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기획]<일요시사 선정> 2011 이슈메이커 50인②재계 10인

좋은 회장님, 나쁜 회장님, 이상한 회장님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2011년 한해가 저물었다. 늘 그랬듯 재계 역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그러나 꼭 나쁜 일만 있던 건 아니었다. 얼룩덜룩한 각종 비리와 의혹 사이로 마음이 따듯해지는 감동도 전해졌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의문이 있는가 하면 가슴 먹먹한 사연도 있었다. 그야말로 ‘희노애락’이 한데 버무려진 한해였다. 지난 2011년 한해 신문지면을 수놓은 사건과 이슈들을 재계를 호령하는 총수들을 중심으로 풀어봤다.

최태원, 정몽구 통 큰 기부…이건희, 발로 뛰어
이윤재, 담철곤 철창…허창수, 재계서 죄인 취급

<5000억원 통 큰 기부 정몽구>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은 올해 재계 대표급 ‘좋은 회장님’에 등극했다. 지난 8월28일 5000억원 상당의 현대글로비스 주식을 그룹 사회공헌재단인 해비치 재단에 출연한 것을 두고서다. 기부액은 저소득층 미래 인재 육성을 위해 사용된다.

사방에서 갈채가 쏟아졌다. 정 회장의 기부가 이처럼 환영 받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동안 내로라하는 국내 재벌들의 기부가 손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물론 연말연시나 재난 때 적지 않은 돈을 내놨지만 대부분 기업 차원의 기부였다. 게다가 이마저도 ‘보여주기’나 ‘생색내기’용이라는 게 세간의 평이다. 그러나 정 회장은 자신의 호주머니를 ‘탈탈’ 털었다. 당연히 돋보일 수밖에 없다.

개인 기부 규모로 사상 최대 액수라는 점 외에도 정 회장의 기부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우리 재계의 기부문화에 변화를 이끌어 내리란 기대감이 바로 그것이다. 정 회장은 올해 우리 기부문화에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다.

<핸드볼인 염원 이뤄준 최태원>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통 큰 기부’에 동참했다. 현금이나 주식을 내놓은 건 아니다. 최 회장은 핸드볼 전용 경기장을 준공해 기부키로 했다. SK그룹은 스포츠 분야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설계·공사비 434억원을 핸드볼협회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전액 부담했다. 국내 기업이 대규모 국민 스포츠 시설을 조성해 사회에 기부한 첫 사례다.

최 회장이 이 같은 결단을 내린 건 전용경기장을 갖는 게 핸드볼인들의 오랜 염원이라는 얘기를 듣고서다. 국내 최고 수준으로 지어달라는 최 회장의 당부에 경기장 내 관람석?전광판?음향설비 등에 최상급 기술과 자재가 투입됐다는 후문이다.

최 회장의 기부가 더욱 빛을 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울산대공원과 세종시 장례문화센터를 조성 및 기부하는가 하면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2009년부터 500억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 ‘행복한 학교’ 등 사회적 책임에 앞장서고 있다. 최 회장의 사회적 기여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공공시설 조성 부문만 2000억원대에 달한다. 여기에 사회적기업 지원 기금을 더하면 규모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주역 이건희>

재계 맏형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몸으로 직접 뛰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서다. 지난 2월 평창을 찾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실사단 접견을 시작으로 영국 런던 ‘스포츠 어코드’, 스위스 로잔 ‘IOC 테크니컬 브리핑’,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IOC 총회’ 등 유치전의 핵심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 지지를 호소했다. 1년반 동안 해외 출장을 170일이나 다녔다. 이동거리는 모두 21만㎞, 지구 5바퀴가 넘는 거리다.

올림픽 유치를 위해 글로벌 그룹의 회장이라는 자존심도 내려놨다. IOC 위원 자격으로 동료위원들을 일일이 쫓아다니는가 하면 선약이 있는 IOC 위원을 만나기 위해 1시간30분이나 기다리기도 했다.

각고에 노력 끝에 지난 7월6일 평창이 개최지로 선정됐다. 이날 이 회장은 소리 없이 울먹였다. 이로 인해 국민들은 2003년, 2007년 두 번 연속 결선투표에서 평창이 탈락했던 아쉬움을 훌훌 털어낼 수 있었다.

<청부폭행 혐의 철창행 이윤재>

좋은 일에 앞장선 ‘착한 회장님’ 들이 있는가하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못된 회장님’도 있다. 그 선두에 있는 건 단연 이윤재 전 피죤 회장. 직원 폭행, 회삿돈 횡령, 청부폭행 등 온갖 더러운 일이 그를 중심으로 벌어졌다.

