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선 손학규의 ‘작심’ 속내

10‧26에 대권운명 달랑달랑 ‘구원투수는 외로워’

[일요시사=홍정순 기자]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여권의 유력 잠룡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0‧26 재보선에 뛰어들며 판세가 역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야권에서 제3의 인물들이 부각되며 손 대표에겐 부담이 가중된 상황이다. 결국 작심한 손 대표가 칼을 빼들었다. 10‧26 재보선의 최전방에 나서며 ‘정면돌파’로 승부수를 띄운 것. 사지에서 그를 건져 올린 지난 4‧27 분당대첩의 학습효과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에 총동원령 지시, MB정권에 각세우기 전략
강원·충북서 연속 박근혜-손학규 불꽃 튀는 맞대결

‘돌아온 선장’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안풍‧문풍’의 직격탄을 맞고 대선 지지율이 반토막 난데 이어 ‘사퇴파동’으로 책임감‧리더십 논란까지 불거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권의 유력 잠룡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0‧26 재보선에 뛰어들며 보수진영의 표를 결집시키는 효과로 서울시장 유력후보 간의 지지율 격차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당초 서울시장 유력후보인 범야권의 박원순 후보는 한나라당의 나경원 후보를 10%p 이상 앞섰다. 하지만 박 전 대표와 더불어 여당 지도부가 총출동해 나 후보에 전폭적인 지원사격을 펼치며 두 후보의 격차는 단숨에 초박빙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민주 총동원령
‘손’의 긴급처방

지난 18일 KBS‧MBC‧SBS 등 방송 3사의 공동여론조사 결과에서 박 후보가 40.5%를 나 후보가 38.2%를 기록하며 오차범위 내의 접전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9일 CBS가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나 후보가 44.8%로 41.8%의 박 후보를 앞섰다. 이처럼 두 후보는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하며 혼전 양상을 보이고 있어 한치 앞도 가늠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앞서 서울시장 재보선의 범야권 후보 선출에서 손 대표의 지지와 당의 탄탄한 조직력을 앞세운 박영선 후보가 시민후보인 박 후보에 맥없이 무너지며 민주당은 ‘불임정당’이라는 비판에 직면해야만 했다. 여기에 범야권 후보인 박 후보마저 나 후보와 혼전양상을 보이며 위기감이 감지되자 손 대표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위기상황에 처한 손 대표는 작심하고 선거전의 최전방에 나섰다. 이번 10‧26 재보선이 내년 총·대선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이에 손 대표는 재보선을 승리로 이끌어 사전에 ‘박풍’을 차단시키고 추락하는 지지율의 상승을 꾀한다는 복안이다.

앞서 지난 4?27 재보선 당시 손 대표는 한나라당의 텃밭이던 분당을 지역구에 출마하여 승리를 거머쥐며 동시에 대권지지율까지 15%로 치솟았다. 이러한 분당대첩의 학습효과로 손 대표는 다시 한 번 재보선에 사활을 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방권력의 요직이자 ‘소통령’으로 불리는 서울시장직을 잡을 경우 손 대표의 대권가도에도 청신호가 켜질 것으로 점쳐진다. 게다가 서울시장은 수도권 민심의 바로미터로 내년 총?대선을 가늠해볼 수도 있다.

이에 손 대표는 박 후보가 비록 무소속이긴 하지만 ‘대통합 정신’에 입각해 정치적 공간을 민주당이 아닌 야권 진영 전체로 확장시켜 총력 지원을 하고 있다. 손 대표는 민주-진보 진영의 지지층 결집을 위해 민주당에 선거 총동원령을 내렸다.

‘박’과 정면 승부
본격 맞대결 펼쳐

그는 지난 18일 의원총회에서 “다른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의 입장을 생각해 너무 앞장서지 않았다”면서 “선거에서 이겨야 하는 만큼 민주당이 주도적으로 최후까지 매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또 “박 후보의 승리를 통해 야권통합과 정권교체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당원과 지지층이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당에 주문했다.

게다가 여론조사에서 부동층이 2배 이상 증가했다는 결과가 공개됨에 따라 손 대표가 두팔을 걷어붙이고 전방위적 지원유세를 펼치며 부동층 흡수와 바닥민심을 쓸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초반 방송3사 여론조사에서 10% 미만이었던 부동층이 이번 여론조사에서 20%대로 늘어나면서 선거 막판 중요 변수로 떠오른 것.

손 대표는 의총 이후 잠실운동장에서 열린 ‘범 외식인 10만인 결의대회’에 박 후보와 함께 참석했다. 이어 사당동 태평백화점과 신림역 앞에서 유세차량에 올라 거리유세를 하고, 신대방삼거리 인근 성대시장에서 상인과 주부들을 상대로 표심을 공략했다. 이밖에도 서울시내 곳곳에서 지원유세를 펼치며 시민들과의 스킨십을 강화했다.

