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 16범’ 조세형 파란만장 도벽사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06.17 10:41:54
  • 호수 1223호
  • 댓글 0개

손 못 씻고…좀도둑 된 대도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던가. 조세형이 아직 손을 못 씻고 제 버릇 남 주지 못했다. 또 도둑질을 했는데 벌써 16번째였다. 그의 나이는 올해 81세다.
 

▲ 조세형

1970~80년대 고위 관료와 부유층의 집을 털며 ‘대도’라는 별칭을 얻은 조세형씨가 또다시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 11일 서울 광진경찰서는 조세형을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조세형은 지난 1일 오후 9시경 서울 광진구에 있는 한 다세대 주택 1층의 방범창을 뜯고 침입해 소액의 현금을 훔쳐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고아 출신
10대 때 절도

경찰은 조세형이 훔친 금액은 몇만원에 불과했지만, 상습법인 점을 감안해 구속한 것으로 밝혔다. 조세형이 절도 혐의로 수갑을 찬 것은 16번째다.

조세형은 1938년 전북 전주서 태어났다. 고아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도둑질에 눈을 떴던 조씨는 5세 때 남의 깡통을 들고 밥을 얻어먹으러 갔다가 은수저를 훔친 것이 첫 도둑질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16살 무렵 본격적인 도둑질을 시작했고, 이후 20차례 교도소에 들락거렸다. 1970년대 조세형의 범행을 기록한 판결문을 살펴보면 ‘조씨는 뒷담을 넘고 베란다를 통해 2층 방에 침입했다. 뒷담을 넘고 그 집 안방 쇠창살을 드라이버로 뜯어냈다’고 기술했다. 


당시 조세형은 “어릴 때 배를 채우기 위해 훔쳐 먹다보니까 절도 습관이 몸에 뱄다”고 말한 바 있다. 

법원 판결문에 나온 절도 기록도 다양하다. 36세이던 1974년 5월15일 오후 8시쯤 서울 신당동의 한 평범한 가정집에 침입해 녹음기 한 대 등 모두 5만4100원 상당을 훔쳤다. 1975년 1월31일에는 서울 중구 필동 한 가정집에 들어가 다이아몬드 반지 등 105만원의 상당을 훔치기도 했다.

같은해 2월 조세형 서울 종로구 명륜동 양모씨 집 창문을 뜯고 침입해 금고를 드라이버를 부수고 현금·수표·금·비취목걸이·다이아몬드 반지 등 2600만원어치를 훔쳐 내연녀를 통해 700만원을 받고 팔아넘겼다.

다세대주택 방범창으로…
고작 몇 만원 훔치고 수갑

그런데 1980년대 초반 언론서 조세형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현대판 홍길동, 대도 등 다양한 별명이 붙으면서 단순한 잡범이 아닌, 의로운 도둑의 이미지가 생긴 것이다.

1982년 12월 형사들은 “그는 유명인사의 집만 골라 값비싼 귀중품을 훔치는 간 큰 도둑이었으며, 돈을 쓰는 것도 한 달에 1000만원 이상 뿌렸다는 게 주변인들의 얘기”라고 말한 바 있다. 

1983년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그가 훔친 5.75캐럿 물방울 다이아몬드의 주인이 5공 시절 고위층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야당은 정부를 공격할 거리를 찾다가 들고 일어나자, 5공에 반감을 갖고 있던 대중은 그를 강자를 노리는 대도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조세형은 <스포츠동아>와의 인터뷰서 ‘권력층을 대상으로 대담한 절도 행각을 벌인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그는 “이왕에 범죄 하는 것 큰 집 들어가야 가지고 나올 것도 있을 것 아니냐”며 “물방울 다이아몬드의 주인은 청와대 경호처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신모씨였다”고 답했다. 

조세형은 “거기서 여러 가지 수십억원어치 보석을 들고 나왔는데, 그 중에 하나가 물방울 다이아였다”며 부유층에 대한 불신도 드러냈다. 이어 “솔직히 정상적인 수입으로 그렇게 했겠냐”며 “나보다 더 도둑놈들이고 부정축재로 쌓은 것이겠지”라고 덧붙였다.

조세형이 부유한 큰집을 노렸던 것은 허를 찌른 선택이라는 의견도 있다. 1980년 초반의 큰집은 의외로 문단속이 허술한 경우가 많았고, 집이 크면 한쪽 방에서 웬만한 소리를 내도 발각되는 일이 드물고, 큰 집일수록 낮에 비어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부유층 털어
사회적 이슈

당시 조세형은 부유층의 집을 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는 소문이 퍼졌다. 서민들은 통쾌하다고 좋아했을지도 모르지만, 경찰과 사법당국은 긴장했다. 결국 전국 경찰에 비상령이 내려졌고 182년 11월 조세형은 경찰에게 최포된다. 체포될 당시에도 조세형은 절도 전과 11범이었다.

