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혜경 기자]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한국무역협회 제28대 회장에 선임됐다. 한 회장이 국제통상 전문가로서 한국경제 성장동력을 찾아 대내외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최적임자라는 게 무역협회가 밝힌 추대 배경. 선출 과정에서 ‘낙하산 인사’라는 잡음이 있었지만 무역협회는 전혀 괘념치 않았다. 무역협회는 민간단체이지만 업무속성상 정부와 협조할 일이 많고 정부 정책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한 회장의 추대가 정당하다는 것이었다. 현재 협회는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다. 총리 출신의 한 회장이 수출증진을 위한 대정부 협상력을 크게 높여 주리란 것이다. 이처럼 협회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한덕수 신임회장.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서울대ㆍ하버드대 등 ‘초일류 엘리트 코스’
성실성, 일에 대한 열정 바탕으로 많은 결실
‘전형적인 모범생’ ‘뛰어난 균형감각의 소유자’ ‘일이 취미인 인물’. 이는 지난 22일 한국무역협회 제28대 회장에 선임된 한덕수 회장에 대한 평가다. 한마디로 ‘노력하는 수재’라는 것이다.
전북 전주 출생인 한 회장은 경기고ㆍ서울대 경제학과ㆍ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등 ‘초일류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대학 재학 중 행정고시 8회에 합격하고 경제기획원에서 출발했지만, 1982년 부처 간 교류 때 상공부(현 산업자원부)로 자리를 옮긴 것을 계기로 관료생활 대부분을 통상 분야에서 보냈다.
전형적인 모범생
일이 취미인 인물
한 회장은 성실성과 일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많은 결실을 이뤄냈다. 상공부 산업정책과정 시절에는 개별산업 육성법, 진흥법 등을 공업발전법으로 통폐합했다. 이로써 기존의 산업정책이 업종별 지원 체계에서 벗어나 입지?인력?자금?연구개발 등 기능별로 전환됐다.
이후 특허청장과 통상산업부 차관을 거쳐 DJ정권 시절 초대 통상교섭본부장에 취임했다. 이 때 각 부처에 흩어져 있던 통상업무를 통합함으로써 일사불란한 통상업무 체계를 수립했다.
경제부총리 시절에는 개방과 경쟁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는 원칙아래 다양한 정책들을 내놨다. 자본시장통합법 제정, 제로베이스 금융규제 개혁, 역모기제도 활성화, 생계형 금융채무불이행자 대책, 서비스분야 경쟁력 강화 등과 관련된 방안들이 이 때 만들어지고 추진됐다.
한 회장은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기반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토끼는 한 평의 풀밭으로 만족하겠지만 사자는 넓은 초원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 경제는 지금 넓은 들판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개방에 앞장섰다. 한미FTA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으로서는 우리 정부가 실제로 FTA를 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미국의 의구심을 없애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도 바로 그였다.
이처럼 승승장구 해 온 한 회장이지만 길이 항상 평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경제부총리로서 지휘했던 8?31부동산종합대책은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보완책을 추가로 만들어야 했다. 2000년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중국과 벌였던 `마늘 협상'이 2002년 긴급수입제한조치 문제로 비화되면서 자리에서 물러난 일도 있었다.
한 회장은 꼼꼼한 일처리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탁월한 조정능력으로 정평이 나있다. 한 회장의 빈틈없는 일처리에 대해서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이해찬 전 총리도 인정할 정도다. 분권형 국정운영 도입 이후 국무조정실의 기능과 역할이 대폭 강화됐음에도 잡음없이 부처 업무를 총괄 조정해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이 총리로부터 상당한 평가를 받았다. 또 복잡한 사안을 아주 알기 쉽게 전달하는 한 회장의 브리핑 능력은 관가에 널리 알려져 있다. 부하직원에게도 치밀한 보고서를 요구하며, 만족할 때까지 몇 번이고 퇴짜를 놓는다는 후문이다.
한 회장은 또 빼어난 영어실력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미국인이 자국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편안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는 지금도 모르는 단어나 좋은 문장이 눈에 띄면 메모하고 암기한다. 2001년 OECD대사 시절 외환위기 극복 모델로 한국형과 말레이시아형 중 어떤 것이 바람직한 지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을 때 20여분에 걸친 논리적인 영어연설을 통해 상대방을 제압, 토론을 곧바로 끝냈을 정도다. 한미자동차 협상 당시 유창한 영어와 치밀한 자료준비에 미국 대표들이 “다음부터 저 사람은 협상테이블에서 빼주었으면 좋겠다”며 혀를 내두른 것도 유명한 일화다.
