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100만원’ 알바만도 못한 열정페이 백태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6.22 14:23:09
  • 호수 12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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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값·차비도 안 되는 허드렛일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2020년 시급은 8590원이다. 주 8시간으로 가정한다면 주휴수당까지 포함해 월급이 170만원은 넘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근무 강도가 약하거나 일을 배운다는 의미로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는 곳도 많다. 여전히 ‘열정페이’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15년 ‘열정페이’란 단어가 시대를 관통했다. 무급이나 아주 적은 월급을 주면서 취업준비생을 착취하는 행태를 비꼬는 말로, 청년층이 특히 공감을 했다. 2020년 현재도 그 단어는 유효하다. <일요시사>는 청년들의 노동착취가 지금까지도 이뤄지는 특수 직종들을 정리했다. 

공부하면서
돈도 번다고?

▲헬스장 트레이너= 피트니스센터에는 견습생 트레이너가 있다. 견습생 트레이너란 다른 트레이너들의 허드렛일을 하면서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우는 사람을 말한다. 센터 내 업무로는 내부 청소, 전단지 팜플렛 관련해 홍보활동 등이 있다. 

트레이너 희망자들은 견습생 트레이너가 돈을 벌면서 교육도 받고, 경험도 쌓고, 실무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센터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일반 트레이너와 비슷한 급여를 받는다. 일반 트레이너의 급여가 100만∼120만원 수준으로 형성됐고 견습 트레이너는 이보다 더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반 트레이너의 경우 PT라는 주 수입원이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받는 급여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소수의 센터에서는 교육비 명목으로 돈을 지불하라는 곳도 있다.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곳이라면 해부학, 영양학, 역학, 세일즈, 트레이닝 방법론, 운동 등 전문성이 띠지 않더라도 트레이닝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교육이 진행된다. 하지만 다수의 센터서 잡일만 시키고 제대로 된 교육을 하지 않는다. 알려준다고 해도 자기와 운동하면서 원판 옮기기나 시키지, 자신의 운동이라도 제대로 전수하는 곳은 드물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다수의 트레이너 견습생들은 며칠 또는 1∼2개월 교육 받다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는 버티고 버티면서 자기 운동하고 공부해서 센터서 자리 잡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그전에 그만두는 경우가 다반사다. 또 트레이너의 인성에 따라 다르지만, 괜히 트레이너 견습생에게 텃세를 부리는 경우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견습 기간은 보통 2개월서 3개월로 정해져있지만, 센터마다 제각각이다. 일반적으로 견습 트레이너, 퍼블릭 트레이너, 퍼스널 트레이너 등 3단계로 나뉜다. 보통 기본적인 교육이 끝나면, 간단한 테스트를 진행한 후 테스트 통과 시 퍼블릭 트레이너로 진급시켜 주고, 회원 OT를 진행시킨다. 기본적인 회원 OT를 진행하면서 배운 것을 실습한다고 보면 된다.

시간 지나도 1일 12시간 근무
근무 강도 낮아서 저임금 지급

자체 교육 후 퍼스널 트레이닝 교육 과정 이수증을 발급하는 곳도 있지만 이 같은 이수증 및 수료증은 다른 센터서 인정하지 않는다. 어느 센터에서는 기본적인 머신 사용법만 지도한 후, 몇 가지 트레이닝 매뉴얼을 주고 바로 PT를 진행하는 센터도 있다.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허드렛일만 하다 보면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센터에 남을지, 이직할지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물론 체계적인 교육과 더불어 트레이너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센터들도 있긴 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예전부터 트레이너들의 최저임금 문제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근무시간만 늘어난 상태다. 팀장급들은 하루 12시간씩 근무하는데 많이 받아야 월급 150만원밖에 받지 못한다. 일반 트레이너들도 하루 9시간 근무하는데 80만원서 100만원을 받는다. PT를 받는 회원이 없는 상태서 기본임금을 말하는 것이고, 자기가 알아서 회원을 끌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독서실 총무= 독서실은 낮은 근무 강도로 인해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독서실 자리를 하나 준다는 명목으로 독서실 총무는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수준이다. 대개 동네 고급화 독서실이 평균 시급이 2500원∼3500원 수준이고, 소규모 일반 독서실은 시급이 1000원대까지 떨어지거나 그 미만을 주는 경우도 많다. 독서실 관리감독 업무는 하루 4시간 독서실 청소, 회원등록과 응대, 내부 온도조절 등이다. 
 

해당 업무를 하루 4시간씩 하고 받는 월급은 30만원수준, 시급으로 따지면 2500원이 된다. 독서실을 무료로 이용하는 20만원을 월급에 더해도 시급은 4000원정도 수준에 머문다. 2020년 최저임금 8590원의 절반 수준이다.

