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으로 사라진 ‘철강왕’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대한민국 격동의 반세기 쇳물처럼 뜨거운 삶 “수고 많으셨습니다”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철인’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했던 1960년대, 모래 바람만 자욱하던 경북 포항에 ‘죽기 살기’로 일관제철소를 세운 그였다. 무리수라는 비난에도 ‘제철보국’의 신념으로 포스코를 세계 최고의 철강기업으로 키워낸 그였다. 삶의 모든 순간에 청렴함을 잃지 않던 그였다. 그런 그의 무쇠 같던 육체와 집념도 결국 죽음을 비켜가진 못했다. 84년간 쇳물처럼 뜨겁게 살다 간 고 박태준 명예회장. 그가 남긴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 봤다.

육사 나와 한국전쟁 등 거친 뒤 육군대학 입교
대한중석 사장 맡아 1년 만에 적자에서 흑자로


‘철강왕’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84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박 명예회장은 지난 13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10년 전 수술했던 흉막섬유종 후유증으로 흉막 전폐절제술을 받고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1927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난 박 명예회장은 1933년 6세의 나이로 모친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수학했다. 1945년 와세다대 공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했으나 광복과 함께 얼마 지나지 않아 귀국했다. 이듬해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2학년까지만 학업을 마치고 다시 귀국했다.

흉막섬유종 후유증
입원 치료 받다 타계

1948년 육군사관학교 전신인 남조선경비사관학교 6기생으로 군에 몸담았던 그는 한국전쟁 을 겪으며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무장했다. 또 육군대학 5기로 입교해 1954년 수석 졸업했다. 탄도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도 바로 이때의 일이었다.

군인의 길을 걷고 있던 박 명예회장은 1961년 5ㆍ16쿠데타 이후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던 박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같은 해 국가재건최고회의 재정경제위원회 상공담당 최고위원으로 임명돼 경제인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박 명예회장은 1963년 신문에 연재된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우리가 잘 사는 길>을 읽으며 ‘1인당 국민소득이 76달러에 불과한 가난한 대한민국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외자 도입에 의한 공업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뜻을 같이했다. 1963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었던 박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으나 박 명예회장은 정치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박 명예회장은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1964년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대한중석 사장을 맡아달라는 권유를 받았다. 대한중석을 1년 만에 적자에서 흑자로 돌려놨다. 박태준의 탁월한 경영능력을 높게 평가한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종합제철소 건설의 특명을 받게 됐다.

그러나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박정희 정권 이전에도 제철소 건설 시도는 있었다. 한국 정부가 철강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최초의 종합제철 건설 계획을 세운 것은 1958년 자유당 정부 시절. 그러나 자금 부족, 정국 혼란 등으로 번번이 무산됐다. 박 명예회장이 제철소 건립 프로젝트를 맡았을 당시에도 우리나라는 자본과 기술, 경험은 물론 자원까지 없는 상태였다. 일관제철소(제선, 제강, 압연의 세 공정을 모두 갖춘 제철소) 건설은 현실과 동떨어진 꿈에 가까웠던 것이다.

특히 전쟁으로 황폐화된 한반도에 종합제철소를 건설한다는 계획에 어느 나라도 자금을 투자할 의향이 없었다. 이에 박 명예회장은 일본으로 건너가 대일청구권자금을 제철소 건설에 쓸 수 있도록 하는 회담을 극적으로 성사시켰다. 또 일본 3대 철강 오너들을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기술 이전 약속을 받아냈다. 이런 노력 끝에 1970년 연산 103만톤 조강 규모의 1기 설비가 착공에 들어갔다. 비로소 ‘영일만의 기적’이 시작된 셈이다.

‘제철보국’과 ‘우향우 정신’이 포스코의 좌우명이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제철보국은 일관제철소를 건설해 경쟁력 있는 ‘산업의 쌀’을 안정적으로 공급함으로써 국가의 은혜에 보답하자는 의미였다. 또 우향우정신은 선조들의 피의 대가인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건설하는 일관제철소를 반드시 성공시켜야하며, 성공하지 못할 경우에는 제철소 건설부지에서 ‘우향우’해서 영일만에 몸을 던지자는 단호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박 명예회장은 그야말로 제철소건설에 죽기 살기로 매진했다.

