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적인 여행 ②보성 대원사와 티벳박물관

두 개의 불교문화 체험험

▲ 티베트 불탑인 수미광명탑과 대원사티벳박물관

봄 향기 가득한 4월, 전남 보성의 고찰 대원사를 찾아가는 코스는 눈이 호강하는 길이다. 5.5km 진입로에 벚꽃이 만개해 장관을 이루기 때문. 흩날리는 꽃비를 맞으며 취한 듯 걷다보면 어느새 사찰 입구에 도착한다. 
 

▲ 4월이면 대원사 진입로를 따라 벚꽃이 터널을 이룬다. <사진제공:보성군청>

일주문이 맞아주는 여느 절과 달리 이국적인 불탑이 눈에 들어온다. ‘초르텐’이라는 티베트 불탑이다.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높이 15m의 희고 웅장한 수미광명탑과 바람에 나부끼는 오색 깃발이 이채롭다. 맞은편에는 티베트 사원 양식으로 지은 대원사티벳박물관이 우뚝 섰다. 해외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보던 풍경을 눈앞에 맞닥뜨린 듯 낯설고 비현실적이다.
 

▲ 수미광명탑 내부에는 티베트 왕궁 화가가 그린 벽화와 만다라를 봉안했다.

달라이 라마와 인연

대원사티벳박물관과 수미광명탑은 대원사 주지인 현장 스님이 세웠다. 인도 여행 중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만난 것이 인연이 됐다. 티베트 불교문화는 인류가 이룩한 영적인 문명 중 하나로 꼽힌다. 이런 티베트의 정신문화와 예술세계를 소개하고, 한국 불교와 교류를 촉진하고자 2001년 박물관을 열었다. 또 박물관 개관을 축하하는 달라이 라마의 메시지와 티베트·네팔에서 보내온 부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수미광명탑을 만들었다.
 

▲ 불경 구절을 적은 오색 깃발, 타르초

탑 내부에는 티베트의 왕궁 화가가 그린 벽화와 만다라를 봉안하고, 외부에는 네팔에서 제작한 마니보륜 108개를 모셨다. 불교 경전이 들어 있는 마니보륜을 돌리면서 탑을 한 바퀴 돌면 소망이 이뤄진다니 한 번쯤 체험해도 좋겠다. 이때 티베트 불교의 육자진언 ‘옴마니밧메훔’을 암송한다. 온 세상에 부처의 자비가 널리 퍼지기 바란다는 의미다. 
 

▲ 대원사티벳박물관에서 〈신과 함께 저승 여행〉 특별전이 열린다.

바람에 날리는 오색 깃발은 ‘타르초’다. 우주의 5원소(하늘, 땅, 불, 구름, 바다)를 상징하는 파랑·노랑·빨강·하양·초록 깃발에 불경 구절을 깨알같이 적어 끈으로 이었다. 부처의 가르침이 온 세상에 퍼지라는 염원이 담겼다.
박물관에서는 달라이라마실, 티베트 불교회화인 탕카, 티베트 사람들의 생필품인 티포트, 석가모니 직계 후손인 석가족 장인이 만든 불상, 티베트 불교의 정수로 꼽히는 만다라를 볼 수 있다. 
 

▲ 영정 사진을 찍고 유언장을 작성하는 죽음체험실

‘신과 함께 저승 여행’이라는 특별전도 흥미진진하다. 불교의 사후 세계를 극적으로 표현한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에 나오는 7대 지옥과 불교의 10대 지옥을 비교·전시한다. 망자의 시신을 독수리 먹이로 내주는 티베트의 장례문화를 담은 사진이나 영정 사진을 찍고 유언장을 작성한 뒤 관에 들어가 죽음을 체험하는 죽음체험실은 오싹하면서도 성찰할 기회를 준다. ‘영혼이 떠난 시신은 썩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해 떠나는 자도, 보내는 자도 아무 갈등 없이 새들이 먹기 좋도록 살과 뼈를 곱게 빻아 내놓는 천장(조장)의 현장은 다소 충격적이다.
 

▲ 머리로 치는 커다란 목탁이 걸린 연지문 뒤로 극락전이 보인다.

티베트 불교에 이어 한국 불교를 만날 차례다. 백제 때 창건한 대원사는 화재로 소실되고 다시 세우기를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주불전은 불교의 이상향인 서방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극락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87호)이다. 일주문과 사천왕루를 지나고 구품교를 건너 계단을 오르면 연지문 너머 극락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연지문에는 머리로 치는 커다란 목탁이 걸렸다. 두 손으로 목탁을 잡고 이마로 세 번 치며 “나쁜 기억 사라져라, 나의 지혜 밝아져라, 나의 원수 잘되거라”를 외고 들어간다. 
 

▲ 대원사 극락전 서쪽 벽에 있는 관음보살 벽화

구품교 아래 연못은 대원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대원사 경내에는 연못이 7개 있는데, 여름이면 활짝 핀 연꽃과 각종 수생식물로 생태공원을 방불케 한다.

티베트 정신·문화 예술 소개
한국 불교와의 교류 촉진

극락전은 꼭 내부까지 볼 것을 권한다. 특히 좌우 벽을 장식한 벽화에 주목하자. 서쪽 벽에는 흰옷 입은 관음보살과 선재동자가 함께 있는 관음보살 벽화가, 동쪽 벽에는 달마대사와 혜가단비의 고사를 표현한 달마대사 벽화가 그려져 있다. 양쪽에 그려진 이 벽화는 보성 대원사 극락전 관음보살 달마대사 벽화(보물 1861호)로 영조 때인 1766~1767년 작품이라 추정된다.
 

