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장애인의 날 일상 속 차별 백태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4.20 14:42:36
  • 호수 12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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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더 사각지대 내몰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일상 속에 숨어 있다. 4월20일은 ’장애인의 날‘로 장애인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높이기 위해 제정된 법정 기념일이다. <일요시사>는 기념일을 맞아 장애인들이 오히려 차별받고 있는 상황을 취재했다.
 

▲ 온라인 수업

장애인들에게 불편한 것 중 하나는 의약품이다. 시각장애인은 의약품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하고 오·남용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소비자원은 일반의약품 생산실적 상위 30개 제품과 수입실적 상위 20개 제품 및 안전상비의약품 13개 제품 중 구입 가능한 58개 제품의 점자표시 실태를 조사한 결과, 27.6%인 16개 제품에만 점자표시가 돼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힘들어진
약국 가기

점자표시가 돼있는 경우에도 표시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2017년 ‘점자표기 기초 조사’(국립국어원)서 이미 점자표시가 있는 16개 의약품에 점자표시된 것으로 확인된 16개 의약품을 추가해 총 32개 의약품의 점자표시 세부 내용(가독성, 규격, 항목, 위치 등)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32개 의약품 중 상대적으로 가독성이 높은 의약품은 11개에 그쳤고, 21개 의약품은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규정에선 표시 항목에 대해 제품명, 업체명, 사용설명서 주요 내용 등을 점자표시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32개 의약품 중 23개 제품은 제품명만을, 4개 제품은 제품명과 업체명만 표시하고 있었고, 5개 제품은 가독성이 낮아 제품명 등을 확인할 수 없었다. 표시 위치 또한 의약품마다 제각각이었다.


이에 시각장애인의 의약품 접근권을 높이려면 제약사가 사회적·공익적 책임을 발휘해 점자표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과, 취약계층을 위한 약사의 구체적이고 자세한 복약지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를 두고 이를 장려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복지부와 식약처 등 정책당국의 역할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외 선진국들은 한국과 달리 의약품 점자표시를 의무화하거나, 의무화하지 않더라도 관련 가이드라인 등을 통해 점자표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2004년 3월 의약품 관련 지침을 개정하면서 의약품 외부 포장에 제품명 점자표시를 의무화했고, 성분의 함량이 두  가지 이상으로 판매되는 의약품은 함량에 대해서도 점자표시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환자 단체의 요청이 있는 경우 시판 허가권자는 의약품 첨부 문서를 시각장애인에게 적합한 형태(음성 점자설명서 등)로 제공해야 한다.

50개 의약품 중 16개만 점자표시
수어통역·문자 서비스 등 지원 부족

하지만 식약당국과 제약업계는 점자표기 현실화·확대에 난색을 보여, 시각장애인의 의약품 접근권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의약품 패키지(포장)를 사용자 친화적으로 리뉴얼하는 제약사가 늘고 있지만 “장애인 등 취약계층이 의약품을 사용하기엔 여전히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2017년 4월3일 정의당 윤소하 의원은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과 ‘건강기능식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는데, 약사법 개정안은 안전상비의약품의 용기나 포장 등에 제품명, 효능·효과, 용법·용량 등에 관한 정보를 담은 점자 및 점자·음성변환용 코드에 관한 데이터베이스 및 정보시스템을 구축·운영하도록 해 시각장애인이 의약품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업계와 조율 차이로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의약품 점자표기 제작이 업계로서 실현하기 어려운 일임을 시인했다. 구체적으로 생산라인을 구축하면 설비투자 비용이 발생하고 점자를 검수할 인력 마련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코로나19 상황과 관련해서도 장애인들이 차별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꾸준히 발생하는 가운데, 장애인에 대한 보호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청도대남병원의 정신질환자 7명이 사망했고, 경북도 중증장애인 시설서 장애인 확진자가 발생했다.

특히나 장애인들은 공동생활하는 경우가 많아 위험성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이연희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은 “공동거주자 중 확진자 외 나머지 거주자의 건강상태가 취약하다면 거처를 옮길 집이 필요한데, 공간을 마련하는 게 여의치 않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렵게 격리공간이 마련된다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확진자와 거주했던 이력 때문에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활동지원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벼랑 끝 생사
정책 속 외면

이 국장은 “활동지원사가 간헐적으로 방문해 지원하는 경우 방호복을 입고 집 청소, 위생관리, 식사준비, 필요한 물품을 전달한다. 방호복을 입고 장시간 지원하기가 쉽지 않기에 최소한의 시간인 2시간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서도 확진자가 많이 늘어난 상태다. 많은 사람이 의심감염자로 분류돼 자가격리 상태에 있다. 이로 인해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각계 부처들은 다양한 대응책을 내놓고 있지만 쏟아지는 정책 속에 장애인은 외면받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달 26일 중증장애인 A씨는 6번째 확진자와 같은 예배에 참석했고, 동행한 활동 지원사와 함께 자가격리됐다.  