그는 특히 공기업 체제에 따르는 비효율과 부실의 여지를 막기 위해 조직의 자율과 책임문화 정립에 중점을 뒀다. 이런 책임의식은 자연스레 완벽주의로 이어졌다. 1977년 3기 설비공사 도중 80% 정도 진행된 발전 송풍 설비 구조물 공사에서 부실이 발견되자 이를 모두 폭파한 일은 완벽주의 의지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 일으로 손실은 봤지만 ‘포철 사전에 부실공사는 없다’는 무형의 자산이 남았다. 또 그는 하버드대 등의 경영학 교재에 모범 경영 관리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철저한 비리근절도 박 명예회장이 한결같이 지향했던 경영철학이다. 1970년대는 설비공급사나 정치권에서 각종 납품비리나 청탁압력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박 명예회장은 정치권의 압력 배제와 함께 설비 공급업자 선정의 재량권 인수 등을 골자로 하는 내용을 메모에 적어 박 전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소위 ‘종이마패’로 불린 이 메모는 외부압력을 차단하고 비리를 근절하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부실 발견하자
건물 전체 폭파

교육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86년 12월 국내 최초의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한 포항공대 를 설립했다. 학사운영정책, 신입생 선발 등에서 당시 사회 분위기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획기적인 정책들을 과감하게 추진함으로써 국내 정상의 대학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대학으로 급성장했다. 또 직원들을 위한 최고 수준의 주택단지를 조성하는가 하면 사원 자녀들을 위한 유치원을 포함해 초ㆍ중ㆍ고등학교를 설립하는 등 사원복지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1981년 포철 초대회장에 취임한 그는 전두환 신군부가 등장하면서 정치인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해 제11대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계에 진출한 것. 사실상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일군 포철을 외풍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13ㆍ14ㆍ15대 국회를 거쳐 1990년 민정당 대표에 취임했고 노태우ㆍ김영삼ㆍ김종필의 3당합당으로 창당한 민주자유당(민자당)의 최고위원에 오른데 이어 32대 국무총리를 맡기도 했다.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라는 좌우명을 일평생 지켜온 박 명예회장은 청렴한 생활로 유명하다. 그는 1960년대 제철소 건설초기부터 단 한 주의 주식도 보유하지 않았다. 소유와 경영을 철저히 분리해야 제대로 된 조직운영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제철보국’ ‘우향우 정신’으로 일관제철소 건설
사망 전까지 이어진 청렴…가진 건 모두 사회에


1974년 관세법 위반혐의로 가택수색이 진행돼 집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졌지만 집문서와 패물 몇 가지, 해외출장의 흔적으로 보이는 푼돈만 있어 조사관들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박 명예회장은 지난 2000년 40년간 거주하던 아현동 소재 주택을 처분해 사회에 환원하기도 했다. 이 집은 1961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으로 있을 때 당시 의장이었던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특별 하사금’을 받아 매입한 집이었다.

박 명예회장의 청렴함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이어졌다. 그의 명의로 남은 재산은 한 푼도 없었다. 최근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맏딸 진아씨 집에서 지냈으며 입원비조차 본인 스스로 감당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박 명예회장은 이처럼 빈손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우리 근현대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했던 1960년대. 모래 바람만 자욱하던 경북 포항에 번듯한 일관제철소를 세운 그였다. 당시 모두가 ‘무리수’라고 혀를 찼지만 그는 오늘날 포스코를 세계 최고의 철강기업으로 키워냈다.

사회에 남긴 공적에
사회장으로 장례

그는 대한민국이 군대를 필요로 했을 때 장교로 전장에 섰고, 경제회생을 위해 산업의 역군을 찾을 때 최고의 경영자가 됐으며,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리더가 절실할 때 정치인이 됐다. 이처럼 조국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헌신과 열정으로 기꺼이 조국에 봉사하는 삶을 살다 간 ‘청암’ 고 박태준 명예회장. 이제는 그간의 고단한 짐들을 모두 내려놓고 영원한 안식을 취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한편, 박 명예회장의 장례는 당초 국가장으로 검토되기도 했으나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사회장은 국가와 사회에 공적을 남긴 저명인사가 사망했을 때 사회 각계 대표가 자발적으로 장의위원회를 구성해 치르는 장례의식으로 정부에서는 장례비용 중 일부를 보조하거나 고인의 업적을 감안, 훈장을 추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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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정-조국 딸 스캔들 오버랩