대인관계에서 세련되고 절제된 모습이며 항상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기존 고위관료들의 ‘권위적 카리스마형’과는 거리가 있다. 권위주의적 통제보다 전문적 식견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조율한 뒤 정책으로 추진하는 ‘수평적 리더십’을 중시한다.
낙하산 반발에도
무시하고 강행
경제부총리 시절에는 농림부·환경부·산자부 등 경제부처 실무진들과 격의 없는 토론을 통해 복잡한 사안에 대해 이해도를 높이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리더십을 발휘했다. 지위가 올라갈수록 정치적이고 계산적인 모습을 보이는 상당수 고위층과는 달리 술수가 없고 소박·진솔·담백하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통솔력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처럼 눈에 띄는 이력과 능력의 소유자인 한 회장이지만 무역협회장에 선임되기까지 과정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무역업계 일각의 반발 때문이었다. 국무총리와 재정경제부 장관까지 지낸 관료 출신이 낙하산 방식으로 무역협회 수장 자리를 꿰차는 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전국무역인연합(전무련)은 “정부 보조금을 한 푼도 받지 않는 순수민간단체인 무역협회에 언제까지 정권 측근 인사가 회장을 맡아야 하느냐”고 반발했다. 이어 전무련은 “그동안 정부는 무역인들의 자발적인 모임인 무역협회에 퇴직 관료 출신의 낙하산 회장을 끊임없이 내려 보냈다”며 “무역협회가 무역업계를 위한 대변자 역할은 하지 못한 채 정권 입맛만 맞춰왔다”고 꼬집었다. 전무련은 또 올 연말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되면 한 신임회장이 1년 임기의 회장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세련되고 절제된 대인관계…‘수평적 리더십’
꼼꼼한 일처리 조정능력 정평…영어도 수준급
그러나 무역협회는 관 출신 인사가 무역업계를 대변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무역협회의 본 업무가 정부 정책 조율 등 굵직한 업무인 만큼 관 출신이 오면 오히려 유리하다는 얘기다.
무역협회는 “지난 17일 열린 무역협회 회장단회의에서 회장단 30명 가운데 20명이 한 회장을 신임회장으로 추대했다”며 “무전련이 총회에서 의견을 표명할 수는 있겠지만 한 회장 취임을 철회할 수 있는 구속력은 없다”며 예정대로 취임을 강행했다.
그리고 한 회장은 지난달 22일 취임식을 갖고 본격적으로 무협호의 키를 잡게 됐다. 이로써 향후 무역협회를 이끌게 된 한 회장은 민주통합당 등 한·미 FTA를 반대하는 세력에 맞서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또 ‘FTA바로알기 운동’을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한 회장은 “전 정권에서 총리를 했는데, 그때 같이 일했던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한·미FTA폐기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한·미FTA를) 반대하는 분들과 대화를 나누고, 사실에 근거해 설득하는 작업을 하겠다”고 밝혔다.
한 회장은 “우리나라는 자원이 없어 세계의 큰 시장으로 나가야 한다”며 “좁은 국내 시장과 부존자원 부족을 극복하고 국민의 생활수준과 복지 향상을 위해선 국민과 기업, 정부가 힘을 합쳐 개방과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는 길 밖에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한 회장은 “무역업계가 활동할 수 있는 넓은 시장을 확보해 나가야하는데 FTA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FTA 이행 과정에서 원산지증명 등 수출 기업들이 당면하는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FTA 바로알기 운동을 핵심 사업의 하나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업계 애로 해소
대정부 협상력 발휘
한 회장은 또 중소 무역업계 경쟁력 강화와 무역인프라 구축에 협회의 역량을 결집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물론 유관기관과 정책적 협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한 회장은 “무역업계의 애로사항 파악과 해결을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업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서비스를 개선하고 무역 현장을 자주 방문 하겠다”며 “이제 1조 달러 무역시대를 넘어 세계 9위 무역대국에 걸 맞는 시장과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는데 힘을 합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금 무역협회는 한 신임회장에 적지 않은 기대를 걸고 있다. 남덕우 전 총리에 이어 7년만에 국무총리를 역임한 인물이 회장에 취임함에 따라 무역업계의 애로해소 및 수출증진을 위한 대정부 협상력이 크게 높아지리란 기대감에서다. 한 회장은 과연 무역협회의 이 같은 기대에 적극 부응할 수 있을까. 그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