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6대 측근비리 ‘종합 현황도’ 완벽 해부

MB 옥죄는 2국조·4특검…박근혜도 OK?

[일요시사=이해경 기자]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말 극심한 레임덕의 블랙홀에 빠지며 ‘사면초가’에 직면했다. 그간 ‘측근비리 엄정수사’ 입장을 밝혀왔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자고나면 터지는 측근비리 때문에 이 대통령은 더욱더 궁지에 몰리는 상황이다. 권력의 단맛을 본 측근들은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챙기는데 급급했다. ‘욕심이 과하면 화를 면치 못한다’ 했던가? 이는 부메랑이 되어 비리 당사자들은 물론 이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는 모양새다.


<국정조사 추진>
MB 내곡동 사저 부지 관련 의혹
카메룬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 의혹 

차기 대선을 1년도 채 남겨두지 않은 현재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비리가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다.

연이은 측근비리로 ‘형사처벌이 예약된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를 얻었지만 이는 수식어로 끝나지만은 않을 태세다.

민주통합당의 ‘대통령 측근 온갖 비리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가 이 대통령의 측근비리에 대해 ‘6대 비리 게이트’라고 규정짓고 국정조사와 특별검사제 도입을 촉구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측근 온갖
비리 진상조사위원회’


진상조사위는 지난해 말 ‘형님 게이트’ ‘이국철 게이트’ ‘내곡동 사저 게이트’ ‘저축은행 게이트’ ‘영부인 게이트’ ‘다이아 게이트’ 등 각 비리 사안별로 당 소속 법제사법위원회·정무위원회·행정안전위원회 위원 등으로 구성된 전담 테스크포스팀(TF)을 구성했다.

이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지난 12월 25일이었다. 신건 위원장과 김진표 원내대표 등은 기자간담회를 갖고 6대 비리사건을 지정해 2개의 국정조사와 4개의 특별검사제 추진을 밝혔다.
 
이와 함께 진상조사위는 ‘대통령 측근 온갖 비리 종합 현황도’(이미지 참조)를 공개해 관심을 끌었다.

이 현황도에는 이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를 중심으로 측근비리의 관계가 간략하고도 상세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었고, 조사위원들은 특검대상과 국조대상을 빨간 스티커로 분류하기까지 했다.

김 원내대표는 “(대통령 측근 비리) 문제에 대해 사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데 대해서는 국정조사로 철저하게 밝히고, 이미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의 경우 국민이 납득할 만한 수사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특검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특검의 경우 도입 시점은 검찰조사 결과를 보고 판단하고, 국정조사는 한나라당과 협의를 거친 뒤 이번 국회 회기 내(15일 이전)에 시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투명성기구가 지난달 23일 발표한 2011년 부패뉴스 1위에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매입 논란’, 2위에 ‘부산저축은행 비리사건’, 3위에 ‘이 대통령 친인척 측근 비리’가 올랐다”며 “이 대통령에게 아직도 이 정권을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보는지 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진상조사위는 우선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의 보좌관 박모씨가 연루된 금품수수 의혹을 형님 게이트라고 주장하면서 “의원실 직원들을 통한 조직적인 돈 세탁이 이뤄졌는지 여부, 박모 보좌관의 선임이었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의 개입 여부, 저축은행 퇴출 저지 로비와 관련해 금융감독원 관계자에 대해 압력을 행사했는지 여부 등을 적극 규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끝없는 측근 비리
6대 비리 사건 지정


진상조사위 신 위원장은 특히 이 의원의 최측근 금품수수 의혹에 대해 “검찰은 주변 뒤지기를 그만하고 이 의원을 즉각 소환 조사해야 한다”며 “이렇게 의혹이 제기됐는데도 이 의원을 소환하지 않으면 축소·은폐 수사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신 위원장은 “박 보좌관은 알려진 계좌 이외에도 수억원의 뭉칫돈이 입금된 3~4개의 별도 계좌를 갖고 있던 것이 밝혀졌다”면서 “이중에는 이 의원과 박 보좌관이 일했던 코오롱 관계자 명의의 계좌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신 위원장은 “당사자들은 사무실 운영비라고 주장하고 있고 이 의원은 전혀 알지 못한 것이라고 진술했다는데 수억원대의 사무실 운영비 계좌를 의원이 몰랐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면서 “이를 믿어줄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신동아> 1월호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 인수위 당시 투자했다 2조 원 가까운 국고 손실을 입힌 한국투자공사(KIC)의 메릴린치 투자 건을 실무적으로 검토해 품의한 최고책임자와 이 의원의 아들 이지형씨가 밀접한 관계라고 한다”며 “대통령은 지금 바로 국민 앞에 나서서 친인척 관리를 제대로 못한 점을 사과하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지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별검사제 추진>
이상득 의원실 수상한 거액 자금거래 의혹
SLS 이국철 회장의 대통령 측근 로비 의혹
김윤옥 여사의 사촌오빠 등 금품수수 의혹
삼화저축은행 관련 정권 실세 로비 의혹 


