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대낙→이대만’ 이낙연 딜레마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8.10 10:24:01
  • 호수 12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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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밑까지…역전만 남았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이 당권을 잡을 것이라는 ‘이낙연 대세론’은 현재진행형이지만, 대권은 장담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민주당 안팎서 감지된다. 여야 잠룡 중 압도적 1위를 달리던 때와는 위상이 사뭇 달라졌다. 일각에선 ‘부자 몸조심’을 이유로 든다. <일요시사>는 이 의원의 딜레마를 뒤쫓았다.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 ⓒ고성준 기자

‘어대낙’(어짜피 대표는 이낙연)은 유효하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낙연 의원이 오는 8·29전당대회서 당권을 잡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같은 당 김부겸 전 의원과 박주민 의원이 추격하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대세에 영향을 주기 힘들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중론이다. 김부겸·박주민 두 후보가 ‘이낙연 대세론’을 언제든 흔들 수 있다는 역동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 어대낙이 유효한 이유다. 

멀어지는
대권의 꿈?

여론조사업체 ‘리서치뷰’가 미디어오늘의 의뢰로 지난달 28일부터 31일까지 조사하고, 지난 5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는 8·29전당대회 당 대표 적합도서 이 의원이 69%를 기록, 14%의 박 의원과 11%의 김 전 의원을 크게 앞섰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대로라면 어대낙은 현실이 된다. 그러나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 안팎에선 ‘이대만’(이러다 대표만)을 언급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이 의원이 7개월짜리 당 대표만으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다. 대권에 대한 비관론이다. 

이 의원은 ‘당권’ ‘대권’ 모두를 정조준하고 있다. 민주당 당헌·당규는 대권 1년 전 대권에 도전하는 당 대표는 직을 사퇴하도록 규정한다. 당권-대권 분리 규정이다. 차기 대선은 2022년 3월9일 열린다. 


즉 이 의원이 오는 8·29전당대회서 당권을 잡은 후 대권에 도전하려면 2021년 3월9일 전 당권을 내려놔야 한다. 7개월짜리 시한부 당 대표인 셈이다. 민주당 당 대표의 임기는 2년으로 임기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게 된다. 

지난 4월과 7월 성추문으로 공석이 된 부산·서울시장 재보궐 선거는 내년 4월에 열린다. 당헌·당규 개정이 없다면 이 의원은 재보궐 선거가 열리기 전에 대표직을 내려놔야 한다. ‘미니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은 지도부 공백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안아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이 의원을 제외한 다른 당 대표 후보들은 이 의원에게 이 같은 문제를 끊임없이 지적하고 있다.

어느새 지지율 반토막 ‘거품이었나’
‘엄중 낙연’ ‘부자 몸조심’ 현실로

부산·울산·경남(PK) 지역 첫 연설회서 김 전 의원은 “지금 누구나 우리 당의 위기를 말한다. 그 위기의 정점은 내년 4월 보궐선거가 아니냐”며 “이미 예정된 위기, 최정점서 당 대표를 그만둔다는 것,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태풍이 몰려오는데 선장이 배에서 내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이 의원을 저격했다.

박 의원 역시 최근 광주시의회 브리핑룸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의원의 7개월 시한부 당 대표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당 대표는 안정적·장기적으로 당을 이끌며 비전과 청사진을 만들 수 있어야 하며, 전환시대에 새로운 정책을 긴 호흡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이 의원은 좋은 분이긴 하지만, 당 대표가 되면 호흡을 짧게 가져갈 것”이라며 대권과 당권의 분리를 강조했다.


이 의원 입장에선 당권-대권 분리 규정을 손보는 당헌·당규 개정도 기대하기 힘들다. 현재의 이해찬 체제는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남은 기간 동안 무리하게 당헌·당규를 손보다가는 특혜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 이재명 경기도지사 ⓒ고성준 기자

앞서 유사 논란이 한 번 불거졌던 바도 있다. 민주당 전국대의원대회준비위원회(전준위)는 지난 6월30일 당 대표와 최고위원의 임기를 분리하는 내용의 당헌·당규 개정을 의결했다. 잠룡의 중도 사퇴로 2년 임기가 보장된 최고위원들까지 동반 사퇴해야 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다. 의결 내용대로라면, 당 대표가 조기 사퇴할 경우 임시 전당대회가 열려 기존 최고위원 임기는 종료되지 않는다.

