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지방대, 극한 생존전략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05.13 11:01:05
  • 호수 12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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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런 ‘과’는 없었다! 별난 학과로 ‘학생 호객’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지방대학은 새로운 전략을 펼쳐야 할 시점이다. 인구는 줄어들고 수험생들이 수도권 대학을 선호하면서 지방대학들이 위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인구수에 비해 대학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난무하는 가운데, 각 지방대가 펼치는 생존전략에 대해 살펴봤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지방대가 휘청이고 있다. 전북 남원의 서남대학교는 지난해 2월 폐교가 결정됐다. 의대를 보유한 서남대마저 폐교가 되자 각 지방대학들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서남대의 폐교는 예고된 수순이었다. 서남대는 교비횡령, 경영악화 등의 이유로 부실대학교라는 오명을 받아왔다. 서남대 이전에도 경북 경산의 대구외국어대와 강원 동해의 한중대도 설립자 비리, 파행적 운영 등의 이유로 문을 닫았다. 전문가들은 해가 갈수록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지방대의 폐교가 가속화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정원미달
시간문제

사실 지방대의 위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예전에도 지방대학들은 해마다 정원을 줄이고 있지만 재정 위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3년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전국 164개 대학 중 등록금 의존율이 80%를 넘어 학생수 감축이 재정위기에 영향을 준 28개교 대학이 모두 지방대학교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대가 위기를 겪는 패턴은 비슷하다. 지방대학교의 신입생이 부족해 정원미달이 되고 재정고갈로 인해 교수와 교직원이 대우를 받지 못하면서 학교의 위상이 떨어지는 악순환이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인구절벽은 지방대의 위기를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교육통계서비스 분석 결과 2019학년도 56만6545명서 2020학년도 51만241명으로 줄어들었다. 2021학년에는 45만7647 이후로는 45만명 내외로 고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기간 대구와 경북은 5만8918명, 5만2069명, 5만5831명으로, 광주와 전남은 4만1789명, 3만7277명, 3만3004명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관측됐다.


2년 동안 학령인구의 감소폭은 나라와 두 지역 모두 약 20%에 달한다.

지방대는 2021년부터 본격적인 위기를 맞는다. 2018학년도 대학 정원 48만7272명을 기준으로 2021학년도 정원이 학령인구를 3만명 가량 웃돈다. 대구와 경북은 정원 5만9434명, 광주와 전남은 3만6327명, 특히 경북은 3만6518명으로 학령인구 2만3148명에 비교하면 약 1만3000명이 모자란 셈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2주기 대학기본역량 진단발표를 통해 전국 대학 36%인 116곳에 정원감축을 권고했지만 지금 이 추세대로라면 각 지방대의 정원미달은 불가피해보인다.

학령인구보다 정원 더 많아
수도권 이탈·지방대 기피↑

고교 졸업생 진학률이 매년 떨어지고 있어 암울한 상황이다. 2008년 83.8%서 10년 사이에 68.9%로 하락했다. 지방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가운데 지역 수험생들의 수도권 유출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각 지방대학들은 재정이 열악하고 신입생 충원에 총력을 다하지만 밑빠진 독에 물붓기인 셈이다. 지난해 교육부서 발표한 대학 역량 진단서 ‘역량 강화’ ‘재정 지원 제한 대상’ 일반대학교 40곳 중 33곳이 지방대인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탈이란 자퇴, 미등록, 미복학 등 중도 탈락을 의미한다. 또 지방대학생의 이탈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종로학원하늘교육 분석에 따르면 2018학년도 전국 중도 탈락률은 4.5%였다. 수도권대 탈락률은 3.4%에 반해 지방대는 5.2%로 높은 지표를 나타냈다.

시도별로는 전남 소재 대학이 6.4%로 가장 높았으며 대전 5.8%, 경북 5.5%, 충남 5.5%, 경남 5.4%, 강원 5.2%가 뒤를 이었다. 가장 낮은 곳은 인천 2.7%, 서울 2.9%이었다. 중도 탈락학생 수가 1000명이 넘는 대학 9곳 모두 지방대다.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수도권 유출 현상에 이어 재학생마저 지방대 기피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성화학과= 수도권 대학과 경쟁하지 않고 차별화 전략을 내세우는 지방대가 주목받고 있다. 건양대학교는 독일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 SAP와 손을 잡고 기업소프트웨어 학부를 2017년 개설했다. 기업이 원하는 수준에 맞춘 졸업생을 배출하도록 기업과 사전에 교육 프로그램을 협의하고, 기업이 졸업생을 취업시키는 게 목표다.

