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철의 여인’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

  • 정혜경 jhk@ilyosisa.co.kr
  • 등록 2012.01.25 12: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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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생 ‘마지막 승부’…정권교체 디딤돌 놓을까?

[일요시사=정혜경 기자] 한명숙 전 총리가 제1야당 민주통합당 새 대표에 올랐다. 정당 사상 처음으로 시민참여 경선과 모바일 투표를 도입한 전당대회는 뜨거운 열기 속에 치러졌지만 예견했던 이변은 없었다. 예상대로 한 대표가 1위를 차지했다. 이로서 한 대표는 정권교체라는 막중한 임무를 안고 민주통합당을 이끌게 됐다. 정치인생의 마지막 승부에 나섰다는 각오를 밝힌 한 대표, 그녀가 걸어온 발자취를 되짚어 봤다.

각종 여성단체에서 여성운동의 기반 닦아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권유로 정치에 입문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1944년 3월24일 평안남도 평양부에서 출생, 4살 때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부모를 따라 월남했다. 이화여자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한 뒤 1970년 이화여자대학교 기숙사 사감으로 재직하던 중 학생들의 시위를 지원한 게 문제가 돼 기숙사 사감을 그만두게 됐다. 이후 한국 크리스천 아카데미로 자리를 옮겨 한국 민주화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념서적 유포 혐의
2년6개월간 투옥

한 대표는 1974년부터 한국 크리스천 아카데미 운동에 여성분과의 간사로 활동했다. 하지만 1979년 체제 비판적인 이념서적을 학습·유포한 혐의로 이우재, 신인령 등 아카데미의 동료 간사들과 함께 구속되어 광주교도소에서 수감된 뒤 2년6개월간 투옥했다.

이후 한 대표는 1985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여성학과 여성학 석사를 취득, 1986년부터 1987년까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여성학 강사로 일했으며,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성심여자대학교에서 여성학 강사로 활동했다.

또 1987년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의 활동을 시작으로 1989년 한국여성민우회의 회장, 1989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의 가족법 개정 특별위원회 위원장, 1990년부터 한국여성단체연합의 부회장, 공동대표, 지도위원 등을 역임하면서 여성운동의 기반을 닦았다.


한 대표가 정계에 발을 들인 건 1999년의 일이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새천년민주당 창당 작업에 여성분과위원장으로 참여하면서다. 당시 한 대표는 자신의 정치 참여에 대해 “여성의 정치참여, 남녀평등 수준은 후진국과 별반 차이가 없다”며 “지난 25년간 재야운동을 해왔지만 역시 가장 효율적인 길은 정치 참여를 통한 것이라고 느껴 정치에 투신했다”고 설명했다.

한 대표는 2000년 새천년민주당의 비례대표로서 제16대 국회의원에 선출됐다. 환경노동위원회 활동을 통해 미군 송유관, 비정규직, 공단들의 국립공원 훼손 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성실하고 차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 대표가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건 2000년 국정감사에서다. 새만금 사업의 경제성에 의문을 제기했고, 노사정위원회에 주5일제를 실시함과 더불어 주5일 수업제, 여가시설 확충 등을 함께 추진할 것을 요구했다. 또 경기도의 남한강 정비사업에 전제된 무딘 환경 의식,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 취업을 알선한 장애인들의 높은 이퇴직율, 반월시화공단의 높은 다이옥신 농도, 급증하는 미성년자 불법고용, 산업재해지정병원의 산재환자에 대한 진료비 과다청구, 공공기관의 국립공원 훼손 등을 지적하며 일약 국감스타로 떠올랐다.

2001년에는 여성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초대 여성부장관에 임명됐다. 한 대표는 여성부 장관을 지내면서 자신이 발의한 모성보호법 통과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또 남녀차별개선위원회를 통해 성희롱에 대한 인식을 넓혔고, 호주제 폐지에 앞장서는 등 원칙이 분명하게 일을 해냈다는 평을 받았다.

2003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과 함께 참여 정부의 초대 내각 발표 전까지 여성부 장관으로 유력시 됐지만 결국 환경부장관으로 발탁됐다. 대선 당시 경쟁 후보들 중 환경 공약이 가장 보수적인 것으로 평가받았던 노무현 후보의 환경 정책은 정권의 시작부터 우려를 낳았고 결국 핵 폐기장 논의에 배제되거나, 새만금 사업과 독도 개발 특별법 등을 반대하며 다른 부서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한 대표가 “국무회의 등에서 환경정책을 지지해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며 고충을 토로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한 대표가 이끄는 환경부는 수도권 대기환경 개선에 관한 특별법안,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 야생동식물 보호법 등의 제정을 위해 앞장섰으며, 정부업무평가 최우수 부처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 대표는 2004년 17대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환경부 장관을 사직하고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이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갑선거구에 공천이 확정, 한나라당 5선 중진 홍사덕 한나라당 의원을 상대로 선거에서 승리하고 17대 국회의원이 됐다.


17대 국회의원을 지내는 동안 한 대표는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소속돼 활동하면서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위해 노력했다. 이 기간 동안 당 내에서는 신행정수도 건설특별위원회 위원장을, 가정법원에서는 가사?소년제도개혁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열린우리당 중앙상임위원국회의원에 당선된 한 대표는 한때 당의장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열린우리당 내에서 청와대의 국정 수행을 지원하는 국정과제수행특별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국감스타 떠오르며
정치권에 이름 알려

2005년 이부영 당시 열린우리당 당의장을 비롯한 지도부가 4대 법안 처리 불발에 책임지고 사퇴할 당시 한 대표도 함께 상임중앙위원직을 사퇴했다. 이후 새 지도부의 당의장 후보로 문희상 의원과 함께 이름이 거론되다가 돌연 의장 경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나 당의장 경선에서 친(親)정동영 측이 지지의사를 밝히자 한 대표는 다시 경선에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박영선, 김희선 의원 등 당내의 여성 의원들은 모임을 갖고 한 대표로 후보를 단일화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전당대회 결과 문희상 의장이 당대표로, 한 대표가 4명의 중앙상임위원 중 하나로 당선됐다.