앞서 김 전 의원은 당 대표로 당선될 시 임기를 채운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권주자 중 이 의원만이 7개월 시한부 당 대표 프레임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때문에 이 의원의 대권행을 돕기 위해 현 지도부가 당헌·당규를 개정, 이 의원의 부담을 덜어준 것이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 해당 안은 전당대회를 통해 확정된다.

만약 이 의원이 당 대표에 당선된 후 당권-대권 분리 규정을 골자로 한 당헌·당규 개정에 나선다면, 이는 또 다른 논란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예상되는 논란은 ‘셀프 특혜’다. 본인의 대권가도를 열기 위해 당 대표직을 이용했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저격에
휘청∼

이 경우 여권의 다른 잠룡들과의 형평성 논란까지 불러올 수 있다. 이 의원을 제외하면 여권 잠룡은 대부분 광역지자체장들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당권-대권 분리 규정에 구애받지 않는다. 즉 이 의원 본인만을 위한 당헌·당규 개정이라는 논란에 직면할 수 있다. 

이 의원은 대권에 적신호가 켜진 상태다.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달 27∼31일 조사하고, 지난 4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서 이 의원 지지율은 25.6%로 나타났다. 3개월째 하락세다. 

반면 ‘사법 족쇄’를 풀어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연일 상승세다. 대법원은 이 지사의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이 지사는 동 여론조사서 19.6%를 기록했다. 5월 14.2%였던 지지율은 6월 15.6%로 상승했으며, 대법원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판결을 받은 7월에는 20%대에 근접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2개월째 상승세다. 두 사람의 지지율 격차는 6.0% 포인트에 불과하다(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컨벤션 효과를 무색하게 하는 결과다. 컨벤션 효과는 전당대회나 대선과 같은 굵직한 정치 이벤트 과정서 후보들의 지지율이 이전에 비해 크게 상승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후보에 대한 언론 노출도가 상승하면서 유권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당선 확률이 떨어지는 정치인이 전당대회 등에 출마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권자들에게 이름을 각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후보다. 컨벤션 효과대로라면 지지율이 상승해야 한다. 이 지사는 사법 족쇄를 떨쳐냈지만, 그뿐이다. 이번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의원은 당 대표 후보임에도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고, 전당대회에 참가하지 않은 이 지사의 지지율은 올라가고 있다. 기현상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지나친 신중함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 의원은 여의도에 재입성한 후 부동산 논란과 인천국제공항(이하 인국공) 문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등 각종 이슈에서 지나치게 신중한 언행을 보였다.
 

▲ ▲▲ 당권 도전에 나선 김부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고성준 기자

지난달 초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의 부동산 논란과 관련해 이 의원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며 “합당한 처신과 조치가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 이 지사는 비슷한 시기 ‘부동산백지신탁제’ 도입을 주장하고 나섰다. 주택백지신탁제처럼 필수부동산(주거용 1주택 등)을 제외한 고위공직자의 부동산 소유를 모두 금지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러다
대표만?

이 의원은 인국공 문제에 6월 말까지 침묵했다. 그러다 지난달 1일 한 토론회에 참석해 “인국공 문제가 시급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나 국토교통위원회, 또는 합동회의를 열어서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해법이 있을 수 있는지 살펴보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는 뒤늦은 입장 발표였다. 김 전 의원이 지난 6월26일 인국공 문제에 대해 “누가 뭐래도 정부와 지자체는 비정규직을 줄이고 정규직을 늘려가는 게 맞다”며 논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모습과 대비됐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서도 신중 모드는 여전했다. 이 의원은 국회서 관련 질문을 받자 “당에서 정리된 입장을 곧 낼 것으로 안다”며 말을 아꼈다. 이후 이해찬 대표의 공개사과가 있고 나서야 “국민이 느끼는 실망과 분노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 과정서 질타도 받았다. 박 전 시장을 고소한 전직 비서를 ‘피해 고소인’이라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이 의원 역시 다른 민주당 의원들처럼 성추행 피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는 지적이 정치권 안팎서 나왔다.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 후보 공천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던 지난 7월 중순, 이 의원은 현 민주당 지도부의 소관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후보들이 말하기 부적절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반면 김 전 의원은 “내가 당 대표가 되면, 당헌을 존중하되, 당원들의 뜻을 물어 최종 판단하겠다”며 “만약 당원들의 뜻이 공천이라면, 내가 국민에게 깨끗이 엎드려 사과드리고 양해를 구하겠다”고 밝혔다. 

