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방 ②파주출판도시

책에 대한 모든 것을 누리다

▲ 파주출판도시의 중심 공간인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전경

국내서 책의 향이 가장 짙게 배어나는 파주출판도시는 국내 굴지의 출판사와 관련 업체만 입주한 전형적인 공간이 아니다. 출판사나 인쇄 회사가 만든 책방과 북카페에 머물며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곳곳에 자리한 갤러리와 전시관, 박물관을 구경하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다.
 

▲ 높이 8m 대형 서가가 늘어선 지혜의숲

파주출판도시의 중심 공간은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다. 미적 감각이 뛰어난 독서 문화 공간 ‘지혜의숲’, 북 스테이를 경험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 지지향’, 출판도시활판인쇄박물관 ‘활자의숲’ 등이 있다.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2014년 개관한 지혜의숲은 책을 자유롭고 편하게 만나는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크고 넓은 세 공간에 높이 8m 대형 서가가 이어진다. 이 서가에 빼곡한 책이 13만여권, 수장고에 있는 책을 포함하면 20만권이 넘는다. 모두 기증한 책이라는 점이 더욱 놀랍다.

1관은 개인과 단체, 2관은 출판사, 3관은 출판사와 유통사, 미술관, 박물관서 기증한 도서로 구성했다.

 

▲ 지혜의숲 2관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

높은 서고, 정돈된 독서 공간, 넓은 창으로 들어오는 바깥 풍경까지 책 읽기에 딱 좋다. 나란히 앉아 책을 읽는 연인, 아이에게 동화책을 소곤소곤 들려주는 엄마, 홀로 커피를 마시며 독서 삼매경에 빠진 사람까지 책이라는 ‘벗’을 마주하는 느낌이다. 지혜의숲은 누구에게나 무료로 열린 공간이다. 1관은 오전 10시~오후 5시, 2관은 오전 10시~오후 8시, 3관은 24시간(연중무휴) 운영한다.

 

▲ 출판도시활판인쇄박물관 활자의숲에서 인쇄 체험을 하는 어린이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2층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 지지향은 ‘종이의 고향’이라는 뜻으로, 독서 휴양을 즐기는 숙박 시설이다. 책을 읽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에는 견학과 체험 중심으로 운영하는 출판도시활판인쇄박물관 활자의숲이 있다. 금속활자 3500만여자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쇄기를 구경하고, 활판인쇄 체험도 해보자.

한지 노트 만들기, 내가 만든 이솝우화집 체험이 인기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며(연중무휴), 입장료는 3000원(체험비 별도)이다.

 

▲ 담쟁이덩굴이 아름다운 효형출판 건물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를 둘러봤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책과 함께할 시간이다. 파주출판도시는 가장 큰 도로인 문발로를 중심으로 서쪽 광인사길, 동쪽 갈대샛강과 회동길이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다. 광인사길은 1884년에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출판사를 겸한 근대식 민간 인쇄소인 광인사를, 회동길은 1897년에 설립한 근대 서점인 회동서관을 기념하기 위해 명명했다니 기억해두면 좋을 듯싶다.

 

▲ 국내에서 유일하게 근대 납 활자 인쇄 방식으로 책을 만드는 활판공방 내부

아이와 함께 파주출판도시에 왔다면 어린이책 전문 출판사를 찾는 것이 좋다. 보림출판사의 ‘보림책방’과 보리출판사의 ‘보리책놀이터’가 대표적이다. 보림출판사는 책방과 인형극장이 결합된 독특한 공간이다. 보림책방은 아이들이 책을 편하게 볼 수 있도록 테이블과 의자를 놓은 점이 눈에 띈다. 이웃한 보림인형극장서 정기적으로 인형극 공연을 한다.

주말에는 책도 읽고, 인형극 관람도 즐기는 가족이 많다. 운영 시간은 오전 10시30분~오후 6시(월요일 휴무)다.

 

▲ 심학산 정상에서 바라본 강화도의 일몰

영·유아 도서 전문 보리출판사는 보리책놀이터를 운영한다. 1층은 차 한잔 나누며 책을 읽는 북카페, 2층은 보리출판사서 출간한 책을 전시·판매하는 책방이다. 검은 서가가 둘러싼 가운데 풀이 자라는 타원형 벤치가 놓여 이색적이다. 운영 시간은 북카페 오전 8시30분~오후 7시, 책방 오후 12시~오후 5시다.