심우정-조국 딸 스캔들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심우정 검찰총장이 ‘딸 특혜 채용 논란’에 휩싸였다. 자격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외교부에 최종 합격했다. 외교부가 오직 심 총장의 딸을 위해 전형까지 엎었다는 게 골자다. 외교부는 특혜가 아니라던 입장을 뒤집고, 심 총장 지녀 채용을 보류했다. 정치권에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사안처럼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가 필요하다며 맹공을 펼치고 나섰다. 심우정 검찰총장의 딸 심모씨는 ‘아빠 찬스’로 취업에 성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국립외교원 기간제 연구원과 외교부 공무직 연구원에 합격할 수 없었다. 지원 자격 자체가 미달 수준이었다. 일각에서는 입시 비리 혐의를 받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의 사안보다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수사기관이 심씨를 즉각 수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아빠 찬스? 수상한 합격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지난달 2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현안 질의서 심씨의 특혜 채용 의혹을 제기했다. 이 문제는 지난해 9월 심 총장의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서 언급됐었다. 당시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은 심 총장의 장녀가 11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국립외교원 연구원으로 채용됐는데, 심 후보자가 이와 관련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당시 “후보자 장녀가 최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석사 과정을 이수했다”며 “후보자 자녀는 대학생들이 선망하는 국립외교원 연구원으로 채용됐다. (장녀가)서울대 국제대학원 1학년 때 박철희 교수에게 수업을 받았다”며 “박 교수는 현직 주일대사고, 후보자 본인 장녀가 입사할 당시 국립외교원장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철희 국립외교원장은 나카소네 야스히로상 수상자”라며 “제1회(수상자) 박철희 주일대사고, 윤석열정부서 ‘중요한 건 일본 마음’이라고 말한 김태효 차장이 제5회 장려상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심 총장이 “문제가 없다”고 답변하자, 박 의원은 “그러면 채용 서류를 내라.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전부터 채용서류 전체를 내라고 하는 것”이라며 “의원실서 계속 요구하지만 후보자 동의가 없어서 (외교원이) 내질 않고 있다”고 따져 물었다. 외교부의 지난 1월 1차 공무직 연구원 채용 공고에는 ‘경제 분야 석사학위 소지자’가 응시 자격이었다. 그런데 한 달 뒤인 2차 공고는 갑자기 심씨가 전공한 ‘국제정치 분야 석사학위 소지자’로 변경됐다. 외교부는 응시 가능 대상을 확대하려는 목적이었다고 주장하지만 변경 전에 응시했던 이들은 2차 공고 때는 응시조차 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의 공정채용 가이드라인 등에 따르면, 채용공고를 변경할 때는 채용 관련 심의기구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외교부는 인사기획관실과 서면 협의만 거쳤다. 심의기구를 통한 공정성을 확보하지 않은 채 채용 공고를 변경한 셈이다. 채용 경력을 두고도 외교부가 자의적으로 해석해 심씨에게 특혜를 줬다는 지적도 거세다. 채용 공고에는 해당 분야 실무 경력 2년 이상이 응시 자격이었다. 그러나 심씨의 경력은 국립외교원 연구원 8개월, 서울대 국제대학원 연구보조원 22개월, UN 경제사회국 인턴 6개월로 실제 경력은 8개월에 불과했다. 경력 1년도 안 되는데 스펙 과대 포장해 지원 외교부 전형까지 뒤집어…기존 면접자는 탈락 외교부는 학창 시절의 경험도 경력으로 인정한다고 해명했지만, 외교부 산하 기관서 2022년과 2023년에 낸 채용공고엔 인턴이나, 교육생, 학위 취득에 소요되는 행정조교 등은 경력서 제외한다고 적시돼있다. 심씨는 서울대 국제학연구소 산하 EU센터서 연구보조원으로 근무했다고 실무 경력에 적었다. 하지만 서울대 국제학연구소가 발간한 2023년 연례보고서에는 심씨가 연구 보조원이 아닌 EU센터 ‘석사 연구생’으로 적혀 있다. 민주당은 지난 2일 심씨의 외교부 특혜 채용 의혹 관련 진상조사단을 출범했다. 조사단에는 한 의원을 포함해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김영배·홍기원·이재강 의원,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김기표·박희승 의원,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박홍배·이용우 의원, 정무위원회 소속 강준현·이정문 의원,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성회 의원, 교육위원회 소속 고민정·백승아 의원 등 총 12명의 의원이 참여했다. 이들은 심 총장을 포함한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 고발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외교부는 지난 1일,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면접까지 통과해 현재 신원 조사 절차만 남겨둔 심씨의 외교부 공무직 연구원 채용은 감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유보됐다. 