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A는 13차례에 걸쳐 B에게 졸피뎀(수면제)을 탄 커피를 먹여 깊은 잠에 빠져들게 한 뒤, B를 강간·강제추행했습니다. A가 B에게 투약한 수면제는 성인 권장용량의 1.5~2배 정도에 해당하는 양이었는데, B는 이 커피를 마신 후 곧바로 기절하다시피 잠들었다가 약 4시간가량 후에 깨어났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B는 A의 수면제 투약으로 인해 ‘상해’를 입었다며 A를 강간치상 및 강제추행치상으로 고소했습니다.
그러나 A는 수면제 투약으로 B는 잠시 일시적으로 수면에 이르렀다가 곧 자연적으로 의식을 회복했으므로 ‘상해’를 입은 것이라 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수면제 복용으로 인해 입은 어떠한 외부적 상처도 없었고, 그에 따라 강간 이후 어떤 치료도 받은 적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는데요. 과연 수면제를 복용하고 수면에 든 것을 강간치상죄나 강제추행치상죄서 말하는 ‘상해’라 볼 수 있을까요?
[A] 강간치상죄나 강제추행치상죄에 있어서의 ‘상해’란 반드시 물리적으로 드러나는 상처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은 신체의 완전성을 훼손하거나 생리적 기능에 장애를 초래하는 것을 강간치상죄나 강제추행치상죄에 있어 ‘상해’의 개념으로 보고 있습니다. 피해자의 건강상태가 불량하게 변경되고 생활기능에 장애가 초래되는 것이면, 이 생리적 기능이 육체적 기능이던지 정신적 기능이던지 무관하다고 합니다.
피해자에게 이 같은 상해가 발생했는지는 객관적·일률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연령, 성별, 체격 등 신체·정신상의 구체적인 상태와 약물의 종류와 용량, 투약방법 등 약물 작용에 미칠 수 있는 여러 요소를 기초로 해 약물 투약으로 인해 피해자에게 발생한 의식장애 등 신체·정신상의 변화와 내용 및 정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대법원 2017. 6. 29. 선고 2017도3196 판결).
대법원은 위 법리에 따라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정을 고려해 판단했습니다.
① 졸피뎀은 깊은 수면을 유도하는 약물로, 환각·우울증 악화·자살충동·기억상실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고 이를 오·남용할 경우 인체에 위해를 초래할 수 있어 의사의 처방전 없이는 구입할 수 없는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돼있습니다.
②B는 40세의 건강한 여성이었지만 A가 투약한 수면제의 양은 성인 권장용량의 1.5∼2배에 달하는 양이었습니다.
③이로 인해 B는 깊은 잠에 빠졌고, 잠이 든 이후의 상황, 즉 A로부터 강간 및 강제추행을 당한 상황에 대해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가끔 희미하게 정신이 들기도 했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지 못한 채 곧바로 기절하다시피 다시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B가 의식을 회복한 다음 병원서 특별한 치료를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A의 반복된 수면제 투약으로 정보와 경험을 기억하는 B의 생리적 기능에 일시적으로 장애가 발생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위에서 언급한 여러 사정들을 종합해 판단했을 때, B는 수면제 투약으로 항거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해졌을 뿐만 아니라 건강상태가 나쁘게 변경되고 생활기능에 장애가 초래되는 피해를 입었다고 본 것입니다. A의 반복된 수면제 투약과 강간·강제추행 범행으로 B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입은 것으로 보이며, 이는 강간치상죄나 강제추행치상죄서 말하는 ‘상해’에 해당한다는 판단입니다.
또 이런 점을 판단할 때 B가 당시 자연적으로 의식을 회복했다거나 추후 특별한 치료를 받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봤습니다.
언뜻 보면 물리적으로 아무런 외상이 없는 수면제 복용으로 인한 수면을 강간치상죄나 강제추행치상죄의 ‘상해’로 보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대법원은 단순히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상처가 발생했는지 여부로 상해의 존부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상해’란 신체의 완전성이 훼손되는 것으로 보는 것을 전제로, 수면제 복용으로 인해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잠에 빠졌다면(생활 기능에 장애가 초래되었다면)비록 특별한 치료를 받거나 외부적으로 드러난 상처가 없더라도 ‘상해’로 인정한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기윤은?]
▲ 서울대학교 법학과 석사 졸업
▲ 대한상사중재원 조정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