이로 인해 A씨는 활동 지원사 대체인력 투입을 문의했지만, 관련 지침이 없어 투입이 힘든 상황에 직면했다. 이에 장애인단체들이 장애인관련 지원 대책을 확인하기 위해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 중앙사고수습본부 상황반, 다산콜센터 등 연락을 시도했지만 다른 부서로 책임을 떠넘기거나, 확인이 필요하다는 등의 답변만 받았다.

또 질병관리본부 콜센터에 수어통역이나 문자서비스가 가능하냐고 문의했지만, 오후 6시까지만 수어통역이 가능하고 개선의견을 국민신문고에 건의해달라는 답변이 끝이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9일부터 전국 초·중·고교가 순차적으로 온라인 개학을 시작했다. 이에 장애가 있는 학생을 위한 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부는 시각·청각 장애가 있는 학생에겐 자막·수어·점자 등을 제공하고 발달장애 학생에겐 가정방문 순회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밝혔으나 학부모들은 “장애 유형별로 세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발달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위한 순회교육도 불충분하다는 것이 학부모들의 설명이다. 꾸준히 교육하는 게 중요한데 주 1∼2차례 회당 2시간 수업으로 인해 교육 공백이 생기기 때문이다.

교육권 침해
더 심해졌다

윤진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사무처장은 “발달장애의 경우 단순 교과 중심 교육이 전부가 아니라 교사와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코로나19 안전대책을 마련해 소규모 수업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사들 역시 코로나19 안전대책만큼 장애 학생들의 교육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실천교육교사모임은 지난달 30일 전국 유·초·중·고 3321명의 특수학급 교사에게 설문조사를 해보니, 응답자의 88.5%(2931명)는 온라인 개학과 관련해 특수교육 대상자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교사와 학생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제시한 방법 외에 좀 더 다양한 형태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발달장애 학생들의 교육권 침해가 우려되고 있다. 발달장애 학생의 부모들은 이들을 위한 온라인 수업 준비가 미비한 상태임을 강조했으며, 일부는 차라리 학교에 나가게 해달라며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코로나19로 인해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아이들이 교육서 소외됐다고 하소연했다.
 

최수아 최수아통합발달센터 원장은 “등하교라는 안정적인 일상 패턴이 깨지다 보니 아이들이 흥분을 하고 꼬집거나 자해를 하는 등 문제 행동을 많이 보인다”며 “에너지를 풀 곳이 없어 자폐 증상이 더 심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발달장애란 출생과 성장기에 뇌 발달에 문제가 생겨 언어, 인지, 운동, 사회성 등의 성장속도가 또래에 비해 느린 상태를 모두 지칭한다.

공동생활로 감염 위험성 높아
온라인 개학…학부모 발 동동

2019년 교육부 특수교육통계에 따르면 전체 특수교육대상자 9만2958명 중 지적장애, 정서행동장애, 자폐성장애, 학습장애, 발달지체를 가진 7만3629명이 바로 발달장애 학생이기 때문이다.

또 코로나19로 인해 취업시장마저 얼어붙었다. 이로 인해 장애인들도 일자리 채용서 불이익을 받는 형국이다. 장애인들을 위한 일자리가 많지 않은 데다 알선도 제대로 되지 않는 문제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꼽혔다.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는 취업 준비부터 근로환경까지 장애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일자리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권익위가 지난 2017년부터 2019년 10월까지 민원정보분석시스템에 수집된 장애인 일자리 관련 민원 945건을 분석한 결과 ‘일자리 확대와 취업 알선’을 요청하는 민원이 44.8%로 가장 많았다.

이어 국가지원 사업인 ‘장애인 일자리 사업’(26.2%), ‘장애인에 대한 직업훈련’(15.6%), ‘장애인 근로자의 근무환경 개선’(13.4%) 순이었다. 일자리 확대 및 취업 알선 관련 민원은 구직 어려움에 따라 장애인 일자리 다양화·확대를 요구하는 내용이 72.5%(307건)를 차지했다.

장애인일자리 사업과 관련해서는 사업에 참여를 희망한다는 내용(41.5%)이 가장 많았고, 참여기간이 끝난 후 정규직으로 전환을 요청하거나, 정규직 선발 시 경력으로 인정을 해달라는 요구가 21.0%로 뒤를 이었다.