문제는 지난 6월 이은욱 전 피죤 사장을 취임 4개월 만에 해고하면서 시작됐다. 이 전사장을 통해 창업자 일가의 전횡이 세상에 알려진 것. 여기에 피죤 전 직원들의 제보도 잇따랐다. 다급해진 이 전 회장은 측근에게 3억원을 건네며 이 전 사장 등의 입막음을 주문했다. 김 이사는 청부폭행을 지시했고 결국 경찰에 적발돼 재판에 넘겨졌다.

이국철, 선종구, 조남호, “당최 속을 알 수가 없네”
박태준, 빈손으로 떠났지만 국민 가슴에 영원히


이 전 회장은 재판 과정에서 책임을 지고 경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이 전 사장 등 전 임직원들을 상대로 한 모든 소송도 취하했다. 이 전 회장은 깊이 뉘우치고 있다며 거듭 선처를 부탁했다. 법원은 이 전 회장에게 징역 10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그러나 이 전 회장의 반성은 진심이 아니었다. 선고에 앞서 대표이사직을 사임한 이 전 회장이 대표이사직 사임 후 보름도 지나지 않아 사내이사로 취임했다는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또 후임 대표에 이 전 회장의 딸인 이주연 부회장이 선임됐다. 결국 이 전 회장의 반성은 형량을 낮추기 위한 ‘꼼수’였던 셈이다.

<비자금 혐의 쇠고랑 담철곤>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도 쇠고랑을 찼다. 30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다. 검찰에 따르면 담 회장은 해외 유명작가의 고가 미술품들을 계열사 법인자금 140억원으로 매입해 서울 성북동 자택에 설치했다. 담 회장은 회삿돈으로 고가의 외제 고급 슈퍼카도 굴렸다. 담 회장이 ‘공짜’로 몰고 다녔던 차량들의 가격은 웬만한 집 한 채보다 비싸다. 담 회장은 회삿돈으로 자택에 관리자 8명을 두고 ‘황제 생활’을 누리기도 했다.

검찰은 담 회장에게 징역 3년6개월을 구형했다. 담 회장 측은 실형을 피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전략을 구사했다. 우선 호화 변호인단을 구성해 방어에 나섰다. 재계와 법조계에선 역대 최강의 ‘드림팀’이 모였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 영장 청구 직전 문제가 된 돈도 변제했다. 담 회장은 법원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검찰 측에서 횡령·배임 혐의를 적용한 회삿돈 160억원을 개인 재산으로 전액 갚았다. 이어 경영인으로서 ‘담철곤 업적’을 강조했다. 변호인단은 공판 때마다 해외시장 진출 등의 담 회장 공로를 부각시켰다. 담 회장은 이처럼 ‘아등바등’ 했지만 3년형을 선고받으면서 결국 철창신세를 면치 못하게 됐다.

<죄인된 양 비난받는 허창수>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딱히 죄를 짓진 않았다. 그러나 마치 죄인이라도 된 양 비난을 받고 있다. 전경련 회장으로서 할 일을 똑바로 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허 회장은 지난 2월 전경련 33대 회장에 올랐다. 당시 ▲초과이익공유제 추진 ▲기업별 동반성장지수 발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연기금 주주권 행사 강화 ▲법인세 감세 철회 움직임 ▲공정거래법 개정안 처리 등 재계에 대한 정치권 압박이 거세지던 때였다. 그러나 정작 대기업 입장을 대변해야 할 전경련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기업들의 불만은 날로 높아갔다.

재계와 정치권 사이에 암운이 짙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허 회장이 ‘마이크’를 든 것은 지난 6월 취임 후 처음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다. 허 회장은 이 자리에서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노골적인 반기를 들었다. 재계는 전체적으로 허 회장의 쓴소리를 반색했다. 오랜만에 대기업들의 입장을 시원하게 대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도 잠시. 허 회장을 여의도로 호출하는 등 발끈한 정치권이 잔뜩 벼르자 전경련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심지어 정부·정치권과 보조를 맞추거나 눈치를 보는 기류마저 감지됐다. 이후 지금까지도 허 회장은 굳게 다문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재계에선 허 회장이 그동안 쌓아온 전경련 명성에 먹칠을 하고 있다고 비난이 나오고 있다.

