 명성을 날렸던 이덕무의 작품, 농촌 집에서 씀(題田舍, 제전사) 중 일부로 이야기 시작해보자.

菁葉禦冬懸敗壁(정엽어동현패벽)
겨울 넘기려 시래기 누추한 벽에 매달고
楓枝賽鬼挿寒廚(풍지새귀삽한주)
액 막음하려 단풍가지 차가운 부엌에 꽂네

상기 글에 흥미로운 부분이 등장한다.

집안에 액을 막기 위해 즉 나쁜 귀신을 몰아내기 위해 단풍나무 가지를 부엌에 꽂았다는 대목이다.


과거 우리 선조들이 집안에 액운을 쫓아내기 위해 행했던 여러 이야기를 들었지만 단풍나무 가지로 액을 쫓는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다.

그런데 그 구절에 함정이 숨어있다.

楓(풍)이란 글자 단독으로 쓰이면 단풍나무를 의미하지만 구절 전체 내용을 살피면 단풍나무가 아닌 신나무를 지칭한다. 신나무는 단풍나무 과의 한 종으로 과거 액운을 쫓는다는 기록들이 심심치 않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위 글에 등장하는 楓枝는 단풍나무 가지가 아니라 신나무 가지로 해석해야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풍나무 가지로 해석한 이유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그 뜻을 한 번 더 새겨보라는 의미에서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물론 상기 글에 등장하는 菁葉(정엽) 즉 시래기에 대해서다.

菁葉에서 菁은 ‘순무’를, 葉은 물론 ‘입’을 의미하며 시래기는 푸른 무청을 겨우내 말린 것이다.


이 대목에서도 눈여겨봐야 할 단어가 등장하는데 바로 무청이란 단어다.

무청은 한자로 蕪菁으로 ‘순무’를 의미하는 蕪와 ‘우거지다’라는 의미의 菁이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해당 단어에 등장하는 菁은 ‘정’이 아닌 ‘청’의 음가를 지닌다.

여하튼 시래기 하면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집이 가난해서 시래기죽도 못 먹을 형편’이란 말이다.

이 말은 시래기가 지난 시절 구황식품으로 서민들로부터 각광받았었음을 의미한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필자 역시 어린 시절부터 시래기와 상당히 친숙했었다.

초가 처마 여기저기에 볏짚을 꼬아 엮은 새끼줄에 매달아 놓은 시래기와 노르스름한 흙벽이 조화를 이루고 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게 그려질 정도다.

당시에는 시래기로 주로 된장국을 끓여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간혹 시래기와 선지를 함께 넣고 끓인 시래기 선짓국을 먹기도 했다.

시래기 된장국도 고소했지만 선지를 넣고 끓인 시래기 선짓국은 참으로 별미였었다.

이 대목에서 잠시 선지에 대해 이야기하자.


지금이야 선지를 손쉽게 구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주변에 도살장이나 정육점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 자주 구입할 수 없었다.

그런데 동네를 드나들던 장사들 중에 지게에 혹은 짐자전거에 커다란 깡통에 가득 담은 선지를 가지고 와서 팔고는 했었다.

어린 시절 동네 어귀에서 선지 장사의 출현을 애타게 기다리고는 했다.

저만치에서 선지 장사가 모습을 드러내면 급하게 어머니를 찾고 어머니는 어김없이 선지를 구입하여 ‘시래기 선짓국’을 만들어 주시고는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먹을 음식이 다양해지자 시래기는 우리네 실생활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그저 소수의 가난한 사람들의 전유물로 전락했고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가난했던 시절에 추억의 단편으로 물러섰다.


그랬던 시래기가 현대에 들어 별미 식품 또 건강식품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른다.

시래기에 함유돼있는 영양 성분 때문임은 불문가지다.

이 대목에서 시래기란 명칭에 대해 언급하고 넘어가자.

그 어원은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과거에는 거친 채소 즉 식용하기에 변변하지 않은 채소들을 모두 시래기라 칭한 바 있다.

그를 염두에 둔다면 왜 시래기란 이름이 생긴 지 알 듯하다. 

구황식품으로 각광, 가난했던 시절 추억의 단편
숙취가 사라지고, 새로운 기운이 솟구치는 느낌

아욱

필자가 정치판에, 한나라당 중앙사무처 축구부 감독으로 있을 당시에 일이다.

토요일이면 새벽같이 국회 운동장으로 달려가 축구시합을 벌이고는 사우나에 들러 땀을 씻어내고 어김없이 찾아가는 집이 있었다.

바로 아욱국 전문 집이었다.

