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전·현직 대통령 권력형 친인척 비리 집중해부

물보다 진한 피에 수혈하려다 ‘동맥경화’에 끙끙

[일요시사=이해경 기자]검찰이 최근 이명박 대통령 주변 및 관련 인물들의 비리 혐의를 포착하고 강도 높은 압박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 대통령이 “임기 중 측근비리는 없다”고 공언했지만 역대 정권과 마찬가지로 권력형 비리가 속출하고 있다.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히며 정권의 안위까지 위협할 수 있는 친인척 비리가 되풀이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요시사>는 역대 정권의 측근 비리를 재조명 해봤다.

전두환 정권 때부터 예외 없이 친인척 비리 발생
‘절대 권력은 절대부패를 낳는다’ 줄줄이 구속 수감

권력형 측근 비리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전두환 정권 이후 모든 대통령들이 친인척 비리에 연루됐고 그로인해 국정운영에 큰 타격을 입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친인척비리로 인한 자책감과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타계하고야 말았다. 이렇듯 친인척 비리는 엄청난 결과를 가지고 온다.


친척에 자녀까지
줄줄이 비리연루


역대 대통령들의 친척형 비리사건을 살펴보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경환씨는 지난 1988년 3월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을 지내면서 공금 76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형 기환씨는 같은 해 8월 서울 노량진수산시장 운영권 강제 교체에 개입한 혐의로 구속됐다. 사촌 형 순환씨와 사촌동생 우환씨, 처남 이창석씨도 각종 이권 개입이나 탈세 및 횡령 혐의로 구속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고종사촌 처남인 박철언 전 정무장관은 김영삼 정권 출범 이후 슬롯머신 사건으로 구속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촌 처남 손성훈씨는 덕산그룹 관계자로부터 광주 조선대 운영권을 되찾게 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1억9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인 건평씨는 세종증권(현 NH증권) 인수 과정에서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명박 대통령도 집권 초기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언니 김옥희씨가 30억대 비례대표 공천 장사 파문을 일으켜 구속됐고, 사돈 황모씨가 지난달 20일 사기혐의로 징역형을 선고 받았으며, 지난 8일 사촌처남의 저축은행 4억 로비에 따른 출국금지 등으로 측근비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자녀 연루 비리사건을 살펴보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소영씨는 지난 1994년 외화 밀반출 혐의로 남편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함께 검찰 조사를 받았으나 불구속 처리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으로 ‘소통령’으로까지 불리던 현철씨는 1997년 기업인들에게서 66억여원을 받고, 12억여원의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로 구속됐고 2004년에도 17대 총선을 앞두고 조동만 전 한솔 부회장에게서 불법 정치자금 20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세 아들 중 2명이 수감생활을 겪었다. 차남인 김홍업 전 의원은 2003년 5월 기업체로부터 이권청탁 명목으로 25억여원, 정치자금 명목으로 22억여원을 받고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로 구속됐다.

삼남 홍걸씨도 2001년 3월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로비와 공사 수주 로비 대가 등으로 36억9000여만원을 받고 2억2000여만원의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는 내곡동 사저 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으며, 시형씨가 다니는 자동차부품회사 ‘다스’가 최근 본사를 중국으로 이전하고 있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1113호실’에 얽힌
정·재계 고위인사


그렇다면 대통령 친인척들에 대한 검찰 대우는 어떠할까? 노건평씨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1120호 특별조사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이곳은 기존에 ‘VIP룸’으로 불리던 1113호 조사실을 그 당시 개조한 것으로 51㎡의 면적에 수면실과 샤워시설, 세면대, 침대, 영상녹화시설 등을 갖췄다. 건평씨는 리모델링된 조사실에서 처음 조사를 받은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1113호 조사실에서는 김홍업 전 의원,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신승남 전 검찰총장 등 정·재계 고위 인사들이 조사를 받았었고 노 전 대통령도 이 방에서 조사를 받아 특실에서 형제가 조사를 받은 흔치않은 기록을 남겼다.

과거 엄청난 후폭풍을 가져왔던 비리 연루 당사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살펴보면 먼저 김현철씨는 2008년 10월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으로 정계에 복귀하였다. 내년 19대 총선 거제 출마를 준비하며 거제포럼 대표를 역임하며 지역구 관리에 한창이다.

