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기획]<일요시사 선정> 2011 이슈메이커 50인③사회 10인

웃고 울었던 2011년엔 “내가 제일 잘나가~”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2011년은 사회 전반으로 다사다난했던 한해였다. ‘나꼼수’ 열풍으로 전국이 떠들썩했고 무상급식 투표는 정치·사회적 문제로 많은 대중들의 관심을 낳았다. 또 자살한 60대 여성의 사체를 성폭행한 고등학생의 범행이 드러나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지하철의 막말녀, 막말남 등장과 그들의 그릇된 행동으로 인성문제를 되짚어보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일요시사>는 지난 1년 동안 사회를 뒤흔들었던 화제의 인물을 중심으로 2011년을 뒤돌아봤다.

‘가카’와 정권의 실정에 ‘똥침’ 쏘는 ‘나꼼수’와 ‘더반의 여신’ 나승연
국민적 관심·공분 이끌어낸 <도가니> 공지영 작가와 ‘고공농성’ 김진숙

<대한민국 뒤흔든 ‘나꼼수’ 4인방>

2011년 대한민국은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에 열광했다. 팟캐스트 방송 부동의 1위에 이어 토크콘서트 전석매진 기록까지….

4명의 나꼼수 출연자(김어준, 정봉주, 김용민, 주진우)는 몇 달 사이에 연예인 뺨치는 유명인사가 되어 초절정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들이 내는 책들은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일제히 차지하고 있을 정도니 ‘지금은 나꼼수 시대’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지난 4월부터 등장한 나꼼수는 ‘2040세대’를 중심으로 키워져 온 불만과 분노를 외면하고 방치해온 무능한 정치권을 신랄하게 비판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현재 나꼼수는 평균 다운로드 200만 건, 조회 수 600만 건을 기록하면서 팟캐스트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으며 ‘쫄지마’와 같은 유행어를 양산하는 등 연일 화제를 낳고 있다.

나꼼수의 인기와 영향력은 기성언론의 대항마를 넘어 ‘신드롬’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세상을 음모적 시각으로 재단하고 무책임한 폭로와 조롱, 편파성에 대한 우려와 사회에 대한 다양한 책임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나꼼수는 ‘이명박 가카 헌정방송’을 목표로 2013년 3월까지 한시적 활동을 예고하고 있다. 한동안은 나꼼수 인기가 계속되리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각종 논란 속에서도 나꼼수 ‘4인방’ 잘~나가니 이런 관측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도가니> 신드롬 공지영>

영화 <도가니>의 원작자 공지영 작가는 장애인에 대한 성범죄와 관련 실화를 다뤄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를 일으켰다는 뜨거운 반응으로 화제의 10인에 선정됐다.

지난 9월 22일 개봉한 영화 <도가니>는 2009년 출간된 공지영 작가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공지영 작가도 덩달아 인기를 끌었다.

<도가니>는 몇 년 전 광주 인화학교에서 실제로 벌어진 장애아동 성폭행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영화가 갖는 극적인 요소와 유명 작가의 글 솜씨는 차치하더라도 <도가니>는 국민들의 심금을 울리고 분노를 사기에 충분할 만한 소재를 다루고 있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차별받는 계층이랄 수 있는 장애인, 그것도 어린 장애 학생들이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인권 유린을 당했다는 사실은 국민의 감성과 이성 모두를 흔들어 놨다.

도가니 열풍에 대해 공지영 작가는 “사람들이 승자독식이 이뤄지는 우리 사회를 보고 분노했지만 양상은 파편화돼 있었었는데 영화에서 약한 아이들까지 짓밟히는 것을 접하고는 분노가 결집했다”면서 “나의 분노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사람들이 더욱 목소리를 높이는 것 같다. 또 사람들이 ‘나도 언젠가는 저런 약자가 될 수 있다’고 느낀 것 같다”고 분석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의 주역 나승연>

지난 7월 6일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호소력 있는 프레젠테이션을 펼쳐 평창의 2018 동계올림픽 유치를 이끈 주역을 꼽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나승연(38) 평창유치위 대변인이다.

평창이 세 번째 도전에서 ‘환희의 눈물’을 흘리면서 나 대변인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더반의 여신’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화제를 낳았다.

프레젠테이션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 나 대변인은 유창한 영어와 불어를 구사하며 IOC 위원들에게 올림픽을 향한 평창의 뜨거운 열망을 호소력 있게 전달했다. 아울러 빼어난 미모와 매끄러운 연설도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앞서 지난해 4월 평창 유치위의 대변인으로 채용된 나 대변인은 1년 넘게 각종 국제 행사에서 ‘평창 알리기’에 앞장서왔다.