된장에 아욱을 넣고 끓인 국인데 먹고 나면 전날 숙취가 사라지고 새로운 기운이 은근하게 솟구치는 느낌이 일어나 언제나 아욱국을 찾았었다.

그런데 필자만 그런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응희 역시 다음과 같은 작품을 남긴다.

葵(규)
아욱

綠葵盈樊圃(녹규영번포)
녹색 아욱 채마밭에 가득하니田家屬暮春(전가속모춘)
농가는 늦은 봄이로세沃葉津多滑(옥엽진다활)
기름진 잎에 진액 많고柔莖味更新(유경미갱신)
부드러운 줄기 맛 더욱 산뜻해氣踰蘇子筍(기유소자순)
기운은 소자의 죽순보다 낫고香過季鷹蓴(향과계응순)
향기는 계응의 순채보다 낫네王公知此物(왕공지차물) 
왕공이 이 물건 알았다면 安得入吾脣(안득입오순)
내 입에 어찌 들어올 수 있겠나

이응희에 의하면 규 즉 아욱의 기운은 소자의 죽순보다 낫고 향기는 계응의 순채보다 낫다.

소자는 중국 송(宋)나라의 소동파 즉 소식(蘇軾)을 가리키는데 그의 시 ‘녹균헌(綠筠軒)’에 ‘밥에 고기가 없는 것은 괜찮으나, 사는 곳에 대나무가 없어서는 안 되네. 고기가 없으면 사람을 파리하게 할 뿐이나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을 속되게 하지. 사람의 파리함은 살찌울 수 있지만, 선비의 속됨을 고칠 수가 없다네.’ 한데서 온 말로 아욱이 그 죽순보다 뛰어다는 의미다.

또 계응(季鷹)은 진(晉)나라 장한(張翰)으로 그는 혼란한 세상에 벼슬살이를 나갔다가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고향의 별미인 농어회와 순채국을 그리워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인물이다.

즉 아욱 향기가 계응이 그리워했던 순채보다 월등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왜 葵(규)를 아욱이라 칭했을까.

그 답은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 나타난다.

‘俗名아옥’이라는 즉 葵의 속명은 ‘아옥’이라 기록되어 있는 점을 살피면 왜 이름이 아욱인지 능히 짐작되리라 본다.

중국에서는 아욱이 채소의 왕으로도 불린다고 하는데 그 이유 충분히 알 듯하다.

이를 위해  내친김에 이규보 작품 아욱(葵, 규) 감상해보자. 

公儀捘去嫌爭利(공의준거혐쟁리)
공의휴가 밀쳐버린 건 이익 다투기 싫어서고
董子休窺爲讀書(동자휴규위독서)
동자가 돌보지 않음은 책 읽기 위해서네
罷相閑居無事客(파상한거무사객)
재상 그만두고 일없이 한가하게 지내는 사람
何妨養得葉舒舒(하방양득엽서서)
잎이 무성해진들 무슨 관계 있겠는가

公儀(공의)는 중국 춘추 시대 노(魯) 나라의 재상인 공의휴(公儀休)로 재상으로 있으면서, 국록을 먹는 자들이 백성들과 이익을 다투는 것을 꺼렸다.

한번은 자기 집 밭에 난 아욱을 삶아서 먹어 보고 맛이 있음을 알자 남김없이 뽑아버렸다는 고사가 있다.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로서 농민들이 재배한 채소를 사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지의 발로라 한다.

동자(董子)는 중국 전한시대의 대학자인 동중서(董仲舒)로 한때 학문에 열중해 3년 동안이나 자기 집 아욱 밭을 들여다보지 않기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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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삼킨 장동혁 속내

