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차기 치안총수’ 김기용 경찰청장 내정자

  • 정혜경 jhk@ilyosisa.co.kr
  • 등록 2012.04.24 09: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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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궁창 떨어진 ‘경찰배찌’ 건져낼 구세주 될까

[일요시사=정혜경 기자] 김기용 경찰청 차장이 ‘수원 20대 여성 납치살해 사건’으로 물러나는 조현오 경찰청장 후임으로 내정됐다. 당초 청와대는 이강덕 서울청장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나 정치적 고려로 패를 접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동향 출신인데다 민간인 불법 사찰이 이뤄진 지난 2008년 청와대 공직기강팀에 근무한 이력 때문이었다. 인사청문회 때 야권의 집중포화가 불을 보듯 뻔해 정치적 부담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로써 사실상 김 차장이 차기 ‘치안총수’에 낙점됐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긴 하지만 무사통과가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축배를 들긴 이르다. 풀어야 할 숙제가 겹겹이 쌓여 있어서다. 김 차장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다.

김기용 경찰청 차장이 ‘치안총수’에 내정됐다. 경기 수원에서 일어난 20대 여성 납치 살해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 조현오 경찰청장을 대신해 10만 경찰의 리더로 선임된 것이다.

경찰위원회는 지난 16일 서울 미근동 경찰청사에서 정기회의를 열고 김 차장을 새 경찰청장으로 임명제청하는 것에 동의했다. 7인으로 구성된 경찰위원회는 경찰청장 후보자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추천하기 위한 회의로 내정자가 결정된 후 거치는 절차다.

경찰 내부에서
보안통으로 불려

경찰위원회의 추천을 받은 이명박 대통령은 차기 경찰청장에 김 차장을 내정했다. 인선배경에 대해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은 “김 후보자는 투철한 국가관과 사명감을 바탕으로 맡은 바 업무에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자세와 철저한 자기관리로 귀감이 돼왔다”고 설명했다.

1957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난 김 내정자는 행정고시 30회로 공직에 입문, 경찰 특채로 경찰복을 입었다. 충북지방경찰청장과 경찰청 경무국장 등을 역임한 뒤 올 초 총선에 나선 박종준 차장의 뒤를 이어 경찰청 차장에 부임했다.

김 내정자는 올해 초 치안감(경찰청 경무국장)에서 박종준 전 경찰청 차장이 총선 출마로 사표를 내면서 치안정감(경찰청 차장)으로 승진했다. 불과 4개월만에 경찰청장 자리까지 오른 점을 감안하면 ‘관운’이 굉장히 좋다는 평가다.


김 내정자는 경찰 내부에서 보안통으로 불린다. 그만큼 보안업무에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일선 경찰서를 두루 거치며 현장 업무에도 탁월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또 원만한 성격의 소유자로 직원들과의 화합은 물론 소통도 중요하게 생각해 조직을 잘 이끌어 신망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경찰 안팎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조 청장이 지난 9일 갑작스럽게 사의를 표명한 직후부터 경찰 내부에선 MB정부 마지막 경찰청장 자리가 이강덕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 돌아가리란 관측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조현오 경찰청장을 대신해 10만 경찰의 리더로 선임
정치적 고려 때문에 이강덕 서울청장 제치고 내정돼

이 청장은 부산·인천의 지방경찰청장, 청와대 치안비서관 등 경찰 내 요직을 두루 거친 인물이다. 그만큼 경찰내 신망이 두텁다. 청와대는 이 청장을 일순위로 염두에 뒀다. 게다가 경찰청장은 서울지방경찰청장이나 경기경찰청장이 자리에 앉는 것이 관례였다. 따라서 경찰 안팎에서는 이 청장이 차기 경찰청장이 될 것이란 데 의심을 가지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런 이 청장의 발목을 잡은 건 2008년 3월부터 2010년 1월까지 청와대에서 근무한 이력이다. 민간인 불법사찰이 진행된 게 드러난 시점에 청와대 공직기강팀장을 맡았던 게 화근이었다. 후보로 확정되더라도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야당의 집중 공격이 예상됐고, 여당의 조력도 바라기 어려운 입장이었다.

