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성수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잇따른 무리수로 물의를 빚고 있다. 여러 번 부적절한 행보로 구설에 오르더니 급기야 최근 로비성 행사를 열려다 비난 여론이 일자 취소하는 웃지 못할 '촌극'까지 벌였다. 전경련의 '헛발질'이 계속되자 한동안 잠잠했던 '해체론'이 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전경련 부설 국제경영원(IMI)은 지난달 11일 '제2기 유스 챌린저스 캠프 안내와 참가 요청' 공문을 19대 국회의원 300명 전원에게 보냈다. 전경련이 국회의원 자녀만을 대상으로 한 무료캠프를 추진한 것. 이 공문은 일종의 초청장이었다.
논란 일자 급거 취소
IMI는 국회의원의 대학생 자녀 40여 명을 선착순으로 신청 받아 7월6일부터 10일까지 4박5일 일정으로 캠프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주요 일정은 시장경제 강좌와 팀워크 프로그램 운영, 여수엑스포·포스코 광양제철소 방문 등으로 구성됐다. 참가비는 전액 IMI가 부담하기로 했었다.
IMI 측은 "국민들에게 올바른 경제관을 심어주는 것이 이번 캠프의 목적"이라며 "광범위한 계층을 대상으로 시장경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행사를 두고 여기저기서 비판이 쏟아졌다. 전경련이 경제살리기에 적극 나서지는 못할망정 사회지도층의 자녀들에게 특혜를 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정치권을 중심으로 경제민주화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전경련이 국회의원 로비 목적으로 캠프를 개최한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었다.
정호준 민주통합당 원내부대표는 "전경련의 신종로비"라며 "재벌개혁을 비롯한 경제민주화 요구가 커지자 전경련이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질타했다.
경실련도 "경제민주화라는 시대적 요구를 무마시켜 19대 국회에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꼬집었다.
논란이 일자 전경련은 지난 2일 행사를 급거 취소했다. 전경련 측은 "참석인원 저조"란 이유를 댔지만, 사실상 부정적인 여론을 감안해 내린 결정이었다.
전경련이 벌인 '촌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 처음 이 행사를 시작했을 때도 비난 여론이 있었다. 당시 국회의원 자녀뿐만 아니라 친인척까지 참석가능 대상으로 잡았었다. 지난해에도 행사를 추진했으나 역시 전경련이 정치권 로비를 시도한다는 비판 여론에 뭇매를 맞고 결국 행사를 취소했다. 전경련은 지난해 정치권의 반기업정책 완화를 위해 회원사들과 함께 실세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한 로비 계획을 마련했다가 이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전경련이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언제쯤 정신을 차릴지 모르겠다"며 "대기업 이미지를 관리해야 할 전경련이 각종 구설로 오히려 재계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으니 기업들이 내는 회비가 아깝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자녀 초청 로비성 행사 열려다 취소
"또 그러네…" 잇따른 헛발질에 해체론 재부상
재계에선 정병철 전경련 부회장의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캠프를 주최하려던 IMI 원장을 겸임하고 있어서다. 전경련이 국회의원 자녀 캠프를 통해 정치권 로비를 시도한 배후에 정 부회장이 있었던 셈이다. 전경련을 이끌고 있는 정 부회장은 앞서 말 많았던 로비성 행사와 계획에 대해서도 책임을 면키 어려운 입장이다.
사실 정 부회장의 리더십 부재 논란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전에도 여러 번 도마에 올랐었다.
정 부회장은 '재계 대변인' 또는 '재계와 정부 가교' 역할을 하는 전경련의 실권을 쥐고 있다. 그러나 회원사들의 충분한 의견수렴과정을 거치지 않는가 하면 재계에 대한 정치권 압박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등 무력한 모습을 보이면서 '무용론'이 불거졌다. 지난해 전경련 안팎에선 독선적인 조직운영 논란이 일더니 급기야 교체설이 확산됐다. 이 와중에 신중하지 못한 처신으로 뒷말도 적지 않았다. 또 전경련 내 역할보다 '자리'에 연연하는 행보까지 보여 언론들의 집중포화를 맞기도 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전경련이 수백억원에 달하는 회비를 받으면서도 재계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며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기는커녕 오히려 반기업 정서 등 재계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경련의 '헛발질'이 계속되자 한동안 잠잠했던 '해체론'이 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수장 인선 문제로 진통을 겪는 등 우여곡절 끝에 순항하는 듯 했으나 제대로 된 기능과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재위기를 맞은 것이다.
최근 전경련 해체론을 거론한 인사는 김종인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박근혜 경선캠프)이다. 김 위원장은 "전경련이 쓸데없이 자꾸 사회통합 저해하는 소리를 계속하면 존재할 필요가 있느냐"며 "그런 식으로 가려면 해체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정운찬 전 동반성장위원장도 지난 3월 위원장직에서 사퇴하면서 "대기업의 이해만 대변하는 전경련은 다시 태어나야 하고 필요에 따라 발전적 해체 수순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최근 한 라디오에서도 "(전경련의 행태가) 한심하다"며 "전경련은 재벌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단체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공동체로서 건강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발전적 해체가 필요하다"고 거듭 밝혔다.
정병철 리더십 도마
경실련은 "전경련이 자기반성과 태도 변화 없이 안하무인의 태도와 자세를 계속 견지한다면 조만간 '전경련 해체'라는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얼마 뒤 나라에 큰 일이 있다. 재계도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표심을 의식한 선심성 공약이 쏟아질 테고, 상대적으로 재계를 압박하는 수위가 높아질 게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넋 놓고 있는 전경련을 바라보는 재계는 한숨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