건양대는 교육과정에 기업요구 주문식 프로그램을 44학점 반영해 기업이 원하는 2년 경력 수준의 전문인력을 배출하고 있다. 이미 웅진·농심NDS·대상정보기술·LG비앤이파트너스 등 국내 대기업과 각 분야서 세계 수위를 다투는 국내외 건실한 기업들과 취업예약을 위한 기본적인 협약을 맺은 상태다. 

학과 만들고
성인반 개설

같은 해 호남대학교는 미래자동차공학부를 신설해 미래자동차, 에너지신산업 분야의 산업수요 맞춤형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호남대 관계자는 <한국대학신문>과의 인터뷰서 “아직까지는 광주의 주력산업은 여전히 기계·전자 분야”라며 “에너지 산업과 접점이 있는 미래자동차 산업분야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쪽 분야에 대한 학생 취업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진로지도와 비교과지도, 취·창업교육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북대학교도 4차 산업을 대비해 신설학과를 준비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의생명융합(BST), 로봇, 신재생에너지(수소) 등 4개 분야 융합대학(학과)을 개설해 신입생을 새롭게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과학·기술 미래인재를 키우기 위해 경북대도 예열을 마쳤다.
 

▲성인반 모집= 지방대는 신입생이 줄어들자 성인 정규과정을 도입하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있지만 대학은 학령인구 급감에 따라 신입생의 빈자리를 성인들로 채울 계획이다. 입학생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이 시점서 평생교육은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구한의대학교는 성인 대상 미래융합대학을 개설했다. 이 학과는 30세 이상 성인이나 특성화 고 졸업 3년 이상의 직장인만 입학이 가능한 ‘성인친화형’ 4년제 정규과정이다. 아울러 학과를 확대해 미래라이프융합대학을 설치하는 계획으로 4년간 27억2000만원의 재정지원을 받게 됐다. 미래라이프 융합대학도 마찬가지로 30세 이상 성인과 특성화고졸 재직자 대상으로 대상으로 한다.

지자체와 
지역 활성화

광주대학교도 성인학습자들의 교육 수요를 파악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성인친화형 대학으로 변화를 추진했다. 현행 비학위 과정의 평생교육원 중심의 일회성 교육을 탈피해 만  25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정규 대학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광주대는 지난 2008년 평생학습선도대학사업단 성인학습지원센터를 개설해 2014년 사업운영평가서 최우수대학으로 선정된 바 있다. 

특히 학위과정서도 성인학습자의 평생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산업기술경영학부, 청소년상담·평생교육학과, 경영학과, 음악학과, 경찰·법·행정학부, 간호학과, 뷰티미용학과, 토목공학과, 세무경영학과 등 10개 학과 등 성인중심학과로 개편했다. 광주대는 이를 점차 확대시켜 성인들에게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 호남대 미래자동차 공학부

김갑용 광주대 평생학습선도대학사업단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서 “지금까지 사업을 운영하며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성인학습자들에게 보다 폭넓고 체계적인 평생교육을 제공할 것”이라며 “아울러 100세 시대에 걸맞게 국가평생학습체제를 구축하는 선도대학으로서 그 역할을 더욱 충실히 하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지자체 협업= 대학교는 지자체와 협업을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는 물론 (활성화시키는 동시에) 재학생들의 수도권 이탈현상을 막고 있다. 충남 보령에 있는 아주자동차대학은 보령시, 두산인프라코어와 함께 ‘건설기계 분야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 인프라 지원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이번 협약은 산·관·학 협력으로 보령 지역의 건설기계 분야 우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추진됐다.

보성시는 취업지원을 위해 아주자동차대학 우수 재학생에게 장학금 지원을, 아주자동차대학은 기증 장비 기반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무조건 튀어야 산다!
서울에 없는 전공 신설

부경대학교는 교육부 주관 ‘대학 산학연 협력단지’ 조성사업에 선정돼 부산시와 함께 지역경제성장에 박차를 가한다. 부경대학교가 사업에 선정됨으로써 향후 5년간 국비 80억원, 시비 16억원을 지원받아, 우수하고 성장잠재력 있는 기업을 유치, 동반성장을 도모한다. 특히 부산시가 캠퍼스와 연계한 도심 내 첨단산업의 현실화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이 이목을 끌고 있다. 