이 대통령과 동향인 경북 포항 출신이란 것도 약점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새누리당 쪽도 이 청장의 경찰청 입성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이유로 막판까지 이 청장의 승진 카드를 놓고 고심하던 청와대도 결국 뜻을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김 내정자는 충북 출신 첫 경찰청장이라는 게 장점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먼저 지역 안배 면에서 모양새가 좋다. 또 각종 ‘MB코드’에서 자유롭다는 점도 부각됐다. 당연히 여야 정치권으로부터 정치적으로 공격받을 요인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입지전의 주인공,
충북 출신 장점

또 김 내정자가 고졸 검정고시와 한국방송통신대를 나와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경찰에 입문한 입지전의 주인공이라는 점도 메리트다. 각종 정치적 논란을 피해가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차기 경찰청장 후보군들의 면면이 그리 화려하지 않다는 점도 변수로 작용했다. 유력했던 이 청장이 정치적인 문제로 차기 청장 순위에서 멀어지자 그나마 찾을 수 있는 대안은 김 차장 뿐이었다는 게 경찰 내부의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김 차장이 내정되면서 청와대가 총선 승리를 이끌어낸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의 관계 복원에 나선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실제 박 위원장 쪽에서 이 청장에 대해 거부감을 청와대에 전달하면서 균형이 김 내정자 쪽으로 기울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이번 인사는 이 대통령이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선택하기보다 현실적 인사를 한 셈이다. 인사청문회를 무난히 넘길 수 있고, 박 위원장의 대권 가도에 부담을 주지 않는 카드를 선택한 것이다.

어찌됐든 현재로선 김 내정자의 선임이 사실상 확실한 상태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지만 무난한 통과가 예상되고 있다. 산하에 31개 경찰서와 5개의 기동단, 청와대 경비를 책임지는 경비단 등을 포함해 40개 이상의 조직을 거느린 경찰청의 수장에 오르게 된 것.

경찰 추스르고 무너진 신뢰 회복해야 하는 중책 맡아
초고속 승진 두고 뒷말…조직 장악력 우려하는 목소리

그러나 아직 축배를 들기엔 이르다는 지적이다. 넘어야 할 산도 많고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먼저 김 내정자는 흐트러진 경찰 조직을 빠른 시일 내에 추슬러야 한다. 무너진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중책도 맡았다.

최근 경찰은 모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야말로 만신창이다. 수원사건의 대응미숙과 경찰의 비위 등이 잇따라 터지면서 경찰은 곤경에 빠져있다. 수원사건 수사와 관련해 경찰의 무능함과 사건축소, 은폐, 거짓해명 등이 확인되면서 경찰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여기에 이른바 ‘룸살롱 황제’로 불린 강남 유흥업소 업주와 경찰의 유착비리가 다시 도마에 오르는 등 비위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세간의 시선은 김 내정자가 위기에 빠진 경찰조직에 구원투수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주목되고 있다.

물론 김 내정자의 의지는 강하다. 김 내정자는 지난 16일 오후 서울 미근동 경찰청사에서 열린 경찰위원회 참석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어렵고 민감한 시기에 경찰청장에 내정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신속하게 국민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수원 납치살해사건과 관련해서도 “경찰의 위기상황인 만큼 떨어진 경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수뇌부 연쇄이동에
조직 흔들릴 가능성


하지만 우려스러운 부분도 있다. 먼저 치안정감으로 승진한 지 불과 3개월여 만에 초고속 승진한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가 문제다. 게다가 초고속 승진에 따른 경찰 수뇌부의 연쇄이동이 불가피해 조직이 흔들릴 여지가 충분한 상황이다.

여기에 수사·형사·정보 파트 근무경험이 적고 두드러진 수사 성과도 없어 조직 장악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각 지방청장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현재 경찰이 처한 상황을 보면 김 내정자의 어깨는 무겁다. 그의 리더십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잖아 더욱 그렇다. 그는 과연 수원 살인사건을 계기로 나락에 떨어진 경찰조직을 추스르고 결집시키는 구심점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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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