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기획특집]기축년, 봄을 찾는 사람들 ②재계 범털들의 히든카드

MB가 풍운아를 만났을 때…‘미워도 다시 한번?’


재계 ‘잠룡’으로 분류되는 거물급 ‘범털’들이 재기의 칼날을 갈고 있다. 족쇄 풀린 전직 오너들의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포착되고 있는 것. 한때 재계를 호령하다 일장춘몽으로 ‘강퇴’당한 재계 스타들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하나같이 여전히 사업에 대한 열정과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꿈틀대고 있다는 근황만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2009년 부활이 점쳐지는 재계 풍운아들의 패자부활전을 들여다봤다.

족쇄 풀린 전직 오너들 ‘부활 날갯짓’…러브콜 쇄도
불황 틈타 패자부활전 본격 태세 “옛 명성 되찾을까”
마당발 인맥 등 노하우 재활용
물밑접촉 개시…사전 작업 완료


정부는 지난해 8월 34만여명에 대한 8·15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여기엔 포함된 재계 전·현직 총수들은 모두 14명. 정부는 면죄부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을 풀어줬다.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창출하라’는 게 조건이었다. 경제성장을 위해 재계 거물들의 노하우가 꼭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물론 김대중 정부에서도 그랬고, 노무현 정부에서도 그랬다.

“신화창조 재조명…
왕성한 활동 주목”

이 대통령은 사면을 앞두고 “대기업들도 투명윤리 경영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는 존경받는 기업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며 “사면은 대기업들이 보다 공격적인 경영으로 투자를 늘리고 중소기업과 고통을 분담하는 자세로 상생 협력해 달라는 뜻”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정부가 경제살리기 일환으로 내놓은 ‘특단의 대책’에 족쇄가 풀린 총수들은 경영 복귀와 함께 즉각 화답했다. 그룹별로 속속 투자와 고용 확대 방안을 내놓고 있는 것. 당시 세상 밖으로 나온 재계 범털들의 행보도 같은 이유로 주목받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재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대표적인 인사가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이다. 최 전 회장의 거취는 언제나 초미의 관심사다. 그중에서도 최 전 회장의 복귀는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1970년대 중동건설 붐을 일으키면서 고속성장한 동아건설은 1980년대 현대건설에 이어 도급 순위 2위의 ‘건설명가’ 반열에 올랐고, 1990년대 초엔 리비아 대수로 신화를 일궈내며 현대건설, 대우건설과 함께 ‘건설 트로이카’를 이끌었다.

그러나 동아그룹은 IMF 때 무리한 차입경영의 부담을 이기지 못한 채 부도를 냈다. 최 전 회장은 1998년 동아건설 워크아웃 과정에서 분식회계, 배임, 불법 사기대출 등이 드러났고 결국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2004년 이런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그는 지난해 8월 사면으로 자유의 몸이 됐다. 최 전 회장의 사면은 벌써 세 번째다.
최 전 회장의 올해 나이는 66세. 여타 총수들과 비교해 충분히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기다. 최 전 회장은 2005년 7월 법원의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풀려난 이후 줄곧 부활 의지를 불태웠지만, 안방을 재탈환하기 위한 ‘재기의 꿈’은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최 전 회장은 그동안 “직책이나 돈에 연연하지 않고 백의종군해 리비아 등 대규모 해외공사를 수주할 수 있다”며 경영일선 복귀를 희망해 왔다.

안병균 전 나산그룹 회장도 옛 명성을 되찾을지 주목되는 인사다. 국세청이 발표한 ‘1991년도 100대 납세자 리스트’를 보면 당시 종합소득세 납부 1위는 안 전 회장이다. 그는 신고소득 47억원, 납세액 23억원으로 재계에서 내로라하는 부호들을 제쳤다. 안 전 회장의 부활이 시선을 끄는 대목이다.
1984년 나산그룹을 설립한 안 전 회장은 1990년대 신흥재벌로 등극했다. 하지만 안 전 회장은 1994∼2000년 부도난 ㈜나산의 자금 40억원을 차명계좌로 빼돌리는 등 회삿돈 290억원을 횡령하고 계열사 등에 2359억원을 부당 지원한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역시 지난해 8월 사면된 나승렬 전 거평그룹 회장도 부활의 날갯짓을 쉽사리 접지 않고 있다. 나 전 회장 역시 1990년대 재계 샛별로 등장했지만, 1998년 한남투신을 인수한 뒤 2945억여원을 부당 지원한 혐의로 구속,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다.