<정계 로비 폭로한 이국철>

좋지도,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은 ‘이상한 회장님’도 있다. 정계 로비를 폭로하며 정계의 핵으로 떠오른 이국철 SLS그룹 회장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 회장의 ‘폭로’가 시작된 건 지난 10월. 첫 번째 폭로 대상은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었다. 이후 폭로 대상은 늘어났다. 이 회장은 이명박 정권에서 ‘왕차관’으로 불리는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이 접대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 회장이 공개한 ‘비망록’에는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과의 만남, 대검 고위 관계자 등에게 5억 원을 현금으로 전달한 일 등이 나와 있다. 비망록은 이 회장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검증과 사실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다.

문제는 폭로의 목적이다. 이 회장은 신 차관과 인간적으로는 둘이 형 동생으로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 회장은 신 차관을 사회적으로 살인했다. 상식적으론 생각하기 힘든 모순이다. 이를 두고 여러 설들이 오가고 있지만 아직 폭로의 목적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짜고 치는 고스톱 선종구>

선종구 하이마트 회장은 돌연 하이마트를 매각키로 결정하면서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선 회장과 유진그룹은 지난 11월 경영권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그러던 지난 11월30일 하이마트 주주총회 직전 극적인 화해를 했다. 이날 주총에선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이 재무 총괄을, 선 회장이 영업 총괄을 맡는 각자대표 체제를 의결했다.

모든 것은 수습된 듯 보였다. 갈등의 핵심이던 유경선 회장의 이사 선임 문제가 해결됐고, 경영진과 대주주간 갈등으로 기업 가치 훼손을 우려하던 시장은 주가 반등으로 화답했다. 그러던 지난 12월1일 선 회장은 돌연 재매각으로 방향을 틀었다.

시장은 경악했다.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를 놓고 입장 정리에 고심했던 기관투자자들은 불쾌한 반응 일색이다. 이들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개인투자자들도 초대형 매물폭탄을 꼼수로 막았다며 분개하는 모습이다. 1, 2대 주주가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비난도 쏟아져 나왔다. 선 회장은 표면적으론 ‘비전 있는 주주를 찾기 위해서’라는 매각 사유를 밝혔지만 그 진짜 속내는 안개에 가려있다.

<골치 아프면 한국 뜨는 조남호>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도 생각을 알 수 없는 인물이다. 한진중공업 사태 당시의 처세를 두고서다. 한진중공업 사태는 지난해 12월15일 사측이 노조에게 400명의 정리해고자 명단을 통보하면서 본격화 됐다. 이후 노사는 한치의 물러섬 없이 대립각을 세웠다. 갈등은 고조됐고 사태는 여야 정치권까지 확대됐다.
그 동안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조 회장은 그야말로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청문회 요구를 받은 직후인 지난 6월17일 도망치듯 비행기에 몸을 실은 뒤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다. 약속한 날짜에 귀국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사측도 조 회장의 동선을 파악하지 못했다. 출장을 핑계로 댔지만 도피성 외유라는 게 전반적인 시각이었다.

복귀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자 지난 8월10일 조 회장이 돌아왔다. 출장길에 오른 지 54일 만이었다. 마이크 앞에 선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은 한진중공업 사태와 관련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러면서도 정리해고 원칙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지켰다.

8월18일 열린 청문회는 그야말로 ‘조남호 난타전’을 방불케 했다. 그럼에도 조 회장은 구조조정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을 지켰다. 이처럼 완고한 의지를 지켜오던 그는 지난 11월9일 돌연 한진중고업 노사가 94명의 해고자를 재고용하는데 합의했다. 끝까지 속내를 알 수 없는 회장님이다.

<쇳물처럼 뜨겁게 살다 간 박태준>

국민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 회장님도 있었다. ‘철강왕’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박 명예회장은 지난 13일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10년 전 수술했던 흉막섬유종 후유증으로 흉막 전폐절제술을 받고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박 명예회장은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했던 1960년대, 모래 바람만 자욱하던 경북 포항에 ‘죽기 살기’로 일관제철소(제선, 제강, 압연의 세 공정을 모두 갖춘 제철소)를 세웠다. 무리수라는 비난에도 ‘제철보국’의 신념으로 포스코를 세계 최고의 철강기업으로 키워냈다. 그런 그의 무쇠 같던 육체와 집념도 결국 죽음을 비켜가지 못했다.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라는 좌우명을 일평생 지켜온 박 명예회장은 청렴한 생활로 유명하다. 1960년대 제철소 건설초기부터 단 한 주의 주식도 보유하지 않았다. 소유와 경영을 철저히 분리해야 제대로 된 조직운영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의 명의로 남은 재산은 한 푼도 없었다. 최근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큰딸의 집에서 지냈으며 입원비조차 본인 스스로 감당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박 명예회장은 이처럼 빈손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우리 근현대사와 국민들의 가슴속에 남긴 족적만큼은 무엇보다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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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