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진안군청 수상한 특혜 의혹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2.25 09:19:05
  • 호수 12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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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행위 축소…명함 보고 봐줬나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정곡리가 개인 간 소송으로 시끄럽다. 이 지역의 야산 주인인 A씨가 건축주인 B씨의 불법행위에 대한 진안군청의 행정처리가 부당하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B씨가 특정인이라는 이유로 ‘봐주기’식 행정이 아니냐며 특혜 의혹 주장이 제기됐다. 
 

<일요시사>는 최근 전북 진안군청의 부당한 행정처리를 고발한다는 내용의 제보를 받았다. 전북 진안군 진안읍 정곡리 임야를 소유하고 있다는 제보자 A씨는 자신의 임야에 건축 과정서 특정인의 불법적인 행위가 있었음에도 진안군청이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며 ‘봐주기’ 의혹을 제기했다.

민주평통 
자문위원

A씨는 2017년 3월 오랜만에 자신의 임야를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임야 내 삼림이 훼손돼있는 현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현장을 확인한 A씨는 훨씬 이전부터 공사가 진행됐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A씨는 한국국토정보공사(당시 지적공사)의 측량 표시점을 임의로 옮긴 점, 무단으로 벌채하고 임도를 훼손한 행위에 대해 진안군청에 민원을 넣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전화 통화 내용에 따르면 A씨는 진안군청 관계자에게 “7년 이상 자란 것을 마음대로 벤 것도 어이가 없다. 이제 와서 나무 몇 개 심어준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군청 관계자는 “재산상으로 손해 난 부분에 대해서는 벌채한 분과 합의를 하거나 합의가 되지 않으면 민사로 가야 한다”며 “그런 부분은 행정상으로는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다. 토사 반출과 관련해서는 일괄적으로 산재관리법 위반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답했다.

A씨는 지적공사 관계자와 경계점이 옮겨져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지적공사 관계자는 A씨에게 “그분(B씨)이 분명히 산을 훼손한 것은 맞다. 현장에 갔더니 말뚝을 꼽아놓은 것이 없었다. 산 쪽에 분명히 표시해놨었는데 없어진 것을 보면 그 분이(산 겉면 등을) 분명히 훼손한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지적공사서 측량 후 측량 표시점을 정했다. 하지만 건축주였던 B씨가 옮긴 건지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진안군청에 신고할 때는 공사를 중단해준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고 하소연했다.

A씨는 B씨가 산을 깎아서 평지처럼 만들었으며 산에 있던 흙을 퍼다가 B씨 땅을 메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내 임야에 말도 없이 훼손 흔적 발견
타인이 건축 공사로 측량지점 옮겨

3∼4개월이 지나도 진안군청으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길래 확인해 보니 해당 건은 고소 처리가 됐다는 말만 들었다. 그는 보다 자세한 처리 내용을 알려달라고 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진안경찰서로 찾아갔을 땐 이미 조사가 끝났고, 검찰로 이첩돼 벌금 200만원이 나온 상태였다.

A씨는 “우리가 피해자인데 고소 내용을 알지 못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고소장에는 피해자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작 피해를 본 것은 우리 가족인데 왜 아무런 조사도 안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무원이 우리에게 ‘공사를 중단한다’는 말만 해놓고는 경찰에겐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경찰이 진안군청에 전화해 확인한 뒤에야 준공이 허가 난 것을 알게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서를 찾아간 A씨는 진안군청서 허가를 내준 이유를 물었다. A씨에 따르면 이때 진안군청 측은 방법을 강구하겠다는 의견과 함께 다른 도로를 포장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A씨는 “당시 공무원은 예산을 투입해서라도 포장공사를 해주겠다고 했다. 관계자에게 ‘B씨가 잘못한 걸 왜 공사까지 하느냐’며 따져 물었지만 뚜렷한 답은 내놓지 않았다. 해당 예산에 관해 물으니 주민숙원사업으로 한다고 했다. 주위에 주민도 살고 있지도 않은 곳인데 어느 주민이 찬성하겠느냐고 되물었더니 ‘그건 알아서 한다’며 호언장담했다”고 말했다. 

