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삼성 2인자’ 이학수 빌딩 미스터리

‘이건희 그림자’ 몰래바이트 뛰었나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한때 ‘이건희 오른팔’로 삼성그룹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이학수 삼성물산 고문(전 삼성 전략기획실장).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한동안 두문불출했던 이 고문의 심상치 않은 바깥 행보가 포착됐다. 아무도 모르게 강남 대형빌딩을 샀는데, 이를 두고 제기되는 의문이 한둘이 아니다. ‘이학수 빌딩’은 안 그래도 재계에 이 고문을 둘러싼 요상한 소문들이 돌던 터라 더욱더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경영서 물러나 두문불출…심상찮은 바깥행보 포착
일가족 회사 통해 강남 테헤란로 19층 건물 매입

‘삼성 2인자’였던 이학수 삼성물산 고문이 강남 테헤란로에 대형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5년 전 건물을 매입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것. 이 고문은 시세 차익으로 대박을 터뜨렸다. 하지만 매입 경로와 시기 등 ‘이학수 빌딩’을 둘러싼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이를 하나하나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이학수는 누구?]

부산상고와 고려대 상과를 나와 1971년 제일모직에 입사한 이 고문은 1982년 고 이병철 창업주의 비서실 팀장으로 발탁된 후 삼성일가의 절대적 신임을 받아왔다. 1997년 이건희 회장의 비서실장에 오른 후엔 더욱 그랬다.

계열사 사장들은 이 회장에게 보고하기 전 이 고문을 거쳐야 했다. 한때 이 회장의 인감이 이 고문 손에 있었을 정도다. 그룹의 주요 결정권이 그에게 있었다는 뜻이다. 그만큼 이 회장의 신뢰를 받았다는 방증이다.

이 고문은 2003년 대선자금 수사 등 삼성그룹이 위기 때마다 ‘방패막이’가 되기도 했다. 또 1996년 세풍, 2005년 X파일, 2006년 에버랜드CB 등 잇따른 ‘외풍’도 몸소 막아냈다. 이런 과정을 거칠수록 그룹 내에서의 위상은 더 높아졌다.

하지만 2008년 ‘특검 쓰나미’는 피하지 못했다. 이 고문은 특검에 의해 배임과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됐고, ‘삼성 쇄신안’에 따라 그룹 컨트롤타워에서 내려왔다.

[어떤 경로로 매입?]

이 고문은 자신의 명의로 직접 빌딩을 매입하지 않았다. 이 고문과 부인, 자녀 등 일가족이 대주주와 경영진으로 있는 엘앤비인베스트먼트(LNB Investment)란 회사를 통해 사들였다.

화제의 빌딩은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890-6, 890-7번지에 있는 엘앤비타워. 대법원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엘앤비인베스트먼트는 부지를 먼저 매입하고, 이 자리에 엘앤비타워를 세웠다.

땅 주인이 된 것은 2006년 3월. 엘앤비인베스트먼트(당시 다성양행)는 두 필지의 토지를 각각 김모씨와 박모씨로부터 매입, 곧바로 관할구청의 허가를 받아 그해 8월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건물이 완공된 것은 2008년 8월이다. 당초 대치동오피스빌딩에서 현 상호로 바뀌었다.

엘앤비타워는 지하 4층 지상 19층의 상업용 빌딩으로, 대지면적 1222㎡(약 370평)에 연면적 1만3936㎡(약 4223평) 규모다. 현재 이 빌딩은 우리은행(128억원),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37억원) 등으로부터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는 상태다.

[엘앤비는 어떤 회사?]

이 고문의 땅 매입 사실을 전한 언론들은 대부분 회사명을 L&B인베스트먼트로 표기했다. 그러나 법인등기부와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정확한 사명은 엘앤비인베스트먼트로 확인됐다. 빌딩도 L&B타워가 아닌 엘앤비타워다.

1990년 4월 설립된 이 회사는 사무실 등 비주거용 건물 임대업체로, 지난 4월 다성양행에서 엘앤비인베스트먼트로 상호가 변경됐다. 다성양행은 수출입품 대행과 물품매도 확약서를 발행한 ‘오퍼상(개인 무역회사)’이었지만, 빌딩을 매입하면서 업종을 임대업체로 전환했다.

설립 당시 자본금은 5000만원에서 수차례의 증자를 거쳐 현재 200억원으로 불어났다. 총자산은 681억원, 총자본은 190억원, 총부채는 491억원로 나타났다. 지난해 매출은 59억원.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34억원, 12억원을 기록했다. 2009년에도 매출 58억원, 영업이익 36억원, 순이익 11억원으로 비슷했다. 직원은 4명이 전부다.

[이학수와 엘앤비 관계?]


그렇다면 이 고문과 엘앤비인베스트먼트는 어떤 관계일까. 이 고문은 부인 백운주씨와 사이에 2남1녀(상훈-상호-상희)를 두고 있는데, 지난 8월 말 기준 이들 5명은 똑같이 엘앤비인베스트먼트 지분을 20%씩 보유하고 있다. 자본금이 2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각자 40억원씩 투자한 셈이다.

