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때문에…’ 문 닫는 ‘아이존’ 속사정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10.14 10:55:42
  • 호수 12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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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못내 쫓겨나는 서울시 시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정신 장애 아동들은 점점 늘어나는 반면, 서울서 시작한 아동 상담센터인 ‘아이존’이 임대료 문제 등 장소 확보 문제로 줄어들 위기에 처해 있다. 이에 학부모들은 노원 아이존을 지켜달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아이존

지난 4일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서 정신장애의 42%가 만 18세 미만 아동·청소년기에 발병하는데도 불구하고 실태 파악 및 치료 체계의 취약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남인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원은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에게 “국가인권위원회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신장애의 42%가 아동·청소년기에 발병하지만, 지난해 정신의료기관의 외래 진료를 받은 아동·청소년은 19만1702명으로 전체 진료 인원(203만5486명)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아동·청소년에 대한 전국적인 실태조사와 치료 인프라를 마련해 정신질환 치료의 골든타임을 지켜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동·청소년 
정신재활 시설

남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 정신재활 시설은 총 348개소인데 반해, 아동·청소년 정신재활 시설은 전국에 12개소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모두 서울지역에 밀집해 있고 그 외 지역에는 전무한 상황이다.

서울시는 2006년 9월 만 6세부터 14세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송파 아이존을 개소했다. 아이존은 정서·행동문제를 가진 아동 및 발달장애 아동과 가족을 위한 서울시 아동·청소년 정신건강 지원시설이다.  

이후 2008년 ‘서울시 소아·청소년 정신건강 포럼’서 정신건강 문제 아동 쉼터인 아이존이 사업현황을 발표기도 했다. 이후 ▲2009년 노원, 동작, 양천 아이존 개소 ▲ 2012년 동대문, 중구, 종로 아이존 개소 등 각 지역구로 점차 늘어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2016년 임대료와 관련해 장소 확보에 따른 어려움을 겪었다. 아이존 공동운영위원회는 ‘운영 장소 확보’에 관해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10개소를 운영한 아이존의 운영 장소는 법인이나 시에서 소유하는 건물서 운영하는 유형, 법인서 운영 장소를 확보해 임대하는 유형 등이 있었다.

법인 확보의 경우 매월 높은 임대료 및 인상 요구, 계약 종료 등의 변수가 발생하고 있어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현실의 벽에 부딪힌 금천 아이존은 폐쇄 절차를 밟았다. 

이외에도 강서, 노원, 동대문 아이존 등이 현재 운영장소 확보에 어려움을 갖고 있었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장소에 대한 확보방안 논의를 진행했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아동·청소년 정신 의료기관 취약해 마련
점차 늘다 2016년부터 장소 확보 어려움

처음 아이존을 개소할 때 유지방안을 수립해 출발했다면 관례화돼 정착하기 수월했을 것이다. 송파 아이존의 아이코리아처럼 재정적으로 안정적인 법인이 많지 않은 이상, 장소를 제공하면서까지 운영 할 수 있는 법인이 드문 것이 현실이었다.

당시 이 세 지점은 서초 아이존과 같이 자치구서 운영하거나 여유자금이 있는 법인이나 개인이 공간을 소유하고 있다면 적극적으로 운영을 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이에 이전을 할 경우에도 비용적인 면에서 이사 비용과 초기시설 비용을 법인이 부담해야 하게 됐다. 새로운 민간법인이 아이존 운영을 맡게 돼 사업이 활성화될 경우 장기적으로 임대료에 대한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판단된다. 동대문 아이존서 이 같은 어려움이 발생했으며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강서 아이존의 경우 건물주와 협의해 6개월을 연장했으나 6개월 후에는 임대료를 반드시 인상해 지급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시에서 적극적으로 장소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보건소서도 시와 논의를 했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그러나 운영 장소 확보에 대한 어려움으로 아이존 사업을 운영하고 수행하면서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위태로워졌다.

당시 서울시는 “시설 임대료까지 운영비로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성인 사회복귀시설의 경우 지정후원금을 확보해 임대료를 납부하는 시설들이 일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 아이존도 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결국 2017년 강서 아이존도 폐쇄되고 영등포 아이존으로 바뀌었다. 2년 뒤인 2019년 노원 아이존에서도 임대료로 인한 존폐위기는 또다시 불거졌다. 

임대료 얼마?
센터 존폐위기 

지난달 27일 국민청원에 “서울시 아이존을 끝까지 책임져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노원 아이존을 이용하고 있는 학부모라고 소개한 글쓴이는 “노원 아이존이 폐쇄 위기에 처해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원해주고 있던 사회법인 재단이 월세 부담에 올해 말까지만 운영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청원했다.

이어 “월세가 없는 공간을 마려해줄 수 있는 방안과 학부모와 아이들이 걱정 없이 센터를 이용하고 싶다”며 호소했다. 다음 법인 재단이 운영을 지원해준다고 해도 또다시 월세로 인해 부담을 느끼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차라리 월세 부담이 없는 공간을 마련해달라는 취지였다. 

그는 “서울시와 법인회사 노원 아이존의 선생님들 덕분으로 치료와 상담을 받으며 많은 아이가 회복되고 있었다. 고학년 아이들은 그나마 인근 다른 센터로 연계가 된다고 하지만 저학년 아이들은 이런 센터가 없어 중간에 치료가 중단될 위기에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인 우리 아이들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무엇보다 정신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곡히 부탁한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아이존은 보통 시·구 건물, 법인 건물, 임대 건물 등에 자리를 잡는다. 노원점의 경우 임대 건물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건물 임대인이 내년부터 월세 인상을 요구했다. 현재 노원 아이존은 작은 사회복지법인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재단에선 더 나은 곳이 맡아 운영하는 것이 안정적일 것으로 판단해 올해를 끝으로 운영을 중단하기로 했다. 