지난 2018년 8월3일엔 한국국토정보공사 직원이 현장을 찾아 다시 측량지점을 정했다. 이후로 A씨는 현장을 찾아 측량지점이 바뀐 것을 확인했다.

나무 잘라 
항의했더니…

A씨는 “B씨가 또 위치를 바꿔놓은 것 같다. 원래 측량지점이었으면 B씨는 주차장을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찰에 다시 고소했다. B씨가 저지른 경계침범죄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는 “현장조사 때 진안군청 관계자 3명이 B씨를 보고 ‘선생님’이라고 말하며 깍듯하게 대했다. 선생님이라고 부르길래 처음에는 교육계 종사자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서 일하는 사람이었다”고 언급했다.

A씨는 법원으로부터 B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해 법원의 감정인을 통해 산림훼손에 대해 복구를 위한 비용이 약 2000만원이 넘는다는 감정 결과를 받았다. 하지만 B씨는 무단 잡목 벌목 행위에 대해서만 처벌됐다. 

당시 벌목을 담당했던 C씨는 “예전에는 집을 짓거나 할 때 조금만 경계를 넘어가도 죄가 엄청나게 컸다. 벌목하던 사장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수로 경계를 조금만 넘어가도 구속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B씨는 A씨의 땅을 파고 나무도 자르고 뿌리까지 다 뽑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았는데(그 부분에 대해서 나도) 좀 의아했다”고 말했다.

C씨는 “측량을 부탁받아 현장에 갔는데 마침 런닝셔츠 차림에 문신이 보이는 B씨를 봤다”며 “내게 명함 하나를 건넸다는데 당시 그는 ‘나 이런 사람이며 나랏일 하는 사람이다. 또 전주서 끗발이 조금 있다’고 말했다. 명함 뒷면을 보니 민주평통이라는 것과 함께 대통령 직속기관이라고도 적혀있었다. 자신이 뒷배경이 있는 것처럼 말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공무원도 
“선생님”

그는 “이후로 벌어진 일들이 참 신기했다. 당시 진안군청 관계자들이 길도 내주겠다고 말하는 것을 옆에서 직접 들었지만 그 말은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A씨만 피해를 본 것”이라며 “진안군청 관계자의 말이 계속 바뀌었다. 했던 말을 안 했다고 하고 안 했던 말을 했다고 하고 거짓말의 연속이었다. 여기 있다 보니 진안군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을 많이 들었다. 전북서도 진안군은 유별나다. 이 지역은 벌목 허가 기준이 굉장히 모호하고 편차가 심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 사건을 담당한 진안군청 감사관은 A씨가 오해하는 부분이 크다고 주장했다.
 

진안군청 감사관 D씨는 “A씨가 해당 공무원의 발언에 대해 문제를 삼고 있다. 해당 공무원이 현장에 갔을 때 삼림이 훼손된 상태였고 전 상황에 대해 알지 못해서 ‘잘 모르겠다’고 답한 것”이라며 “산지 공무원은 사법권이 있는 공무원으로 사법경찰이나 다름없다. 해당 공무원이 말을 잘못하면 반대로 B씨가 피해를 볼 수 있다. A씨가 받아들이기에는 ‘B씨를 봐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사적인 이야기지만 A씨가 B씨에게 금전을 요구했다고 전해 들었다. 자기의 산을 건드렸으니 보상을 해달라는 것이다. 정확한 액수는 모르겠지만 약 2000만원 정도의 보상을 요구했다는 말도 떠돌았다”고 덧붙였다. 

D씨는 “해당 사건은 지난해 10월, 최종판결이 나서 끝난 상황이다. A씨는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려고 하는 것이고, (나는)합의를 보려고 했지만 잘 안 됐다”며 “내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 원상복구해놨다”고 언급했다.