신천지 삼킨 장동혁 속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새해 벽두부터 당명 변경·단식투쟁을 정치 문법으로 제시했다. 삼김 시대 정치 문법을 동원하는 장 대표에겐 ‘상상력 부재’란 지적을 할 수도 있다. 김종인·마키아벨리·아우구스투스가 장 대표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 12일 당명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 2020년 9월 당명을 미래통합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바꾼 후 약 5년5개월여 만이다. 이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공천 헌금·통일교 특검 수용 촉구’를 명분으로 지난 15일부터 22일까지 8일 동안 단식을 했다. ‘택갈이’ 당명 개정 외국과 달리 한국 정당사에선 유난히 당명 개정이 잦았다. 당명을 바꾸는 주된 원인은 선거 패배 수습과 당내 쇄신이다. 당의 체질은 바꾸지 않은 채 명칭만 바꾸기 때문에 당명 개정은 ‘택갈이’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꿨다고 지난 2017년 제19대 대선에서 패배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자유한국당에서 미래통합당으로 당명을 바꿨다고 지난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패배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미래통합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바꾼 후 지난 2022년 제20대 대선과 제8회 지방선거에서 이기긴 했지만, 문재인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유권자들의 호응과 국민의힘 나름의 자체 개선에 대한 주목이 더 큰 역할을 했다. 장 대표가 단식투쟁이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던 것에 대해서도 여러 의문이 있다. 대통령실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대응하지 않았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신임 홍익표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제1 야당 대표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심각하게 인식하길 바란다”며 “홍 수석을 단식농성장에서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강명구 의원도 같은 날 채널A 라디오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인간적 도리로 장 대표를 걱정·위로·격려하는 게 맞다”며 “이재명 대통령도 홍 수석이라도 보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조정식 대통령 정무특보도 한번 찾아오지 않았고,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며 “우리 정치 역사에 없었던 일인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직접 와서 야당 대표 얘기를 듣고 이재명 대통령에게 전달해 달라”고 요구했다. 통상의 정치 문법에 따르면, 대통령실·여당은 야당 대표의 극한 투쟁을 자제시키기 위해 먼저 움직인다. 하지만 장 대표의 단식투쟁에 대해선 단식 투쟁자와 그 주변에서 “제발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당명 변경·단식 투쟁은 20세기 대한민국 정치, 특히 삼김 시대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엔 당명 변경이 1인자 교체·정계 개편 등 강력한 정치적 파문을 거친 후 이를 상징적으로 정리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단식투쟁은 군사독재 시절 야당 지도자의 최후 항거 수단이었다. 세월이 흘러 수단이 남용되면서 그 수단이 지니는 정치적 의미가 축소됐다. 이젠 야당 대표가 단식을 하든 말든 대통령실·여당이 무시하는 시대다. 장 대표가 삼김 시대를 상징하는 정치 문법인 당명 변경·단식투쟁을 선택한 것을 놓고, 일각에선 “장 대표의 정치 문법이 너무 정직한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아울러 단식 중단 결정에 대해서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당명 변경·단식투쟁…장의 ‘정직한 정치’ 법관 출신·위기 없는 안락함…절박함 없어 통일교·신천지의 정교유착 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장 대표의 단식 하루 전인 지난 21일 신천지 전직 강사로부터 “지난 2021년 6~7월경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지역 지파장으로부터 국민의힘 가입 지시를 받아 신도들을 가입시켰다”는 진술을 받았다.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을 돕기 위해 국민의힘에 가입해야 한다는 기류가 팽배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민주당은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을 다루는 특검법에 신천지 관련 의혹도 포함해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 대표의 단식투쟁 출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만들어줬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2일 국회를 전격 방문해 장 대표의 단식을 만류했고, 장 대표는 이를 수용해 단식을 중단한 후 병원으로 이송됐다. 장 대표는 “좀 더 길고 큰 싸움을 위해서”라는 단식 중단 명분을 제시했다. 