아리랑TV 앵커 출신인 나 대변인은 영어와 불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하는 재원이다. 나 대변인은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한 뒤 한국은행에서 1년간 근무했지만 1996년 아리랑 TV가 개국한다는 소식을 듣고 공채 1기로 입사해 4년여 동안 방송 기자로 활동했다.

방송 기자에서 평창의 입으로 변신한 나 대변인은 지난 IOC 총회에서 인상적인 프레젠테이션을 펼침으로써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는 평을 듣게 됐다.

<자서전 <4001> 출간한 신정아>

지난 2007년 학력위조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스캔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정아씨가 지난 3월, 자전 에세이를 내고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책 제목 <4001>은 신씨의 수인번호다. <4001>은 지난 2007년 일명 ‘신정아 사건’ 직후부터 최근까지 약 4년간 쓴 일기들 중 일부를 편집해 만든 에세이다.

신씨는 이 책에서 연인 관계였던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만남부터 파국, 동국대 교수 채용 과정과 불교계와의 관계, 정치권 배후설과 청와대와의 인연, 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부도덕한 행위 등을 언급해 파문을 일으켰다.

단순히 자기 고백이 아닌 개인의 ‘복수’라는 지적 속에 출간 목적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 뜨거운 논란이 됐다.

신씨의 자서전 <4001>은 세상에 공개된 지 2주 만에 수만 부가 넘게 팔리면서 수억원이 넘는 인세를 올리는 등 4년전 학력위조 파문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씨는 또 한 번 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당시 신씨는 학력 위조로 동국대 교수로 활동하고 미술관 공금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2007년 10월 구속 기소된 뒤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고, 지난 2009년 4월 보석으로 석방됐다.

<‘잡범’으로 전락한 ‘대도’ 조세형>

‘대도(大盜)’ 조세형이 60만원을 훔치는 강도짓을 해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그것도 출소한 당일 현장에서 다시 체포된 것.

조세형은 한 때 부유층의 재산만을 훔쳐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는 등의 행위로 ‘현대판 의적’이라 불리며 민심을 얻었던 인물이다.

197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대도’의 길을 걷기 시작한 조씨는 나름의 원칙을 세워 도둑질을 했다. 가난한 사람의 물건엔 손대지 않고,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나라 망신이란 생각에 외국인 집도 털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또 도둑질로 생긴 돈의 40%를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다는 결심까지 했다. 이는 나중에 그가 대도로 불린 이유다.

무심코 은수저를 훔쳤던 5세 어린이는 어느덧 70대 노인이 되서도 제 버릇을 남 주지 못했다. 한때 대도란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았지만, 좀도둑과 장물아비 신세로 전락하더니 급기야 강도짓을 한 ‘졸범’으로 전락했다. 그것도 고작 60만원 때문에 말이다.

아직도 국민들의 뇌리 속에 ‘의적’으로 각인돼 있는 인물치곤 초라하기 그지없는 말년이다.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58) 선장도 10인의 이슈인물에 꼽혔다. 석 선장은 지난 1월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돼 치명적인 총상을 입고 수술 끝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석 선장이 속해있던 삼호해운 소속 화학물질 운반선 삼호주얼리호는 아랍에미리트에서 스리랑카로 향하던 중에 해적들의 습격을 받아 피랍됐다.

‘잡범’으로 전락한 ‘대도’ 조세형…여명 속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
도전하는 산악인 박영석 대장, 세상을 깨운 어머니 이소선 여사 ‘잠들다’

이후 피랍지점에서 2000km 떨어진 아덴만에서 활동 중이던 최영함을 급파해 인진 구출작전에 나섰고 수시로 경고사격, 심리전 등을 펼쳐 피랍 6일 만에 선원 및 인질들을 모두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석 선장은 퇴원 후 처음 가진 강연에서 “청해부대 작전이 시작되고 기관사가 엔진을 끄고 발전기도 멈췄다. 곧 비상전원이 들어왔고 이마저 나가는 순간 해적이 나를 쏴 빗맞는 바람에 목숨을 건졌다”며 “최영함으로 이송되고 오만 현지 병원으로 옮겨지면서 ‘여기서 정신 놓으면 난 죽는다. 아프지만 어떻게든 병원까진 간다’는 생각으로 고통을 참았다”고 피격당시 상황에 대해 털어놓았다.