노원 아이존 관계자는 “자금은 법인재단이나 후원으로 충당한다. 후원자들에게도 임대료를 후원해달라고 하면 아무도 후원하지 않는다. 사업이나 프로그램에 대한 건 몰라도 임대료에 관한 사업은 후원을 받기가 참 힘들다. 특히 큰 재단의 경우는 사람들이 많은 후원을 하지만 작은 사회복지재단의 경우는 후원금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말했다. 

노원 아이존을 이용하는 학부모들은 SNS를 통해 각자의 의견을 공유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존 지키기에 나섰다. 노원구 국회의원과 구청장은 주민의 요구에 따라 법을 제정하고 노원구 사업과 예산을 편성하도록 촉구하는 대회인 ‘제1회 노원 주민대회’에 참여해 요구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2006년 개소
폐쇄로 가닥

요구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노원 아이존을 지켜달라. 노원 아이존은 정서, 행동 빛 발달장애 문제를 가진 서울시 아동을 대상으로 전문적이고 다각적인 개입을 통해 아동들이 학교 및 가정에 원활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관이다. 취약계층의 아동을 체계적인 치료와 서비스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노원 아이존은 행복복지재단서 재정상의 이유로 더 이상 운영할 수 없게 돼 문을 닫게 될 위기에 처해 있다. 서울시에선 사업비가 책정됐으나 공간의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아이존이 사라지게 되면 노원의 정서 치료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은 갈 곳이 없다. 어떤 가족들은 치료를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노원 아이존을 지켜달라.’
 

이어 다른 한 학부모도 “우리가 해볼 수 있는 건 함께 해보자”며 다양한 방법을 통해 한목소리를 내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현재 저학년의 아이를 둔 학부모들은 노원 아이존이 폐쇄될 경우 지속해서 받아오던 자녀들의 상담이 끊기게 된다. 노원 아이존 시설장은 “아이들 치료는 딱 1년 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다. 나이를 먹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상담을 꾸준히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서울시서 운영되고 있는 아이존은 총 열 군데다. 노원 아이존과 동대문 아이존을 제외하고는 월세 부담이 없는 시·구청 건물이나 위탁운영기관 건물서 운영되고 있다. 반면 이 두 지점은 현재 건물주의 입장에 따라 운영이 불안정한 상황이다. 노원 아이존은 건물주의 임대료 인상으로 행복복지재단이 운영을 포기했으며 동대문 아이존은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서울시관계자에 따르면 동대문 아이존은 이사가 확정됐다. 동대문구는 아니지만, 현재 위치서 멀지 않은 곳으로 새로운 보금자리가 확정돼 이사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동대문 아이존에 확인한 결과 “어떤 답변도 드리지 않겠다”고 일축했다.


강서·노원·동대문 등 불안정
행복법인재단 노원점 후원 포기

아이존 존폐 위기에 가장 아쉬워하는 이는 단연 학부모다.

A학부모는 “자녀가 집중을 잘하지 못하는 아동 ADHD 증상을 겪었다. 사설 병원서 상담·치료를 진행하면 비용도 부담일 뿐더러, 시간이 지나도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문제가 있다. 병원에선 환자를 돈으로 보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형식적인 질문만 몇 번 하다가 끝나는 치료라 끝나는 시간만 기다린다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반면 아이존 같은 경우 저렴한 비용으로 지속적인 상담이 이뤄진다. 가장 좋은 점은 아이뿐 아니라 부모 교육도 함께 진행돼 아이의 부족한 점을 상담교사와 함께 치료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아이존 같은 경우 개인 치료, 그룹 치료 등이 있다. 사설병원과 가장 큰 차이는 상담교사와 그룹치료 아이들의 변동이 없어 아이들이 혼란을 겪는 일이 적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학부모님들도 굉장히 만족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존은 10년 이상 된 아동 상담센터인데도 대외적으로 홍보가 적극적으로 돼있진 않다.

B학부모는 “아이존 자체가 굉장히 좋은 곳인데 남에게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왜냐면 센터도 몇 군데 없을뿐더러 인원도 굉장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친척이나 정말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아이존 입장서도 홍보가 너무 될 경우에는 인원을 모두 받지 못하기 때문에 홍보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 송파·양천 아이존 두 곳만 정원이 40명이며 나머지 센터에선 정원이 총 30명으로 한정돼있다. 학부모들의 관심을 받는 노원 아이존은 공간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존폐 위기에 직면했다.

정원수 적어 
홍보 소극적

한 시설 센터장은 “서울시도 노력을 많이 했지만, 노원 아이존의 새로운 공간이 마련이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느냐. 각 구에서도 마련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법인재단이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을지 문제”라며 “노원 아이존이 폐쇄된다면 아이들은 물론 시설장, 직원들도 일자리를 잃게 된다. 재단이 새로 맡게 되면 3개월 운영비인 최소 3∼4억원의 자금을 써야 한다. 이 금액을 감당할 수 있는 곳을 찾기 힘들 테니 이 부분은 적어도 국가서 책임져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장기적으로 아이존이 점점 줄어든다면 국가적으로 큰 손실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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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