▲ 떠도는 어린 넋을 위로하는 동자상과 태안지장보살상

대원사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어린 영령(태아령)을 위로하는 지장 기도 도량이라 곳곳에 빨간 모자를 쓴 동자상이 많다. 극락전 옆에 어린 영혼들을 천도하고자 봉안한 태안지장보살상이 있고, 천도를 위한 백일기도가 열린다. 
 

▲ 대원사 경내에 핀 매화

그밖에 주요 전각으로 중국에서 존경받는 신라 출신 지장 스님을 기리는 김지장전, 황희정승영각, 아도영각, 템플스테이를 위한 선방 등이 있다. 올해 대원사는 티베트 현지인과 함께하는 티베트 음악과 예술 세계 체험을 비롯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이다. 자세한 일정과 참가 방법은 홈페이지를 참고한다.
 

▲ 대원사 진입로 초입에 자리한 보성군립백민미술관

대원사 방문 전후에 보성군립백민미술관이나 서재필기념공원에 들러도 좋다. 보성군립백민미술관은 1993년에 국내 최초로 개관한 군립 미술관이다. 보성 출신 백민 조규일 화백과 국내 원로·중견 작가, 외국 작가의 작품을 두루 전시한다. 서재필기념공원은 독립협회를 조직하고 〈독립신문〉을 창간하는 등 조국 광복을 위해 열정을 다한 서재필 선생을 기리는 곳으로, 서울의 독립문을 재현한 모형도 있다. 단 유물과 각종 자료를 전시한 서재필기념관은 내부 공사가 끝나는 4월 이후에 관람이 가능하다.
 

▲ 태백산맥문학관 2층에 조정래 작가의 아들과 며느리가 쓴 소설 <태백산맥> 필사본이 있다.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인 벌교도 보성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 조정래 작가의 문학 세계와 〈태백산맥〉 관련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태백산맥문학관, 소화의집, 현부자네집, 김범우의집, 벌교 홍교, 구 벌교금융조합, 구 보성여관, 중도방죽으로 이어지는 소설 속 명소를 따라 걷는 태백산맥문학기행길이 인기다.
벌교 포구를 가로지르는 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벌교 홍교는 국내에 남은 홍교 중 가장 크고 아름다워 보물 304호로 지정됐다. 구 벌교금융조합(등록문화재 226 호)은 일본 건축양식이 반영된 근대건축물이며, 현재 한국 화폐사 전시 공간으로 활용된다. 
 

▲ 국내에 남은 홍교 중 가장 크고 아름다운 벌교 홍교

소설 〈태백산맥〉 배경

소설에서 남도여관으로 나오는 구 보성여관(등록문화재 132호)은 복원을 거쳐 카페와 자료실, 전시실, 소극장, 숙박동을 갖춘 복합 공간으로 태어났다. 근대건축물에서 보내는 하룻밤은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대원사티벳박물관과 수미광명탑→대원사→보성군립백민미술관→서재필기념공원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대원사티벳박물관과 수미광명탑→대원사→보성군립백민미술관→서재필기념공원
둘째 날: 태백산맥기념관→태백산맥문학기행길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보성문화관광 http://tour.boseong.go.kr
- 대원사 www.daewonsa.or.kr
- 대원사티벳박물관 www.tibetan-museum.org
- 태백산맥문학관 http://tour.boseong.go.kr/tbsm
- 구 보성여관 www.boseonginn.org  

문의 전화
- 보성군청 문화관광과 061)850-5214
- 대원사 061)852-1755
- 대원사티벳박물관 061)852-3038
- 태백산맥문학관 061)850-8653
- 구 보성여관 061)858-7528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광주,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5~30분 간격(05:30~다음 날 02:00) 운행, 약 3시간20분 소요. 광천터미널 정류장에서 217번 농어촌버스, 사평터미널 정류장에서 보성-벌교 농어촌버스 환승, 대원사 정류장 하차, 약 2시간30분 소요. 
*문의: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광주유스퀘어 062)360-8114, www.usquare.co.kr 화순 교통 062)373-5666

자가운전
호남고속도로→광주제2순환도로 화순 방면→화순 IC에서 벌교·동복 방면→구암교차로에서 모후산·벌교·보성 방면→대원사삼거리에서 대원사·보성군립백민미술관 방면→대원사

숙박 정보
- 구 보성여관: 벌교읍 태백산맥길, 061)858-7528, www.bo- seonginn.org
- 벌교소형관광호텔: 벌교읍 신정길, 061)858-9800, www.벌교펜션호텔.kr
- 호텔다향: 조성면 조성3길, 061) 804-1004, www.bosungcc.co.kr/html/facility/facility06.asp


식당 정보
- 보성녹차떡갈비원조(한우떡갈비): 보성읍 흥성로, 061)853-0300, http://보성떡갈비원조.crw.kr
- 수복식당(한정식): 보성읍 중앙로, 061)853-3032, www.수복식당.kr
- 국일식당(꼬막정식): 벌교읍 태백산맥길, 061)857-0588

주변 볼거리
주암호, 율포해수녹차센터, 득량역 추억의거리, 한국차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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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