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위기돌파 스타일’로 본 MB ‘정국해법’ 전망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07.23 11: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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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민 사과'로 민심 추스르고 '뒷심' 발휘할까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궁지에 몰렸다. 여간해선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최근 측근비리가 잇따라 터진데다가 '상왕'으로 군림했던 '친형' 이상득 전 의원까지 구속됐기 때문이다. 그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핵심실세인 김희중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저축은행 금품수수 의혹이 불거지는 등 비리가 연이어 터지고 있다. 이에 대국민 사과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청와대 내부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 대통령. 그는 과연 이 위기를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대국민 사과로 풀어나갈까, 아니면 박정희, 노태우 전 대통령처럼 묵살하고 지나갈까? 역대 대통령들의 위기돌파 스타일을 통해 이 대통령의 향후 행보를 미리 점쳐봤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이 구속되면서 정국이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이 대통령은 또 한 번 '대국민 사과'를 놓고 고심 중이라는 얘기까지 들리고 있다. 청와대 내부 관계자는 "사과는 당연히 해야 하고 그 시점과 형식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라고 말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기정사실화했다.

또 터진 대형 측근비리

이 대통령은 지난 4년의 임기 동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 세종시 수정안 추진,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연평도 도발 대응, 내곡동 사저 부정매입 등 수차례에 걸쳐 간접적으로 유감을 표명해왔다. 하지만 매번 일방적인 방식에 표현을 애매하게 해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형인 이 전 의원의 구속 이후 다시 대국민 사과 요구가 빗발치고 있는 지금 이 대통령의 머릿속에서는 과연 어떤 계산이 이루어지고 있을까? 자칫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가장 많은 사과를 하는 대통령이 될지도 모를 이 대통령의 머릿속은 지금 누구보다 복잡할 것으로 보인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역대 대통령들은 어떤 상황과 사안에 대해 고개를 숙이고 국민 앞에 사과를 했을까? 일단 초대 이승만 정권과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던 박정희 정권에서는 대국민 사과가 한 차례도 없었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최초의 대국민 사과는 전두환 정권에서 이루어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8년 11월23일 대국민 사과문에서 "삼청교육대 문제와 공직자 및 언론인의 부당 해직 등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과 집안사람들이 비리를 저질러 국민들의 분노를 산 것은 면목없는 일이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태에 불행하고도 가슴 아픈 일로 큰 책임을 느낀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전체 행간을 보면 사과 뒤에는 꼭 해명이 뒤따르고 후반부에서는 자신의 재산에 대한 거짓 변명 일색이라 진정한 사과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노태우 정권 때에는 대국민 사과 요구가 수차례 있었지만 한 차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1991년 4월에는 명지대 강경대 군이 시위 도중 경찰의 강경 진압에 목숨을 잃으면서 전국적인 시위와 동시에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가 요구되었지만 묵살됐다. 하지만 노태우 전 대통령은 권좌에서 물러난 1995년 김영삼 정권 때 6공화국의 비자금 파문에 덜미가 붙잡혀 검찰의 수사를 받는 도중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재임 기간 5년 동안 기업체로부터 받은 돈은 5천억원 가량"이라고 밝혀 큰 파장을 불러왔지만 자금의 출처를 은닉한 채 기업들의 모금으로 자금을 조성했다고 에둘러 말해 재계에 직접적인 타격은 적었다. 노 전 대통령은 직접 비자금 규모와 함께 사과성명도 발표했으니 사법처리를 면제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눈에 보는 '대국민 사과'의 역사 '전두환도 했다'
이명박의 딜레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김영삼 정권 때에는 총 세 번의 대국민 사과가 있었다. 먼저 1993년 12월 대국민 담화에서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과 국제화, 개방화에 따른 쌀시장 개방을 앞두고 쌀시장을 개방하지 않겠다고 공약한 것을 지키지 못한데 대해 유감을 표했다. 불과 1년 뒤인 1994년 10월에 발생한 성수대교 참사를 두고 김 전 대통령은 "정부의 관리책임이 소홀해서 발생한 사건으로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 정비와 공직사회 분위기 쇄신을 위해 총력을 다 할 것"이라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1997년 2월 한보 사태와 관련해서도 자신의 책임이 크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리고 비리 혐의를 받아 수사를 받던 자신의 아들 현철씨에 대해서도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라며 사과한 바 있다.

