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배고파서…’ 현대판 장발장 후일담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12.23 11:05:21
  • 호수 12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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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에 밥을 굶다니요”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생계 곤란을 겪던 인천의 한 부자(父子)가 마트서 우유를 훔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이 부자는 최근 빵과 우유에 손을 댔는데 마트 대표는 처벌을 원치 않았다. 당시 출동했던 경찰관은 부자에게 국밥을 사주고, 익명의 시민이 후원금을 전달하는 등 온정의 손길이 이어졌다. <일요시사>가 생활고로 인해 범행을 저질렀던 ‘현대판 장발장’ 사건에 대해 알아봤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요즘 세상에 밥 굶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인천서 ‘현대판 장발장’ 사건에 국밥을 사준 경찰이 한 말이다. 경기 침체가 악화하면서 생활고에 시달리다 못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줄지 않고 있다. 

배고픔 
못 이겨서…

인천의 한 마트서 부자가 식료품을 훔치다 적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3일 인천 중부 경찰서에 따르면 10일 오후 4시경 A(34)씨와 아들 B(12)군이 인천시 중구 소재의 한 마트서 우유와 사과 4개 등 1만원가량의 식료품을 훔치다가 마트 직원에게 적발됐다.

마트 대표가 경찰에 신고하자, A씨는 몸을 떨고 땀을 흘리며 용서해달라고 사정했다. 그는 “너무 배고픈 나머지 해선 안 될 일을 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A씨는 당뇨와 갑상선 질환 등 지병이 악화돼 택시기사를 그만두고 임대주택서 6개월간 요양을 하고 있었다. 경제적 어려움을 버티지 못하고 배고픔을 참지 못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신고를 받고 마트에 도착한 경찰은 마트 대표가 처벌을 원치 않자, 이들 부자를 훈방 조치하기로 하고 가까운 식당으로 데려가 국밥을 사줬다. 또 경찰로부터 내용을 전달받은 지역 행정복지센터는 A씨에게 일자리를 소개해주기로 하고 B군에게 무료급식 카드까지 지원했다. 


사건 당일 한 60대 사업가는 경찰이 부자에게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데려간 식당을 쫓아가 A씨에게 봉투를 건네고 곧장 자리를 떠났다. B군이 돈봉투를 들고 뒤따라갔으나 그는 “그냥 가져가라”며 돌려받지 않고 사라졌다. 이후 경찰은 수소문 끝에 인적사항을 확인한 뒤 이 사업가에게 감사장을 수여했다. 

또 한 여성은 사과 한 상자를 산 뒤 A씨에게 전달해달라며 마트에 두고 간 것으로 전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장발장 부자를 “돕고 싶다”며 방법을 묻는 전화도 이어졌다. 계좌로 돈을 보내며 생필품을 대신 전해달라는 부탁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뇨·갑상선 등 지병 악화돼 휴직
현금 20만원·사과 한상자 등 후원

SNS(사회망관계서비스)와 온라인 커뮤니티서도 해당 마트가 어딘지 알려달라는 글과 마트를 통해 후원하겠다는 글도 올라왔다. 아버지는 많은 이들의 후원에 대해 “누구보다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는 홀어머니와 두 아들의 생계를 책임지던 가장”이라며 “지병으로 하던 일을 못 하게 된 상황서 아들이 배고픔을 호소하자 범행을 저지른 것 같다. 주변의 도움을 받게 된 만큼 건강을 되찾고 일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11월19월 강남서도 노인이 배가 고파서 물건을 훔치다 적발된 적이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당일 강남구 한 편의점으로부터, 80대 할머니가 음료수를 훔쳐 갔다는 신고를 받았다.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파출소 경찰관에게 체포된 할머니는 강남경찰서로 넘겨 조사를 받았다.
 

당시 이 사건을 맡게 된 경찰은 전과도 없는 80대 노인이 우유와 주스 등 2500원어치를 훔쳐 절도 혐의로 입건되자, 그 속사정에 대해 알기 위해 노인의 형편에 대해 파악했다. 확인 결과 할머니는 고등학생 손자와 반지하서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조사에 출석한 할머니는 “먹을 것이 없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담당 경찰은 팀장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논의를 가진 후 3일 뒤 동료 형사 3명 등이 노인이 사는 지역 주민센터에 찾아가 도울 방법을 물색했다. 주민센터 직원은 “할머니 아들이 대리운전 일을 하고 있어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가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들과 떨어져 사는 것으로 확인됐다. 

생활고로 
슬쩍∼

형사들은 주민센터 직원들에게 할머니의 사정을 설명한 뒤 “손자의 학비와 생활용품이 부족하지 않은지 관심을 가져 달라”고 설득했다. 이에 대해 직원은 “학비와 생활용품 지원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할머니가 굶으시는 일이 없게끔 구호물품 등이 전달되도록 조치하고 관심을 갖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10월22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광주 북부 경찰서는 최근 광주 북구 용봉동 고시텔에 사는 A(35)씨를 절도 혐의로 검거한 뒤 병원에 입원시켰다. C씨는 10월18일 오전 2시20분경 자신이 사는 고시텔을 나와 인근 마트 출입문을 부순 뒤 빵 20여개, 냉동 피자 2판, 짜장 컵라면 5개 등을 훔친 혐의를 받았다.