 

▲ 오두산통일전망대 4층에서 본 임진강과 북녘땅

파주출판도시서 꼭 가봐야 할 곳으로 ‘활판공방’과 ‘열화당책박물관’을 추천한다. 활판공방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근대 납 활자 인쇄 방식으로 책을 만드는 곳이다. 활자 주조부터 원고에 맞게 활자를 찾아 모으는 문선, 활자를 지정한 원고대로 판을 짜는 조판, 인쇄와 제본까지 수작업으로 책을 만든다. 활판공방에서는 이 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운영 시간은 평일 오전 10시~오후 6시, 주말·공휴일 오후 12시~오후 6시다.

광인사길에 위치한 열화당책박물관은 책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배우고, 책이 전해주는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다. 세계적인 희귀본으로 1556년 제작된 독일어판 마르틴 루터 전집, 파피루스에 그린 그림 등 동서양을 아우르는 고서를 전시한 옛 책 공간,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출간된 전 세계의 특색 있는 책을 전시한 새 책 공간이 주를 이룬다.

책 향기 가장 짙게 배어나는 곳
갤러리·전시관 등 볼거리 풍성

2층은 서가형으로 새 책 공간과 옛 책 공간을 내려다볼 수 있는 라운지로 꾸몄다. 운영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5시(주말·공휴일 휴관), 입장료 5000원이다.

파주출판도시 동쪽에 자리한 심학산(194m)은 등산로 5곳과 둘레길이 있다. 정상까지 800m로 30~40분이면 충분하고, 가파르지 않아 산책 삼아 다녀오기 좋다. 산이 낮아도 풍경은 그만이다. 정상 전망대에 오르면 북쪽으로 오두산통일전망대 너머 북한 개풍군까지 보이고, 서쪽으로 한강 너머 강화도로 떨어지는 일몰이 아름답다.

 

▲ 마장호수흔들다리는 길이 220m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

자유로와 나란히 흐르는 한강은 오두산에서 임진강과 만난다. 두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오두산 정상에 지상4층, 지하1층 규모의 오두산통일전망대가 있다. 3~4층 전망 시설서 보면 한강과 임진강이 하나로 모여 김포, 강화도를 거쳐 서해로 빠져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임진강 건너편이 북한 개풍군이다. 황량한 들판 곳곳에 있는 집 사이로 주민의 움직임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파주프리미엄아울렛을 지나면 5분도 걸리지 않아 파주 장릉(사적 203호)이 나온다. 지난 9월부터 일반에 공개한 장릉은 조선 16대 인조와 인열왕후의 능이다. 원래 현 위치보다 북쪽에 있었으나 영조 때 천장하면서 합장릉으로 조성했다. 인조와 영조 때 조성한 석물이 어우러져 독특하다.

장릉의 매력은 재실 앞에 있는 느티나무 군락이다. 주변으로 벤치가 놓여 차분하면서도 늦가을 분위기가 충만하다. 왕릉 영역에서 홍살문과 삼도, 정자각과 신도비를 차례로 만나고, 정자각 너머 언덕에 인조와 인열왕후가 나란히 잠든 합장릉이 있다.

 

▲ 벽초지문화수목원의 가을 풍경-사진제공·벽초지문화수목원

마장호수흔들다리와 감악산출렁다리는 파주 여행의 핫 플레이스다. 지난 3월에 개장한 마장호수흔들다리는 6개월 만에 200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다. 호숫가를 따라 원점 회귀형 3.3km 산책로가 있고, 그 중심에 마장호수흔들다리가 걸렸다. 흔들다리는 길이 220m로 현재 국내서 가장 길다. 높이 15m 전망대에 올라서면 마장호수가 지긋이 내려다보이고, 흔들다리에 올라서면 시퍼런 호수의 물길이 아찔하다.

인생사진 ‘벽초지문화수목원’

파주출판도시서 마장호수흔들다리로 가는 길에 벽초지문화수목원이 있다. 수목원은 크게 한국식 정원과 유럽식 정원으로 나뉜다. 이곳을 대표하는 벽초지 입구에서 직진하면 장수주목터널,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단풍길이다. 11월이면 단풍길이 제법 아름답다.

