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촌신협 직원, 수십억대 고객돈 횡령 전말

  • 정혜경 jhk@ilyosisa.co.kr
  • 등록 2012.05.21 17: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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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돈 놀아나는데 13년간 ‘몰랐다’

[일요시사=정혜경 기자] 경기도 광주시 퇴촌신협이 쑥대밭이 됐다. 30대 여직원이 13여년에 걸쳐 고객 87명의 돈 32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나서다. 문제는 해당 신협이 이 기간 내내 여직원의 범행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피해를 본 고객의 신고를 받고서야 화들짝 놀라 감사에 들어갔다. 게다가 문제의 여직원이 자수할 때까지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쉬쉬 했다는 얘기다.

경찰은 최근 수십억대의 고객돈을 횡령한 혐의로 광주 퇴촌신협 직원 김모씨를 입건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고교 졸업 직후인 지난 1993년 퇴촌신협에 입사한 김씨가 고객돈에 손을 대기 시작한 건 지난 1998년 출납 업무를 전담하게 된 직후부터다.

노인이 타깃

김씨는 고객들이 1~3년 단위로 목돈을 맡기는 정기예탁금만 골라 고객에게 주는 통장에는 제대로 액수를 기입하고 신협 원장에는 예탁금의 10분의 1이나 100분의 1만 기입하는 식으로 고객과 신협 양쪽을 모두 속였다.

김씨의 먹잇감은 주로 노인들이었다. 은행업무를 잘 모른다는 점을 악용, 통장에 금액을 손으로 적어주는 등의 수법을 써서 돈을 빼돌렸다. 이렇게 13년여 동안 김씨가 빼돌린 돈은 무려 32억원. 김씨는 이 가운데 12억원을 주식투자와 생활비 등 개인용도로 사용했다.

횡령액이 점차 커지면서는 일부 예탁금은 만기가 돌아온 예탁금에 채워 넣는 ‘돌려막기’까지 했다. 김씨는 예탁금 만기가 돌아오면 다른 직원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여름휴가도 가지 않고 업무를 하며 돌려막기를 했다.

올해 들어 김씨는 급기야 보통예금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주식투자 실패 등으로 더 이상 ‘돌려막기’를 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지나친 욕심은 결국 김씨의 발목을 잡았다.


지난달 24일 퇴촌신협 보통예금 고객이 자신의 통장잔고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1500만원이 인출됐다가 다시 입금된 사실을 확인해 신협에 신고한 것.

김씨는 신고를 받은 신협이 자체 감사에 착수하자 지난 10일 변호사와 함께 경찰에 출두해 13년간 고객 87명의 통장계좌에서 모두 32억원을 인출한 사실 일체를 자백했다. 김씨가 돈을 빼서 쓴 87개 계좌 중 보통예금 3개는 모두 올해 들어 출금한 것으로 조사됐다.

32억원 빼돌려 주식투자와 생활비 등으로 사용
감시시스템 구멍…사실 확인하고도 신고 안 해

문제는 김씨가 무려 13년에 걸쳐 수십억원의 고객돈을 횡령했음에도 퇴촌신협이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퇴촌신협의 내부감시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퇴촌신협은 자체감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고객들의 피해사실을 확인했으나, 김씨가 자수할 때까지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이번 일로 퇴촌신협은 영업정지 명령을 받았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5일부터 오는 11월 14일까지 6개월간 경영관리에 들어가 예탁금과 적금 등을 포함한 조합의 모든 채무의 지급을 중단하고 이사장을 포함한 전 임원의 직무집행이 정지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퇴촌신협은 앞으로 6개월 동안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경영관리에 들어간 상태에서 퇴촌신협의 부실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실사를 벌이게 된다. 금융감독원은 경영 관리인으로 신협중앙회 소속 직원을 선임했다.

금감원의 이번 조치는 최근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된 저축은행들에 대한 조치와 같은 수준으로, 퇴촌신협의 자본금이 170억원인 점을 감안할 때 32억원이라는 횡령금액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퇴촌신협은 지난 1993년 1월 지역 유지 100여명을 중심으로 설립돼 현재 2000여명의 조합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출자자만 1000여명이 이른다. 주 이용고객은 이 지역 자영업자, 소상공인, 농업인, 퇴직자 등이다.

조합원 발 동동

하지만 이번 영업정지 조치로 금융업무가 중단되면서 입출금조차 불가능해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당장 물품대금 결제와 종업원 인건비 등을 처리할 수 없게 되는 등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이와 관련, 금감원 측 관계자는 “조합원 보호 및 경영정상화 추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1회에 한해 6개월 범위 안에서 경영관리기간을 연장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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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