고시텔에 돌아와 훔친 빵과 컵라면을 먹던 C씨는 곧바로 경찰에 검거됐던 그는 경찰에 출석해 “배고파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A씨는 좁은 고시텔서 누워 주린 배를 움켜잡고 열흘을 버텼다. 배고픔 때문에 양심과 죄책감을 내려놓은 그는 마트 출입문에 소화기를 던져 깬 뒤 음식들을 훔쳐 허기진 배를 채운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조사 결과 산업용 기계의 유효기간을 체크하는 일을 해오던 C씨는 넘어지는 사고를 당해 지난해 말 퇴사했다. 허리 부상으로 장애 6급 판정을 받아 더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C씨에겐 가족이 없어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다. 돈이 다 떨어지자 카드 대출로 생활을 이어갔고,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되자 고시텔 안에 누워서 굶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시텔 월세도 4개월이나 밀렸다. 고시텔에 살아 주소지를 증명할 수 없던 그는 기초생활 수급자 자격대상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 조사를 하던 중 형사가 “왜 뭐든 해보려 하지 않았냐”고 묻자 그는 “아무 희망이 없었다”고 답했다고 한다. 

끼니 굶고
취업 준비

경찰은 상담을 거쳐 C씨가 자살 고위험군이라고 판단해 병원에 입원시켜 우선 정신적 회복을 하도록 돕기로 했다. 또 병원서 퇴원하면 지자체 등 유관기관과 협의해 주거지 마련과 구직활동 등을 지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3월 경기 고양시 일산에 한 편의점서 취업준비생이 삼각김밥, 조각 케이크 등 4500원어치를 훔치기도 했다. 경찰 조사 결과 취업준비생은 같은 편의점서 두 차례에 걸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취업준비생은 경찰 조사 과정서 “취업 면접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돈이 없어 며칠 동안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다”며 “배가 고파 편의점에 들어갔다가 물건에 손을 대게 됐다”고 진술했다. 

딱한 사정을 접한 일산서부경찰서 강력2팀의 한 경사는 “아무리 힘들어도 범죄는 안 된다. 정직하게 살라는 의미로 빌려주는 것”이라는 말과 함께 취업준비생에게 2만원을 건넸다. 해당 편의점 업주도 “처벌을 원하지 않으며 선처해달라”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이 벌어진 한 달 후 취업준비생은 일산서부경찰서를 다시 찾았다. 일자리를 구해 첫 월급을 받았다며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했지만 취업준비생 외근 중이던 담당 경사를 만나지 못했다. 담당 경사는 전화 통화로 “마음만 받겠다”는 뜻을 전했다. 집에 돌아간 취업준비생은 일산서부경찰서 홈페이지 ‘칭찬합시다’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취준생 편의점서 삼각김밥 훔쳐
이후 2만원 빌려준 경찰 찾아와

취업준비생은 “일주일 넘게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했던 저는 그만 부끄러운 범죄를 저질렀다. 담당 형사님께서 ‘아무리 힘들어도 범죄는 안 된다’는 깊은 뉘우침을 느끼게 해줬다”며 “취조가 끝나고 딱히 벌이가 없던 저에게 정직하게 살라는 의미로 빌려주는 거라며 2만원을 주셨고, 그 돈을 꼭 갚기 위해 한 달간 열심히 일했다”고 게시했다. 경미 범죄심사제도는 경찰이 경미한 범죄에 대해서 피해자 사정을 고려해서 처벌을 감경하거나 선처하는 제도를 말한다. 

경미 범죄심사제도의 심사 건수가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지난 5월28일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2016년 418건에 불과했던 서울 지역 경미범죄 심사 건수는 지난해 1699건으로 4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의 경우 심사 대상 중 94.5%인 1608건에 대해 처분 감경이 이뤄졌고 91건만 원처분을 유지했다. 경미범죄심사위는 심사 대상으로 정해진 피의자들이 자신의 범죄를 소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위원들이 감경 여부를 결정한다. 불가피한 상황이나 안타까운 상황서 발생한 가벼운 범죄에 대해 심사를 거쳐 최초 형사처분을 감경해준다.

심사를 통해 정상 참작을 받은 피의자는 형사 입건되지 않고 즉결심판으로 넘어가거나 훈방 조치된다.  


경미범죄 심사 건수가 늘어난 것은 우선 제도 자체가 활성화된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경기침체와 양극화 심화로 경제 형편이 어려워진 고령자와 사회 취약계층이 저지르는 생계형 범죄가 늘어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생계형 범죄
점점 늘어나

통계청이 2월 발표한 ‘2018년 4·4분기 가계 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1분위(하위 20%)서 가구주가 70세 이상인 가구 비중은 2017년 4·4분기 37%서 지난해 같은 기간 42%로 늘었다. 빈곤에 시달리는 고령자들이 ‘먹고살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도 빈번해지고 있는 것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동사무소 사회복지사를 활용하거나 이웃을 통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지자체에 알려주는 체계를 마련하는 등 촘촘한 사회안전망이 구축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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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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