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 부모 피살 전말&의문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03.25 10:43:15
  • 호수 12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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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뭐라고…죽음을 부른 채무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주가조작으로 실형을 받아 감옥에 있는 청담동 주식부자이희진이 없는 사이, 이씨의 부모가 살해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살인 용의자로 체포된 김모씨는 중국 동포 3명을 고용해 이씨 부모를 살해하는 중범죄를 저지르고 현금 5억원 탈취, 시신유기를 하는 등 계획적으로 움직였다. 범행 후에도 모친 행세를 하거나, 이희진씨 동생을 만나는 등 수상한 행동을 보였다. <일요시사>는 사건의 전말과 함께 의문점을 살펴봤다.
 

▲ 이희진씨 ⓒ이희진 페이스북

김씨는 인터넷으로 고용한 공범 3명과 함께 지난달 25일 이희진의 부모를 살해한 뒤 현금 5억원과 이씨 아버지의 차 벤츠를 훔쳤다. 범행 이후 김씨는 이씨의 엄마 휴대전화를 이용해 엄마 행세를 하며 이씨의 동생 이희문씨와 연락을 취하는 등 신고를 최대한 늦췄다.

이희문씨는 엄마와 연락이 원활하지 않자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이씨의 어머니 시신을 발견한 후 CCTV를 분석해 용의자인 김씨를 체포했다. 김씨가 살해혐의로 체포된 후에도 미스터리한 점이 많다.

한 편의
영화 같은…

김씨는 과거 미국서 요트판매대행업체 사업을 하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아지자 귀국했다. 요트 임대업 경험을 가지고 다시 사업을 하기 위해 투자자를 모집했고 이씨 아버지를 여러 번 만난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이씨 아버지의 권유로 투자했다가 손해를 본 상태였다.

김씨는 이씨 아버지에게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하자 이씨 아버지가 거주한 경기도 안양 집을 찾아갈 계획을 세웠다. 김씨는 인터넷 구인 사이트에 경호 인력을 구한다는 글을 올려 중국 동포 3명을 고용했다.


지난달 25일 이씨 부모의 집을 찾은 김씨와 공범자 3명은 오후 351분쯤 이씨 부모의 부재 중인 집을 찾았다. 15분 뒤인 오후 46분 집으로 들어온 이씨 부부는 이희문씨가 부가티 베이런을 팔고 난 일부 금액인 5억원이 들어 있는 스포츠 가방을 갖고 왔다. 가방 안에는 100만원권 수표와 지폐 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따르면 부검 결과 이씨의 아버지는 두부외상과 목 졸림에 의한 질식으로, 어머니인 황씨는 목 졸림으로 인한 질식으로 각각 숨진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 직후 중국으로 달아난 공범 3명이 5억원을 어떻게 분배했는지는 아직 밝혀진 게 없다. 김씨를 제외한 용의자 3명은 오후 1151분 인천발 항공편을 이용해 중국 칭다오로 출국했다.

사건 당일 오후 10시 김씨는 자신의 친구인 A에게 싸움이 났는데 중재해달라고 불렀지만, 친구 A씨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지인인 BC에게 대신 가달라고 부탁했다. 부탁을 받은 2명은 현장에 갔다가 쓰러져 있는 피해자를 발견했다.

두 사람은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고 판단해 김씨에게 신고를 권유하고 현장을 빠져나간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사건 당일 이씨 어머니의 시신을 장롱으로, 아버지의 시신은 냉장고로 옮긴 후 집안을 깨끗이 치웠다.

다음 날인 26일 오전330분경 김씨는 대리기사를 불러 자신은 렉스턴 차량을 운전할 테니 이씨 아버지의 벤츠를 운전해 따라올 것을 부탁한 후 경기도 평택시에 임대해놓은 창고(보증금 1500만원, 월세 150만원) 인근에 주차하도록 했다. 김씨는 벤츠 차량 트렁크에 범행 당시 피해자들의 피가 묻은 이불 등을 실었다가 대리기사가 떠나자 이불을 꺼내 불로 태운 뒤 현장으로 다시 돌아온 것으로 조사됐다.

