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도우미’로 전락한 선관위 ‘이중잣대’ 실태

  • 홍정순 jshong@ilyosisa.co.kr
  • 등록 2012.04.02 10:5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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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엔 ‘무혐의’ 야당엔 ‘무리수’

[일요시사=홍정순 기자] 4·11 총선을 코앞에 두고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행보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공정한 국민투표를 관장해야할 ‘심판’의 편파적인 태도 때문이다. 여당의 명백한 선거법 위반에는 무혐의를, 야당의 선거법 위반 의혹에는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 더욱이 공명선거를 주도해야 할 선관위에 유권자와 정당이 공정성을 요구하는 주객전도의 기이한 현상까지 벌어지는 모양새다. 선거만 앞두면 ‘여당 도우미’로 전락하는 선관위의 ‘이중잣대’ 실태를 들여다봤다.

선관위 “박근혜-손수조 카퍼레이드는 선거법 위반 아냐”
전대미문 ‘디도스 테러’에 선관위 내부공모설 계속 불거져

총선을 앞두고 선관위의 행보가 도마 위에 올랐다. 갖가지 선거법 위반 논란으로 몸살 앓는 새누리당에 선관위가 잇따라 ‘무혐의 처방전’을 내려준 때문이다. 하지만 야당에는 선거법 위반 의혹만으로도 가혹한 편파적 조처를 취하는 모양새라 비난여론이 빗발치는 실정이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지난달 13일 박근혜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장이 부산 사상 방문 당시 손수조 후보와 함께 차량 선루프를 통해 몸을 내밀어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면서다. 게다가 박 위원장의 방문을 미리 방송으로 알리기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여당엔 ‘천사’
야당엔 ‘독사’

공직선거법 91조 3항은 ‘누구든지 자동차를 이용하여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255보믐 '자동차를 이용한 선거운동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나는 꼼수다’측은 타고 온 세단이 있었음에도 빌려온 차량에 올라타 박 위원장과 손 후보가 동시에 선루프로 고개를 내밀어 손을 흔들었다는 것은 우발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이 손 후보를 지지한다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카퍼레이드를 연출했다는 얘기다. 때문에 삽시간에 새누리당의 선거법 위반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됐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에 대해 선관위는 통상적 정당활동이라는 유권해석으로 면죄부를 안겼다.

선관위 측은 지난달 28일 “여당 대표 자격으로 방문을 환영하는 군중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한 행위는 위법 사안이 아니다”면서 “박 위원장이 특정인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지 않았고 차량에 특정 후보를 홍보하는 선전물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손 후보는 또‘전세금 3000만원으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공약에 대해서도 시비가 붙었다. 손 후보가 선거운동에 후원금과 당 지원금 등 1억5000만원 이상을 사용해 애초 발표한 ‘3000만원으로 선거 뽀개기’ 약속을 어겼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다. 이에 야권에서는 손 후보의 선거비용 출처가 본인이 받은 월급이나 전세금이 아니기 때문에 이는 후보자가 사용할 선거비용에 대해 허위사실을 말한 것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선관위는 3000만원으로 선거 뽀개기 약속을 어긴 사실이 선거법상의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선관위는 “이번 선거에서 3000만원으로 선거를 치르겠다고 공표한 것은 어디까지나 공약, 즉 장래의 사실에 관한 내용이다”면서 “과거 또는 현재의 사실관계가 아니므로 법리상 허위사실 공표죄가 적용될 여지가 없다“고 해명했다.

반면 선관위는 최근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돈 봉투 살포 제보를 검찰에 통보하며 논란을 확대시켰다. 선관위는 손 고문이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박원순 후보 지지를 부탁하며 지역 당협위원장들에게 금품을 살포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전했다.

선관위는 “본 제보사안은 총선에 임박해 돈 봉투 사건이 제보된 점, 조사과정에서 범죄의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물적 증거나 진술이 확보되지 아니한 점 등을 고려해 범죄의 혐의가 있을 경우에 취하는 수사의뢰 조치 대신 검찰에 수사자료를 송부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정부여당에 반하면
모두 선거법 위반?

이어 선관위는 “제보된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면 동 사실이 공개될 경우 국회의원선거에 부당하게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보아 제보 및 조사사실과 검찰에 통지한 사실에 대하여 보안을 유지했다”면서 “제보자가 언론과 접촉해 동 사건내용을 자세히 알리고, 언론의 취재과정에서 검찰에 자료를 통지한 사실이 있는지 확인을 요청함에 따라 서울시선관위는 그 사실을 확인해 줬을 뿐이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총선을 앞둔 민감한 시점에 이런 사실이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야당에는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손수조 후보에게 면죄부를, 손학규 고문에게 무리수를 두며 따가운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상태다. 무엇보다 선관위 결정을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은 현 정부 들어 보여 온 행태와도 무관하지 않다.