장수주목터널은 길이 100m가 채 안 되지만 ‘인생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기기 좋다. 벽초지는 호수에 하늘거리는 버드나무 군락과 파련정이 그림 같다. CF나 드라마,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곳이다. 벽초지문화수목원에서는 오는 24일부터 까만 밤을 화려하게 물들이는 빛축제가 시작된다.

 

▲ 감악산출렁다리를 건너는 여행객

마장호수에 흔들다리가 있다면, 파주시 적성면에 우뚝 선 감악산(675m)에는 출렁다리가 있다. 경사가 급하지 않아 5분쯤 걸으면 출렁다리 입구에 닿는다. 감악산출렁다리는 설마리계곡을 건너 150m나 이어진다. 출렁다리에 사람이 많을 때는 서 있기 힘들 정도로 흔들려 짜릿하다. 감악산에 오르지 않고 출렁다리를 건너 법륜사와 운계전망대까지 다녀와도 좋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오두산통일전망대→파주 장릉→파주출판도시(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내 지혜의숲, 출판도시활판인쇄박물관 활자의숲-활판공방 체험-열화당책박물관)→심학산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마장호수흔들다리→벽초지문화수목원→감악산출렁다리→오두산통일전망대→파주 장릉, 
둘째 날: 파주출판도시(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내 지혜의숲, 출판도시활판인쇄박물관 활자의숲-활판공방 체험-열화당책박물관-보림책방-보리책놀이터)→심학산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파주시 문화관광포털 https://tour.paju.go.kr
- 출판도시문화재단 www.pajubookcity.org
-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 사업협동조합 www.ibookcity.org
- 오두산통일전망대 www.jmd.co.kr
- 파주 장릉 http://royaltombs.cha.go.kr
- 벽초지문화수목원 www.bcj.co.kr
- 마장호수 http://majanghosu.com  

문의 전화
- 파주시청 관광과 031)940-4363
- 출판도시문화재단 031)955-0050
- 출판도시안내센터 031)955-5959
-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 사업협동조합 031)955-0001
- 지혜의숲 031)955-0082
- 활자의숲 031)955-7955
- 보림책방 031)955-3456
- 보리책놀이터 031)950-9590
- 활판공방 031)955-0084~5
- 열화당책박물관 031)955-7021
- 오두산통일전망대 031)956-9600
- 파주 장릉 031)945-9242
- 벽초지문화수목원 031)957-2004
- 마장호수흔들다리 031) 940-4720
- 감악산출렁다리 031)940-4617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지하철 2·6호선 합정역 1번 출구에서 2200·200번 버스, 은석교사거리 정류장 하차, 약 40분 소요. 
*문의: 신성교통 031)949-6040

자가운전
자유로(문산·통일동산 방향)→장월 IC→세종삼거리 지나 은석교사거리에서 우회전→회동길→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숙박 정보   
- 게스트하우스 지지향: 파주시 회동길, 031)955-0090, www.jijihyang.com
- 골든힐호텔: 탄현면 성동로, 031)942-0222, www.goldenhillhotel.co.kr
- 호텔시에나 : 파주시 소리천로, 031)943-7260, www.hotelsienna.com
- 메이트호텔 파주: 탄현면 엘씨디로241번길, 031)945-1029, www.matehotel-paju.com
- 가을노을펜션: 탄현면 새오리로161번길, 010-9814-2010, www.pajukidspension.co.kr
- 파주펜션힐: 적성면 감악산로, 031)959-2353, www.pajupension.co.kr

식당 정보
- 완이네작은밥상(오색떡국): 파주시 문발로, 031)955-6162
- 다이닝노을(패밀리세트): 파주시 회동길(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내), 
031)955-0070, www.diningnoeul.co.kr
- 전라도무지개밥상(무지개밥상정식): 파주시 교하로681번길, 031)942-7508
- 할머니묵집(착한묵밥): 파주시 돌곶이길, 031)942-3017
- 오두산막국수 통일동산점(막국수): 탄현면 성동로, 031)941-5237
- 춘천정통닭갈비(닭갈비): 파주시 교하로, 031)946-2220
- 로빈의숲(수제돼지갈비): 탄현면 장릉로102번길, 031)945-1999, http://robinbbq.com

축제·행사 정보
파주장단콩축제: 2018년 11월23~25일, 임진각광장과 평화누리 일대, 031) 940-5282

주변 볼거리
임진각평화누리, 반구정, 파주 이이 유적, 율곡수목원, 보광사,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프로방스마을, 헤이리예술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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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