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새해캠페인> 斷③ 심신 갉아먹는 ‘중독’밀착해부

‘알게 모르게 빠졌다’가 죽음에 풍덩(?)


인터넷 활성화, 다양한 문화 유입 여파 각종 중독자 늘어
온라인게임·채팅·쇼핑·포르노 중독 낳는 인터넷 중독

대한민국이 중독에 빠졌다. 과거에는 중독이라 하면 떠오르는 것은 술이나 마약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나 인터넷의 발달, 자극적이고 다채로운 문화의 유입은 더욱 다양하고 빠져들기 쉬운 중독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가 아닌 자신만의 세계에서 만족감을 찾는 외로운 현대인들은 중독에 더욱 노출되어 있다. 어느 한 분야에 외골수로 빠져드는 경향이 중독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게임, 명품, 성형, 섹스, 도박 등 한 개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각종 중독은 바로 옆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2009년에는 반드시 끊어야 할 ‘중독’의 세계를 파헤쳤다.

‘술이나 마약 따위를 지나치게 복용한 결과 그것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병적 상태.’ 중독의 사전적 의미다. 모든 중독행위는 ‘쾌감중추의 자극’과 ‘도파민 호르몬의 분비’라는 뇌 활동으로 인해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어딘가에 깊이 몰두해 병에 이른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자신도 모르게 빠져든 그 무엇 때문에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중독자’들이 도처에 존재하고 있다.

중독자가 증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중독될 거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과거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자극적인 문화가 밀려오는데다 인터넷은 어떤 분야든 더욱 깊이 빠져들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 중독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이로 인해 중독증상은 특정한 문제가 있는 이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쉽게 발견되는 현상이 됐다.


현실과 사이버 혼돈
각종 범죄 부르기도

여러 중독 중 접근과 노출이 가장 쉬운 것은 인터넷 중독이다. 인터넷 인구가 늘어난 만큼 컴퓨터 앞에서 세상과 소통하는 이들도 증가하고 있다. 특히 어릴 때부터 인터넷을 접한 청소년들의 인터넷 중독은 심각한 수준이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이상민(자유선진당) 의원에 제출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 학생 대상의 인터넷 중독 자가진단 결과 ‘인터넷 고위험사용자군’으로 분류된 학생이 9만9584명에 달했다.

사람들이 인터넷에 빠져드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 중 하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깊이 몰입해 시간이 지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 수많은 정보가 있고 놀 거리가 있는 사이버 세상에 빠져 있는 동안 사람들은 현실의 불안감이나 고통에서 해방되는 즐거움을 느낀다.

클릭 한번이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는 점, 익명성을 이용해 자신을 감추고 활동할 수 있다는 점, 현실 속에서 억압되었던 공격성과 충동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도 인터넷의 매력이다.

인터넷 중독은 또 다른 중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온라인 게임중독, 채팅중독, 인터넷쇼핑중독, 인터넷도박중독, 포르노중독 등 개인과 가정, 사회의 기반과 경제까지 흔드는 중독들이다.

이 중독들은 다른 범죄를 파생시키기도 한다. 일례로 폭력적인 온라인게임에 중독된 사람이 현실과 사이버공간을 구분하지 못하고 폭행, 살인 등의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를 꼽을 수 있다. 성인물에 빠져 화면 속에서 본 데로 성폭행을 저지르는 청소년이 증가하는 것 또한 인터넷 중독이 만든 현상이다.


이처럼 각종 사회문제를 유발하는 인터넷 중독을 극복하는 첫 단계는 본인이 중독에 빠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 다음엔 어떤 경우에 인터넷을 찾는지를 체크하고 유발요인을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일상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찾는 것도 중독에서 헤어 나오는 방법 중 하나다. 청소년의 경우 학업·직업·약물·가족·대인관계 등 여러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통합적인 상담을 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타인의 시선을 끌고 싶거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또는 부족한 자신감을 찾으려다 중독에 빠져들기도 한다. 이중 하나는 명품 중독증. 최악의 불황에도 명품브랜드의 매출만큼은 꾸준히 올라가고 있는 현실이 명품중독에 빠진 현주소를 보여주기도 했다.

명품에 빠져 카드를 긁다 신용불량자로 전락해 성매매를 하는 여대생, 사채를 빌려 명품을 샀다가 사채업자들에게 고초를 당하는 주부 등 명품중독이 낳은 폐해도 수없이 발견되고 있다.

일부 젊은 여성들에게 해당됐던 명품중독은 이제 남녀노소와 수입정도를 불문해 나타나고 있다. 명품과는 거리가 멀었던 중년남성들도 명품족 또는 된장남 대열에 합류해 천박한 소비생활을 일삼기도 한다.

명품을 사기 위해 1년 간 모은 아르바이트 급여를 쏟아 부었다는 중학교 2학년 A군도 명품중독에 빠진 케이스다. 초등학교 때부터 각종 명품에 눈을 떴다는 A군이 처음 명품을 구입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다.

당시 A군은 점찍어둔 루이비통 반지갑을 사기 위해 3년여 간 모았던 비상금을 썼다. 60만원을 호가하는 지갑을 사기 위해 세뱃돈을 모은 통장과 돼지저금통까지 과감히 깬 A군은 당장 명품관으로 달려가 꿈에 그리던 지갑을 샀다고 한다.

그러나 지갑을 사자마자 또 다른 명품이 눈에 들어왔다. 명품 브랜드 ‘까르띠에’의 시계를 본 순간 지갑은 A군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밤낮없이 시계가 눈앞에 아른거리던 어느 날, A군은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시계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며칠 뒤 주유소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고 꼬박 1년을 일해 700여만원을 모아 원하던 시계를 샀다.