김대중 정권 때에는 1999년 6월 대국민 사과가 필요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간 민심을 잘못 헤아려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쳤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당시 문제가 불거진 큰 사건으로는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가 남편의 구명을 위해 고위층 인사의 부인들에게 고가의 옷 로비를 한 것이다. 이 때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특별검사제도가 도입됐다. 그리고 최규선 게이트와 세 아들들의 비리에 대해선 2002년 3월 박선숙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직접 나서 대국민 사과를 하지 않은 것을 두고 야당의 비판이 이어졌고, 같은 해 6월에는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에 이어 삼남 홍걸씨마저 구속되자 TV생방송을 통해 국민 앞에 직접 나서 사과문을 발표했다.

노무현 정권 때는 당시 야당(한나라당)에 의한 대국민 사과 요구가 정권 내내 이어졌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 대국민 사과를 가장 많이 한 불명예스런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사과는 특별기자회견이나 대국민담화와 같이 형식을 갖추고 한 것이 아니라 예고도 없이 이루어진 게 많아 총 몇 번의 대국민 사과가 있었는지 파악하기조차 쉽지 않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3개월 만인 2003년 5월28일 자신이 실소유주로 있었던 생수회사 장수천 투자논란과 진영 땅 소유주 의혹과 관련해 "본의 아니게 물의를 일으켜서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최도술 당시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SK 비자금 수수 사건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죄 드린다"며 머리를 숙였다. 2004년 2월 경제회생의 구원투수로 등판했던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부동산투기 의혹으로 사퇴하자 노 전 대통령은 인사권자로서의 심경과 입장을 담은 대국민 사과 성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또 2004년 3월 탄핵정국과 관련해서는 "잘잘못을 떠나 탄핵정국에 이르게 하여 국민 여러분을 불안하게 해 드려서 죄송하다"라며 연설을 시작하기도 했다. 2005년 1월9일에는 이기준 교육부총리의 사퇴 파문과 관련해 청와대의 인사검증시스템의 불찰이라며 또 한 번 국민에게 사과했다. 2005년 12월 시위 농민 2명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데 대해서는 평소의 사과발언이 아닌 사과문을 낭독하여 이전과는 차별되는 대국민 사과를 한 바 있다.

MB의 선택은?

역대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에서 한 가지 눈에 띄는 대목이 엿보인다. 대통령 개인의 잘못이나 측근비리처럼 대통령의 명예가 걸리는 사안에 대해선 대국민 사과에 매우 인색해진다는 공통점이다.

반면,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건사고에 대해서는 필요에 따라 즉각적인 대국민 사과가 있어왔다. 이 대통령의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역대 대통령 대부분이 측근비리문제에 휩싸였고 그때마다 대국민 사과를 요구가 빗발쳤지만 간접적으로 대변인을 통해 사과하거나 그냥 넘어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 대통령으로서도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따라서 이 대통령이 측근비리를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하게 될지, 한다면 언제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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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독해진 송영길 역할론

더 독해진 송영길 역할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이미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은 김민석 전 국무총리에게 쏠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정청래 고립 작전’에 힘을 쏟고 있다. 친정청래계의 십자포화를 견디면서까지 존재감을 키우는 그의 의도는 무엇일까? 오는 8월 치러지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전당대회가 다가올수록 당의 내홍도 거세지는 분위기다. 