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혜경 기자] 이계철 신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9일 첫 공식업무를 시작했다. 현재 방통위 수장 자리는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실제 후보에 오른 많은 이들이 손사래를 쳤다. 이런 가운데 이 위원장이 방통위 구원투수로 나섰다. 곡절이 많았지만 일단 방통호의 키는 잡았다. 그는 과연 ‘말 많고 탈 많은’ 방통위를 잘 추스르는 멋진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한국통신 사장 역임하며 KT 민영화의 초석 다져
인사청문회 앞두고부터 이미 자질논란 일기 시작
이계철 신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후 행정고등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했다. 이후 전라북도 남원우체국장과 체신부 기획관리실장 등을 거쳐 1994년부터 3년간 정보통신부 차관직을 수행했다.
이 위원장은 통신시장 개방을 앞두고 경영혁신의 적임자로 지목돼 1996년부터 5년간 KT의 전신인 한국통신 사장직을 역임했다. 이어 한국통신이 출자기관으로 전환된 1997년 12월에 초대 공채사장으로 다시 선출됐다.
3년간 정통부
차관직도 수행
당시 이 위원장은 곧바로 경영진단을 실시했고, 1999년부터 적자로 반전될 것이라는 결론을 접했다. 이에 정부투자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사장과 사업부서장 간에 경영목표를 세워 계약을 맺는 경영계약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또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하에서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등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이 위원장은 또 24억9000만 달러의 해외 DR을 발행하는 등 KT 민영화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다. ISDN을 포기하고 ADSL로의 전환으로 초고속인터넷 사업의 기틀을 마련한 것 역시 이 위원장의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이 위원장은 당시 임기를 4개월 앞두고 사의를 표명하면서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사장 사임을 놓고선 정부와의 불화설 등이 업계에 회자됐다. 정부 측이 희망해 온 동기식 IMT-2000 사업신청을 한국통신측이 거부한데 따라 정부와 마찰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 위원장은 “임기 전 사임을 결정한 것과 관련해 어떤 곳에서도 외압을 받은 적이 없다”며 “IMT 등 주요 현안들을 새 사장이 처음부터 맡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물러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한국통신 사장에서 물러난 이 위원장은 이후 정보통신진흥원과 한국정보보호진흥원(현 한국인터넷진흥원), 한국전파진흥원(KCA) 이사장직을 역임하며 정보통신업계 연구 등을 총괄했다.
이 위원장은 기억에서 멀어져 갔다. 그러던 지난달 14일 이명박 대통령은 이 위원장을 방송통신위원장에 내정하면서 그의 이름이 다시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됐다. 청와대는 이 위원장의 인선 배경에 대해 “철저한 자기관리와 강직한 성품으로 조직 내외로부터 신망이 높아 각종 현안을 해결해 나갈 적임으로 평가했다”며 “오랜 공직생활과 풍부한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하고 복잡한 이해관계를 중립적 위치에서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통위 측에서도 이 위원장이 원칙과 소신을 강조한 인물인데다가 체신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정통 관료출신으로 정치색이 없기 때문에 무난하게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부터 자질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대부분 전문성과 도덕성 등에 대한 의구심이다. 특히 방통위가 최시중 전 위원장 및 정용욱 전 정책보좌관의 비리 의혹으로 홍역을 앓고 있는 상태여서 논란은 더욱 거셌다.
우선 이 위원장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KT와의 관계를 문제 삼았다. 이 위원장이 이석채 KT 회장이 정통부 장관이었던 시절, 차관을 맡았던 데다, 현재 이 위원장의 장남이 KT에 재직 중이어서다. 또한 이 위원장도 KT의 전신인 한국통신 사장을 역임한 후 KT의 퇴직 사원을 중심으로 구성된 사우회의 회장직을 맡는 등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를 두고 미디어행동과 전국언론노조 등 시민단체 인사들은 “현 정부 들어 2G 서비스 종료 등의 사례를 봤을 때 방통위와 KT의 유착을 의심해볼 수 있다”며 “이런 중에 KT 사장 출신이면서 이석채 회장과 가까운 관계에 있는 이계철을 임명하는 것은 편향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정부기관에 근무 당시, 전 KTF 협력업체에 일하면서 3억원을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실제 전병헌 민주통합당 의원은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이 내정자가 한국정보보호진흥원 이사장과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이사장을 겸임할 당시 글로발테크에 근무하며 3억여원의 급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폭로한 바 있다.
