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선 불출마설 파문 실체 추적

  • 이해경 lovehk@ilyosisa.co.kr
  • 등록 2012.05.09 14: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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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까지 뒤흔든 해프닝 “누가 왜 흘렸나?”

[일요시사=이해경 기자] 난데없이 흘러나온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대선 불출마설’로 지난 한 격랑에 휩싸였다. 그의 불출마설에 ‘안철수 영입론’과 함께 ‘김두관 대망론’ ‘김두관과 연대설’ 등 온갖 추측과 의견이 분분했다. 또한 문재인 관련주는 급락했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김두관 경남지사 관련주는 급등하는 등 문 고문의 불출마설이 보도된 지난달 30일 대한민국은 ‘문재인’으로 한바탕 떠들썩했다. 하지만 문 고문 측은 “소설 같은 이야기일 뿐”이라며 관련설을 전면 부인했다. 문재인 대선 불출마설 파문의 실체를 추적해봤다.

파문의 발단은 한 언론 보도 때문이었다. 지난달 30일 모 언론에 따르면 문재인 상임고문의 친인척은 “총선이 끝난 직후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대선 출마에 대해 물었는데 문 고문이 불출마로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면서 “문 고문이 정치를 하지 않겠다던 기존 입장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이해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 인사는 “문 고문이 TV프로그램인 <힐링캠프>에 출연하면서 지지율이 급상승했고, 이로 인해 대권에 대한 생각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부산에서 바람을 일으키지 못했고 당 안팎에서도 친노 일색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불출마를 깊게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3주기에 맞춰 문 고문이 이런 입장을 간접적으로 밝히고 이후 명확히 선을 긋기로 가족들과 방향을 잡고 있다”고 덧붙였다.

언론보도로 시작된
불출마설 논란 파문

이 같은 내용은 인터넷과 트위터를 비롯한 각종 SNS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며 뜨겁게 달아올랐다. 한 네티즌은 “문재인님에게 향한 억측과 흠집 내기,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 반대세력들이 너무 말도 안 되게 말을 만들어 유포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고 “문재인이 대선 불출마라…그렇다면 안철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인데….”라는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트위터리안은 “아직 결정한 것은 아니다. 기사를 읽어보니 확정된 건 아니군요. 부디 현명한 판단 기다립니다”라며 문 고문의 확실한 결정에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김두관 경남지사 측도 사실관계 확인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김 지사 측의 한 관계자가 본지 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와 “보도된 내용이 사실이냐, 신빙성 있는 보도냐?”고 묻는 등 사실확인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기자와 의견을 교환한 이 인사는 차후 “주식 관련 작전기사 아니냐?”는 조심스런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로 ‘문재인 테마주’로 분류되는 바른손이 12.1%나 급락했고 우리들생명과학은 11.38%, 우리들제약은 7.08%나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김 지사가 주목 받으며 신공항관련주들(한라IMS, 두올산업 등)은 모두 15%가량 급상승세를 보였다.

문 고문이 불출마하면 김 지사가 대권주자로 급부상할 것이라는 분석 때문에 그가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신공항 관련주들이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문재인주 폭락=>김두관주 급등, 의도적 ‘작전세력’ 개입?
문재인 측 “여의도 사무실 계약 준비…전혀 사실무근”  

하지만 문 고문 측은 즉각 나서 불출마설을 전면 부인했다. 지난 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3주기 추모 전시회 개관식’에서 만난 노무현재단 관계자는 기자의 불출마설에 대한 질문에 헛웃음을 지으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기가 막혀했다.

윤건영 노무현재단 사무처장도 언론과의 통화에서 “분명히 사실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지만 보도가 나갔다. 소설일 뿐”이라며 관련설을 전면 부인했다.


윤 사무처장은 이어 “문 고문은 관련 얘기를 듣고 허허 웃으시기만 했다”며 “웃음이 나올 정도의 근거 없는 얘기”라고 말했다. 또한 “며칠 내로 여의도에 사무실을 내기 위한 계약 준비까지 하고 있다”며 불출마설을 단호히 일축했다.

불출마 소식
배경과 원인은

그러나 강력한 대권주자의 불출마 소식에 정치권은 서둘러 그 배경과 원인분석에 나섰다. 일단 정가에서는 문 고문의 대권 출마 선언이 늦어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 됐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말 정치권에서는 문 고문의 대권 도전 선언이 올해 초께 이뤄질 것이라 전망했었고, 다시 올 초에는 ‘총선이 끝난 직후’로 내다봤었다.

하지만 이 같은 예측이 모두 빗나가고 4·11 총선에서 생각보다 큰 바람을 몰고 오지 못하자 문 고문의 행보가 더욱더 더뎌지게 되면서 이런 설이 나돌게 됐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대권주자들에 비해 ‘권력의지’가 약하다는 점도 불출마설이 나돌게 된 원인으로 꼽힌다. 청와대 민정수석 당시부터 정치참여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해 왔고 “안철수 원장이 나선다면 적극 돕겠다”는 발언이나, 권력의지가 약하다는 일각의 지적에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고 답한 바 있기 때문이다.