지난달 대표직 사퇴 이후 사실상 연임을 선언한 정청래 전 대표는 ‘민주당 전통성’을 부각시키며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노사모(노무현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 출신인 점 등을 강조하면서 친문(친 문재인) 진영의 표심을 흡수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타깃은 한 명뿐 그런 정 전 대표를 향해 날을 세우는 건 또다른 후보군인 송영길 의원이다. 송 의원은 초반부터 매섭게 정 전 대표를 몰아세우며 그의 적통성 행보를 차단하고 나섰다. 송 의원은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 전 대표가 친노(친 노무현)·친문 등 정체성을 부각한다”는 진행자의 말에 “그는 완전히 노무현 대통령과 등을 져서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며 “다른 분이면 몰라도 정 전 대표는 (친노의) 적통성을 따질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전 대표는 2002년 노사모를 기반으로 한 인터넷 정당 ‘정정당당 추진위원회’을 꾸리면서 정치에 입문했지만, 2007년 노무현정부와 대립각을 세운 열린우리당 정동영 당시 의장(현 통일부 장관)과 더 가깝다는 평이 나오면서 적통성을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정 전 대표는 “이렇게까지 하느냐. 100% 허위 사실”이라며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고, 송 의원은 “당일 정 전 대표를 본 기억이 없어서 (노 전 대통령) 장례식에도 참석도 못했다는 말을 했다”며 사과의 뜻을 건넸다. 송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제 발언의 요체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앞에 우리는 모두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라는 사실이다. 다시 이런 비극을 재현해서는 안 된다”면서도 “노 전 대통령께서 한미 FTA를 추진할 때 민주당 대부분 의원이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 선봉에 (당시) 정청래 의원이 있었다”며 또다른 논란을 꺼내 들었다. 이는 친청(친 정청래)계와 친명(친 이재명)계 간의 계파 대리전으로 번졌다.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이제는 한미 FTA 찬반까지 끌어와 당 대표 경선을 혼란스럽게 한다”며 “이런 편파적 파묘 안 하시면 안 되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갈등은 필연이지만 팩트로 논쟁하자”며 “적통 논쟁도 하지 말자. 지금은 AI시대”라고 말했다. “네가 친노?” 20년 전 사건까지 파묘 거세게 몰아치는 ‘정청래 고립 작전’ 최 의원은 송 의원의 ‘사당화’ 주장에도 반박했다. 앞서 송 의원은 “대통령과 손발을 맞추려면 할 일이 많은데 우리 민주당은 운동장을 너무 좁게 쓰고 있다. 정 전 대표 측근 아니면 당무에서 거의 배제되고 최고위원도 자기들끼리만 한다”며 사당화를 도마 위로 올렸다. 이에 대해 최 의원은 “송 의원이 정 전 대표를 비난하면 기다렸다는 듯 재래식 언론이 줄줄이 보도한다. 민주당이 극복한 ‘문모닝(하루를 문 대통령 비판으로 시작한다)’의 악몽이 되살아나려 하는데 막을 사람이 바로 송 의원”이라고 주장했다. 논란의 한가운데에 선 정 전 대표는 “소모적 적통 논쟁을 하지 말자”며 싸움을 그만둘 것을 제안했다. 그는 “저는 제 입으로 적통의 적자도 꺼낸 적이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위대한 대통령 누구의 적통이라고 주장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정 전 대표는 “저는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했고,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을 좋아했다”며 “이재명 대통령과는 동지이자 전우로 윤석열 검찰독재정권의 폭압을 함께 뚫었다. 12·3 불법 비상계엄 내란의 밤 때는 목숨 걸고 국회 담장을 넘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렇게 말한 것이) 뭐가 문제가 되냐”면서 “제 입으로 말하지도 않은 것을 상상하고 비틀어서 ‘적통이네 아니네’ 하는 언론의 프레임에 맞장구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달 초를 기점으로 민주당의 분위기가 한층 누그러졌다는 평이 나온다. 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오찬 회동을 하며 지지자 간의 갈등 봉합을 시도했고, 보안수사권 폐지 역시 정부가 먼저 치고 나오면서 논란을 잠재웠다. 퇴로까지 끊었다 정 전 대표의 전당대회 필살기가 사라졌다. 여기에 친문 의원들조차 “하늘에 계신 분들이 (정 전 대표의 적통성을) 인정하겠나” 등 표현으로 거리를 두면서 고립 직전에 놓였다. 