1982년 11월에 체포된 조세형은 1983년 4월 결심공판이 열리던 날 탈주를 결심한다. 10여차례에 걸쳐 5억여원 절도 혐의로 기소된 그는 탈주 계획을 세운다. 법정에서 구치소로 돌아가기 전 피의자들은 구치감서 대기한다. 조세형은 구치감에 머무는 동안 경비가 허술해지는 순간을 노렸다.

담당 교도관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구치감 문을 부수고 복도로 나와 한쪽 수갑과 포승줄을 푼 뒤, 복도 환풍기를 뜯고 탈출한 것이다. 조세형은 탈주한 뒤 서울역, 후암동, 장충동 등 도심 일대를 활보했다. 또 5차례나 주택에 몰래 침입해 음식과 현금, 옷가지를 훔치는 대담함도 보였다. 

1983년 4월19일 오전 10시쯤 서울 장충동 주택가 골목. 18세 청년은 수배범을 발견하고는 10여분간 미행한 후, 인근 파출소로 달려가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을 발견한 조세형이 가정집으로 뛰어들어 지붕을 타며 필사적으로 도주했지만, 이미 장충동 일대에 포위망을 쳐놓은 상태였다.
 

10여분 동안의 추격전 끝에 경찰과 조세형은 막다른 곳에서 대치했다. 조세형이 한 가정집에 침입해 집주인의 아들을 붙잡아 인질극을 벌인 것이다. 조세형의 손에는 드라이버와 쇠톱이 들려 있었다. 경찰은 총을 겨누며 위협했다. 얼마 후 조세형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쏘지 마라. 자수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가스총을 발사했고, 조세형이 흠칫하며 인질을 놓친 사이 권총 한 발이 발사됐다. 영화 같은 ‘대도 탈주사건’이 6일 만에 종결되는 순간이었다.

또…또…
의적 미화?

조씨는 체포 후에도 화제가 됐다. 바로 다음과 같은 절도 다섯가지 원칙 때문이었다. 첫째, 나라 망신을 주지 않기 위해서 외국인의 집은 털지 않겠다. 둘째, 다른 절도범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내가 판검사 집은 들어갔더라도 그냥 나오겠다. 셋째, 연장은 사용하지 않는다. 넷째, 가난한 사람 돈은 훔치지 않는다. 다섯 번째는 훔친 돈의 30-40%는 헐벗은 사람을 위해서 사용한다. 


조세형의 검거는 당대 최고의 화젯거리였다. 하지만 조씨에게서 압수된 현금이나 수표, 귀금속 등을 도난당했다는 피해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도난당한 금품 회수보다도 ‘탐관오리’나 ‘졸부’라는 손가락질과 뒤따를 세무조사를 더 두려워서 한 탓이다.

상류층 부패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은 조세형을 의적이라며 추켜세웠다. 

이 같은 그의 발언은 언론을 통해 대중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여론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자 당시 이해구 치안본부장이 “조세형은 훔친 돈으로 불우한 이웃을 도와준 적은 없다. 술집 등에서 호스티스들에게 돈을 마구 뿌려 횡재한 사람이 있었는지는 모른다”고 발표했다.

조세형은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얼마만큼 나눠줬는지는 구체적으로 진술한 적이 거의 없다.

최중락 전 총경은 “나눠주길 뭘 나눠주나. 자기 먹기도 바쁜데. 내가 보기에는 없었다. 항상 붙들리면 그렇게 얘기했다. 자기 미화하려고…”라고 말했다. 그를 옹호했던 한 법조인도 “그가 일부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줬을 수는 있지만, 그것은 정상참작을 받기 위한 목적이 컸다”며 “‘도둑질 했지만 베풀어 주고 싶었다’고 말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본다”고 언급했다.

70~80년 부유층 털어 유명
신앙 등 제2의 삶도 공염불


조세형의 전력도 기부 행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도둑질을 하면 여성과 함께 호화 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1982년 검거 직전엔 부자들만 가입할 수 있는 사파리 클럽에서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다.