아울러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지난 13일 장 대표와 사이가 좋지 않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해 당원 게시판 의혹과 관련해 제명을 결정했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 전한길·고성국씨와 밀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씨는 지난해 7월에, 고씨도 지난 6일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세력과의 밀착을 토대로 국민의힘 안에 ‘장동혁계’를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장 대표는 광주지법 부장판사를 지낸 법관 출신이다. 여의도엔 수많은 법관 출신 정치인이 있었다. 법관은 법전·판례란 과거의 흔적을 토대로 현재를 심판한다. 하지만 정치는 다르다. 현재를 토대로 과거를 참고하면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법관도 새로운 판례를 개척하고 싶은 욕심이 있을 땐 미래를 의식하지만, 판단의 중심은 현재에 맞춰져 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전 대표는 지난 2002년 대선 출마 당시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로부터 “북한이 서해 5도에서 무력 도발하면, 즉시 육법전서를 가져오라고 할 사람”이란 비난을 들었다. 유권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각종 선거 기법을 활용해 많은 고비를 넘는 선거를 치른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이 전 대표가 패배했던 이유가 함축됐던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판사 출신 정치인에게 한정된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개혁신당 이준석 대표·한 전 대표 등 정적들에게 검사 재직 시절 관성으로 범죄자를 바라보듯 대응하다가 정치적으로 몰락했다. 한 전 대표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지난 2024년 총선을 지휘하면서 이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를 범죄자로 규정한 ‘이조심판론’을 과도하게 내세우다가 패배했다. 현재의 문제점을 토대로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정치·선거 영역에서 과도하게 직업적 관성을 내세우다가 정치적으로 패배한 사례들이다. 장 대표는 지난 2020년 제21대 총선에 출마해 정계에 입문한 이후 큰 정치적 위기를 겪지 않았다. 그가 정치에 입문한 후 겪은 좌절은 제21대 총선 패배와 대전시장 경선 패배가 있다. 물론 이 같은 사례는 다른 정치인도 흔히 겪는 일이기 때문에 두드러지는 좌절이라고 평가하긴 어렵다. 얻은 것 잃은 것 장 대표는 지난 2022년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다. 이어 지난 2024년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후 아직 2년이 지나지 않았다. 형식적으로는 재선 의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초선 의원 임기가 아직 끝나지 않을 만큼의 의정활동을 했다. 그런데 그는 현재 제1야당 대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지난 1983년 단식은 신군부 군사정권과 맞설 정상적 정치 수단이 없었던 상황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자신의 단식을 만류하던 민주정의당 권익현 당시 사무총장이 외국행을 제안하자, 김 전 대통령은 “국민이 고생하는데 내가 어떻게 외국에 나가느냐. 나를 외국으로 보내고 싶으면, 시체로 만들어 보내면 된다”고 응수했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가택연금 중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란음모 사건 때문에 수감생활을 하다가 형집행정지로 석방돼 미국으로 떠나 있었다. 김종필 전 총리는 권력형 부정 축재자로 몰려 정계에서 축출당한 후 은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대통령실·여당이 장 대표의 단식을 무시하는 이유는 이 같은 큰 그림과 의지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사람의 상상력은 절박한 위기에서 나온다. 판사 출신으로서 갖는 관성과 위기를 겪은 적 없는 정치 행보가 상상력 부재로 이어져 당명 변경·단식투쟁 등 삼김 시대 정치 문법을 대여 투쟁 방법으로 제시하는 현 상황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은 지난 2022년 1월 국민의힘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를 일컬어 “내가 ‘총괄선대위원장이 아니라 비서실장 노릇을 할 테니, 윤 후보도 태도를 바꿔서 선대위가 알려준대로 연기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선후보는 선대위에서 해주는대로 연기만 잘할 것 같으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늘 얘기한다”며 “대선후보는 자신의 의견이 국민 정서에 맞지 않으면 절대로 말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각종 실언 논란 때문에 하락하고 있었다. 김 전 위원장의 당시 발언은 “군주는 모든 미덕을 갖출 필요는 없지만, 갖춘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국가원수는 국가의 상징이다. 국가원수가 되려는 자의 발언·행보엔 큰 정치적 의미가 부여된다. 뉴스에 나오는 대통령의 이미지는 강하고 믿음직해야 하지만, 실제로 강하고 믿음직할 필요는 없다. 국민의 눈에 강하고 믿음직하게 보이는 것이 권력의 본질이다. 아울러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짐승의 방법을 잘 이용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여우와 사자를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마키아벨리는 이 같은 전략·도구를 ‘가상’이라고 표현했다. 윤 전 대통령은 대외적으로 투박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김 전 위원장은 윤 전 대통령에게 여우의 교활한 연기를 통한 가상 구축을 주문한 것이었다. 