된장녀와 성형 미인
자신감 회복이 급선무

무려 1년을 계획하고 땀 흘려 사고 싶은 명품을 샀지만 A군의 만족감이 모두 채워진 것은 아니다. 그는 더욱 값비싸고 마음에 드는 명품이 생기면 손목에 찬 시계가 하찮게 느껴질 것이고 명품중독으로의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명품중독에 빠지는 사람들이 대체로 신체적 콤플렉스 등의 열등감에 시달리거나 자신이 처한 사회적 신분이나 계층에 피해의식을 가졌다고 말한다. 또 공허한 내면을 물질로 채우려는 욕심도 명품중독으로 이끈다고 한다.

성형중독과 다이어트중독 역시 명품중독과 같은 맥락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외모를 바꿈으로써 부족한 자신감이 채워지길 기대하는 심리에서 비롯되는 것.

잦은 성형수술로 얼굴이 변형된 ‘선풍기 아줌마’로 그 심각성이 알려진 성형중독은 지금도 많은 이들, 특히 여성들이 시달리고 있는 중독이다. 정신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부작용의 위험에도 노출된 성형중독자들은 지금도 거울 앞에서 손 댈 곳을 찾고 있다.


폭식증과 거식증까지 부를 수 있는 다이어트 중독증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몸무게가 40kg도 안 되는 여성이 아직도 뚱뚱하다며 다이어트 약을 밥 먹듯 먹는 영상은 이제 충격을 주지도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명품, 성형, 다이어트 등 자신감의 부족에서 나타나는 중독증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가진 장점과 매력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어떤 치료도 허사라는 것.

극심한 충동을 이기지 못해 강박적으로 섹스에 매달리는 ‘섹스중독’도 최근 많은 이들이 시달리는 중독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섹스중독은 성도착증과 같은 병에 걸린 사람들이나 겪는 증상이라는 의식이 팽배했다.

그러나 섹스중독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중독 중 하나다. 특히 포르노에 빠진 이들 가운데 이 증상을 보이는 이들이 많다. 자극적인 영상에 길들여져 정상적인 성관계에는 만족하지 못해 변태적인 섹스를 원하거나 지나치게 섹스에 대한 생각에 빠져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등 부작용은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일도 운동도 적당히
욕심이 화 불러

섹스중독자들은 또 스와핑, 원조교제, 성매매 등 금기된 성관계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 아내나 연인과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더 큰 자극을 얻으려는 것.


이에 대한 욕구는 알콜이 더해졌을 때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술자리를 하면 2차를 나가서라도 꼭 섹스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들이 섹스중독자에 분류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흔히 섹스중독은 남성들에게만 해당하는 증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의외로 여성들 가운데에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떠오르는 섹스 생각에 고민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남편과의 성관계가 뜸해져 자위행위에 집착하는 중년여성의 사례, 채팅 등을 통해 낯선 남성을 만나서라도 욕구를 채우고 마는 사례 등이 이를 말해준다.

전문가들은 섹스 중독증이 병의 성격상 완치가 힘들고 재발할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확인하는 즉시 상담을 받을 것을 권유하고 있다.

최근 물의를 일으킨 유명인들로 인해 다시 불거진 ‘도박중독’ 역시 오랜 세월동안 뿌리 뽑히지 않는 중독 중 하나다. 특히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쉽고 빠르게 한몫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도박중독에 빠지는 사람이 늘고 있다.

덕분에 카지노 노숙자, 사기도박피해자 등 도박중독의 덫에 걸린 이들도 증가하고 있다. 더군다나 안방에서 즐길 수 있는 인터넷 도박 사이트가 우후죽순 생기면서 미성년자들까지 도박에 빠져드는 세태를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누구나 쉽게 빠질 수 있는 도박중독. 전문가들은 다른 중독에 비해 빠져나오기 쉽다고 말한다. 물론 당사자의 의지와 노력, 가족의 도움과 상담기관, 병원 등의 유기적인 협력이 이뤄졌을 때 가능하다.

앞서 말한 중독과는 달리 ‘나도 한번 중독됐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할 만한 중독도 있다. 일중독과 운동중독이 그것. 그러나 이 두 가지도 정도를 넘어서면 매우 위험하다. ‘슈퍼 직장인 증후군’이라고도 불리는 일중독증은 근무시간이나 퇴근 후나 온통 일 생각으로 가득 차 스스로를 혹사시키는 증상을 말한다. 

다른 중독에 빠진 사람들이 비난의 대상이 되는 반면 일중독에 걸린 사람들은 성실한 사람이나 능력 있는 사람으로 칭찬받기 때문에 질병이라는 인식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일중독은 피로와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알콜 중독, 우울증, 자살 등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명백한 질병이란 점에서 그 위험성이 있다.

하루라도 운동을 거르면 불안한 운동중독 역시 죽음을 초래하기도 하는 무서운 중독이다. 운동중독자들이 심한 운동을 꾸준히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운동을 할 때 느끼는 일종의 황홀감 때문이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고통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희열을 맛본다는 것.

그러나 모든 것은 과유불급의 법칙이 통한다. 몸이 감당해내기 힘든 과도한 운동은 족관절 인대 손상, 십자인대 손상 등의 역효과를 가져온다. 좋아하는 운동을 오래하고 싶다면 스스로 몸에 맞는 강도를 조절하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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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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