▲외국 유학생 모집= 교육부는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하고 국가와 대학의 글로벌화를 위해 2023년까지 유학생 20만명을 유치하겠다는 청사진을 세웠다. 지방 대학들은 국내 수험생들의 수도권이탈 현상이 가속화되자 재정난과 정원을 채우기 위해 외국인 유학생으로 눈을 돌렸다. 최근 조사한 광주·전남 대학들에 따르면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한 결과 5년 전 3000명 수준이었으나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올해 7000~8000명 수준으로 추산된다.
 

전남대는 2013년부터 3년간 800명대를 유지하면서 2017년 1000명을 돌파했으며 조선대는 2016년 253명이었던것에 올해 1163명으로 약 5배 급증했다. 중국 특화대학인 호남대도 중국인 유학생을 비롯해 약 900명의 외국인이 학업에 매진하고 있으며 동신대 외국인 유학생 수가 500명에 가깝다.


부산서도 외국인유학생을 점점 늘리고 있다. 지난해 기준 외국인 유학생 비율이 10%를 넘는 부산지역 대학이 3곳이나 선정됐다. 부산외대 12.21%, 경성대 11.60%, 동성대 10.97% 순이었다. 

다양하고
특별하게 

서울대 총장을 역임했던 오연천 울산대학교 총장은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서 “지방대의 위기는 다양하고 특성을 살려 지향해야 한다. 수도권 대학처럼 보편적인 방향으로 가다보면 문제가 발생하는 건 당연하다”며 “지역 발전과 상생하는 전공, 4차 혁명에 맞는 새로운 학과와 전공을 개발해 융합·포괄형 교수가 많아야 지방대학이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지방대 무상교육 현주소
‘등록금 면제’ 100만명 서명운동

지방국립대와 공영형 지방사립대의 등록금을 전액 지원하는 ‘지방국립대 무상교육 운동’이 시동을 걸었다.

부산대 교수회 지방대학균형발전위우너회는 지방국립대학 학부와 대학원, 공연형 지방사립대학 등록금 전액 감면을 촉구하는 100만명 전자서명운동을 내년 3월까지 진행한다고 지난 7일 밝혔다.

김한성 부산대 교수회장이 3월부터 시작한 이 서명운동은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김한성 부산대 교수회장 시작
고사 위기에 내몰린 지방 공생

김 교수 회장은 “지방국립대의 등록금을 면제하면 사교육 열풍으로 인한 집값 이상과 교통체증으로 고통받는 수도권과 인재 역외 유출로 고사 위기에 내몰린 지방이 공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카이스트·포항공대·디지스트·광주 과기원·울산과학기술원과 같이 지방국립대 대학 등록금을 100%무상으로 한다면 지역 인재들이 수도권으로 유출되지 않아 이촌현상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부산대 교수회는 내년 3월까지 100만명 서명을 달성하면 교육부와 비수도권 국회의원에게 결과를 우편으로 발송하고 무상교육을 청원할 계획이다. <환>

 

<기사 속 기사>지역인재 채용 의무화 확대…역차별 논란 해소?

공공기관 지역인재 채용 의무화를 확대하는 법률안이 발의됐다.

자유한국당 이은권 국회의원은 지역인재 채용 의무화 대상이 되는 공공기관 범위를 확대하는 ‘혁신도시 조성 및 발전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7일 밝혔다. 

기존 ‘혁신도시법’은 지역인재의 채용을 독려하고 지역회귀를 장려하기 위해 이전 공공기관의 장으로 하여금 일정 비율 지역 인재를 채용하도록 하고 있다.

혁신도시 없는 충청권 포함
채용 의무 없는 공기관 확대 

하지만 의무 채용 대상이 혁신도시법에 따른 이전공공기관으로 한정돼 지역인재 채용 효과가 적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혁신도시가 없는 충청권(대전, 충남 등)의 경우 세종시 인근이라는 이유로 혁신도시서 제외돼 역차별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이에 따라 이 의원은 기존 ‘혁신도시법’을 따르지 않고 이전해 지역인재 채용의무를 적용받지 않는 공공기관까지 지역인재 채용의무 규정을 적용받도록 개정안에 담았다. 이번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지역인재 채용이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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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