1997년 출소한 조세형은 보안업체서 수당을 받으면서 자문위원 일도 하고 대학 강의도 했다. 교회서 간증 요청을 받아서 신앙 활동하기도 하고 또 선교 단체 설립한 후에 사회사업도 시작하면서 개과천선의 아이콘이 됐다. 그는 전과자들을 종교로 인도하고 사회 복귀를 돕는 활동도 하면서 절도와는 연을 끊는 듯 했다. 하지만 조세형은 선교활동을 떠난 일본 도쿄 시부야 주택가서 빈집 세 곳을 털다가 경찰에 붙잡힌다. 

징역 3년6개월형 선고를 받는다. 조세형은 수형 생활을 모범적으로 해 감형을 받았고, 2004년 3월에 다시 출소했다. 2005년 서울에 있는 한 치과의사 집에 들어가서 금품을 훔쳐 징역 3년 선고받았다. 2008년 출소하고 2년이 지난 2010년에도 장물 사건과 관련해 또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2013년에는 70대의 나이에 노루발못뽑이 등을 이용해 강남 고급 빌라를 털다 실형을 선고받은 데 이어, 출소 5개월 만인 2015년 용산의 고급 빌라서 재차 남의 물건에 손을 대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지난해 출소했다.

진짜 여든까지
다시 도둑질

손수호 변호사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서 “조세형 본인이 의적이었다면서 범죄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한 적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경찰이나 법원이 공식적으로 대도나 의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다”며 “대도, 소도 둘 다 없으며 오로지 절도만 있다”고 말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자발찌 무용론 “길게 채우면 효과 없다”

재범 우려가 있는 범죄자 신체에 5년 넘게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부착하는 경우 재범률이 오히려 올라간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법무부가 전자감독제도 시행으로 성폭력 범죄 재범률을 약 90% 떨어뜨렸다고 발표한 내용과 차이가 있어 주목된다. 

장기 전자발찌 부착자에 대한 관리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으로 파악되면서 보다 정교한 정부의 감독과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지난 13일 한국형사정책학회의 학술지 ‘형사정책’에 실린 ‘전자장치 부착제도의 효과성에 대한 재검토’ 논문에 따르면 5년 이상의 전자발찌 중장기 부착기간을 선고받은 범죄자들의 재범률이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선고기간이 1년 이상 5년 미만인 경우 2531명 중 123명(4.9%)이 재범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비해 5년 이상 10년 미만 부착을 선고받은 경우는 1682명 중 183명(10.9%)이 재범을 저질러, 재범률이 1∼5년 부착과 비교하면 2배 이상으로 나타났다. 또 10년 이상 부착을 선고받은 경우도 1028명 중 71명(6.9%)이 재범을 저질렀다.

5년 이상 부착자들의 경우, 분석 대상인 전체 8430명 중 378명(4.48%)인 재범률 전체 평균을 앞지른 만큼 논문은 5년 이상의 전자발찌 중장기 부착이 오히려 재범률을 높이는 역효과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부착 선고 기간이 1년 미만인 경우 재범률은 3189명 중 1명(0.03%)에 불과했다.

논문은 1년 미만 전자장치 부착기간 선고가 주로 재범 위험성이 약한 가석방(가출소, 가종료 포함) 범죄자에 집중됐다고 하더라도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5년 이상 채우면 재범률 증가
1~5년 부착에 비해 2배 이상

따라서 해당 논문은 전자발찌 제도에 대해 “‘단기 충격요법’으로 전자장치 부착을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이 논문은 “법무부가 전자감독제도 시행 전인 2004∼2008년 14.1%에 달한 성폭력 범죄 재범률이 제도 시행 후 2009∼2017년 1.9%까지 떨어졌다며 내세운 운영 성과 발표에 실증적 오류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번 논문은 전자감독제도가 도입된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성폭력·살인·강도 등 범죄자 8430명의 전자장치 부착 선고 기간에 따른 재범률을 분석한 결과다.

전자감독제도 도입 당시 최대 5년이었던 전자장치 부착 선고 기간은 지금까지 4차례 개정을 거쳐 가중처벌을 적용할 시 45년 상한으로 늘었다. 

강민구 변호사는 논문서 “전자감독제도 제정법대로 5년 범위에서 재범 위험성에 따른 전자장치 부착기간을 선고해야 한다”며 “전자장치를 단기 충격요법으로 사용해 줄어든 관리인력으로 1대1 전담 보호 관찰관제도를 확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환>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한샘 시흥공장 그린벨트 훼손 의혹

