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 분석> 서울연합파 vs 지방파 ‘조폭전쟁’ 막전막후

텃새냐 철새냐…형님들 ‘나와바리’ 대혈투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서울 폭력조직들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 이른바 ‘나와바리’(담당구역)를 지키기 위해 조직간 ‘기동타격대’를 결성, 활동 무대를 확장하거나 또 다른 지방의 다른 ‘파’와의 결합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범죄와의 전쟁’당시 수감됐다가 속속 출소하고 있는 중간 보스급들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조직원들을 다시 규합해 와해된 조직을 재건할 조짐이다. 조직간 세력다툼이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지방 폭력조직 조직원을 무차별 폭행한 서울지역 연합 조폭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최근 조직원을 때린 지방 조직폭력배를 집단으로 보복 폭행한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상 집단 흉기 등 상해)로 서울 내 폭력조직 일원 고모씨 등 15명을 입건, 이중 4명을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고씨 등은 지난 6월4일 오후 7시30분께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한 웨딩홀에서 광주지역 한 폭력조직원 자녀의 돌잔치에 온 ‘전주 나이트파’ 조직원 홍모씨의 얼굴을 수차례 때려 기절시키고 몸을 밟아 다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답십리파’, ‘이글스파’, ‘화양리식구파’ 등 서울에 기반을 둔 폭력조직들이 연합된 조직원들이다.

“시내 폭력조직간
회합·연계 시도”

‘답십리파’ 한 조직원은 지난해 10월 대구지역 폭력배의 결혼식에서 홍씨 등에게 집단폭행을 당했다. “전라도 애들이 서울에서 설친다”등의 지방 폭력조직을 낮춰보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폭행을 당한 조직원은 때를 기다리다 돌잔치에 홍씨가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각기 다른 소속의 서울지역 조직원 16명을 끌어 모았고, 돌잔치에 찾아가 홍씨의 얼굴을 수차례 때려 실신시킨 뒤 발로 가슴과 팔 등을 짓밟는 등 집단으로 보복폭행을 가했다. 홍씨는 양팔 척골골절 등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다음날 ‘전주나이트파’ 조직원들이 재차 보복하기 위해 대거 상경했다. 서울 연합 조폭 일당은 이들과 맞붙기 위해 특수 제작된 흉기 등 상해 도구를 지니고 단체로 차에 타고 있다가 시민의 신고로 경찰 검문에 걸려 해산했다.


경찰 관계자는 “지방 출신 조직폭력배들이 서울에 올라와 각종 이권에 개입하자 서울 토박이 폭력조직원들의 위기감이 높아졌다”며 “서울 지역 폭력배들이 대응하기 위해 연합세력을 구축한다는 사실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서울 폭력조직들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 조직간 ‘기동타격대’를 결성, 활동 무대를 확장하거나 또 다른 지방의 다른 ‘파’와의 결합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서로 ‘밥그릇’을 빼앗기도 모자랄 판에 쉽게 손을 잡는다는 것은 조폭계에선 보기 드문 현상이다.

경찰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서울 시내 폭력조직이 다른 폭력조직과 회합 또는 연계를 시도하고 있다”며 “최근 폭력조직간 경계는 과거에 비해 상당히 희미해지고 특정 이권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필요시 폭력조직간 소규모로 협력·연계하는 등 이합집산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서울 조폭들이 ‘이합집산’하는 이유가 뭘까. 한마디로 이른바 ‘나와바리’(담당구역)를 지키기 위해서다.

지방세력 속속 상경…‘돈 되는’ 각종 이권 개입
위기 느낀 서울 토박이 조직들 ‘연합전선’ 구축

‘형님’들도 불경기의 한파는 피할 수 없었다. 지하세계는 ‘성매매특별법’ 시행으로 유흥업소가 철퇴를 맞은 이후 밥그릇인 오락실마저 ‘바다이야기’후폭풍을 맞으면서 자금줄이 막힌 상태다. 게다가 러시아 ‘야쿠트파’, 일본 ‘야마구치구미’, 중국 ‘삼진회’, 태국 ‘차이파’, 방글라데시 ‘우슈파’ 등 국제 범죄조직들이 판을 치고 있다.

그만큼 토종(?) 조폭들의 ‘나와바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때문일까. 조폭들은 기존의 활동무대였던 유흥업, 사행성 게임장 등에 국한되지 않고 건설업, 유통업, 용역업, 입찰, 채권추심 등 다양한 분야로 합법을 가장해 영역을 넓히고 있다.

문제는 70, 80년대보다 덜 하지만 여전히 경제적으로 소외된 지방 조폭들이 이권 개입 여지가 적은 지역을 벗어나 ‘먹고 살기’ 위해 속속 상경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 조폭들이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활동무대를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상황에 따라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 강남을 근거지로 한 ○○파 행동대장 A씨는 “당국의 단속과 규제로 먹고 살 일이 막막하다보니 이쪽 세계에서 금기시 돼 왔던 강도, 보험사기 등 자잘한 범행에도 손을 대고 있다”며 “이 와중에 지방 조폭들까지 줄줄이 서울로 올라와 자리를 잡고 있어 구역다툼을 자제하고 밥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항상 긴장하고 있다. 조만간 서울 조직과 지방 조직간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귀띔했다.

다른 조직 한 일원은 “지방 조직들은 서울로 진출할 때 단독으로 오지 않고 지역 군소 조직들을 통합해 몸집을 키운 뒤 상경한다”며 “지역 연고가 아닌 전국 각지에서 조직원을 모으기도 하는데, 두목급들이 자금력만 있으면 이곳저곳에서 돈 냄새를 맡고 벌떼처럼 모여든다”고 전했다.

