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한가위 이후…정국 돌발변수 키워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9.09 09:25:11
  • 호수 12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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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적’ 암울한 대한민국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추석 연휴가 끝난 뒤에도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논란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20대 마지막 정기국회가 열리며, 국정감사도 시작될 예정이다. 일본과 북한 문제도 풀어야할 숙제다. 하지만 이 모든 사안에 여·야 지향점이 확연히 달라 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임명하면서 그 후폭풍은 추석 이후 정국에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조 후보자에 대해 “의혹들이 해소되지 못한 부분은 없다”고 평가한 것은 사실상 임명 강행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아세안 3국을 순방하고 돌아온 문 대통령은 지난 3일 국회에 조 후보자 등의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재송부 시한으로 나흘을 제시했던 바 있다. 

조국

이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와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극적 합의 끝에 지난 6일, 조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이번 청문회서 여야 입장이 첨예하게 갈렸지만 결국 문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이번 합의로 민주당은 ‘청문회 패싱 논란’서 한결 자유로워졌다. 이 원내대표는 합의문 발표 이후 기자들과 만나 가족 증인없는 하루짜리 청문회를 관철시킨 것에 대해 만족감을 표했다. 한국당 원내지도부는 청문회 합의에 격앙된 분위기다.

일단 조 후보자가 이미 기자간담회라는 형식을 빌려 대국민 해명에 나선 마당에 ‘국회의 시간’인 청문회마저 포기할 경우 정치적 후폭풍이 상당하기 때문에 한국당 입장에선 청문회 합의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한국당 내부에선 “원내대표단이 도대체 무슨 전략을 갖고 있는 것이냐”며 성토 목소리가 높았다. 나 원내대표의 오락가락 행보에 대한 비판도 계속되고 있다. 자유한국당 신상진 의원은 “지금까지 원내 지도부의 행보를 보면 일관된 전략이 없는 것 같다”며 “당초 여당이 청문회 개최를 사정해야 하는데 지금은 되레 우리당이 질질 끌려다니는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은 이번 민주당, 한국당 간 청문회 일정 합의에 불편한 기색이다. 오신환 바미당 원내대표는 “임명강행 수순인 이상 들러리 서지 않겠다”는 입장문을 보내고 불참했다. 민주당과 한국당 간 청문회 일정 합의 직후 오 원내대표는 “두 당의 결정은 국회의 권위를 땅에 처박는 일”이라고 비판하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조 후보자 임명 강행과 여·야의 확연한 입장차는 추석 이후 정국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

정기국회 본격적인 일정이 추석 이후 시작된다. 지난 2일 열린 정기국회는 100일간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국회는 이날 오후 2시 본청 본회의장서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371회 정기국회 개회식을 열었다. 정기국회 첫날인 이날 조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여야 간 의견차로 무산되면서 이날 개회식에선 냉랭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문 의장은 국회 본회의장서 열린 정기국회 개회사를 통해 “지금 우리 국회는 사안마다 현안마다 온갖 대립과 혼란으로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며 “마지막 정기국회가 더욱 극렬한 대치와 정쟁으로 얼룩질 것이라는 불안함을 감출 수 없다”고 속내를 토로했다.

20대 마지막 정기국회 일정 돌입 
국감, 패스트트랙 등 정쟁 여전 


민주당을 향해선 “여당은 국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청와대를 비판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여당이 청와대의 거수기 소리를 듣는다면 삼권분립이라는 시스템이 무너지고, 이는 국가 기강이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야당에겐 “제1책무는 비판과 견제에 있다”며 “이를 소홀히 하면 존재감을 잃게 된다. 강력한 야당의 존재는 대통령과 여당에게도 꼭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의장은 본회의를 열고 371회 국회 정기회 회기 결정의 건을 상정해 가결시켰다. 이에 따라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 기간은 9월2일부터 12월10일까지 100일간으로 정해졌다.
 

추석 연휴가 끝난 오는 17∼19일엔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23∼26일 나흘 동안은 분야별로 23일 정치, 24일 외교·통일·안보, 25일 경제, 26일 사회·문화 등 대정부질문이 열린다.

2020년도 예산안과 기금운영계획안의 정부 시정연설은 내달 22일에 실시한다. 각종 민생 경제법안과 일본 수출규제 대응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선거제 개혁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 및 검경수사권 조정법안 등 주요 쟁점법안을 심의할 예정이다. 

현재 조국 사태로 인한 정쟁이 뜨겁기 때문에 추석 이후 정기국회 일정이 원만하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20대 국회의 법안 처리율은 고작 27.9%에 그친다. 밀려 있는 법안만 해도 총 1만5000여건에 이른다.

정치권서 대립과 갈등이 빚어지며 국회 공전·파행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20대 국회는 역대 최악, 정쟁 국회, 놀고먹는 국회라는 오명이 붙었다. 