주가조작 실형 사는 사이 살해
시신 유기하고 현금 5억원 탈취

현장에 돌아온 김씨는 이삿짐 센터를 불러 이씨 아버지의 시신이 담긴 냉장고를 베란다로 빼낸 다음 평택 창고로 옮겼다.


그 후 김씨는 집에서 가져온 이씨 어머니의 휴대전화로 이희문씨와 카카오톡을 하며 어머니 행세를 했다. 이희문씨는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이상한 점을 감지하고 부모님 집으로 찾아갔다. 집 비밀번호가 바뀌어 들어가지 못한 이씨는 어머니에게 카카오톡과 전화로 연락을 했지만 응답이 없자 실종신고를 했다.

지난 16일 오후 4시경 신고를 받은 안양동안경찰서는 오후 6시경 안양 자택 옷장서 이씨 어머니의 시신을 발견했다. 이후 CCTV 분석으로 의심 차량을 추적해 17일 오후 317분 수원의 한 편의점 앞에서 김씨를 체포했다. 김씨의 자백을 들은 경찰은 이날 오후 4시경 평택 창고 안에 있는 냉장고서 이씨 아버지의 시신을 발견했다.

피의자 김씨는 이씨 아버지가 주식투자를 권유해 투자했는데 이 돈을 모두 잃었다고 진술했다. 이씨 아버지는 김씨에게 보유하고 있는 2000만원으로는 사업이 힘들다며 주식투자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투자 성과가 나오지 않자 둘의 관계는 악화됐다고 전해진다. 김씨는 이씨 아버지에게 수차례 돈을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이 김씨로부터 회수한 돈은 1800만원이었다.
 

▲ 이희진 부모 살해 피의자 김모씨

하루가 지난 20일 김씨는 자신이 죽이지 않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어 경호목적으로 아르바이트처럼 3명을 고용한 것이라며 집에 침입해 피해자들을 제압하려고만 했지만 옆에 있던 공범 중 한 명이 남성(이씨 아버지)에게 둔기를 휘두르고 여성(이씨 어머니)의 목을 졸랐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범행 과정을 본인이 세운 것은 인정하지만 살해는 공범자가 한 것이라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그이씨 부모를 포박하고 돈을 요구하던 중 부부가 소리를 지르자 중국 동포가 살해해 본인은 말리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5억 관련해서도 말을 바꿨다. 피해자들에게서 탈취한 5억원을 고용비로 나눠준 것이 아니라 공범자들이 주도적으로 돈을 가졌다고 주장했다.

청부살인업자?
중국 어디로?

김씨는 범행 9일 전인 지난달 16일 재외 동포 구인·구직 사이트에 개인 경호팀을 모집한다는 글을 올렸다. 글 내용에는 20세부터 35세의 신체 건강한 남성을 우대하며 교포나 외국인뿐 아니라 불법체류자도 지원할 수 있다고 적었다. 그뿐만 아니라 군인 출신 및 운동선수, 깡 있는 분을 우대한다는 내용까지 담았다. 주요 업무로 시설 경호, 개인 신변 보호, 범죄예방, 행사 경호로 급여에는 월 300만원서 월 1000만원까지이며 일당이 가능하다고 게시했다.