‘지방에서 서울로’
활동무대 대이동

서울 조직의 위축은 자료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경찰청 ‘전국 조직폭력배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서울에서 활동 중인 폭력조직은 모두 22개, 조직원은 총 474명에 이른다. 2009년(조직 23개·조직원 507명)에 비해 각각 1개, 33명 감소했다. 경기 지역도 30개 조직 924명에서 25개 조직 865명으로 줄어들었다.

반면 같은 기간 주요 지방 도시들의 폭력조직은 ▲부산 23개 385명→22개 396명 ▲광주 8개 307명→8개 332명 ▲대전 9개 124명→9개 136명 ▲전북 15개 486명→16개 512명 ▲전남 6개 185명→8개 214명 ▲경남 16개 325명→17개 348명 등으로 세를 늘린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토박이 조직은 ‘구로동파’, ‘영등포중앙파’, ‘진성파’, ‘이글스파’, ‘답십리파’, ‘화양리식구파’, ‘남부동파’, ‘역전식구파’, ‘동대문파’, ‘상계파’, ‘돈암동파’, ‘길동파’, ‘장안동파’, ‘청량리역전파’, ‘영택이파’ 등이다.

반면 지방에서 상경해 뿌리내린 조직은 국내 ‘3대 패밀리’라 불리는 ‘양은이파’, ‘서방파’, ‘OB파’를 비롯해 전남 영광출신 폭력배들이 모여 종로에 자리 잡은 ‘영광파’, 호남 지역을 무대로 활동하다가 상경한 ‘연합 새마을파’ 등이다.

이들 조직의 특징은 기존 조폭과는 다른 형태인 ‘기동타격대식’이란 점이다. 돈 되는 일이면 무작정 뛰어든다. 과거 폭력조직은 학연·지연을 연결고리로 일정한 세력을 형성, 특정지역을 근거삼아 활동하며 타 조직과 혈투를 벌였다.

그러나 방계 조직들은 지역근거 없이 전방위로 활동하며 이권을 위해 대립관계의 조직과도 연계하는가 하면 점조직 형태의 은밀한 연락체계를 통해 조직원들을 동원, 폭력을 행사한다.

그 대표적인 조직이 ‘연합 새마을파’다. 1970년대 서울을 무대로 악명을 날렸던 ‘범호남파’방계조직인 ‘연합 새마을파’는  ‘목포 새마을파’, ‘무안파’, ‘청계파’, ‘해제파’ 등 전남 지역 4개 조직의 폭력배 300여명이 모여 결성됐다. 이들은 의정부, 대전 등의 숙소에서 후배들을 합숙·관리하며 거대조직을 이끌고 호남을 벗어나 서울을 무대로 활동해왔다.


이권을 위해 ‘판문이파’, ‘쌍택이파’, ‘오비파’, ‘동아파’, ‘보성파’ 등과의 합세도 이뤄졌다.

‘조폭과 전쟁’ 철퇴 수괴급 출소 임박
와해조직 재건?…신흥구도 재편 전망

전남 고흥에서 상경한 ‘연합 고흥 식구파’도 합종연횡을 통해 세를 키웠다. ‘연합 고흥 식구파’는 2007년 7월 교도소에서 함께 수감돼있던 ‘고흥식구파’ 부두목 최모씨와 ‘OB파’ 두목 유모씨가 함께 연합해 서울에서 활동하다 소탕된 기존 폭력조직인 ‘고흥식구파’와 ‘상택이파’, ‘이글스파’ 등의 조직원들을 모아 만든 신흥 폭력조직이다.

이 조직은 리모델링업자로 가장, 호텔 등에 접근해 일부 공사만 진행한 후 부풀린 공사대금을 회수한다며 호텔을 점거하고 경영권을 빼앗는 등 117억원 상당을 강취하다 경찰에 일망타진됐다.

최근엔 6개 폭력조직 조직원들이 연합해 서울 강남 고급 빌라에 사설 카지노를 차려놓고 판돈 100억원대 도박판을 벌이다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이들은 ‘신흥동파’, ‘신양관광파’, ‘국제 PJ파’, ‘순천시민파’, ‘십계파’ 등 호남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는 6개 폭력조직 연합으로 2009년 12월부터 5개월 동안 서울 강남구 삼성동 빌라 등 5곳에 사설 도박장을 운영했다.

눈에 띄는 점은 1990∼2000년 ‘범죄와의 전쟁’ 당시 수감됐다가 속속 출소하고 있는 중간 보스급들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는 사실이다. 호남지역 ○○○○파 두목 B씨는 지난해 출소한 뒤 룸살롱을 처분하고 의료기 수입업체를 운영 중이다. 충청 ○○파 두목 C씨는 2008년 구속됐다가 풀려난 뒤 유통회사를 인수해 경영하고 있다.


서울 거대조직인 ○○○파 부두목 D씨는 2009년까지 수감생활을 하다가 출소, 광고회사를 차려 직접 운영하고 있다.

일각에선 이들이 운영자금을 모은 뒤 조직원들을 다시 규합해 와해된 조직을 재건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돌고 있다. 여기에 주요 조직 핵심수괴급들의 출소 시기가 다가오면서 신흥조직들을 중심으로 세력이 재편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 경우 더 많은 방계 조직이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학연·지연 버리고
지역근거 없이 뭉쳐

경찰은 서울에서 조폭간 세력 다툼이 벌어질 조짐이 없다고 일축했다. 경찰 관계자는 “조폭 가운데 집중 관리 대상자들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조직원간 연계 혹은 충돌 가능성이 있는 조직에 대해 이미 계보도와 소재지 등을 파악하고 있다”며 “폭력배들에 대한 범죄정보 수집을 강화하고 심층적인 기획수사로 폭력조직의 존립 기반 자체를 와해시키는 활동을 적극 전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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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