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기획]<일요시사 선정>2011 이슈메이커 50인 - 연예계 10인

여기서 저기서 펑펑 ”바람 잘 날 없었다”

[일요시사=한종해 기자] 다사다난(多事多難). 매년 연말이 되면 한 해를 정리하며 습관처럼 서두에 꺼내는 말이다. 으레 하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2011년 연예계 역시 다사다난했다. 2011년 연예계에는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화려한 조명 속에서 축하받은 연예인이 있는가 하면 동전의 양면처럼 우중충한 한 해를 보낸 연예인도 적잖았다. 지난 1년간 연예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화제의 인물을 중심으로 사건들을 되짚어봤다.

밑바닥에서 정상까지, 가요계 휘청휘청
서태지-이지아 비밀결혼 ‘발칵’ 속았네…

<수십억원대 탈세 의혹 강호동>

강호동(41)은 지난 9월 탈세 의혹이 불거진 뒤 비난여론이 크게 일자 즉각 잠정은퇴를 선언, 칩거에 들어갔다. 강호동은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를 비롯해 KBS <1박2일> SBS <강심장> 등 지상파 3사를 모두 오가며 국민MC로 활약해 왔던 터라 전 국민이 깜짝 놀랐다.

강호동은 당시 탈세 논란이 단순 의혹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즉각 잘못을 인정하며 잠정은퇴를 선언해 물의를 일으키고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다른 스타들과 대조를 이뤘다. 국세청이 부과한 수억의 추징금도 곧바로 납부했다. 하지만 은퇴 후에도 평창 땅투기 의혹 등이 불거져 나오며 곤경에 처했다.

현재 강호동은 예전에 가족들과 함께 자주 방문하던 양평 별장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등 두문불출 상태다. 일부 네티즌들은 "다시보고 싶다" "없으니까 허전하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강호동의 방송복귀를 바라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너무 이르다" "죄를 지은 것은 사실이니 조금 더 자숙의 기간이 필요할 것" 등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월드스타다운 모범적 군생활 비>

지난 10월11일에는 월드스타로 발돋움한 가수 비(본명 정지훈·29)가 경기도 의정부 306보충대에 입대했다. 비는 입대 직전 기자회견 형식의 인터뷰를 통해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으며 케이블 방송으로 입대 현장이 생중계 되는 등 월드스타로서의 위용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비는 육군5사단 신병훈련소에서 신병교육을 받았으며 사격훈련에서 주간사격 20발 중 19발, 야간사격 10발 중 10발을 각각 명중시켜 특등사수로 인정받기도 했다.

비는 훈련소 퇴소식 때 훈련병 대표로 사단장 표창을 받아 포상휴가도 주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난 12일부터 5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조교로 본격적인 군복무를 시작했다.

비는 이곳에서 현역으로 21개월간 복무한 후 2013년 7월10일 만기전역할 예정이다.

<해병대 자원입대한 현빈>

배우 현빈(본명 김태평·30)은 비보다 한발 앞서 지난 3월 경북 포항시 해병교육훈련단에 자진 입소했다. 평소 현역 입대의사를 밝혀오던 현빈은 지난해 12월 해병대 지원서를 접수하고 같은 날 수원병무청에서 면접을 본 후 해병대 1137기로 합격했다. 현빈은 SBS 주말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성공과 영화 <만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의 연이은 흥행으로 군 입대 전 활발히 활동했다. 현빈이 입소하던 날 그의 입대를 격려하기 위해 1000여 명의 팬과 500여 명의 취재진이 몰렸으며 케이블TV는 생중계로 그의 입대를 방송했다. 특히 일본의 NHK를 비롯해 홍콩, 대만 등의 해외언론도 열띤 취재경쟁을 벌여 장사진을 이뤘다.

현빈은 백령도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으며 입대 후 발생한 해병대 총기사고와 자살사건 등으로 인해 예정보다 한 달여 가량 늦은 지난 7월27일 첫 휴가를 나왔다. 현빈은 휴가기간 동안 특별한 행보 없이 가족, 지인들과 시간을 보냈으며 9월에 일병으로 진급했다.

현빈은 스스로 해병대를 선택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한 연예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입대 전 촬영해 놓은 CF덕에 그의 인기는 사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오홍홍홍으로 최고 전성기 정재형>

실력있는 뮤지션이었지만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정재형(41)이 올해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MBC <무한도전>에 출연한 이후 정재형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까칠하고 도도하지만 쪼잔하고 소심한 구석까지 가지고 있는 그는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와 함께 남성의 웃음소리라기엔 어울리지 않는 "오홍홍홍" 소리까지 더해지면서 클래식을 전공하고 파리에서 유학까지 한 엘리트 뮤지션이라는 딱딱한 이미지 대신 유재석, 박명수, 정형돈 등 무한도전 멤버의 끼에 뒤지지 않는 예능의 신으로 탈바꿈 했다.

<은둔형 가수에서 스타 도약 임재범>

임재범은 MBC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에 출연하기 전까지만 해도 은둔형 가수였다. 그는 가수 데뷔 25년 만의 예능 출연에서 여러분(윤복희), 빈잔(남진)을 불러 대중의 심금을 울렸으며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로 단박에 국민스타로 변신했다.

실제 한 포털사이트에서 실시한 연예인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최대수혜자는?이라는 설문조사에서도 당당히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임재범은 <나가수> 이후 여성 의류 브랜드 TV 광고모델로 활약하고 자신이 주축이 된 MBC <우리들의 일밤-바람에 실려>에 출연했으며 생애 처음으로 앨범 쇼케이스를 여는 등 관심의 중심에 선 톱가수가 됐다.