장애인 직업훈련 민원은 훈련시설 기준 완화와 장애특성을 고려한 시설기준의 마련 등 장애인 직업훈련의 확대·개선 요구(37.0%), 장애인근로자의 근무환경과 관련해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임금·업무차별 등 직장 내 애로사항(39.8%)이 가장 많았다.

일자리는 
밀려 밀려

권석원 권익위 권익개선정책국장은 <뉴스1>과의 인터뷰서 “장애인 일자리 확대도 중요하지만 장애인 직업훈련 종사자나 교사의 자질을 향상하고, 장애인 채용 시 차별을 배제하는 등 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이 동반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투표소 장애인 편의시설 보니…

21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된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사전투표소 앞에서 장애인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이들 단체는 ▲그림 투표용지 도입 ▲발달장애인 유권자를 위한 알기 쉬운 선거 정보 제공 ▲선거 전 과정서 수어 통역과 자막제공 의무화 ▲모든 사람의 접근이 가능한 투표소 선정 ▲장애인 거주 시설 장애인의 참정권 보장 등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참정권을 위해 선거관리위원회가 모든 조치를 이행할 것을 요청했다. 

현재 장애인이 후보를 살펴보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넘어야 하는 문턱이 높은 게 현실이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전체 투표소 중 20% 가까이는 이동 약자에게 접근이 어려웠다.

이에 2019년 투표소를 이동 약자의 투표소 접근 편의를 위해 ‘1층 또는 승강기 등 편의시설이 있는 곳에 설치해야 한다’는 공직선거법이 개정됐다.

하지만 ‘적절한 장소가 없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는다’는 예외조항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투표소에 온 장애인들을 실망하게 했다. 

실제 전국의 사전 투표소 3500곳 가운데 270곳이 1층도 아닌 데다 승강기까지 없어 장애인 접근성이 떨어지고 있었다.

장애인 유권자가 가장 많은 서울은 사전 투표소의 21%가 장애인이 이용하기 불편한 곳에 있었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그동안 장애인도 평등하게 차별받지 않고 투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왔지만,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변화된 게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시각장애인은 장애 유형을 고려한 점자 형태의 선거공보물에도 아쉬움이 많다.

점자 형태의 선거공보물은 묵자의 3배 분량이지만, 일반 선거공보물과 동일하게 매수가 제한돼 선거 정보 내용이 중간에 끊기는 등 어려움이 많은 상황이다. 

점자투표 보조 용구에 대한 어려움도 함께 나타났다.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비닐장갑을 끼고 투표를 진행하게 되면서 점자투표 보조 용구가 의미가 없어진 셈이다.

서울시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서 장애인이 불편 없이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지난 6일부터 10일까지 관내 2252개 전 투표소의 장애인 편의시설 실태를 점검한 바 있다.

서울시는 투표소가 건물 2층이나 3층에 설치돼있으나 승강기가 없으면, 1층 주 출입구 옆에 임시 투표소를 설치토록 했다.

또 출입구 경사로가 급하거나 계단 높이 차이가 클 경우 임시경사로를 설치토록 하고, 투표 당일 장애인 안내 도우미를 배치했다.