한 독서실 근로자는 ”다른 업종에 비해 업무가 쉽고 일하면서 공부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받는 돈이 너무 적어 자괴감이 든다”며 “프리미엄 독서실서 총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대부분이 빨리 합격해서 떠나고 싶은 마음에 업주들에게 최저임금을 달라고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위와 같은 사례를 관리, 감독해야 하는 고용노동부에서는 최근 독서실 총무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하고 있다. 가맹점주를 대상으로 최저임금 준수 교육을 진행하는 프랜차이즈 본사서도 이런 불법고용 사실을 알고도 방관하거나 오히려 장려하기 때문에, 독서실 근로자들은 최저임금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상황이다. 

어깨너머로
배우고… 

무엇보다 심각한 점은 피해 당사자인 근로자들이 이 같은 현실을 외면하고 수긍하면서 프리미엄 독서실의 최저임금 미준수와 관련된 민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들이 최저임금보다 적은 시급을 받으면서도 신고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법무법인 리인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받지 못한 임금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워서’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으며 ‘민원절차가 복잡해서’ ‘비용이 부담되기 때문’ 등의 답변이 그 뒤를 이었다.

한 커뮤니티에 페*****는 “독서실 총무로 하루 10시간 일하고 한 달에 하루 쉬는데 월급 50만원 줘서 놀랐다. 근데 또 찾아보니 이렇게 주네. 물론 하는 일이 없어서 이해는 간다만 이런 건 법에 안 걸리나?”라고 게시했다. 아르바이트 구인 사이트에서는 독서실 총무대신에 ‘무료회원’이라고 표기한 뒤 사람을 채용하는 곳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아직도 독서실 총무 자리를 두고 근로자인지 대한 명확한 답은 내려지지 않았다. 최저임금이 철저히 무시되는 상황은 이미 오래전부터 공공연하게 이뤄져왔다.

과거 독서실 총무 경험이 있다는 한 공무원은 “5년 전 내가 독서실서 일했을 때와 지금 그곳 임금이 똑같다. 그러나 당시에도 어느 누구도 최저임금을 달라고 요구한 직원은 없었다. 그곳은 그런 곳”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부분은 취업포털 업체들도 자세히 인지하고 있었다.

잡코리아 관계자는 “독서실이나 고시원의 경우 공부와 일을 병행하는 점 등 그런 특수성이 존재하는 부분도 있다. 구인공고를 낼 때 최저임금이 아니면 등록 자체가 되지 않게 돼있는데, 일부 사업주들이 일단 최저시급으로 설정해놓고 상세모집요강서 최저시급에 미치지 못한 급여를 포기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모니터링 과정서 발견되면 해당 공고를 삭제 조치한다”고 말했다.

▲미용실= 지난 2013년 청년유니온이 미용실 스태프들의 열악한 근무실태를 폭로하고 나섰다. 미용실 스태프들은 하루 최대 12시간, 주 6일을 근무하고도 평균 93만원의 월급을 받아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2013년 당시 시간당 최저임금은 4860원이었다. 그러나 평균 월급을 기준으로 한 미용실 스태프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2980원이었다. 


“못 받아도 
꿈 때문에”

언론은 청년유니온을 비롯해 각종 노동연구소서 발표한 노동 실태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고용노동부도 집중 근로감독을 벌여 일부 제재를 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2020년 현재도 미용업계의 열정페이는 이어지고 있다. 하루 12시간 주 6일 근무해서 받아가는 돈은 100만원 수준이다. 

미용업계는 전형적인 ‘도제식 교육’이 이뤄지는 곳이다. 미용전문대학을 나와 기본기술을 습득하거나 별도의 자격증을 취득해도, 결국은 매장서 최소 3년의 실습경험을 쌓아야 미용사로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스태프들은 ‘인턴(교육생)’으로 불리기도 한다. 자신이 속한 미용실서 원장이나 수석 디자이너, 실장급 디자이너로부터 머리감기부터 커트, 펌, 염색 기술 등 미용실서 이뤄지는 각종 기술들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는 얘기다. 다른 미용실서 1∼2년의 스태프 경험이 있어도 3년을 채우지 못하면 또 다른 미용실에 가서도 처음부터 다시 스태프 기간을 밟아야 한다. 

교육을 명목으로 한 각종 착취가 이뤄져도 버틸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학이나 학원서 배우는 ‘기술’에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신 트렌드를 따라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교육비의 액수가 15만원서 20만원까지 책정돼있는 관례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없다. 대부분의 프랜차이즈 매장은 회당 10만∼20만원의 교육비를 스태프들로부터 관행적으로 받고 있다. 이 돈은 결국 최저임금 이하의 월급을 받게 하는 주된 원인으로 작용한다. 사업주 입장에선 세금 포탈의 방식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급여명세서상의 지급액과 실지급액은 교육비 및 각종 재료비만큼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스태프 한 명당 50만∼80만원을 돌려받았다면, 스태프 10명 기준으로 약 500만∼800만원의 돈이 지출내역만 있을 뿐 매달 사업주의 주머니로 다시 들어간 셈이다. 일부 사업주는 ‘돌려받기’를 감추기 위해 사업주 명의 계좌가 아닌 수석 디자이너나 부원장급 디자이너의 계좌로 스태프들의 교육비를 돌려받고, 그 돈을 현금으로 찾아가기도 했다.