하지만 정기국회 일정도 전망이 어둡다. 조 후보자를 둘러싼 여·야 갈등이 정기국회 무대서도 파장을 미칠 우려가 크다. 게다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라 있는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안 및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 등의 주요 쟁점 법안들을 놓고 여야가 또다시 격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본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로 대변되는 ‘노 재팬’(No Japan)은 추석 연휴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들이 차례상에 올릴 제수음식을 고를 때 원산지를 확인할 정도다. 원산지를 확인할 수 있는 ‘노노재팬’이라는 앱까지 등장했다. 전통시장도 일본산 식품첨가물을 추적하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도 생태(냉장 명태), 참돔, 우렁쉥이(멍게), 방어, 참가리비, 꽁치, 뱀장어, 낙지 등 8개 수산물의 원산지 표기에 대한 특별단속에 착수했다. 일본 수출규제에 맞대응하기 위한 ‘반격’ 조치 가운데 하나로 해석된다. 통상 추석 등 명절을 앞두고 원산지 표기 위반 단속을 실시하는데, 이번에는 기존보다 강도가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명절 대목을 맡은 유통가서도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한창이다. 유통업계마다 이번 추석 선물로 일본과 관련된 상품은 출시하지 않았다. 롯데백화점에서는 지난해 추석에 일본산 술인 사케를 판매했지만 올해는 아예 제외했다. 신세계백화점 역시 올해는 사케와 화과자류 선물 세트를 판매하지 않는다.


추석 여행으로 일본을 찾던 한국인 여행객들이 한일 갈등 영향으로 동남아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지난 5일 보도했다. 이날 징용 문제서 촉발된 한일 관계 경색 이후 동남아 주요 6개국을 방문한 한국인 여행객 수가 올해 상반기에 지난해 동기 대비 20% 늘었다고 전했다.

또 다가오는 추석 연휴에도 일본보다는 태국과 필리핀 등으로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여행지가 바뀌었다고 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지난 6월 말레이시아를 여행한 한국인은 지난해 동월과 비교해 7배나 늘었으며, 베트남과 필리핀도 두 자릿수나 증가했다.

한국 온라인 쇼핑 사이트 위메프의 최근 조사서 올 추석 연휴 한국인의 인기 여행지 1위가 베트남 다낭, 2위가 태국 방콕, 3위가 괌이라고 소개했다. 이전에 인기 여행지였던 후쿠오카·도쿄·오키나와는 순위서 밀려났다며 한국인의 일본 외면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이 한국의 불매 운동에 대해 “여느 때처럼 금방 끝날 것”이라고 조롱했지만, 추석 이후에도 노 재팬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북미 대화 교착상태가 지속되는 상황서 추석 이후인 10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할 전망이다. 향후 북한과 중국이 밀착 행보를 보이면서 비핵화 실무협상에 영향이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지난 2일부터 북한을 방문하고 있는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평양 도착 첫날 리용호 외무상과 만나 북중 친선관계 확대 및 발전 방안과 더불어 비핵화 등 한반도 정세에 대해 논의했다. 

냉랭한 한일…불매 운동 계속 이어질듯  
남북문제…김정은 중국 방문이 분수령

왕 위원의 이번 방북은 북한과 중국이 각각 북미 비핵화 협상과 미중 무역협상서 대미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윈윈 전략’으로 만난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 종료로 한미일 안보공조가 흔들리는 가운데 북중은 밀월 관계를 더욱 과시하는 모양새다. 

왕 위원은 지난 2일 “북중 수교 70주년 기념행사를 잘 개최하고 우호왕래를 증진하며 실속 있는 협력을 추진하고 국제무대서의 소통을 더 긴밀히 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리 외무상은 “양국의 최고 지도자가 1년 새 5차례나 만나 양국의 전통적 우의를 다지고 북중 관계의 새 시대를 열었다”고 화답했다. 특히 왕 위원은 김 위원장을 만나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중국 방문을 요청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북한은 미국의 지속적인 대화 촉구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리 외무상이 이달 중순 미국 뉴욕서 열리는 유엔총회에 불참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장관과의 북미 고위급 회담 성사 가능성은 낮아졌다. 북미 대화가 난항을 겪는 상황서 리 외무상이 폼페이오 장관은 피하면서 왕 위원은 보란 듯이 만나면서 북중 밀착을 의도적으로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 역사적 회동 갖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한국사진공동취재다

북중 밀착 움직임이 북미 대화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지만, 미국의 대북제재 효과가 떨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경제에 숨통을 틔워주면서 대북제재 완화를 계속 주장했다.

다음 달 북·중 수교 70주년을 계기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5차 방중 여부가 북미 대화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부터 북미 대화 등 한반도 정세 변화와 관련해 중대한 시점마다 방중이 이뤄졌다. 

북중 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양국은 우호협력 관계를 돈독히 다지고 북핵 문제의 단계적·동시적 접근을 재확인하면서 북미 대화의 명분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지난 4월13일 최고인민회의서 3차 북미 회담 가능성을 열어놓으면서도 대화 시한을 올해 연말로 못 박고 미국의 입장 전환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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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