정 전 대표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송 의원의 여론전도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송 의원은 정 전 대표에게 힘을 싣는 여의도 밖 스피커와도 각을 세우고 있다. ‘ABC론’ ‘증축·재건축론’ 등을 주장한 유시민 작가를 향해 “간신은 주군 옆에서 권력을 독점해 똑똑하고 새로운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유 작가는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열렬히 지켜주고 응원했던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증축이었는데, 대통령은 재건축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대통령의 자신감이 지나쳤던 것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민주 진영 코어 지지층이 바란 것은 중도·보수로의 ‘증축’이지만 이 대통령은 원주민(코어 지지층)과 상의 없이 ‘재건축’에 나서 이들이 이탈하고 있다는 증축·재건축론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송 전 대표는 YTN <장성철의 뉴스명당>에 출연해 “충신은 자기 주군의 성공을 위해서 더 똑똑한 사람, 새로운 사람을 계속 영입한다”며 유 작가의 주장을 반박했다. 연일 송 의원의 견제가 이어지고 있지만 강성 지지층의 두터운 지지를 받는 정 전 대표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김민석 전 총리와 송 의원 둘 중 누구든 결선에 진출해 ‘반 정청래’ 전선을 꾸리는 것이 1차 목표라는 설명에 힘이 실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현 상황에 대해 “지금으로서는 송 의원은 당 대표를 하겠다는 열망보다 정 전 대표를 막겠다는 열망이 더 강해 보인다”고 봤다. 이처럼 정치권에서는 송 의원을 개별 후보가 아닌 김 총리의 페이스메이커로 보는 분위기다. 명심을 등에 업은 김 총리가 거칠게 나올 경우 국정 운영에 차질이 생길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만큼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적은 송 의원이 ‘정청래 저격수’ 역할을 자처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오래전 큰 그림 송 의원의 의중과 상관없이 두 사람의 단일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번 전당대회서 정 전 대표에게 유리한 것으로 알려진 1인1표제가 적용되는 만큼 김 전 총리와 송 의원이 손을 잡는 것이 안전하다는 이유에서다. ‘김민석+송영길 대 정청래’ 구도로 선거를 치른다면 압승도 가능하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정치권에서는 전당대회에 출마한 송 의원이 가장 주목을 받는 시점에 김 전 총리와의 단일화를 선언한 후 사퇴하는 시나리오도 점치고 있다. 자신의 지지층 결집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김 전 총리에게 힘을 실어준 뒤 물러서는 방식으로, 이럴 경우 확실한 1 대 1 구도가 만들어지게 된다. 정치권에서는 송 의원이 전당대회를 통해 체급을 키운 뒤 청와대에 외교부 장관 등 자신이 희망하던 자리를 요구하지 않겠냐는 해석도 나온다. 국회 입성 이후 송 의원의 외교부 장관 입각설 등이 꾸준히 나오는 것 역시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그동안 송 의원은 자칭타칭 ‘외교 전문가’로 이름을 알려왔다. 그는 문재인정부 당시 러시아 특사를 지냈으며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과 민주당 동북아평화협력특별위원회 초기 위원장을 지냈다. 21대 국회 전반기에는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꾸준히 외교·통일 정책 비전을 밝혀왔다. 지난 2월 복당을 앞둔 때에는 향후 외교 분야에서 역할을 맡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송 의원은 부산 벡스코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결과 북극 항로의 미래’를 주제로 열린 민주당 부산시당 주최 특강에서 “러시아와 미국 등 외교 현안에서 역할을 감당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송 의원은 러시아와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현재 한국은 러시아보다 우크라이나에 더 가까운 입장”이라며 “전쟁 중이라는 특수성이 있지만 아쉬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극 항로를 열기 위해서는 실용주의 외교가 필요하다”며 이정부의 실용주의 노선과 궤를 같이 했다. 그는 최근까지도 활발한 외교 행보를 보였다. 지난달 24일 조정식 국회의장 특사 자격으로 미국 출국길에 올라 전방위 외교 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송 전 의원은 미국 워싱턴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와 미 의회 지도부와 연쇄 면담을 갖고, 북핵 문제와 경제 제재 예외 조치 등 한미 간 주요 현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복당 후 역할은…” 마음은 다른 곳에? ‘미주민주참여포럼(KAPAC)’이 워싱턴DC의 한 호텔에서 개최한 콘퍼런스에서 송 의원이 이 대통령의 서면 축사를 대독에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에 국민의힘 신지호 전 의원은 송 의원이 “양손에 떡을 다 쥘 수 있는 상황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채널A 라디오쇼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이같이 주장하며 “누군가 송 의원에게 ‘너 외교부 장관 할래, 당 대표 할래?’