정치도 일종의 상품이라서 포장지가 필요하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여우의 교활한 연기’는 대중에게 교묘하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한 정치적 포장지를 의미한다. 마키아벨리는 “사람은 대체로 손으로 만져보는 것보다 눈으로 보는 것에 의해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를 ‘연기’라는 두 글자로 축약한 것이다. 큰 그림과 의지 부재 마키아벨리가 말한 대중 기만·속임수의 극치를 보여준 사람은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였다. 아우구스투스는 40년 동안 황제로서 로마를 통치했다. 그런데 아우구스투스는 단 한 번도 스스로를 황제라고 칭하지 않았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와의 내전에서 승리한 후 종신독재 관직에 취임하면서 로마군의 최고사령관을 겸직했다. 이후 로마에선 카이사르 동상에 왕관이 씌워지거나, 일부 카이사르 지지자가 카이사르를 향해 “왕”이라고 부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카이사르에게 왕관을 씌우자, 카이사르가 이를 벗고 안토니우스에게 돌려주는 이벤트도 있었다. 공화정 사수를 주장하는 보수파는 이를 보고 크게 불안해했다. 결국 마르쿠스 브루투스 등 보수파 일부는 원로원 회의에 참석한 카이사르를 향해 무기를 들고 덤볐고, 카이사르는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카이사르의 조카손자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의 양자 자격으로 정계에 입문해 안토니우스와의 내전을 거쳐 로마의 통치자가 됐다. 그는 대중을 속여 양아버지의 전철 답습을 피하면서 로마를 통치해야 했다. 아우구스투스가 창조한 속임수는 원수정이었다. 그는 내전 승리 직후 “권력을 원로원과 로마 시민에게 반납한다”면서 자신의 통치 체제를 “회복된 공화정”이라고 명명했다. 이어 ▲제1시민·아우구스투스(존엄한 자)란 존칭이 갖는 권위 ▲최고사령관 직위 ▲근위대 지휘권 ▲호민관 특권 등을 이용해 로마를 통치했다. 제1시민은 공화정 말기 로마 원로원에서 최고 원로를 명예롭게 예우하기 위해 사용된 호칭이었다. 카르타고 전쟁에서 한니발 바르카스를 물리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에게도 부여됐던 호칭이었다. 최고사령관 직위를 의미하는 ‘임페라토르’는 승전한 장군에게 병사들이 경의를 표하던 호칭이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이를 군권 1인자란 의미로 활용해 군권을 독점했다. 이탈리아 반도 내에 주둔하는 군대는 근위대가 유일했기 때문에 근위대 지휘권은 매우 중요했다. 아우구스투스는 근위대 지휘권을 통해 근위대장 임명권을 행사하면서 근위대를 통제했다. 김종인 ‘연기’ 발언 속 마키아벨리 철학 통찰해야 정치적으로는 호민권 특권을 요긴하게 활용했다. 아우구스투스는 귀족 가문 출신이라서 평민 출신이 독점하는 관직 호민관에 오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호민관의 권한만 가져왔다. 그가 가져간 호민관 특권은 ▲신체 불가침권 ▲입법권 ▲원로원 결의 거부권 등을 의미한다. 제1시민이란 존경을 받는 군권 1인자가 호민관 특권을 가져가면 원로원보다 우월한 지위가 확고해진다. 아우구스투스는 ‘황제 아닌 황제’로 40년 넘게 로마를 통치했다. 이런 교묘한 정치 행위는 우리 정치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적 이념·행적이 전혀 다른 김종필 전 총리와 DJP 연대를 구축한 후 대통령에 당선돼 의원내각제식 연립정권을 구축했다. 비교적 진보 성향을 드러내는 소수 야당 후보로서, 거대 여당에서 분리돼 독자노선을 걷는 강경 보수 야당과 연대해 선거에서 신선한 충격을 준 후 연립정권을 구축한 독특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윤 전 대통령 당선 과정에선 세대포위론이란 정치공학 이론이 등장했다. “2030세대 여성·4050세대 다수가 지지하는 민주당을 이기기 위해선 민주당에 적대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대 이상 노년 세대가 연합해 포위해야 한다”는 취지의 이론이었다. 이는 새로운 국민의힘 지지층을 형성하는 데 이바지했고, 젊은 보수 정치인이 다수 등장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안겨줬다. 하지만 민주당과 지지자들로부터 “세대·남녀 갈라치기를 한다”는 비판을 들었다. 아울러 윤 전 대통령과 이 대표의 갈등 끝에 새로 수혈된 2030세대 신진 정치인과 지지층 상당수는 이 대표를 따라 개혁신당으로 둥지를 옮겼다. 이는 “인간은 어버이의 죽음은 쉽게 잊어도, 재산의 손실은 좀처럼 잊지 못한다”는 마키아벨리의 주장이 현실 정치에 구현된 사례라고 평가할 수 있다. 윤 전 대통령 당선 과정에선 “이 대통령보다 중도층 지지를 더 많이 얻었다”는 평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도층은 정치 변화의 의지가 담긴 신선한 정치 문법 제시를 선호한다. 정치 문법은 결국 정치인이 대중 앞에서 선보이는 연기에 달렸다. 아우구스투스는 안토니우스 견제를 원했던 로마 최고의 논객·정치인 키케로를 상대로 예의 바른 청년 행세를 하면서 속여 그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키케로는 안토니우스를 국가의 적으로 규정한 연설을 했다.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정치 기반이 안정된 후엔 “키케로를 숙청해야 한다”는 안토니우스의 요구를 묵인했다. 아우구스투스는 당시 20세였다. 카이사르 사후 양자로서 정계에 등장한 후 불과 2년 만에 구사한 속임수였다. 아우구스투스 59년 교훈은? 안토니우스를 몰아낸 이후엔 40년 동안 원수정을 통해 로마인을 교묘하게 속였다. 아우구스투스는 만 77세로 사망하면서 “내가 인생이란 연극에서 내 배역을 충분히 잘 연기했다면, 기쁜 목소리와 박수로 날 보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당명 변경·단식 투쟁이란 삼김 시대 방식 정치 문법을 구사하는 장 대표는 그의 배우 인생 59년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