B씨는 “만약 민주평통만 적혀있는 명함만 건넸다면 갑질 의혹을 받을 수 있지만, 당시 건넨 것은 양면 명함이었다. 한쪽 면에는 내가 하는 일(직종)이 있고 그 뒷면에 민주평통이 적혀 있는데 그걸 보고 오해한 것”이라며 “지난해 9월부터 민주평통서 근무도 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준공기준 두고 “편파적” 소문도
“양면 명함일 뿐 갑질 아냐”


이어 “민주평통 사람들 명함은 모두 양면으로 돼있는데 다른 면에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적는다”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는데 이게 무슨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그 양면 명함을 사용하지 않는다. A씨와 합의하려고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나도 정신적으로 피해를 많이 본 상태”라고 항변했다.

지난달 8일 A씨는 해당 사건을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했다.

A씨는 민원을 통해 “과거 위성 영상서도 보이는 임도에 대해 담당 공무원은 ‘모른다’고 답했다. 검찰에서는 공무원이 임도가 있었다는 게 확인돼야 재조사하는데 신고자의 말만 듣고 처벌하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임도 인근의 하천과 직원의 이름까지 알려줬는데도 불구하고 산림과는 확인도 하지 않았다. 결국 B씨는 잡목 벌목 행위에 대해서만 처벌을 받고 나머지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B씨가 없앤 임도를 왜 진안군서 복구하겠다고 약속했는지 모르겠고 약속한 것조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국민신문고 담당자는 “B씨는 2017년 7월21일 전주지방검찰청으로부터 구약식 벌금 200만원 처분을 받았다. 토사 반출 및 경계침범죄 등은 담당자가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사항으로써 고발할 수 없었던 점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민주평통 전북지역회의 관계자는 “자문위원이 800명이 넘는다. 명함을 가지고 사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명함을 볼 땐 굉장히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비춰질 수 있지만, 그 분이 높은 직책을 가진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개인 간 갈등
조직 간 은폐?

한편 A씨가 문제를 제기한 담당 공무원은 육아휴직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진안군청의 한 관계자는 “작년까지 두 사람 간에 소송이 진행됐던 것으로 안다. 개인끼리의 싸움은 군청서 조율하기 힘들다. 진안군청 입장에서는 불법적인 요소만 봤던 것이다. 또 이 동네가 좁기 때문에 B씨에 대해 알긴 하지만 어느 일을 해서 봐준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민주평통은? 

헌법기관으로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국민의 통일의지와 역량을 결집해, 민족의 염원인 평화통일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자하는 시대적 상황과 국민적 여망으로 인해 1980년대 초반에 범국민적 통일기구로 설립됐다. 

자문위원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 부여된 기능과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책무를 지니고 있다.

임기는 위촉된 날부터 2년이며, 연임이 가능하다.

신분은 무보수·명예직이나 자문위원에 위촉되면 민주평통 의장인 대통령 명의로 된 위촉장이 수여되며, 신분증과 배지가 제공된다.

법정회의 참석 시 예산의 범위 내에서 소정의 회의 출석 수당 및 여비가 지급된다.

국민화합과 통일기반 조성 활동에 크게 기여하는 등 활동실적이 뛰어난 자문위원에게는 정부훈·포장과 의장표창을 수여하고 있다.

자문위원으로서 품위를 유지해야 하며, 직위를 남용한 청탁이나 이권 활동은 금지됐다.

남북관계 개선 및 평화통일 기반 조성을 위해 다음과 같은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다. 

▲정부의 대북정책 추진에 대한 자문·건의 ▲자문건의를 위한 통일여론 수렴 활동 ▲전체회의·지역회의 등 법정회의 및 각종 회의 참석 ▲지역회의나 지역협의회 단위로 실시하는 ‘평화통일포럼’ ‘통일시대 시민교실’ 등 각종 통일관련 행사 참여 ▲국민화합과 통일기반 조성을 위해 지역협의회가 실시하는 제반활동 참여 등이 있다.

지난해 9월1일 제19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출범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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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