<"뼈가 있어야 개그" 최효종>

최근 KBS <개그콘서트(이하 개콘)> 상승세의 일등공신은 단연 최효종(26)이다.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이하 애정남)와 사마귀유치원 코너로 <개콘> 내 인기순위 1위를 선점했다. 지난달에는 아나운서 성희롱 논란으로 한나라당에서 퇴출된 무소속의 강용석 의원이 사마귀유치원에서 보여준 최효종의 국회의원 풍자 개그가 국회의원에 대한 집단모욕죄에 해당한다면서 고소를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얼마 전 강 의원이 "최효종에게 미안하다"며 고소를 취하했지만 최효종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인지도가 급상승하는 효과를 낳았다.

KBS공채개그맨 22기인 최효종은 봉숭아학당의 행복전도사로 인기를 끌기 시작해 남성인권보장위원회 최효종의 눈 트렌드쇼 등의 코너를 줄줄이 히트시키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비밀결혼과 이혼 서태지·이지아>

지난 4월 문화대통령 서태지(39)가 탤런트 이지아(33)의 남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연예계가 발칵 뒤집혔다. 연예계만의 파장이 아니었다. 국회에서도, 회식자리에서도 모두들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BBK사건 판결을 묻으려고 두 사람의 위자료 소송이 터져나왔다는 음모론까지 나돌 정도로 파장이 컸다. 이지아에 대한 정보를 캐내려고 만들어진 이지아닷컴은 이후 유명연예인들에 대한 논란이 터질 때마다 생기는 ○○○닷컴의 원조가 되었다.

"군입대도 날 막진 못해…" 입대 후 잘나가는 스타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출연만 하면 뜬다 <나가수>

1997년 이지아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미국에서 결혼해, 3년 가까이 결혼생활을 했다는 내용에 이어 위자료 청구소송가지 벌이며 극단의 상황으로 치닫던 두 사람은 마침내 7월 합의하에 고소를 취하했다.

누리꾼들은 두 사람의 과거를 캐내기에 바빴고, 이로써 데뷔 후 20년 동안 유지해온 서태지의 신비주의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는 말이 와 닿은 사건이어서 지금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

<밑바닥에서 정상까지 카라>

인기 아이돌그룹 카라는 지난 2월 해체위기를 맞으면서 국내 정상급 아이돌그룹에서 가요계 밑바닥까지 순식간에 추락했다. 니콜, 한승연, 강지영, 구하라 등 무려 네 명의 멤버가 소속사 DSP미디어와 계약을 해지하겠다며 내용증명을 보냈고, 남은 한 명의 멤버인 박규리 왕따설까지 나돌았다. 이후 하루 만에 구하라는 DSP미디어와 재계약했고, 나머지 3인의 싸움은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부모까지 동반된 분쟁에서 투명한 정산과 매니지먼트 전문 인력을 요구하며 DSP미디어와 갈등을 거듭한 끝에 100일 만인 4월 극적으로 화해했다.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높은 인기를 누렸던 만큼 매체들의 뜨거운 관심이 쏟아졌고 자극적인 루머들이 일파만파 전파를 탔다.

이런 큰 갈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9월에 발표한 스텝은 순식간에 각종 음원차트 1위를 기록했고, 일본에서는 여신이라는 칭호와 더불어 오리콘차트 1위를 석권하며 화려하게 재기했다.


<촬영거부·잠적 혹독한 한 해 보낸 한예슬>

배우 한예슬(본명 김예슬이·29)은 갑작스런 드라마 촬영거부 후 돌연 미국으로 출국하는 초유의 행보로 비난을 샀다.

한예슬은 촬영 스케줄 조율, 촬영현장 개선 등의 문제로 연출자와 마찰을 벌이다 촬영거부를 선언했고, 갑자기 미국으로 출국해 혹독한 구설수에 올랐다. 제작진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팬들 사이에서 기대를 저버린 행동이란 비난이 일자 이틀 만에 자진 귀국한 한예슬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드라마 촬영에 임했다.

한예슬의 이런 행동에 대해 동정론도 일었지만 그가 주연으로 출연했던 <스파이 명월>은 저조한 시청률로 종지부를 찍었다. 지난달 개봉한 영화 <티끌모아 로맨스>에서도 송중기와 호흡을 맞췄지만 역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뺑소니 교통사고 무혐의지만 씁쓸 대성>

인기 아이돌그룹 빅뱅의 멤버 대성(22)이 교통사망사고에 연루된 일은 국민들을 크게 놀라게 했다.

대성은 지난 5월 서울 양화대교 남단에서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가던 중 정차해 있던 택시와 쓰러져 있던 오토바이 운전자를 연이어 들이받았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경찰은 대성을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대성은 지난 8월 검찰 조사 결과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반성의 시간을 보내다 최근 YG패밀리콘서트와 MBN드라마 <왓츠 업>으로 조심스럽게 활동을 재개했다.

팬들은 대성이 이번 작품으로 힘들었던 지난 시간을 잊고 가수이자 연기자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다지길 기대하고 있다.

이처럼 2011년 한 해 연예계는 탈세, 교통사고, 이혼, 군입대, <나가수> 등으로 어느 해보다 시끌벅적했다. 전무후무한 사건들이 연달아 이어졌고 사회적으로 어수선한 상태에서 연예계 또한 밝고 좋은 소식보다는 어둡고 슬픈 소식이 더 많아 아쉬움을 남겼다. 다가오는 2012 임진년 용띠해에는 하늘로 솟구치는 용처럼 연예계가 용솟음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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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