진상조사위는 박 전 차관과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게 로비를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국철 SLS 그룹 회장이 김준규 전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고위관계자들에게 추가 로비를 벌였는지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살펴볼 계획이다.
 
또한 유동천 제일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로비 청탁과 함께 수억원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김재홍 KT&G복지재단 이사장(이 대통령의 사촌 처남)이 영부인의 사촌오빠라는 점에서 영부인이 개입 했는지 여부 등에 대해서도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전종화씨가 지난달 21일 주가조작과 횡령에 휘말려 상장 폐지된 코스닥 상장기업 씨모텍 사건에 개입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조치 된데 대해서도 진상조사위는 전씨가 씨모텍 인수자금을 조성한 배경과 주가 조작 가담여부 등을 철저히 수사토록 검찰에 촉구했다.
 
신 위원장은 “전씨는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회장, 브로커 이철수, 이 대통령의 보좌관 출신이었던 윤만석씨와 함께 삼화저축은행 인수를 시도했던 자”라면서 “아직 풀리지 않고 있는 삼화저축은행 로비의혹 등을 밝혀낼 핵심인물”이라고 말했다.

한편 진상조사위는 논란이 된 이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 의혹에 대해서는 “이 대통령의 사저 승인·지시 의혹, 이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씨 명의의 사저 부지 구입이 명의 신탁을 가장해 부동산 실명제법을 위반했는지 여부, 장남 명의를 이용한 편법 증여 의혹, 국가예산을 횡령한 투기 의혹 등을 살펴 볼 것”이라고 강조했고 국정조사를 먼저 실시한 뒤 특검 도입을 추진키로 했다.

또 박 전 차관이 개발권 선정에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카메룬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은 내년 1월에 나올 감사원 감사결과를 보고난 뒤 정권실세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밝혀지지 않을 경우 국정조사를 추진할 예정이다.

신 위원장은 “대통령 주변인사들의 비리 의혹이 지속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그야말로 점입가경이고 목불인견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대통령은 지금 바로 국민 앞에 나서서 친인척 측근을 관리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검찰에 철저한 수사를 하도록 지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전히 남 탓만
계속하는 MB


자신을 옥죄 오는 민주통합당의 이 같은 움직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대통령은 여전히 남 탓만 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열린 국민권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공직사회 청렴문화 확산을 주제로 토론을 가진 후 마무리 발언을 통해 “공직사회에 대한 청렴의 잣대는 엄격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무역 1조불 시대를 달성하는 등 대한민국의 국격이 높아졌지만 부정부패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국제사회에 가면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이 대통령은 “(공직사회는) 다른 분야와는 잣대가 다르다”며 “공직자에 대한 잣대를 엄격히 하는 것이 우리 사회를 공정사회로 만드는 초석이 될 수 있다. 공직사회부터 맑아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또한 “우리 정부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경제를 성장시켜서 일자리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깨끗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며 “깨끗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케 하는 것”이라며 거듭 공직자 청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신의 측근비리 의혹에 대한 해명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공직자들 탓만 한 것이다. 발언 내용은 분명 맞는 말이지만 측근비리가 연이어 터지는 시점에서 이 대통령이 ‘청렴의 잣대’를 논하는 것은 어이없다는 네티즌들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트위터 상에는 “MB나 잘하세요” “말 따로 행동 따로 입니다” “왜 완벽한 도덕적인 정부라면서” 등 비난과 조롱투의 글들이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남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측근비리에 대한 해명과 후속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레임덕은 더욱더 가속화 되고 후반기 국정운영 동력이 약해 질 것은 불 보듯 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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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