나 전 회장 일가의 재기 노크는 끊이지 않고 있다. 그의 가족과 가신들은 이미 기린과 서현개발 등의 경영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나 전 회장도 모 코스닥업체 경영권 장악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유상부 전 포스코 회장, 박건배 전 해태그룹 회장,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김영진 전 진도그룹 회장, 엄상호 전 건영그룹 회장, 장치혁 전 고합그룹 회장, 김선홍 전 기아차 회장,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 등 한때 재계를 호령하다 일장춘몽으로 강퇴당한 재계 범털들도 온갖 논란 속에서 재기의 칼날을 갈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노크 또 노크’
두드리면 열릴까

권력형 비리인 이른바 ‘게이트’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풍운아들의 복귀도 가시화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다시 주목받고 있는 최규선, 이용호, 진승현 씨 등이 주인공이다. 권력의 그늘 밑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들은 모두 저마다 ‘복귀 히든카드’를 쥐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인물은 최규선 씨다. 국민의 정부 때 ‘최규선 게이트’의 장본인 최씨는 2002년 DJ의 3남 홍걸 씨와 정치권 커넥션을 동원해 온갖 이권에 개입한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2006년 2월 만기출소했다.
이후 지난해 국내 굴지의 기업들과 함께 이라크 쿠르드 유전개발사업에 뛰어들었다. 그의 ‘마당발 인맥’이 총동원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측근들도 그의 해외 거물 네트워크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자원 외교를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란 게 대체적인 시각이지만, 최씨는 “아직은 전면에 나설 단계가 아니다”라며 정중동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용호 게이트’당사자인 이용호 씨도 이미 재기를 위한 물밑활동을 시작했다. 2001년 G&G그룹 회장 당시 이씨는 계열사의 자금 수백억원을 횡령하고 주가를 조작한 뒤 수사 무마를 위해 검찰, 국가정보원, 정치인 등에게 로비를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2005년 11월 대법원에서 징역 6년이 확정됐지만, 2007년 3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이씨 측근에 따르면 그는 출소 직후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받았다. “돈을 댈 테니 사업을 같이 하자”는 제안이다. 또 “경영자나 자문으로 와 달라”는 제의도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재 그의 거처는 확실치 않다. ▲서울 미아동 A호텔 나이트클럽을 소유하고 있다 ▲코스닥상장사 I사의 실질적 오너다 ▲황우석 박사 등과 접촉해 신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등 그를 둘러싼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는 까닭이다.

‘진승현 게이트’ 진승현 씨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진씨는 2000년 2300여억원을 불법대출 받는 과정에서 정·관계에 로비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진씨는 이 사건으로 2002년 7월 대법원에서 징역 5년형이 확정됐다. 예정대로라면 출소해야 할 시점. 그러나 수용과 병원 치료를 반복해 형기가 늘어난 그는 올해 출소를 앞두고 있다.
진씨는 앞서 형집행정지 상태에서 코스닥 상장사의 배후 실세로 활동하며 문어발식 기업인수에 관여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진승현 게이트’에 연루됐던 측근들을 통해서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진씨 회사에 몸담았던 인물들이 여러 코스닥 상장사들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진씨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며 “진씨가 수백억원대의 자금을 국내 주식시장과 해외시장에서 조달해 관리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고 귀띔했다.

현직에서 ‘화려한 부활’을 노리는 거물들도 적지 않다. 바로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과 박병엽 팬택계열 부회장이다.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사장 출신인 진 전 장관은 ‘삼성 신화’를 일궈낸 국내 최고의 반도체 전문가. 삼성의 옷을 벗은 것은 2003년 2월.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2006년 3월까지 3년 동안 정보통신부 장관을 역임했다. 사임 뒤 2006년 5·31 지방선거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한 진 전 장관은 같은해 11월 속칭 ‘진대제 펀드’로 불리는 IT 전문 투자사인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SIC)를 설립했다.

이 과정에서 진 전 장관의 행보는 재계 최대 관심거리였다. 여러 기업들은 그를 영입하기 위해 끊임없는 러브콜을 보냈다. 친정인 삼성 복귀 가능성도 고개를 들었고, 하이닉스 사장 후보로도 이름을 올렸다. 진 전 장관은 2007년 5월 동부그룹 계열사인 동부하이텍 경영고문 역할을 맡았지만 불과 7개월 만에 물러나기도 했다.
진 전 장관은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캠프에 참여해 경제참모 역할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진 전 장관의 올해 행보가 더더욱 주목받는 이유다.
박 부회장도 부활을 위해 진땀을 흘리고 있다. 그가 1991년 설립한 팬택계열은 2005년 매출 3조원을 돌파하며 승승장구했다. 이도 잠시. 2006년 말부터 자금난이 불거지더니 급기야 부도 위기까지 내몰렸다.
하지만 지금 사정은 다르다. 팬택계열은 당시의 위기 상황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듯 보인다. 박 부회장은 경영 효율화를 위해 뼈를 깎는 자구책을 동원했다. 사옥을 팔았고, 1000여명의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임금 삭감, 상여금 반납, 담보 제공 등 허리띠도 졸라맸다. 박 부회장도 2500억원 상당의 지분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 결과 팬택계열은 2007년 3분기부터 연속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2조원을 넘어섰고, 휴대전화를 1000만대나 팔았다. 놀라운 실적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말 팬택계열 대표이사로 재선임된 박 부회장은 “팬택계열의 기업개선작업이 2011년까지 예정돼 있지만 이르면 내년 워크아웃 조기 졸업이 자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재기 앞두고 정중동
컴백 비난도 쏟아져

재계 범털들의 컴백에 대해 비난도 적지 않다. 불법과 부실화 장본인이란 우려에서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복귀나 재기를 노리는 대부분의 전직 총수들은 거액의 지방세를 미납하거나 추징금을 아직 납부하지 않았다”며 “일부는 거액의 재산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기업을 부도내거나 각종 혐의로 구속된 오너들이 사면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경영일선에 복귀하는 것은 방만경영 또는 부실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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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