공익감사는 감사 대상 기관이 자체 감사기구서 직접 처리하기 어려운 경우 등에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조국혁신당 윤재관 대변인은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감사원은 검찰의 2중대 역할을 자처해 왔다.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하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며 “감사원을 동원해 면죄부를 받으려는 시도는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조사단은 심 총장 자녀 관련 ‘권력형 비리’ 의혹과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규명하고 대응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심 총장 딸의 외교부 특혜 채용 비리 의혹 및 서민금융 대출 논란, 심 총장 아들의 장학금 수령 특혜 의혹 등을 들여다볼 방침이다. 앞서 민주당 외통위원들은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립외교원 연구원 채용 공고상 자격 요건에 ‘해당 분야 석사학위 소지자, 또는 학사학위 소지자 중 2년 이상 관련 분야 근무 경험자’라고 돼있지만 심 총장 딸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특혜 채용 의혹을 주장한 바 있다. 급 바뀐 채용공고 심 총장은 입장문을 내고 “근거 없는 의혹 제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검찰총장의 자녀는 대한민국의 다른 모든 청년들과 같이 본인의 노력으로 채용 절차에 임했다. 국회에 자료 제출을 위한 외교부의 개인정보 제공 요청에도 동의했다”고 반박했다. 한 의원은 최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심씨 특혜 채용에 핵심 역할을 한 인물이 박장호 외교부 외교정보기획국장이라고 주장했다. 한 의원은 “(박장호 외교부 외교정보기획국장은)윤석열정권 출범 직후 2022년 7월 정도에 대통령실 외교비서관실로 들어갔다가 2024년 1월에 외교부로 복귀해 5월 말, 한반도 평화교섭본부를 없애고 새롭게 신설한 외교전략정보본부 외교정보기획국장으로 보직받아 오늘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한 의원에 따르면 2023년 외교부 연구직 채용 1차 공고 당시 직접 면접에 참여한 박 국장은 지원자 A씨를 “한국어가 서툴다”는 이유로 탈락시켰다. 하지만 A씨는 한국서 나고 자라 학위까지 받은 인물로 언어능력을 문제 삼을 만한 근거는 부족했다. A씨의 탈락 이후 외교부는 2차 공고를 내며 채용 자격을 경제 관련 석사학위 소지자에서 국제정치 분야 석사학위 소지자로 변경했다. 이때 국제협력 분야를 전공한 심씨가 합격하게 된 것이다. 한 의원은 박 국장의 대통령실 근무 경험이 심씨의 채용 과정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채용 실무가 인사기획관실이 아닌 외교정보기획국 산하 외교정보1과서 이뤄졌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그는 “아무래도 용산에 파견 나가 있으면 조금 더 넓게 여러 부처와 관련된 사람들을 접할 수밖에 없다”며 “그런 과정서 어떤 방식이든지 어떤 접점이 이뤄지지 않았겠냐라고 하는 것은 있는데 그 부분은 저희가 조금 더 깊이 파봐야 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공수처 먹잇감 심 총장과 갈등을 빚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에 심씨의 사건은 좋은 먹잇감이다. 지난 3일 공수처는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이하 사세행)이 심 총장과 조태열 장관을 직권남용, 특정범죄가중법상 뇌물,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수사3부(부장검사 이대환)에 배당했다고 밝혔다. 수사3부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석방을 지휘해 고발당한 심 총장 사건도 수사 중이다. 사세행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검찰의 수장인 심우정 검찰총장의 딸을 뇌물성 채용한 행위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바란다”고 밝혔다. 공수처가 수사에 착수하면서 감사원이 공익감사 청구를 각하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공익감사 청구는 6개월 이내 결과를 내놔야 하되 기한은 자체 판단으로 늘릴 수 있는데, 그전에 감사에 착수할지 여부부터 감사위원회의 판단을 거쳐야 한다. 과거 사례를 보면 감사 청구를 각하하는 이유는 통상 이미 같은 사안에 대한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인 경우가 많다. 공수처 수사가 각하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법상 감사원이 거부할 수 없는 국회 요구 감사의 경우에도 수사나 재판을 이유로 ‘사실상 각하’했던 최근 사례도 있다. 감사원은 지난달 25일 국회가 요구한 방송통신위원회 2인 구조 등 감사를 두고, 같은 사안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위법성 여부를 감사원이 결론 내리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된다”고 매듭지은 보고서를 내놨다. 정치권에서는 야권을 중심으로 심씨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입시 비리 논란을 일으켰던 조 전 장관 부부가 받았던 수사와 현재 상황을 비교하면 검찰의 이중적 잣대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조 전 장관이 받았던 검찰 수사를 보면 입시 비리 혐의만으로도 압수수색 등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같은 혐의를 받는 심 총장 딸의 경우 멀쩡하게 살고 있다는 걸 국민 눈높이서 봤을 때 형평성 논란이 일 것”이라며 “이건 상식의 문제”라고 비판했다. 