공범 3명은 사건 당일 오후 1151분 중국 칭다오로 출국해 도주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범행 뒤 곧바로 자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미리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일 안양동안경찰서에 따르면 공범 중 한 명인 D씨 가족은 사건 발생 이전에 중국으로 출국한 기록이 발견됐다. 구체적인 날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올해 초인 것으로 밝혀졌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에 포함된 중국 동포 공범들은 가족들을 먼저 중국으로 피신시킨 뒤 범죄를 저지르고 중국으로 떠난 계획 범죄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중국 동포 3명이 모두 동갑내기 친구로 예전부터 국내서 생활했다고 전했다. D씨를 제외한 나머지 중국 동포 2명은 가족 없이 혼자 한국서 지낸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인터폴 등을 통해 중국 체류 중인 것으로 추측되는 공범 3명에 대해 적색수배를 내린 뒤 국내 송환을 요청했다. 또 이들의 입국을 대비해 인천공항 등에 통보를 요청해 놓은 상태다. 적색수배란 인터폴의 8가지 수배 유형 중 가장 높은 단계로 흉악범죄를 저지른 후 해외로 도피한 범죄자에게 내려진다.

이 사건은 범행동기와 범행 과정 등 아직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다. 김씨와 피해자 간의 채무 관계에 주목해 단순히 2000만원을 돌려받지 못하자 살인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김씨는 진술 과정서 2000만원을 돌려받기 위해 갔다고 주장했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2000만원을 받으러 가기 위해 중국 동포를 데려가는 건 이상하다동원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 우발적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복준 한국범죄학연구소 연구위원도 중국인 세 사람을 고용하는 데 2000만원이 넘어 경호원을 고용해 사람을 살해하는 데 사용했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고 못 박았다. 범죄 관련 업계서도 우발적이 아니라 계획적인 범죄일 가능성을 높다고 봤다.

범행 동기·과정
계획 등 불분명

김씨 일당은 범행을 저지르고 5억원이 든 가방을 가지고 나온 것으로 밝혀졌다. 5억원의 출처를 조사한 결과 사건 당일 오전 이희문씨가 성남의 한 카센터서 부가티 베이런을 20억에 판매한 기록을 확인했다. 15억은 이희문씨 계좌로 송금됐고 나머지 5억은 부모에게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 일당이 이씨의 부모가 5억원을 갖고 올 것이란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도 의문점으로 남는다.

이희문씨의 경우도 26개월 동안 교도소 생활을 했다. 이씨의 부모는 그동안 두 아들에게 생활비를 받지 못해 생활비 명목으로 5억을 받은 것으로 관측된다.
 

▲ ⓒ이희진 인스타그램

범행 과정서도 이상한 점은 한둘이 아니다. 김씨는 이씨 부모가 집안에 없던 것을 이미 알고 비밀번호를 알아내 집 안에 먼저 잡입해 있었던 것인지, 근처에 숨어 있다가 이씨의 부모가 현관문을 열 때 밀치며 함께 집안으로 들어간 것인지 아직 밝혀진 사실이 없다.

김씨가 모친의 시신은 장롱에 두고 부친의 시신만 평택 창고로 옮긴 것도 의문이다.


지난 19일 안양동안경찰서 관계자는 특별한 동기가 있는 게 아니라 두 시신을 모두 옮기기에는 힘들 것으로 판단해 아버지 시신만 옮긴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일부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것으로 위장하기 위해 일부러 한 행동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김 연구위원은 그러기 위해서라면 아버지 시체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야 하는데 이 사건 전에 임대해둔 평택 창고에 시신을 유기한 것은 그럴 의도가 없어 보인다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어 “5억을 노린 거라고 해석하기는 힘들다이희진씨한테 증권 주식 투자과정서 피해를 본 다수의 사람들이 이희진의 아버지를 창고에 압박한 뒤 뭔가를 얻어내기 위해 쓴 방법일 수 있다며 과거 사례를 되짚었다.

공범의 숫자가 많은 것도 의심스럽다. 중국 국적 공범 3명과 범행 후 뒤처리를 위해 요청한 2명 등이다. 살인사건의 경우 공범자가 이렇게 많은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뒤처리를 위해 현장에 간 이들은 단순 폭행 사건인 줄 알고 갔는데 살인 사건이라 빨리 신고하라는 말만 하고 바로 현장을 빠져나왔다고 진술했다.