라고 묻는다면 바보가 아닌 이상 당 대표라고 답한다. 이번에 당 대표가 되면 공천권을 쥘 수 있기 때문”이라며 “(선거를) 하다가 여의치 않을 경우 외교부 장관으로 가는 것이고, 지금의 이런 것들이 또 외교부 장관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 될 수 있다. 지금 양쪽 접근을 다 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유리한 지점에 서 있는 만큼 송 의원의 당권 레이스 완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21년 치러진 전당대회서 당선된 경험이 있는 만큼 이미 민주당에 조직 기반이 있다는 점에서다. 최근에는 경남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당원 등 100여명이 모여 ‘8·17 전당대회, 응답하라 송영길!’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송 의원의 출마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지금 대한민국은 대내외적으로 복합적인 위기와 갈등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며 “이런 시대일수록 국정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고 당을 하나로 묶어낼 검증된 지도력이 절실하다. 송영길 의원은 ‘이재명 국민주권정부’의 성공적인 국정 운영을 가장 안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정치적 경험과 국가 운영 능력을 갖춘 인물”이라며 평가했다. 친명 좌장으로 불리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은 8월 전당대회와 관련해 “제가 아는 송영길 의원은 (김 전 총리를 위한) 페이스메이커로 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한 라디오를 통해 “누구든지 1등을 하기 위해서 나가고, 만약에 결선투표로 간다면 1등, 2등 해서 결선에 가서 이기겠다는 생각일 것”이라며 “송 의원이 누구를 위해서 자기가 페이스메이커로 나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양손에 쥔 꽃놀이패 송 의원 역시 본인이 김 전 총리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는 분석에 대해 “후보자들은 일종의 면접시험을 보고 있는 것이고 인사권자인 당원들께서 판단하실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결선투표 제도가 없다면 단일화 논란이 일어날 수 있지만 전당대회는 제도적으로 결선투표제가 있다”며 완주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만일 송 의원이 전당대회를 완주한다면 정 전 대표와 청와대라는 양강 구도에 변수가 된다. 그의 선택에 따라 이번 전당대회 판세가 갈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그가 페이스메이커가 아닌 ‘게임 체인저’로 바뀔지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여의도 복귀 김민석, 전대 신호탄 김민석 전 국무총리가 당권 경쟁자인 정청래 전 대표를 겨냥해 “지금까지 했던 방식으로 굳이 (대표를) 두 번 할 필요나 필연성은 지금 발견하기 어렵다”고 직격했다. 총리직에서 퇴임해 여의도에 복귀하자마자 이같이 밝힌 김 전 총리는 유튜브 채널 ‘오마이TV’가 공개한 영상에서 “이제는 정청래 전 대표와 다른 색깔, 역량, 스타일, 장점을 가진 리더십이 필요한 때”라고 주장했다. 이어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지방선거로 (정부 출범 후) 최초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당의 역할 폭과 숙제 크기가 더 넓고 커지고 강해졌다. 이제 당이 더 본격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당이 어떻게 가야 하나, 무엇을 해야 하나에 대한 제 나름의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최대한 반영하고 싶다”며 “대한민국 역사의 황금시대 도래, 그 첫 장을 이재명정부가 열고 있다고 보고 그것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일에 모든 걸 다 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올해 초 정 전 대표가 시도했다가 무산된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도 꺼내들었다. 김 전 총리는 “그것(합당)을 풀어가는 데 문제 제기와 과정이 잘못돼서 일을 그르쳤다고 본다”며 “같은 세력은 통합하고 다르면 연대하고, 통합과 연대와 확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통합을 할 것이냐 연대를 할 것이냐의 문제에 대해서는 혁신당이 스스로 명확하게 판단하고 (입장을) 드러내는 것이 좋다”고 제언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