[단독] 한샘 시흥공장 그린벨트 훼손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우리나라는 개발이 제한돼있는 토지가 있다. 해당 토지들의 개발을 위해선 지자체장의 승인이나 대통령령 승인이 있어야 한다. 부동의 가구 1위 기업인 한샘이 개발제한구역을 마음대로 훼손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대상은 시흥 제1공장 부지 주변 필지다. 행정조치가 완료됐다고는 하지만 완전히 원상복구는 되지 않았다. 한샘은 주방·인테리어가구를 판매·제조하는 대한민국 부동의 1위 가구 업체다. 1970년 9월 한샘으로 창립한 뒤 1977년 국내 최초로 주방가구를 수출해 1979년에 수출 100만달러 돌파의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한샘의 2023년도 기준 매출액은 1조9669억원에 달한다. 영업이익은 19억4660만원이다. 최초의 공장 성장 시발점 한샘의 성장은 시흥 공장과 함께했다. 조창걸 명예회장이 자본금 200만원으로 은평구 대조동에 23.1㎡의 매장으로 시작했던 한샘은 1976년 시흥시 조남동에 최초의 공장다운 공장을 설립했다. 제1공장을 통해 한샘은 생산 체계를 크게 개선하며 큰 실적 향상을 이뤘다. 한샘은 현재 시흥과 안산 등에 4개의 물류센터·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당초 한샘 시흥 공장은 조남동 ▲594-1번지 ▲91-144번지 ▲91-145번지 세 곳의 필지, 약 1만4610㎡의 면적으로 지어졌다. 현재는 한샘은 91-117번지 매수해 총 1만8429.8㎡의 면적을 공장 부지로 사용 중이다. 등기사항전부증면서 확인 결과 한샘은 해당 부지 외 시흥 공장과 인접한 4개 필지 ▲조남동 91-163번지, 2076㎡ ▲조남동 91-165번지, 207㎡ ▲조남동 91-166번지, 109㎡ ▲조남동 산 57-1번지, 3273㎡도 소유하고 있다. 항공지도에 따르면, 한샘 시흥 공장의 정문 바로 앞을 3개의 필지 ▲조남동 91-163번지 ▲조남동 91-165번지 ▲조남동 91-166번지가 둘러싸고 있으며 산 57-1번지는 공장 뒤편 산과 맞닿아 경계를 이루는 형세를 나타낸다. 그런데, 가장 오래된 2008년 항공사진부터 지금까지 해당 필지를 야외주차장 및 자재 적재용으로 사용해 왔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점은 해당 필지의 지목이 모두 ‘임야’라는 것이다. 임야는 산림과 원야로 구성된 토지로, 공간정보관리법에서는 죽림지, 수림지, 암석지, 모래땅, 습지, 황무지, 자갈땅 등을 예로 들고 있다. 임야는 대부분 산림자원보호법에 따라 산림보호구역 또는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된다. 즉, 산림청의 허가 없이는 토지의 용도변경이나 개발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간혹 산림보호구역이나 지역이 아닌 임야도 있지만 이 역시 산림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토지의 용도변경이나 개발이 가능하다. 시흥 제1공장 주변 4필지 무단 개발 개발제한지역·공익용 산지에 해당 한샘이 야외주차장과 자재 적재용으로 사용한 필지는 모두 개발제한구역에 포함돼있다. 한샘이 산림청의 허가를 받지 않고 개발제한구역 땅을 개발해 무단으로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는 의심이 드는 사안이다. 실제로 시흥시 도시정책과는 해당 필지와 관련해 많은 민원을 접수했다. 민원은 해당 필지들의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12조 위반이 주된 내용이었다.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12조에 따르면, 개발제한구역에서는 건축물의 건축 및 용도변경, 공작물의 설치, 토지의 형질변경, 죽목의 벌채, 토지의 분할, 물건을 쌓아놓는 행위(적재) 또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1항에 따른 도시·군계획사업의 시행을 할 수 없다. 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건축물의 건축 또는 공작물의 설치와 이에 따르는 토지의 형질변경 ▲개발제한구역의 건축물로서 제15조에 따라 지정된 취락지구로의 이축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른 공익사업의 시행으로 철거된 건축물을 이축하기 위한 이주단지의 조성 ▲건축물의 건축을 수반하지 않는 토지의 형질변경으로서 영농을 위한 경우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토지의 형질변경 등 9가지의 경우만 예외로 하고 있다. 이렇듯 한샘의 4 필지 사용은 예외 사항에 포함되지 않는다. 산림청장 허가받았나 민원을 접수한 시흥시 건축과 개발제한구역지도팀은 2020년에 해당 필지에 관한 현장조사 이후 한샘에 원상회복 행정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한샘은 이에 불복하고 행정처분 취소소송을 감행했다. 재판부는 개발제한구역 지정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한 한샘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이행강제금 일부를 한샘에 돌려주도록 판단했다. 