“당권은 관심 없다”며 “내 목표는 대선”이란 의지를 드러낸 정세균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나 몇 달 전부터 여의도에 사무실을 내고 사실상 대선캠프를 구축한 김두관 지사 등 다른 예비후보들에 비해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도 원인이란 지적이다.

하지만 문 고문은 총선 직후 트위터를 통해 “늦지 않은 시기에 출마 여부를 밝히겠다”고 말했고, 노무현재단 이사장직에 대해서도 “서울시장 출마 때 사퇴했던 전임 이사장의 선례에 따르는 것”이라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한명숙 초대 이사장이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사임한 전례가 있어 사실상 출마 의지를 굳혔다고 봐도 될 만한 발언이었다.

그러나 재단 이사와 운영위원들이 “노무현 대통령 3주기의 상징적인 의미가 커서 문 고문이 재단 이사장을 유지해야 한다”며 이사장직 유지를 적극 부탁하자 문 고문은 이를 받아들였다.

문 고문이 출마 발표를 늦춘 이유였지만 의도와는 다르게 불출마설의 배경이 됐던 원인중 하나로 보인다.

야당의 한 중진의원은 “문재인 고문이 설령 불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다 할지라도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본다”며 “당의 유력주자로 떠오른 이상 경선흥행을 위해서도 완주하고 마지막에 단일화에 합의하는 과정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그는 “불출마설은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렇듯 많은 논란과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문 고문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어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문 고문은 불출마설이 불거지고 다음날인 지난 1일 열린 좋은일자리본부 1차 회의에 환한 표정으로 나타났지만 ‘이해찬(당 대표)-박지원(원내대표) 역할분담론’(이하 이-박 연대)과 관련한 질문에는 굳게 입을 닫았다.

같은 날 오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3주기 추모전시회 개관식에 참석해서도 쇄도하는 취재진의 질문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정치신인으로서 불가피하게 겪어야 할 ‘성장통’?
위기극복 능력 검증, 최우선 당면과제로 떠올라

하지만 이는 불출마설을 인정하는 침묵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이-박 연대’의 후폭풍이 확산되면서 여기에 동의한 문 고문을 향한 당내 집중포화가 쏟아져 말을 아끼는 측면이 강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스스로 “힘들기는 힘들다”고 말 할 정도로 문 고문이 같은 진영으로부터 이처럼 혹독하게 비판받기는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문 고문은 지난 4·11총선 과정에서 당의 지원유세 요청을 거절한데 대한 비판과 PK지역 참패의 성적표로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이 더해져 비노계의 공격을 받아 왔다.


여기에 이-박 연대 합의가 알려지기 전날인 지난달 24일 박지원 최고위원과 단둘이 식사를 했고, 문제가 불거지자 트위터를 통해 “그것은 담합이 아니라 단합”이라고 두둔해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트위터를 통해 “이해찬 박지원 두 분의 합의, 이상적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한 발 물러서며 순수한 의도였다는 해명을 했지만 정무적 판단력이 취약하다는 비난과 함께 “이해찬·박지원 두 프로정치인에게 끌려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때문에 변호사와 행정경험이 많은 대선주자급 인물이지만 정치신인으로서 불가피하게 겪어야 할 ‘성장통’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에 대해 당 관계자는 “문 고문이 현재까지 당내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인데, 앞으로도 고비가 몇 차례는 더 있을 것”이라며 “위기가 문제가 아니라 위기를 극복해가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문 고문의 당면과제”라고 말했다.

‘뻘밭’ 구장에서의
전략과 플레이 주목

정치권 일각에서는 불출마설 자체가 ‘자작극’일 가능성이 있다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다소 억측성이긴 하지만 문 고문 측으로선 현시점에서 자신의 영향력과 파급력을 한번쯤 시험해보고 싶었을 것이란 분석에 기인한 관측이다.

일단 설을 흘려서 파장을 보고 상황이 심각하면 문 고문 본인이 직접 나서 설로 일축하고 사태를 수습하면 그만이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노 전 대통령의 3주기 추모식을 앞둔 시점에서 문 고문의 출마선언이 있을 것이란 관측을 뒤엎고 난데없이 흘러나온 불출마설. 그 이유와 배경이 무엇이든 현재로선 불출마설 자체가 어떤 의도를 가진 세력들의 ‘작전’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현재 민주통합당의 주류인 친노의 명실상부한 구심점이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지지율도 당내 대선주자 가운데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정치전문가는 “그의 타고난 성정으로 볼 때 이-박 연대 논란에서 자신의 행위가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것에 혐오를 느꼈을 수 있다”면서도 “지지세력에게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감수하고 툭툭 손 털듯 포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한 당내 중진의원도 “정치판에 들어오면 다 겪는 일”이라며 문 고문이 시련을 극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12월 기자회견에서 불법 대선자금 문제와 관련해 “스포츠에 비유하면 ‘대선 구장’은 ‘뻘밭 구장’이라고 비유한 바 있다.

문 고문은 이미 이 뻘밭에 뛰어든 형국이다. 한 발을 내딛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빠져나오기도 힘든 뻘밭에서 문 고문이 어떤 전략과 플레이를 펼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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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