김 전 의원은 필요하면 당헌을 개정하겠다고도 했다. 이는 현 민주당 지도부의 소관이라며 당헌 개정에 소극적이었던 이 의원의 입장과 차이가 크다.

이 의원은 여의도 입성 후 지나치게 신중한 언행을 보여 ‘고구마 화법’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으며 ‘엄중 낙연’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이 의원은 직분에 충실하자는 원칙에 따른 결과라고 말하지만, 일각에선 ‘부자 몸조심’이라고 평가한다. 당권과 대권을 모두 잡으려다 실패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나친 신중함에…
친문 눈치 보다가?

이 의원의 이 같은 모습은 몇 개월 전만 해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의원이 내각에 있던 시절 별명은 ‘사이다 총리’였다. 국무총리이던 시절 야당의 날선 공세를 품격 있고 절제된 언행으로 되받아치는 모습에 민주당 지지층이 붙여준 별명이다.

지난 2017년 9월 대정부질문 당시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 김성태 의원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문 대통령이) 대화를 구걸한다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말했다”며 비판하자, 이낙연 당시 총리는 “의원님이 대한민국 대통령보다 일본 총리를 더 신뢰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되받아쳤다.

이어 함진규 의원이 “남조선은 대화 자격이 없다. 핵은 우리와 미국 사이의 문제”라는 북한의 입장을 전하자, 이 총리는 “오히려 되묻고 싶다. 미국이 대화를 말하면 전략이라 하고, 한국이 대화를 말하면 구걸이라 하는 기준이 무엇인가”라고 반격했다.
 

▲ ▲▲ 당권 도전에 나선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문병희 기자

‘사이다’서 ‘고구마’로의 변화는 낯설기만 하다. 이유는 무엇일까.

이낙연 의원의 애매한 포지션이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한겨레>를 통해 “이 의원은 균형감 있는 정치인이라는 기대가 컸는데, 부자 몸조심만 하는 인상을 준다”며 “당내 주류세력 눈치를 보자니 입장 없는 정치인이 되는 것이고, 자기 목소리를 내자니 당내 기반이 없어 언제든지 지지율이 뒤집힐 수 있다는 불안이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의원의 ‘아킬레스 건’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정치권에선 줄곧 이 의원의 당내 세력이 약한 점을 약점으로 꼽아왔다. ‘NY(이낙연)계’는 21대 총선 이후 세 확장 중이다. 아직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기에는 시기상조다. 

이 의원은 ‘대중적 인지도’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당내 최대 계파인 친문(친 문재인)계의 선택을 받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즉 당내 주류인 친문의 뜻에 반하지 않으려다 보니, 소신 있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과거 인기
되찾을까?

이 의원은 변화를 예고했다. 총리 시절 보여줬던 사이다스러운 모습을 잃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고구마라는 별명을 의식한 듯 최근에는 뚜렷한 입장을 내고 있다. 지난 5일 “윤석열 검찰총장이나 최재형 감사원장은 좀 더 직분에 충실했으면 좋겠다”며 “(추 장관은)개성이 강한 분”이라고 말한 점이 대표적이다. 결국 이 의원의 강점인 ‘균형감각’을 십분 발휘해 친문의 뜻에 반하지 않으면서 소신 발언을 이어가는 모습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민주당 전당대회 흥행 적신호, 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지도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8·29전당대회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서 흥행이 저조하기 때문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초라한 당권레이스’라는 말까지 들리며 최고위원 경선이 더 흥미진진하다는 자조적인 평가까지 나온다.

이에 대해 ‘이낙연 대세론’ ‘아젠다 부재’ ‘언택트(비대면) 방식’ 등 여러 원인이 언급된다.

‘어대낙’(어차피 대표는 이낙연)으로 대표되는 대세론으로 민주당 당원들은 전당대회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여권의 잠룡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행보에 더욱 관심을 보이는 모습이다.

여기에다 이낙연·김부겸·박주민 등 당권주자들은 아젠다 제시보다 친문 구애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게다가 이번 전당대회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언택트(비대면) 방식으로 치러져 후보들이 좀처럼 분위기를 띄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해찬 대표 역시 저조한 흥행 성적을 의식하는 모습이다. 통상 후보만 참석하는 지역별 합동연설회에 동행하고 있다.

과연 이해찬 대표의 동행이 흥행으로까지 이어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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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