뇌물수수 의혹
고려대 출신도 문제
고려대 출신이라는 점도 문제가 됐다. 이 대통령의 ‘고대 인맥 챙기기’ 인사라는 고질적인 병폐가 또 드러났다는 지적을 받은 것. 또 정부가 강조한 이 위원장의 통신 분야 전문성에 대해서도 여전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이 위원장이 과거 정통부 차관을 지내는 등 다양한 정책 활동의 중심에서 일한 바 있지만 과거 정책들과 현재의 정책들과 많이 다르기 때문에 새로 배워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
이처럼 이 위원장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무난한 인사 통과가 힘들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그리고 이런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인사청문회에서 소신 있는 답변을 내놓지 못하면서 모진 매를 맞아야 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 5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위원장이 되면 검토해보겠다” “설명만 들었다” “(방통위 업무에)생소한 부분도 있다” “의원님들께서 처리를 해달라”는 식의 답변을 내놔 여야 의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이 위원장은 지상파 재송신 제도 개선, 방송사 파업, KBS 수신료 인상, 미디어렙법 등 방송통신 현안에 대한 질의에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취임하면 검토하겠다”, “최선을 다하겠다” 수준이었다. 특히 후보자 임명 이후 인사청문회까지 방통위 설립의 근간이 된 방통위 설치법을 한 차례도 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위원장은 또 지난 한국정보보호진흥원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유관 업체에 고문으로 근무하는 동안 받은 거액 고문료의 부적절성과 로비 의혹 등에 대해서도 명쾌히 해명하지 못했다.
이에 여야 의원들은 “이 후보자가 준비가 덜 됐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안형환 의원은 “(질의한 현안들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공부를 좀 더 하셔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으며 정장선 의원은 “정연주 KBS 사장 사건에 대해서도 너무 준비가 안 돼 있다”고 꼬집었다.
청문회서 소신 답변 내놓지 못하면서 모진 매
일단 취임은 했는데…현안 산적 “고생문 훤해”
김성동 의원 역시 “인사청문회는 이러저러한 계획을 펼치겠다는 소신을 말해야 하는 자리로 업무 숙지과정이 있어야 하지만 계속 앞으로 취임하면 어떻게 하겠다고 하는 얘기만 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조순형 의원도 이 위원장에게 방통위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을 보고 나왔냐고 물은 후 “최소한 몇 가지 법률은 검토하고 나왔어야 했다”며 “전부 설명 들었다고만 하니 자격이 없다고 본다”고 일침을 가했다.
와이브로를 활성화 하겠다는 이 위원장의 답변에 이상민 의원은 “현재 개도국 몇 개국만 와이브로 사업을 하고 있으며 그마저도 괜히 했다고 불만을 내놓는데 뭘 어떻게 활성화 하냐”며 “활성화 방안 찾기가 보물찾기냐”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결국 민주통합당은 이 위원장에게 “무능 무책임 무소신 무철학 무비전의 ‘5무(無)인사’”라는 평가를 내리며 보고서 채택 거부를 선언했고, 여당 또한 총선을 앞둔 상황 속에서 6일로 예정됐던 회의를 단독으로 개최할 의지를 보이지 않아 보고서 채택은 자연스레 불발됐다.
결국 이 대통령이 국회 임명동의 없이 방통위원장에 임명하면서 이 위원장은 지난 9일 오후 4시부터 공식 업무를 시작하게 됐다. 이 위원장은 향후 최 전 위원장의 잔여임기를 수행하게 된다. 2년가량 남아있지만 올해 대선 일정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연말까지 방통위원장직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위원장 앞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코앞에 닥친 총선과 연말 대선에서 공정 방송을 구현하고 이를 관리 감독해야 할 방통위원장의 책임이 결코 작지 않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다가올 정치적 압박도 견뎌야 한다.
아울러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정치권의 통신비 인하 요구를 어떻게 풀어갈지도 과제다. 벌써 여권에서는 ‘통신비 20% 인하’가 선거공약으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올 한 해 최대 현안으로 꼽히는 아날로그TV방송 종료와 디지털 전환 정책은 이 위원장에게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때문에 업무현황 파악과 추진을 동시에 해야 하는 강행군이 예상된다. 다만, 이 위원장이 정통부 차관 출신의 정통관료라는 점은 강점이다. 이밖에도 임시 봉합된 지상파방송 재송신 제도 개선이나 스마트TV로 불거진 망중립성 정책 마련, 와이브로 정책 결정은 올해 이 위원장이 반드시 풀어야 될 숙제다.
여야 합의 없이
대통령이 임명
제도 미비로 사업자 간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는 가운데, 지상파 재송신은 연말 디지털 전환을 앞두고 있어 시급한 현안이다. 또 100만대가 보급된 스마트TV는 그 추세가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통신-인터넷·콘텐츠 업계 간 분쟁도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와이브로의 경우 제4이동통신사업자 선정과 맞물려 방통위가 LTE(Long Term Evolution)와 와이브로 간 4G 정책에 대한 교통정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 방통위 수장 자리는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실제 후보에 오른 많은 이들이 손사래를 쳤다. 이런 가운데서 이 위원장이 방통위의 키를 잡았다. 곡절이 많았지만 일단 방통위호에 시동은 걸었다. 과연 이 위원장은 말 많고 탈 많은 방통위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업계 안팎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