김홍업 전 의원은 18대 총선 때 통합민주당 공천에서 배제되자 이에 불복,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낙선했고 아버지의 서거 이후 활발한 대외활동은 꺼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5·18 관련자로 인정받아 보상받게 됐고 최근 정대철 민주당 상임고문의 북콘서트에 참여했다.

전경환씨는 지난해 5월 투자사기혐의로 징역5년의 대법원 판결을 받았고 두 달 뒤에 뇌경색으로 3개월 형집행정치 처분을 받아 치료를 받고 수감 중이다.

노소영씨는 아트센터나비의 관장이자 서울예술대학 디지털아트학부 조교수로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아버지 노 전 대통령의 건강 악화와 남편 최태원 회장이 비자금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등 악재를 맞고 있다.

박철언 전 장관은 “1999년부터 차명계좌로 관리하던 돈에 대한 은행관련 일처리를 모 대학 여교수 강모씨에게 부탁했는데, 강씨가 맡긴 돈 178억여원을 횡령했다”며 강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면서 이목을 끌었고, 지난해 11월 법원의 강제조정으로 종결됐다.

그는 지난 8월 노태우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화제가 되자 “육성테이프를 공개하겠다”고 밝혀 다시 한 번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노건평씨는 지난해 8·15특사로 풀려난 후 동생 노 전 대통령을 욕되게 한 조현오 경찰청장에 대해 쓴소리를 남겼지만 근자에는 자숙하며 조용한 생활을 하고 있다.

친인척 구속시킨 검사들 출세가도 달리며 유명세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 문제

한편 친인척 인사들을 구속시킨 검사들은 대부분 출세가도를 달리거나 유명세를 타고 있고,이를 바탕으로 정치권을 노크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 인물이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다. 홍 대표는 지난 1988년 서울지검 특수부 검사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의 큰형 기환씨를 구속시켰고, 1992년 서울지검 강력부에서는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명을 얻게 해준 ‘슬롯머신업계 비호세력 사건’ 수사로 박철언 전 장관을 구속시켰다.

김현철씨 사건 수사 초반에 관여했던 최병국 당시 대검 중수부장은 한나라당 소속으로 3선에 성공해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현철씨를 구속시켰던 이훈규 전 인천지검장은 18대 총선 때 한나라당 후보로 충남 아산에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 전 지검장은 지난 2009년 8월부터 한나라당 아산시 당원협의회 위원장과 지난해 10월 한나라당 전국위원회 부의장에 선출됐고 지난 7일에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친인척 측근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친인척관리팀’을 구성하는 등 갖은 노력을 다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친인척 측근비리가 발생하는 주요 원인으로 ‘제왕적 대통령제’가 지목돼 왔다.

여당은 물론 사법부마저 사실상 청와대의 지침에 따라 운영되는 권력집중 현상이 낳은 결과라는 지적이다. 대통령이 행정, 입법, 사법부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주의의 주요 메커니즘인 ‘견제’가 이뤄지지 않음으로 인해 비리가 싹틀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와 관련된다. ‘절대 권력이 절대 비리를 낳는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 ‘정치적 후원구조’의 영향을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대통령선거 시 활동했던 주요 후원자 등의 구조가 당선 후에도 대통령을 대상으로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얘기다.

당사자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의혹은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실제 각종 게이트사건 때마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또한 가족을 중시하는 특유의 가정문화가 꼽히기도 한다. 대통령과 심정적으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측근 및 친인척들에게 온갖 유혹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치적 후원구조’와
‘가정문화’도 이유로


그간 대선과정을 거치며 모든 후보자들은 친인척 비리 방지를 약속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개선안을 내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전직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친인척과 측근들이 구속되는 것을 두 눈 뜨고 지켜봐야 했다.

일각에서는 검찰과 경찰이 ‘살아 있는 권력’을 감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하고 퇴임 후 비리를 적발하기보다 재임 중 부패 및 비리를 억제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마련하는 것이 본질적 과제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친인척 비리 근절이야말로 선진 정치문화로 가는 첩경이다. 이를 근절해 선진 정치문화국으로의 도약은 물론이고, 전직 대통령을 잃는 비극을 또 다시 겪지 않기를 국민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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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