정당한 대우 못 받아 퇴사 고민
휴게시간도 제대로 인정 못받아

스태프들은 휴게시간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 설령 근로계약서에는 ‘1일 2시간의 휴게시간 제공’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도 실제 2시간을 쉬는 것이 불가능하다. 일부 미용실 스태프들은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합해 30분 이상의 휴게시간조차 보장받지 못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서 “미용업계는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전통적인 도제식 교육을 통해 운영되고, 그런 과정서 실습비 명목으로 노동자에게 보장된 가장 기본적인 최저임금 지급이 지켜지지 않는 대표적인 곳이 미용업계라는 이야기다. 김 부소장은 2013년 서비스산업 노동과정 실태 기획연재 프로젝트 중 하나인 ‘헤어숍 헤어 디자이너와 스태프 노동 과정’을 연구한 당사자다. 

김 부소장은 “이쪽 업계는 아무리 문제점을 지적해도 개선될 수가 없는 구조”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미용 스태프들은 잦은 이직으로 고용 자체가 안정적이지 못하고, 업계의 유입과 이탈이 많아 특정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게스트하우스= 게스트하우스 스태프의 줄임말인 ‘게스탭’은 부정적인 의미로 알려졌다. 게스탭은 게스트하우스서 근무하면서 노동의 대가로 급여 대신 숙식을 제공받는다. 게스트하우스의 모든 직원이 숙식 제공으로 보상을 받는 건 아니다.
 

예전에 제주도의 한 게스트하우스서 ‘낭만페이’ 논란이 일어났던 적이 있다. 게스트하우스서 직원이 아닌 ‘스태프’를 모집한다고 해 돈이 아쉬운 청년들을 유혹하는 것이다.

간단한 소일거리라고 생각한 청년들은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로 지원한다. 게스트하우스 업주는 스태프에게 손님 체크인과 안내 등 게스트하우스 내 잡무를 시킨다. 또 바비큐파티와 관련해 준비 및 정리도 해야 한다. 게스탭은 청소 2시간, 잡무 6시간 등의 노동을 하게 된다. 이로써 게스탭은 근로 과정서 게스트하우스의 관리자에게 상당한 지휘 감독을 받고, 근무시간과 장소가 정해져 있으며, 근로의 대가를 받는 종속관계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월급 받아도
교육비로 반납

다만, 게스트하우스의 사업주와 스태프는 1∼2개월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명확한 고용관계가 아니라는 점이 발목을 잡는다. 게스탭 경험자였던 A씨는 “게스탭으로서 과중하게 노동을 부담했던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다. 정당하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보호받았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게스트하우스느 스태프를 모집할 때 근로시간과 휴게 시간을 명확하게 표기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배움 핑계로…아직도 도제식 교육?

대가로 기술 배울 수 있어도제는 상인과 장인의 직업 교육 제도이며 젊은 세대를 업무에 종사시키는 제도를 의미한다.

도제와 제자도 경력을 구축할 수 있으며, 공공 기술 인증을 취득하는 것이 가능하다. 도제는 고용주와 계약한 기간 지속적인 노동에 종사하여 대가로 기술을 배울 수 있다.

디자이너부터 포토그래퍼, 연극 배우 등 예술업계에서 하는 일에 비해 터무니없는 것이 월급과 대우로 그곳을 쉽게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사진 스튜디오나 헤어샵 등은 대부분 누군가의 밑에서 일을 배우는 도제식 근무가 많은 데서 일어나는 문제가 많았다.

배움을 핑계로 적은 월급을 정당화하거나 자신의 업무를 넘기는 식의 불공정한 대우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사진과를 졸업한 김모(30)씨는 작년까지 모 작가의 스튜디오서 일했다.

계약한 기간 지속적 노동

그는 스튜디오 실장 밑에서 사진 기술을 배우고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도제식 교육이 일반화된 업계 특성상 개인의 권리를 챙기기 힘든 구조라고 했다. 

김씨는 “매일 출근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100만원 초반대의 월급을 받고 일한다. 최근에 일하러 갔던 한 스튜디오에서는 하루에 4만원을 받고 수습 기간이 끝나면 건 당 수입을 받는 것으로 하자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하루에 4만원이면 시급 5000원꼴이다. 그렇게 일을 배운 신입 포토그래퍼는 개인 스튜디오를 오픈해 자기가 배운 것을 반복한다. 결국 뿌리 깊은 사진업계의 악습은 끊임없이 재생산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튜디오를 떠날 수 없었던 이유는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이 아닌 개인이 추구하는 사진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스튜디오가 있는 전문가의 경우 그 자체가 브랜드이기 때문에 실력 향상에는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스튜디오 내에서 부당대우를 받더라도 쉽게 내부고발을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업계가 좁아 섣불리 고발했다간 불이익을 얻을까 두렵다는 것이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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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