선관위는 지난 6·2 지방선거 당시 4대강 사업 반대와 무상급식 서명운동에 선거법 위반 딱지를 붙인 바 있다. 두 가지 이슈가 정당 간 공약이 엇갈리는 선거쟁점이어서 이에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행위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황당한 이유를 들었다. 사실상 두 이슈는 모두 정부여당에게 불리한 이슈들이었다.

당시 누리꾼들은 국민이 특정 정책에 대해 찬반 입장을 밝히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로 선거가 있든 없든 간에 제한될 수 없는 기본권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하지만 선관위는 선거를 앞두고 정부여당에 불리한 국가 주요 정책에 대해 입도 뻥긋 못하게 재갈을 물렸다.

선관위는 또 야당이 주장하는 무상급식 관련 홍보는 깡그리 금지하면서도 정부·여당의 4대강 홍보에 대해서는 문을 활짝 열어준 바 있다. 선관위 논리대로라면 정부 입장에 반대하는 의견은 전부 선거법 위반인 격이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선관위는 SNS상에서 유권자들의 투표독려 행위인 ‘선거일 투표 인증샷’에도 제재를 가하며 정치적 편향 사례를 이어왔다. 특히 SNS상에서는 야당성향이 강한 유권자들이 몰려있고, 투표율이 높아질수록 여당에 불리하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쏟아졌다.

때문에 투표율을 독려해야 할 선관위가 투표율 제고를 원천봉쇄하면서까지 여당에 힘을 싣는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공명선거에 앞장서야 할 선관위…계속 스캔들의 대상으로
4·11 총선 앞두고 주목받는 선관위 행보…이번엔 어떨까?

가장 심각한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전대미문의 ‘10?26 디도스 테러’에 선관위가 공조세력이라는 의혹이 따라붙은 것이다. 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이 이른바 ‘선관위 내부 공모설’ 의혹이 불거진 것.

디도스 공격 자체만으로 선관위 홈페이지 가운데 투표소 안내 부분만 특정해 다운시킬 수 없다는 의혹이 불거진 상태다. 때문에 사건 직후 일부 전문가들은 계속해서 선관위 서버 마비 상태는 외부에서의 해킹은 물론 내부 인사가 공모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급기야 디도스 공격 사건을 수사 중인 특별검사팀은 출범 이틀만인 지난달 28일 선관위와 서버관리업체 등 5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특검팀은 이날 압수수색에서 디도스 공격 당일의 로그인 기록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관위는 기존 경찰과 검찰 수사 당시 압수수색에서 제외됐던 곳이다. 이는 특검팀이 디도스 테러 가담자는 물론, 의혹을 받고 있는 모든 사안에 대해 수사를 확대한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한 언론사에 보도된 LG엔시스 담당자의 폭로는 더욱 충격적이다. 내용인즉, 선관위 담당자가 디도스 방어를 효과적으로 해냈음에도 불구하고 홈페이지 다운이 디도스 때문이라는 언론플레이를 LG엔시스 쪽에 요청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LG엔시스는 선관위가 요청한 이 같은 언론 플레이를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사이버테러와 관련해 토론회를 열자 “참석해 해명하라”는 요청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보도에 따르면 “선관위로선 토론회에서 LG엔시스 보고서에 대해 기술적으로 설명하며 원인이 디도스 공격 때문이라고 책임 있게 말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며 “LG엔시스 쪽에서 하는 게 가장 적합하다는 판단에서 (선관위 쪽에서) 수차례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때문에 ‘도둑이 제 발 저려서’라는 조롱과 함께 SNS를 중심으로 선관위에 대한 비난여론이 확산되는 실정이다.

LG엔시스 폭로에
내부 공모설 점화

공명선거에 앞장서야 할 선관위가 계속해서 스캔들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외면하는 선관위의 행보에 여기저기서 ‘여당 도우미’로 전락했다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는 것.

때문에 이런 선관위를 두고 정치에 해악을 끼치는 민주주의의 적일뿐이며 계속해서 여당 도우미로 나설 경우 기관의 존립 자체가 심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최근 불법사찰 증거인멸 논란도 골목길마다 노동부 직원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실정이다. 여기에 독립적인 헌법기관이라는 선관위마저 편파적인 입장으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저버리는 양상이다.

때문에 정부 조직 전체가 공공성을 훼손하고 정부여당 승리에 총동원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4·11 총선에서 선관위의 엄정한 관리가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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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