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위기돌파 스타일’로 본 MB ‘정국해법’ 전망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07.23 11:13:02
  • 댓글 0개

'대국민 사과'로 민심 추스르고 '뒷심' 발휘할까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궁지에 몰렸다. 여간해선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최근 측근비리가 잇따라 터진데다가 '상왕'으로 군림했던 '친형' 이상득 전 의원까지 구속됐기 때문이다. 그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핵심실세인 김희중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저축은행 금품수수 의혹이 불거지는 등 비리가 연이어 터지고 있다. 이에 대국민 사과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청와대 내부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 대통령. 그는 과연 이 위기를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대국민 사과로 풀어나갈까, 아니면 박정희, 노태우 전 대통령처럼 묵살하고 지나갈까? 역대 대통령들의 위기돌파 스타일을 통해 이 대통령의 향후 행보를 미리 점쳐봤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이 구속되면서 정국이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이 대통령은 또 한 번 '대국민 사과'를 놓고 고심 중이라는 얘기까지 들리고 있다. 청와대 내부 관계자는 "사과는 당연히 해야 하고 그 시점과 형식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라고 말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기정사실화했다.

또 터진 대형 측근비리

이 대통령은 지난 4년의 임기 동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 세종시 수정안 추진,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연평도 도발 대응, 내곡동 사저 부정매입 등 수차례에 걸쳐 간접적으로 유감을 표명해왔다. 하지만 매번 일방적인 방식에 표현을 애매하게 해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형인 이 전 의원의 구속 이후 다시 대국민 사과 요구가 빗발치고 있는 지금 이 대통령의 머릿속에서는 과연 어떤 계산이 이루어지고 있을까? 자칫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가장 많은 사과를 하는 대통령이 될지도 모를 이 대통령의 머릿속은 지금 누구보다 복잡할 것으로 보인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역대 대통령들은 어떤 상황과 사안에 대해 고개를 숙이고 국민 앞에 사과를 했을까? 일단 초대 이승만 정권과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던 박정희 정권에서는 대국민 사과가 한 차례도 없었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최초의 대국민 사과는 전두환 정권에서 이루어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8년 11월23일 대국민 사과문에서 "삼청교육대 문제와 공직자 및 언론인의 부당 해직 등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과 집안사람들이 비리를 저질러 국민들의 분노를 산 것은 면목없는 일이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태에 불행하고도 가슴 아픈 일로 큰 책임을 느낀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전체 행간을 보면 사과 뒤에는 꼭 해명이 뒤따르고 후반부에서는 자신의 재산에 대한 거짓 변명 일색이라 진정한 사과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노태우 정권 때에는 대국민 사과 요구가 수차례 있었지만 한 차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1991년 4월에는 명지대 강경대 군이 시위 도중 경찰의 강경 진압에 목숨을 잃으면서 전국적인 시위와 동시에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가 요구되었지만 묵살됐다. 하지만 노태우 전 대통령은 권좌에서 물러난 1995년 김영삼 정권 때 6공화국의 비자금 파문에 덜미가 붙잡혀 검찰의 수사를 받는 도중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재임 기간 5년 동안 기업체로부터 받은 돈은 5천억원 가량"이라고 밝혀 큰 파장을 불러왔지만 자금의 출처를 은닉한 채 기업들의 모금으로 자금을 조성했다고 에둘러 말해 재계에 직접적인 타격은 적었다. 노 전 대통령은 직접 비자금 규모와 함께 사과성명도 발표했으니 사법처리를 면제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눈에 보는 '대국민 사과'의 역사 '전두환도 했다'
이명박의 딜레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김영삼 정권 때에는 총 세 번의 대국민 사과가 있었다. 먼저 1993년 12월 대국민 담화에서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과 국제화, 개방화에 따른 쌀시장 개방을 앞두고 쌀시장을 개방하지 않겠다고 공약한 것을 지키지 못한데 대해 유감을 표했다. 불과 1년 뒤인 1994년 10월에 발생한 성수대교 참사를 두고 김 전 대통령은 "정부의 관리책임이 소홀해서 발생한 사건으로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 정비와 공직사회 분위기 쇄신을 위해 총력을 다 할 것"이라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1997년 2월 한보 사태와 관련해서도 자신의 책임이 크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리고 비리 혐의를 받아 수사를 받던 자신의 아들 현철씨에 대해서도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라며 사과한 바 있다.

김대중 정권 때에는 1999년 6월 대국민 사과가 필요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간 민심을 잘못 헤아려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쳤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당시 문제가 불거진 큰 사건으로는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가 남편의 구명을 위해 고위층 인사의 부인들에게 고가의 옷 로비를 한 것이다. 이 때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특별검사제도가 도입됐다. 그리고 최규선 게이트와 세 아들들의 비리에 대해선 2002년 3월 박선숙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직접 나서 대국민 사과를 하지 않은 것을 두고 야당의 비판이 이어졌고, 같은 해 6월에는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에 이어 삼남 홍걸씨마저 구속되자 TV생방송을 통해 국민 앞에 직접 나서 사과문을 발표했다.

노무현 정권 때는 당시 야당(한나라당)에 의한 대국민 사과 요구가 정권 내내 이어졌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 대국민 사과를 가장 많이 한 불명예스런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사과는 특별기자회견이나 대국민담화와 같이 형식을 갖추고 한 것이 아니라 예고도 없이 이루어진 게 많아 총 몇 번의 대국민 사과가 있었는지 파악하기조차 쉽지 않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3개월 만인 2003년 5월28일 자신이 실소유주로 있었던 생수회사 장수천 투자논란과 진영 땅 소유주 의혹과 관련해 "본의 아니게 물의를 일으켜서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최도술 당시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SK 비자금 수수 사건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죄 드린다"며 머리를 숙였다. 2004년 2월 경제회생의 구원투수로 등판했던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부동산투기 의혹으로 사퇴하자 노 전 대통령은 인사권자로서의 심경과 입장을 담은 대국민 사과 성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또 2004년 3월 탄핵정국과 관련해서는 "잘잘못을 떠나 탄핵정국에 이르게 하여 국민 여러분을 불안하게 해 드려서 죄송하다"라며 연설을 시작하기도 했다. 2005년 1월9일에는 이기준 교육부총리의 사퇴 파문과 관련해 청와대의 인사검증시스템의 불찰이라며 또 한 번 국민에게 사과했다. 2005년 12월 시위 농민 2명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데 대해서는 평소의 사과발언이 아닌 사과문을 낭독하여 이전과는 차별되는 대국민 사과를 한 바 있다.

MB의 선택은?


역대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에서 한 가지 눈에 띄는 대목이 엿보인다. 대통령 개인의 잘못이나 측근비리처럼 대통령의 명예가 걸리는 사안에 대해선 대국민 사과에 매우 인색해진다는 공통점이다.

반면,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건사고에 대해서는 필요에 따라 즉각적인 대국민 사과가 있어왔다. 이 대통령의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역대 대통령 대부분이 측근비리문제에 휩싸였고 그때마다 대국민 사과를 요구가 빗발쳤지만 간접적으로 대변인을 통해 사과하거나 그냥 넘어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 대통령으로서도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따라서 이 대통령이 측근비리를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하게 될지, 한다면 언제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