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정치권이 변화하고 있다. 최근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은 정당 사상 최초로 당협위원장을 ‘슈퍼스타K’ 형식으로 뽑는다고 발표했다. 정치적 메시지를 지지자들에게 직접 전하려는 정치인들의 바람은 유튜브 광풍을 불러왔다. 정치인들의 방송 나들이는 여전히 식을 줄 모른다. 변화에 인색했던 정치권에 무슨 바람이 분 걸까.
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이하 조강특위)는 지난 8일, 국회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회의원 선거구 당협위원장을 공개오디션으로 선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슈퍼스타K(이하 슈스케)를 시작으로 방송가에 흥행보증수표로 자리매김한 오디션 방식을 차용한 것이다. 공개오디션으로 당협위원장을 선발하는 일은 정당 사상 첫 시도다.
슈스케 도입
슈스케식 오디션은 서울 강남과 대구·경북(TK), 부산·경남(PK) 등 전통적인 텃밭 지역에 국한해 실시됐다. 즉 한국당이 험지로 여기는 지역의 당협위원장 선발에는 슈스케 방식이 적용되지 않았다. 하루에 5곳씩 총 15개 지역서 36명의 후보자가 참여한 ‘토론 배틀’은 유튜브로 생중계됐다.
한국당엔 앞서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20대 총선을 앞둔 지난 2016년 ‘국민께 열린공천’을 진행한 바 있다. 당시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는 현역 의원을 포함해 공천 후보자를 추려 면접을 진행했다. 당시 면접은 인터넷 방송을 통해 생중계로 진행됐다.
슈스케 방식의 도입은 정치권서 일찍이 고려된 바 있지만, 최근까지도 회의적이었다. 정치인들의 거부반응 때문이었다. 이번 한국당 오디션 때도 “공개오디션까지 봐야겠느냐”며 자존심 상해하는 인물이 있었다는 전언이다.
당 지도부 입장서도 슈스케 방식의 도입은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자칫 국민들에게 ‘인기에만 영합하려 든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당에서 필요로 하는 요소인 정책 및 정무감각 등은 뒷전으로 밀린 채 경쟁력 없이 외모만 빼어난 후보가 선발될 위험성도 있다. 공개오디션이다 보니 타당 지지자들의 ‘역 선택’을 걸러내기도 힘들다.
이러한 위험성에도 한국당이 슈스케 카드를 꺼내든 이유는 젊은 표심을 공략하기 위함으로 읽힌다. 한국당 조강특위가 오디션 대상자를 발표할 때 젊은 인재들을 특히 강조한 부분이 이를 짐작케 한다. 앞서 조강특위는 오디션 대상 중 1970년대생이 8명, 1980년대생이 3명으로 전체 30%가량이 젊은 연령대의 인물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한국당은 청년보수를 앞세워 오는 21대 총선 때 민주당과 ‘2030 표심’을 둔 정면 대결을 펼친다는 복안이다.
유튜브 광풍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의 ‘홍카콜라TV’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알릴레오’ 등 유명 정치인들은 이제 유튜브를 운영하며 지지자들과 직접 소통한다.
이유는 무엇일까. 당사자들의 말 속에 정답이 있다. 홍 전 대표는 기존의 언론이 자신의 발언을 왜곡해 전달한다고 비난했다. 홍카콜라TV 첫 방송 당시 그는 “여론이 조작으로 점철돼있고, 언론을 통해서 여론도 조작하고 있다고 세상을 향해 늘 주장해왔다”며 “홍카콜라를 하고자 하는 이유는 이러한 여론 왜곡, 조작 현상을 바로 잡자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당협위원장 뽑으려 공개오디션
텍스트→영상 유권자도 달라져
홍 전 대표가 페이스북 정치를 했던 이유도,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이유도 결국 지지자들과 직접 소통하기 위함이다.
유 이사장은 가짜뉴스를 검증하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밝혔다. 알릴레오 채널 개설을 알릴 당시 그는 “반지성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혹세무민하는 보도가 넘쳐나고 있어 일주일에 한 번은 정리를 해줘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가짜뉴스는 문재인정부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사회문제다. 일례로 ‘대북 쌀 지원으로 쌀값이 폭등했다’ ‘남북정상회담 당시 대통령 전용기에 태극기가 사라졌다’ 등의 가짜뉴스가 판을 치자 이낙연 국무총리는 “가짜뉴스는 민주주의의 교란범”이라고 경고하며, 가짜뉴스 제작자는 물론 유포자도 엄중 처벌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유튜브에 앞서 여론을 이끄는 대표적 미디어 플랫폼은 ‘네이버’ ‘다음’ 등 포털사이트였다. 국민들은 포털사이트 상위·연관 검색어 등을 통해 그날의 이슈를 확인했다. 지금도 이러한 양상은 여전하지만, 과거에 비해 좀 더 주체적으로 정보를 취사선택하고자 하는 국민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텍스트보다 영상에 익숙한 밀레니엄 세대(1980년대 이후 출생)가 주요 소비층으로 부상하면서 정치인의 유튜브 광풍을 불러왔다. 이들은 자신의 평소 생각을 대변해주는 정치인과 직접 소통하고 싶어 한다. 바야흐로 여론을 선도하는 플랫폼이 포털사이트서 유튜브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자연스레 유튜브가 현실정치의 장으로 성장하고 있다.
‘폴리테이너(politician+entertainer, 방송에 출연하는 정치인 또는 그 반대말)’ 열기는 최근 정치권에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다. 정치인 특유의 무거운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방송예능에 출연해 입담을 과시하고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TV조선 예능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내의 맛>, 김한길 전 국회의원의 tvN 예능 <따로 또 같이>, 유시민 이사장의 tvN 예능 <알쓸신잡 3> 출연이 대표적이다. 이 외 단발성 출연까지 더하면 그 수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
방송 욕심
과거 정치인에게 대세는 ‘광장정치’였다. 서울 도심의 큰 공원에 지지자들을 불러 모아 연설했다. 당시 정치인들에게는 큰 목소리와 정확한 전달력이 필수였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정치인에게 필요시 되는 덕목도 달라졌다. 이제는 친근한 표현력과 공감능력이 유권자들에게 큰 점수를 받게 하는 요소다. 21대 총선은 누가 더 ‘랜선정치’를 잘하느냐의 싸움으로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