하지만 이는 시흥시의 행정조치가 잘못됐다는 판결이 아니었다. 법적 싸움 끝에 시흥시의 원상복구 행정조치는 진행됐다. 시흥시 개발제한구역지도팀에 따르면, 한샘은 행정소송 이후 2022년부터 2023년에 걸쳐 원상복구를 완료했다. 시흥시 개발제한구역지도팀 관계자는 “행정조치 이후 원상복구까지 불법으로 개발한 것을 모두 해체하고 폐기물 처리까지 완료해야 하는 만큼 많은 시일이 걸린다”며 “해당 필지(조남동 91-166번지와 산 57-1번지)는 지난해 11월 원상복구 이행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샘 관계자는 “해당 부지는 한샘이 소유하고 있거나 소유했던 땅으로 불법 점용한 적이 없으며, 해당 부지는 개발제한구역 지정 전과 동일한 상태로 복구를 완료한 상태”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한샘은 여전히 해당 필지들을 불법 점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시흥시가 원상복구 이행을 확인한 필지는 조남동 91-166번지와 산 57-1번지다. 하는 척 얼렁뚱땅 <일요시사> 확인 결과 조남동 91-166번지는 도로와 인접한 부분의 절반의 울타리만 철거됐으며 여전히 4~5대의 차량이 주차돼있는 상태였다. 해당 필지는 개발제한구역이면서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른 지역‧지구로는 도시지역, 자연녹지지역로 구분된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해당 지역에 4층 이하의 건축물을 지을 수 있지만, 개발제한구역이므로 건축물의 건축 및 용도변경 등이 불가능하다. 시장 혹은 도지사·군수 등의 허가를 받을 경우 가능하지만, 시흥시에서는 해당 부지의 주차장 사용을 허가해주지 않았다. 행정조치 이후에도 계속 불법으로 점용하고 있는 셈이다. 산 57-1번지도 마찬가지다. 항공사진을 분석한 결과 2008년부터 해당 필지를 덮고 있던 콘크리트는 2013년에 사라졌지만 자재가 적재돼있었다. 이후 2020년에 다시 콘크리트가 덮였다가 2022년 흙밭으로 복구됐다. 하지만 여전히 자재는 적재돼있다. 게다가 <일요시사> 확인 결과 조남동 산 57-1번지와 조남동 산 57-5번지가 개발제한구역이면서 공익용 산지로 지정돼있어 보전산지로 분류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산 57-5번지가 산지 그대로 있는 것과 다르게, 산 57-1번지는 콘트리트가 지반을 받치고 있으며 경계선에는 울타리가 쳐져 있다. 행정조치 완료? 완전 복구 안돼 한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공익용 산지를 마음대로 개발하면 산지관리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다”며 “해당 부지 명의가 한샘이더라도 시장 등 지자체의 허가 없이 개발하면 안되는 곳으로 구조물을 통해 공장부지와 평행을 맞추는 지반을 만드는 것도 허가가 필요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행정조치가 진행 중인 상황에 문제가 되는 필지를 매매한 정황도 포착됐다. 한샘은 조남동 91-163번지의 필지를 1985년 매입했다. 이후 야외주차장으로 사용하던 해당 필지를 2022년 11월4일 갑자기 팔아버렸다. 2022년은 한샘과 시흥시의 행정소송이 끝나고 행정조치가 진행되던 시기였다. 현재 해당 필지는 ㈜효경개발이 매수해 크레인과 덤프트럭 등 중장비 주차장으로 이용 중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원상복구에 많은 금액이 들어가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토지를 매매한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한 토지 전문가는 “일반적으로 야외주차장으로 사용하던 토지를 원상복구하는 데 많은 금액이 들어가지 않지만 해당 필지는 공익용 산지로 산지 조성까지 해야 해 상황이 다르다”며 “산지 조성에 들어가는 금액도 지불하지 않고 토지를 매매한 것은 이중으로 이익을 얻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샘 관계자는 “크레인 등 장비가 있는 부지는 한샘의 소유가 아니므로 저희가 알 수 없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문제의 필지 매매한 정황 한샘 측은 이번 불법 점용 의혹에 관해 개발제한구역 지정이 공장 설립보다 늦게 이뤄져 어쩔 수 없이 불법적인 개발로 분류됐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해당 필지들은 지난 1976년 12월에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됐다. 시기상 한샘의 공장 설립 이후에 묶인 셈이다. 하지만 산 57-1번지를 제외하고 나머지 필지들은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된 이후인 1985년 매입한 땅이라 불법임을 알고도 마음대로 개발했다는 지적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