공범 피의자 3명 출국
영원히 못 잡을 수도?

김씨는 범행 후 휴대전화를 이용해 엄마 행세를 했다. 김씨는 이 과정서 이희문씨를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엄마 행세를 해 내가 잘 아는 성공한 사업가를 만나보라는 말로 유인한 뒤 고깃집서 김씨를 만났다. 김씨의 변호인은 김씨가 범행 사실을 털어놓고 사죄하려고 했지만, 입이 안 떨어져 미국 유학 생활 등 개인적인 얘기만 하고 헤어졌다고 주장했다.

지난 21일 피의자 김씨의 어머니가 5억원 중 25000만원을 가지고 경찰서에 출석했다. 김씨의 어머니는 이날 오전 안양동안경찰서에 자진 출석해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김씨를 검거하면서 김씨의 거주지를 압수수색했지만, 돈을 발견하지 못했다. 김씨 어머니는 아들이 가지고 온 돈을 받고 강도 살인의 증거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 전전긍긍하다가 김씨의 변호사에게 털어놨고, 변호사의 설득으로 자진 출석한 것으로 밝혀졌다.

나머지 잔여금인 23200만원의 행방에 대해서는 수사가 이어질 예정이다.

지난 21일을 기준으로 체포된 사람은 김씨 1명뿐이다. 현재 김씨의 진술만으로 조사를 해야 하는 상황서 김씨의 진술은 신빙성이 많이 떨어지고 있다. 체포 당시 수중에 가진 돈은 1800만원밖에 없다던 김씨였지만 어머니를 통해 25000만원을 반납했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나자 자신은 죽이지 않았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지난 21일 경기 안양동안경찰서는 김씨와 범행에 가담한 후 중국 칭다오로 달아난 중국 동포 3명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됐다고 밝혔다. 중국 동포 3명은 사건 당일 오후 610분경 범행 현장서 빠져나와 택시로 자신들의 거주지인 인천으로 이동해 짐을 꾸린 뒤, 항공권 3매를 예약하고 다시 택시를 이용해 인천공항으로 이동한 것으로 밝혀졌다.

진술만으로···
수사 난항

이들은 공항으로 이동하면서 거주지 관리인에게 전화로 월세 계약을 해지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씨의 진술만으로는 수사가 미궁속으로 빠지게 되는 형국이다. 중국 동포 3명을 이른 시일 내에 구속해 진술을 받아 조사를 진행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은 누구?

이희진은 1986년생으로 안양서 태어나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집안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극단적인 시도를 할 만큼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 이희진이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 2014년 <한경TV>에 증시전문가로 나오면서부터다. 당시 20대의 주식전문가이자 자수성가한 캐릭터로 입지를 구축하며 Mnet <음악의신2>, 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 등에 출연하며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청담동 주식부자라는 별명을 얻은 이희진은 승승장구하다가 20169월 동생인 이희범씨와 함께 사기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이희진은 이희범과 함께 금융투자업 인가를 받지 않은 투자 매매회사를 만들어 170억원의 주식을 매매하고 시세차익 130억원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재판과정서 피해자 211명에 피해액이 27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져 자본시장법과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 처벌법상 사기 등의 혐의로 징역 5, 벌금 200만원, 추징금 130억원을 선고받았다.

201610월 이희진이 활동한 온라인 카페에서는 이희진이 옥중서 쓴 자필 편지를 공개한 바 있다. 편지의 내용에는 회사를 잘 키워보려는 욕심이 와전돼 슬프다평생 회원들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돌아갈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어 회원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중국어, 베트남어, , 회계 공부를 병행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

현재는 서울남부교도소에 수감됐으며 지난 18일 부모 장례절차 준비로 구속집행정지가 받아들여져 빈소를 지키고 발인식을 치른 후 다시 입소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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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