조민은 집유 “강도 높게 수사해야” 용산 파견 키맨 박장호 국장 뒷배? 여당인 국민의힘도 조용하다. 지난달 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간부 자녀 특혜 채용을 두고 “제2의 인국공(인천국제공항) 사태를 넘어 제2의 조국 사태”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공수처가 심 총장과 심씨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인력난이 지속되는 가운데 주요 고발 사건이 이어지면서 수사 지연은 불가피하다. 지난 4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 인사추천위원회는 지난 1월 부장검사 1명과 평검사 3명 등 4명의 검사 임명을 대통령실에 제청했지만 두 달이 넘도록 임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 검사는 인사위 추천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앞서 공수처는 지난해 9월에도 부장검사 1명과 평검사 2명 등 3명의 검사를 추천했지만 대통령실은 반 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답이 없는 상태다. 윤 전 대통령은 국회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될 때까지 이들을 임명하지 않았고,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한덕수 국무총리는 송창진 수사2부장의 면직을 재가하면서도 신규 검사 임명은 하지 않았다. 한 총리의 뒤를 이은 최상목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경찰청 등 부처 인사는 진행하면서도 공수처 검사는 임명하지 않았다. 신규 검사 임명이 늦어지면서 고질적인 공수처 인력난도 지속되고 있다. 공수처 검사 정원은 처장과 차장을 포함해 25명이지만 현재 검사 인원은 휴직자 1명을 포함해 14명에 불과하다. 정원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신규 검사 7명을 임명해도 정원보다 4명이 부족하다. 공수처 내부에서는 과부하 상태라는 우려가 나온다. 12·3 비상계엄 수사와 이정섭 대전고검 검사 비위 의혹 수사 등 기존 수사에 인력이 집중돼있어 타 수사를 들여다볼 여력이 없다는 토로도 상당하다. 수사? 미지수 공수처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고발 사건이 이어지고 있지만 배당받은 사건을 전부 들여다보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라며 “대통령실이 하루빨리 검사 임명을 해줘야 타 사건도 들여다볼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반박에 반박 나선 외교부 외교부가 지난달 3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입장을 재반박하는 장문의 입장문을 내놨다. 외교부는 “관점에 따라 제도 운영 과정서 미흡했던 부분이 지적될 수는 있겠지만, 이를 특정 인물에 대한 특혜로 연결 짓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외교부는 지난해 ‘석사학위 소지자 또는 학사학위 소지 후 2년 이상 관련 분야 근무자’를 대상으로 채용 공고한 국립외교원 기간제 연구원에 석사 취득 예정 상태였던 심씨가 채용된 것에 대해 심씨만 특별히 배려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학위 취득 예정서를 공식 증명서로 증빙하면 자격요건을 갖춘 것으로 인정했던 사례가 2021~2025년까지 총 8건 더 있었다”고 반박했다. 외교부는 올 초 외교부 정책조사 연구원 채용 과정서 이미 최종 면접까지 마친 응시자가 불합격 처리되고, 심씨를 위한 ‘맞춤형’으로 응시 자격을 바꿔 재공고했다는 의혹도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경제 관련 석사학위 소지자’를 대상으로 1차 공고를 냈을 때 응시 인원이 6명에 불과했고, 그 중 유일하게 경제 관련 석사학위를 소지한 응시자 1명에 대해 외부 인사 2명과 내부 인사 1명으로 구성된 면접위원회가 최종 면접을 했으나 채용 부적격 판정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외교부는 “1차 채용 공고문에 ‘응시자 중 적격자가 없을 경우 선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사전에 공지했다”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2차 공고에선 응시 가능 대상을 넓히기 위해 자격 요건을 ‘국제정치 분야 석사학위 소지자’로 변경했고, 그 결과 19명의 지원자가 응시해 심씨를 포함한 5명이 서류 전형을 통과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이번처럼 1차 공고 후 적격자가 없어 전공·자격증 분야 등 응시 자격 요건을 변경해 재공고한 사례는 타 부처는 물론 외교부 내에서도 과거 전례가 있다면서 “(심씨가)유일하다는 지적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민주당은 앞서 외교부의 이 같은 설명에 대해 “응모한 사람이 적더라도 (같은) 채용 공고 사이트를 보면 재공고를 해서라도 기한을 연장해 해당 분야 사람을 찾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심씨가 또 다른 응시 요건인 ‘실무 경력 2년 이상’을 충족했는지도 논란이 큰 쟁점이다. 외교부는 심씨의 실무 경력을 국립외교원 경력 8개월, 서울대 국제학연구소 연구보조원, 유엔 산하 기구 인턴 등을 포함해 총 35개월로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외통위원들은 “인턴, 조교 등은 통상 실무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며 “경험과 경력은 엄연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