정확한 투자 시점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이학수 일가’가 회사 경영에 참여한 시기와 건물 부지 매입 시기가 일치한다는 점에서 그 단서를 찾아볼 수 있다.
백씨는 엘앤비인베스트먼트가 부지를 매입하고 보름 뒤인 2006년 3월 말 이 회사의 이사로 선임됐다. 외동딸 상희씨도 같은날 감사로 등재됐다. 모녀는 2009년 3월 다시 중임돼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눈에 띄는 점은 이들과 같은 경로로 현재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박재용씨와 이 고문의 인연이다. 둘은 고향이 경남 밀양으로 동향이다. 특히 박씨는 삼성물산·삼성자동차 이사 등을 역임한 ‘삼성맨’출신. 이 고문이 삼성화재 부사장 등으로 있었을 당시 박씨는 삼성생명 부동산사업부장 등을 맡기도 했다.
이 고문의 두 아들은 모두 외국계 증권사에 다니고 있다. 장남 상훈씨는 BoA메릴린치에서, 차남 상호씨는 골드만삭스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차익 얼마나 되나?]

이 고문 일가는 엘앤비타워 부지와 건물의 시세차익을 통해 대박을 터뜨리면서 ‘돈방석’에 앉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건설교통부 조회 결과 엘앤비타워 부지의 공시지가는 이 고문 일가가 땅을 매입하기 직전인 2006년 1월 단위면적(㎡)당 2110만원에서 지난 1월 2760만원으로 올랐다. 공시지가만 따져도 5년 만에 약 250억원에서 340억원으로 뛴 것이다.

엘앤비인베스트먼트가 공시한 보유 토지의 장부가액은 이보다 많은 410억원이다. 여기에 국세청이 산정한 건물 기준시가(약 250억원)를 더하면 총 600억원이 넘는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실거래가로 따지면 이를 훨씬 웃돈다. 엘앤비타워는 건축된 지 3년 밖에 되지 않은 신축빌딩에 속한다. 위치 또한 대한민국 중심인 강남, 그중에서도 ‘노른자 중 노른자’라 할 수 있는 테헤란로변 요지에 있다. 지하철 2호선이 약 2분 거리(80m)인 최고 상권으로 꼽힌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은 이 일대의 실거래가가 공시지가와 기준시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흥정된다고 입을 모은다. 그 추정가는 대략 2000억원 안팎인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단순 계산상으로 이 고문 일가는 200억원을 투자한 회사를 통해 2000억원의 부동산을 거머쥔 셈이다. 다시 말해 식구 1명당 360억원의 차익이 발생한 것이다.

한 중개인은 “엘앤비타워는 평당 450만원 안팎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매매를 할 경우 토지 및 건물가격과 건축비 등을 합치면 2000억원 정도로 평가된다”며 “얼마 전 이 빌딩과 비슷한 규모의 주변 빌딩이 이 가격에 팔리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매입 시기 문제없나?]

문제는 이 고문 일가가 빌딩을 매입한 시점이다. 이 고문이 ‘삼성 2인자’시절 별도의 회사를 세워 ‘딴짓(?)’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이 고문 등이 엘앤비인베스트먼트를 통해 빌딩 부지를 매입한 것은 이 고문이 삼성그룹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때다. 이 고문은 땅을 사들인 2006년 3월부터 2008년 6월까지 그룹 전체를 총괄하는 삼성 전략기획실장(부회장)을 맡았다.

이 고문 가족들이 엘앤비인베스트먼트 지분을 매입하고 경영에 참여한데 이어 건물을 짓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우연일까. 이 고문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삼성전자 고문을 맡은 것은 2008년 7월. 그리고 한 달 뒤인 8월 엘앤비타워가 완공됐다.

‘관리의 삼성’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내부 관리에 철두철미한 삼성그룹은 임직원의 겸직이나 외부 투자활동을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다. 이 고문의 규정 위반 논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삼성그룹 윤리규정에 따르면 삼성 임직원은 회사 업무와 동일하거나 무관한 별도 개인회사를 설립하거나 투자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삼성그룹은 이 고문의 빌딩과 관련해 자체 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은 대부분 임직원의 겸업·투자를 금지하고 있다”며 “지휘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해 회사의 기회를 유용하는 것을 제한하고 회사의 업무에 전념해야 된다는 당위성을 규범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영일선 복귀 무산?]

이 고문은 3년 넘게 이렇다 할 업무를 맡고 있지 않지만 거대한 존재감은 여전하다. 경영 전면에서 물러난 뒤에도 항상 이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이 회장이 가는 곳엔 항상 이 고문이 먼저 나타난다.

이 고문은 이 회장의 의중을 가장 잘 파악하는 인물인 만큼 퇴진 후에도 삼성그룹과 이 회장 사이의 통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고문이 연말 쯤 경영일선에 복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만약 ‘이학수 빌딩’논란이 확대될 경우 이 고문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이구동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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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