<사라진 불멸의 산악인 고 박영석> 

산을 사랑하고, 산과 벗하고, 산에서 삶을 배우고, 그러다 결국 산으로 돌아간 영원한 ‘산사나이’ 박영석 대장. 그가 7번째 화제의 인물로 꼽혔다.

박 대장은 히말라야 8000m 이상 봉우리 14좌와 7대륙 최고봉(最高峰), 3극점(極點)을 모두 정복했다. 산악인들은 히말라야 14좌와 7대륙 최고봉, 3극점을 모두 달성한 것을 ‘그랜드 슬램(grand slam)이라고 한다. 박 대장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그러나 그의 도전정신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 9월12일 히말라야 3대 거벽 중 하나인 안나푸르나 남벽에 신루트를 개척하기 위해 원정길 도전에 나선 것. 박 대장 일행은 9월17일 안나푸르나 남벽 밑으로 이동, 18일 등정에 나섰으며 해발 6500m 지점에서 비박을 한 뒤 4일간 절벽에 매달린 채 식사와 잠을 해결하는 ‘알파인’ 방식으로 정상에 올라 반대편으로 하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안나푸르나 남서벽 출발점 근처에서 눈사태와 낙석을 만나 연락이 두절됐다. 대한산악연맹은 즉시 사고대책반을 꾸려 실종 추정지역에 대한 수색에 나섰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렇게 닷새가 흘렀고 수색작업이 종결됐다.

무전기 속 거친 숨소리가 산사나이 박 대장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흔적이었다. 결국 산사나이는 산에 잠들었다.


<‘노동자의 어머니’ 고 이소선>

‘노동운동의 대모’ 고 이소선 여사가 지난 9월 향년 81세로 별세했다.

노동의 자유를 외치며 민주화운동 선봉에 나섰던 젊은 청년 전태일. 1970년 11월 그는 근로조건 개선을 촉구하며 화형식이 거행된 거리 시위에서 불속에 투신해 2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우리는 그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기억하고 있고, 그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역시 ‘모든 젊은이들의 어머니’로 불렸다.

이 여사는 1970년 아들 전태일 열사의 분신 후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적극 나서며 노동운동의 대모로 불려왔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의 유족을 모아 민주화운동가족협의회를 창립해 초대 회장과 고문을 맡았으며 최근까지 노동운동이 현장마다 모습을 드러내 노동자들을 격려했고 40여년을 민주화 헌신에 힘쓴 인물이다.

<고공 크레인 위 309일 김진숙>

한진중공업 사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다.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에 입사, 용접공으로 일하며 노조활동을 주도하다가 1986년 직장을 잃었던 25년차 해고 노동자인 김 위원은 그동안 한진중공업 문제를 사회이슈로 부각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 위원이 수백일 동안 고공농성을 하고 김여진, 김제동 등의 ‘소셜테이너’가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한진중공업 사태가 부각됐으며 시민들은 ‘희망버스’를 타고 영도조선소 앞에 모였다.

이후 손학규, 정동영 의원 등 유력정치인과 시민사회단체, 언론까지 집중적인 관심을 가지며 한진중공업 사태는 일약 이슈로 떠올랐다.
 
목숨을 건 김진숙 지도위원의 고공투쟁 그리고 시민과 노동자들의 연대의 힘을 보여준 희망버스. 역사는 김 위원의 309일을 벼랑 끝에 내몰린 서민과 노동자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시간으로 기록할 것이다.

<‘트위터 대통령’ 작가 이외수>

화천 감성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소설가 이외수는 ‘트위터계의 대통령’으로 불린다. 팔로워가 100만명이 넘는 그는 국내 트위터 사용자 1위, 작가부문 1위, 팔로워 보유자 1위, 리스트 된 순위 1위에 올라있다.
 
트위터에서 수많은 ‘추종자’를 낳고 있는 이외수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의 작품은 평단에서 가벼운 문체, 내용이 없다란 혹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난해하지 않은,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들은 ‘140자 세상’ 트위터에서 더욱 빛을 내고 있다.

여기에 그의 수많은 작품에서 일관되게 보여온 인간에 대한 사랑론, 외모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인터넷 폐단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식이 트위터에서 가감 없이 전해지며 공감과 감동을 전해준다.

각박하고 올바름에 대한 판단기준이 흐려지는 세태에서 수많은 이가 그의 트위터를 찾고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이외수는 스마트폰 대중화와 맞물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소통의 시대정신을 상징하는 인물로 2011년 화제의 인물에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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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