손 대표는 또 박 전 대표와 동시에 출격하며 ‘정면대결’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지난 19일 박 전 대표가 강원도 인제군수 재보선에 출마한 이순선 후보의 지원유세를 펼쳤던 같은 날 손 대표 역시 최상기 후보를 지원하며 정면승부를 펼친 것.

사실상 강원도는 한나라당 텃밭이었지만 지난해 지방선거부터 민주당이 터전을 일구기 시작했다. 이광재 전 도지사에 이어 지난 4·27 재보선에서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정상철 양양군수까지 모두 민주당 출신이 당선되는 등 강원도의 정치 구도가 급변하고 있는 것.

‘정권 심판론’ 주장
MB와 각세우기


이번 재보선에서도 민주당 출신 군수가 나오면 그 바람이 내년 총?대선으로 확산될 것이란 기대감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손 대표는 지난 14일에 이어 두 번째로 인제를 방문해 인근 상가를 돌며 지지를 호소하고, 인제읍 상동리 구터미널에서 유세를 하며 강행군을 펼쳤다.

게다가 다음날인 지난 20일에도 박 전 대표가 충북 충주시장 재보선에 출마한 이종배 후보 지원유세를 펼치자 손 대표 역시 박상규 후보 지지를 부탁하며 이틀연속 ‘맞불’을 놓았다. 이처럼 손 대표는 사전에 ‘박풍’을 차단하고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는 특히 여야를 대표하는 차기 잠룡들의 본격 맞대결로 선거정국에서 누가 더 큰 힘을 발휘할지에도 관심이 집중됐다.

손 대표는 또 선거를 유리한 국면으로 이끌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 논란과 더불어 한-미 FTA 처리의 부당성을 역설하며 ‘정권 심판론’을 고리로 표심을 자극하고 있다.

그는 인제군수 선거지원에서 이 대통령이 미국 방문 중에 “우리나라는 시끄러운 나라”라고 발언한 것을 문제 삼았다. 그는 “대통령이 퇴임 후 살 곳을 마련하기 위해 국민 혈세를 이용해 땅이나 보러 다니는데 안 시끄러울 수가 있느냐”고 꼬집었다.

손 대표는 또 야당이 당선돼야 하는 이유에 대해 “30대 재벌기업의 계열사 수가 2007년에 500개였는데 올해 1870개가 됐다”면서 “대기업이 골목 상권까지 차지해서 서민들이 살기 어려워졌는데, 인제군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면 이명박 정권이 오판을 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부동층 ‘숨은 표’ 단속과 바닥민심 쓸려 고군분투
제3의 인물 부각…‘안풍·문풍’ 사전 차단 나선 ‘손’

내친김에 손 대표는 이 대통령을 겨냥한 작심발언까지 쏟아내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17일 이 대통령이 청와대로 손 대표와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 박희태 국회의장 등 5부요인을 초청해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현재대로의 한-미 FTA 협정안은 이익균형을 상실했고, 손해를 보는 당사자들에 대한 정부차원의 준비도 충분치 않아 문제가 많은 만큼 재재협상을 해야 한다”며 “방향이 잘못된 한-미 FTA를 강행처리하지 말라”고 반박하며 강하게 날을 세웠다.

그간 이 대통령 최측근 인사들의 비리폭탄이 연일 터졌고, 이 대통령 본인마저 내곡동 사저 의혹을 둘러싸고 도덕성을 의심받기 시작했다. 이에 국민들은 기존 정치권에 혐오와 불신을 느끼며 새로운 형태의 리더십을 지닌 ‘제3의 인물’에 열광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제3의 인물’이 거론될 때마다 국민 신뢰를 한몸에 받으며 ‘블랙홀’처럼 민심을 빨아들여 정치 지형도를 변화시켰다. 손 대표의 사퇴 파문 당시 ‘손학규 대안론’에 회의감이 짙어지자 시선은 자연스레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에게 쏠렸던 게 사실이다.

게다가 현재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박 후보의 위기론이 제기되자 안철수 서울대 융학과학기술원장의 ‘구원 등판’을 요구하는 실정이다.

시민후보의 위협
정당정치의 위기

이처럼 시민후보에 열광하는 민심의 변화에 발맞춰 결의에 찬 손 대표 역시 민주당의 대대적인 쇄신을 예고하고 있다. 그리고 선거 현장 곳곳을 누비며 바닥민심을 살피고, 서민행보를 펼치며 표심을 끌어 모으고 있다.

이제 손 대표의 운명은 재보선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보선에서 선전할 경우 ‘박풍‧안풍‧문풍’을 사전에 차단해 대권행에 청신호가 켜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서다. 때문에 누구보다 절박한 심정으로 10?26 재보선의 최전방에 나선 손 대표. 과연 그가 재보선을 야권의 승리로 일궈 4‧27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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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