한 대표는 당혁신위원회에서 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4?30 재보선결과 열린우리당이 5곳 모두에서 당선자를 내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 인선이 이상주의에 대한 지도부의 동조라며 반발한 염동연 의원은 중앙상임위원에서 사퇴했다. 이후 염 의원은 호남 홀대론을 주장하며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주장한 기간당원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며 열린우리당 내부의 갈등을 심화시켰다. 여기에 2005년 10월26일 재선거에서 4개의 전 선거구에서 열린우리당이 패배하면서 결국 한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6개월 만에 전격 사퇴하게 됐다.

그러던 2006년 3월 노 전 대통령은 한 대표를 이해찬 전 총리에 이은 국무총리로 지명했다. 이틀에 걸친 국회의 인사청문회에서 한 대표는 당적 정리 문제와 국정 능력 및 이념적 편향 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그러나 결국 국회의 임명 동의안이 가결되면서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에 등극했다.

임기 중 당시 김병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의 거취 문제, 인터넷 로또 발행 취소 등 각종 현안과 관련해선 자기 목소리를 분명히 냈다는 평을 들었다. 한편으로는 시위대에 대한 탄압을 방관했다는 지적도 있다.

한 대표는 2007년 3월 총리직을 내려놓고 열린우리당으로 돌아갔다. 한 대표는 민주당과의 통합작업에 참여하는 동시에 대선 주자로 나서기 위한 준비작업을 진행했다. 이후 한 대표는 대선 경선 참가를 선언했지만 결국 이 전 총리로 단일화를 선언하면서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
‘대한통운 비자금 의혹’서 무죄 판결 받아

그러나 단일화에도 불구하고 이 전 총리는 정동영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에 대통령 후보 자리를 넘겨줬다. 한 대표는 이후 정 최고위원 진영에서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와의 단일화에 대한 공동협상기구 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결국 단일화는 실패했고, 정 최고위원은 대선에서 결국 이명박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대선 패배 이후 대통합민주신당은 지도부 구성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 2008년 1월일 손학규 민주통합당 의원이 대표로 선출되자 한 대표의 만류에도 불구, 친노계열로 분류되던 이 전 총리, 유 공동대표는 대통합민주신당에서 탈당한다. 결국 대통합민주신당에 남은 한 대표는 2008년 3월 고양시 일산동구 선거구에 대통합민주신당의 후보로 공천을 받게 됐다.

고양 일산 갑 선거구에서는 이 대통령의 인수위 행정실장을 지냈던 백성운 한나라당 의원과 경쟁했다. 총선을 20여일 앞둔 여론 조사결과 한 대표가 백 의원보다 약 10%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그러나 선거 사흘 전 한명숙의 선거운동원이 지역 사회단체장과 저녁식사를 한 뒤 “잘 부탁한다”며 음식값을 낸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43.8%의 지지율을 얻은 한 대표는 47.1%의 지지율을 얻은 백 의원에게 패배하게 됐다.


그러던 2009년 12월, 한 대표의 정치인생 최고의 난관에 봉착하게 됐다. 총리 재직 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 인사청탁으로 5만달러(당시 환율로 4500만원 정도)를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은 것. 이른바 ‘대한통운 비자금 의혹’이다. 한 대표는 검찰의 수사에 대해 부당한 수사라고 주장하면서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체포 영장이 발부돼 체포됐고 조사과정에서 곽 전 사장과의 대질신문 등이 이어졌으나 한명숙은 묵비권을 행사했다. 당시 일각에선 검찰과 곽 전 사장 간의 거래가 있지 않았느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검찰이 곽 전 사장의 내부자 정보를 이용한 불법 주식거래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리로 종결한 것을 두고서다.

길고긴 공판 끝에 2010년 4월, 이 사건의 1심 재판 결과 한 대표에 무죄가, 곽 전 사장에게 횡령 혐의로 징역 3년형이 선고되면서 의혹을 벗었다. 그 직후 한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리고 100% 여론조사로 이루어진 민주당 경선에서 이계안 전 의원에게 승리하면서 민주당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출마하게 됐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 대표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맞붙었다. 그러나 모든 여론조사에서 20%정도 뒤지며 오세훈 대세론이 형성됐다. 그러나, 실제 선거에서는 여론조사 결과와 달리 선거 다음날 새벽까지 엎치락뒤치락 개표 끝에 오 전 시장에 근소한 차이로 뒤지며 낙선했다.

정권교체 행보에
시동 거는 모양새

이후 몸을 낮추고 있던 한 대표는 지난해 말 민주통합당 당대표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지난 15일 지도부 선출을 위해 열린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24.05%의 득표율을 보이며 16.68%로 2위를 차지한 문성근 국민의 명령 대표를 따돌리고 신임 대표에 당선됐다. 이로써 한 대표는 정권교체라는 막중한 임무를 안고 민주통합당을 이끌어가게 됐다. 그리고 이를 위한 행보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고 있는 모습이다. 정치인생의 마지막 승부에 나선다는 각오를 밝힌 한 대표가 과연 정권교체를 이뤄낼 수 있을까.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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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