한편 장애인 단체들은 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지침 개정으로 투표 과정서 발달 장애인들이 가족과 활동 지원사 등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투표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게 됐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기도 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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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에너지 정책은 범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으로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이 윤곽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대통령실은 “국회 기후위기특위에서 활동하는 등 미래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3선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성환 의원을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22대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위원장 한정애, 민주당) 위원으로 활동하며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대선공약 대통령실은 그가 “‘기후 위기는 모두의 생존 위기’라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잘 이해하고 그동안의 입법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문제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김 후보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이번 김 후보자의 지명으로 이재명정부의 환경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모든 에너지 체계를 바꾸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료가 오른다’는 우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균등화발전비용(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싼 전원은 이미 풍력과 태양광”이라며 “다만 아직 한국에선 여러 기회 비용, 시간 비용, 금융 비용이 쌓여 상대적으로 비쌀 뿐이다. 실제 요금이 오를 일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이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에 대해서는 “각 나라 특성에 따라 원전을 쓰는 나라가 있는데 한국도 탈원전을 바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주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쓰고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 (이재명정부의) 탈탄소 정책 기조”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 장관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기후에너지부는 분리돼있는 기후와 에너지 관련 부처 업무를 통합한 조직이다. 그는 “기후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빠른 시일 내로 큰 방향을 잡겠다”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조직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필요”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에너지 ‘전환’을 예고하면서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운 바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태양광 사업이 크게 대두돼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문정부는 출범하면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설비를 확충하기로 했다. 태양광, 풍력발전소 등이다. 당시 내용대로면 총 110조원에 이르는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국가 예산과 공기업, 민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정부 임기 내내 전국 단위로 태양광 사업을 위한 지원금이 뿌려졌다. 당시 문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탈원전 로드맵을 동시에 진행했다. 일부 원전이 영구적으로 정지됐고 짓고 있던 원전 공사가 중단됐다. 단계적 원전 감축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온 잡음이다. 특히 태양광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문정부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국가 주력 사업이었던 만큼 정권이 바뀐 이후 새 정부의 표적이 된 상황에서 실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 투입 윤석열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진행했다. 윤정부 국무조정실은 일부 표본만 조사했는데도 불구하고 2000억원이 넘는 돈이 불법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전국 12개 지자체와 한국전력, 한국에너지공단을 대상으로 ‘전력산업 기반기금 사업’ 운영 실태에 대한 합동 점검을 벌인 결과 총 2267건(2616억원)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금은 산업자원통상부(이하 산업부)가 전기 요금의 3.7%를 징수해 조성한 돈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과 보급에 주로 사용됐다. 5년간 투입된 금액은 12조원에 이른다. 1차 조사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서 부적절한 대출과 보조금 부당 집행, 회계 부실 등이 적발됐다. 태양광 사업의 경우 점검 대상의 17%인 1129건에서 1847억원의 위법 대출 등이 확인됐다. 2차 점검에서는 적발 금액이 2배로 늘었다. 국무조정실은 2019~2021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쓰인 금융지원사업(1조1325억원) 내역과 2017~2021년 보조금 지원 규모가 컸던 25개 지자체의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금융지원 사업에서 4898억원,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보조금 사업에서 574억원, 전력 분야 연구개발 지원사업에서 266억원, 기타 전력기금 사업에서 86억원의 부정 집행 사례가 나타났다. 당시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지원금 대부분은 태양광 사업에 쓰였다”며 “가장 규모가 컸던 부정 금융지원 사업 사례 중 99%는 태양광 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양광 업자들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불법 대출을 받았고 가짜 세금계산서로 공사비를 부풀려 지원금을 타냈다. 감사원 조사로 검찰 수사까지 대출을 받은 뒤 세금계산서를 취소, 축소하는 등 탈루가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가짜로 버섯 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 시설, 축사 등 농림축산업 시설을 만들어 놓고 신재생 시설을 짓겠다고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농지에 신재생 시설을 지을 때는 용도변경 등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생산한 전력을 팔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 한도도 커진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한 마을회는 마을 창고를 짓겠다며 전력기금에서 돈을 받아 부지를 사들였지만 실제 창고는 짓지 않았고 부지는 마을회장이 6촌에게 되팔았다.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도 드러났다. 한 군은 타낸 보조금을 다 쓰지 못하고 약 24억원이 남자 이를 다른 계좌로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한 시는 보조금을 빼돌려 관용차를 사기도 했다. 감사원 조사도 이뤄졌다. 감사원은 2023년 11월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목표와 이행, 인프라 구축, 관리 등 3개 분야로 나눠 추진 과정과 집행 전반을 들여다봤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 신재생 발전 목표를 상향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검토했지만 막상 후속 조치 이행에는 소홀했다. 감사원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내려온 목표에 따라 무리한 계획이라도 수립해야 했다는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면밀한 검토 없이 강행되고 짧은 기간 내 일관성 없이 변경됨으로써 정책 혼선과 신뢰성 저하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서 전반적 점검 8000억 넘는 예산 줄줄 샜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만큼 정부 부처가 이를 맞추기 위해 과도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문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야기될 수 있는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감췄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는 문정부의 국정 과제대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릴 경우 2030년까지 전기요금을 40% 가까이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압박에 12년 동안 10.9%만 오를 것이라고 국민 부담을 축소했다. 태양광 사업의 여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월 군산시청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군산시 태양광 발전사업 수주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고 이를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당시 군산시장은 군산시가 1000억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추진할 때 자신의 고교 동문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업체가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사가 제시한 연대보증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계약 체결을 지시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새만금 태양광 사업을 주도한 회사 대표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태양광 발전사업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에게 로비를 해주겠다며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진술로 비리 의혹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핵심 수사 대상에 올랐던 건설사 대표가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도 일어났다. 관련 시장은 반응 오는 중 이 대통령이 기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김 후보자가 재생에너지를 언급하면서 관련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모양새다. 실제 태양광 관련 주가가 오르는 등 주식시장에는 벌써부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윤정부는 문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통째로 부정하다시피 했다. 반대로 문정부의 정책을 다시 끄집어낸 이정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