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 ②특별대담- 정세균 국회의장에 묻다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2.12 10:12:44
  • 호수 11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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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와 국민 좁혀졌다면 성공한 거죠”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2018년 2월은 대한민국의 이정표로 기억될 공산이 높다. 평창동계올림픽(이하 평창올림픽)이라는 국가적 행사가 지난 9일 개막식을 열고 본격적인 일정에 돌입, 우리 선수들을 응원하는 온 국민의 염원이 설 연휴 기간을 따뜻하게 데울 것으로 전망된다. 여의도에서는 개헌이라는 국가적 과제가 여야 합의를 기다리고 있다. 오는 5월 임기를 마치는 정세균 국회의장은 국회발 개헌안 발의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민족 최대 명절 설을 앞두고 국회의 보폭이 빨라지고 있다. 연휴 기간 지역 민심 다지기에 주력해야 하기에 쟁점 법안을 논의할 절대적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여야는 2월 임시국회 첫날 소방3법 개정안을 처리하며 산뜻하게 출발하는 듯했다. 

그러나 개헌을 비롯해 권력기관 개혁 등이 여야 쟁점법안으로 떠오르면서 순항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국회 지휘자’ 정세균 의장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각기 다른 5개 정당의 목소리를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2월 임시국회가 불협화음으로 얼룩질지, 아니면 하모니를 만들어낼지 결정된다. <일요시사>는 정 의장을 만나 설 연휴 계획과 개헌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

다음은 정 의장과의 일문일답.

- 이번 설 명절에 어떤 일정을 소화하실 계획입니까?
▲재래시장 등 현장을 방문하여 국민들과 소통하려고 합니다. 특히 이번 설에는 지속되는 한파에 설 명절 특수 등 여러 요인들이 겹쳐 물가가 전반적으로 상당히 뛰었다고 들었습니다. 소비자 부담은 물론이고 상인들 소득도 늘지 않는다고 하니, 재래시장을 돌아보면서 설 물가도 점검하고 애로사항도 들으며 두루두루 인사를 드릴까 합니다.

- 국회의장으로서 맞는 마지막 설 명절입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만.
▲감회보다는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을 앞두고 우리 국민들이 따뜻한 명절을 보내실 수 있도록 민생을 더욱 챙겨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특히 국회 밖에서 평창올림픽이라는 세계인의 축제가 개최되고 있습니다만, 이와는 별도로 국회는 국회대로 해야 할 일들을 꼼꼼하게 챙길 필요가 있습니다.


개헌과 관련해서도 각 당이 합의를 시작할 수 있는 구체적 안들이 나와야 하고, 지방선거를 위한 법적 정비도 선거일정을 고려할 때 이번 임시회서 미룰 수 없는 숙제입니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지키는 사항에 대해서는 세밀하게 규제해서 제도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하되, 우리 청년들의 일자리를 늘리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해소시킬 수 있는 민생법안 처리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 취업포털 ‘사람인’에 따르면 이번 설 명절에 가장 듣기 싫은 말 1위가 “취업은 했니?”라고 합니다.
▲3포(연애, 결혼, 출산) 세대에 이어 청년이라서 죄송하단 말이 나올 정도로 고용상황이 심각합니다. 통계청이 내놓은 2017년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층의 실업률은 9.9%, 체감실업률은 22.7%로 최악의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국회도 청년실업률 악화의 심각성을 엄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인데, 현실은 비정규직과 임시직 일자리가 대부분이고 사회진입을 위해 한시적으로 운용됐던 인턴과 같은 일자리가 정규노동력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민간기업이 고용을 확대하기 위한 여건 또한 희망적이지 않습니다. 

- 청년 취업 문제 해결을 위한 국회 차원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국회 역할은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도록 제도적인 길을 터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공일자리뿐 아니라 민간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개혁하고 혁신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공공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아직 그 성과를 크게 기대하기 어렵습니다만, 지난해 국회서 추경예산안을 처리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청년 고용촉진특별회계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습니다. 청년고용촉진특별회계를 재원으로 공공부문에서 청년 미취업자 고용확대를 지원하는 내용인데, 조속히 통과돼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보탬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장기적으로는 민간주도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국회가 관련 입법을 적극적으로 심사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이라는 큰 변화의 흐름에 맞추어 중소·중견기업이 혁신 성장을 거둘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주고 이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개헌의 가장 큰 중심은 ‘국민’
국민-국회-정부 함께 만들어야


- 설 연휴 기간 국가적으로 큰 행사인 평창올림픽이 열립니다. 올림픽 선전을 기원하는 의미서 우리 대표팀에게 한 말씀 전한다면?
▲그동안 우리는 경제적 성과도 거두고 민주주의도 성숙해서 사회 각 방면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어렵고 힘든 난관의 시기에 스포츠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 우리는 이제 명실상부한 스포츠 강국입니다. 이미 4개의 세계대회(동·하계올림픽, 세계육상선수권대회, FIFA월드컵)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이번 올림픽의 개최도 국민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며 선수들의 플레이는 우리 국민들의 큰 자부심입니다. 저를 포함한 국민들께서 우리 선수들에게 무한한 격려를 보낼 것이며, 한 장면 한 장면 놓치지 않고 지지할 것입니다. 그동안 땀 흘리며 노력한 우리 선수들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응원하겠습니다.

- 설 연휴 기간 국가적으로 “평창올림픽을 통해 남북대화는 물론 북미·국제사회와의 대화로 발전하길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기 위해 현 정부가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이번 평창올림픽에는 북한을 포함한 21개국 정상급 인사들의 방문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 및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남북간 대화가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길 바랍니다. 
 

또 한반도서 형성되고 있는 평화의 모멘텀을 잘 살려 남북대화와 비핵화 대화가 평화적인 해결원칙 하에 선순환으로 이어지도록 외교적 노력을 강화해 줄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저도 그동안 국회 차원에서 남북간 대화를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만, 남은 임기동안 결실을 볼 수 있도록 의회 외교 차원의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 이번 개헌정국서 각 정당이 유념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개헌의 가장 큰 중심은 ‘국민’이며, ‘국민과 국회와 정부가 함께 만드는 개헌’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을 추진하는 것은 대다수 국민들의 요구사항이며 특히 각 당에서도 지난 대선 때 국민과 약속했던 사안입니다. 

정파적 이익에 따라 시기를 놓치고 정쟁만 벌인다면 헌법에 새로운 시대정신을 반영해야 할 국회의원들 본연의 책무를 져버리는 것입니다. 각 당이 개헌안을 내놓고 있는 만큼 남은 시간 동안 충분한 논의를 통해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협의할 것입니다.

- 여야의 정쟁이 이대로 이어질 경우 6월 지방선거·개헌 동시 투표를 장담할 수 없는데요. 3월 개헌안 발의를 위한 여야 대타협 가능성을 어떻게 내다보십니까?
▲대선 당시 각 당의 대표들이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르기 위해 3월 초까지 합의하기로 약속했으니, 그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습니다. 국민 대다수와 국회의원 대다수가 이번이 개헌의 적기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의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개헌 필요성에는 모두들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각 쟁점들에 대한 결단과 합의만이 남아있는 것이고, 결국에는 국회 주도의 합의안이 도출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얼마 전 여당에서는 개헌에 대한 당론을 채택한 바 있고, 조만간 야당서도 개헌에 대한 당론을 정할 것입니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촉박하기는 하지만 최선을 다해 예정된 로드맵에 따라 개헌절차를 추진할 계획입니다.

재래시장 돌며 물가 점검
5월 퇴임 “끝까지 최선”

- 여야가 각자 개헌 당론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갈등만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이를 타협의 과정으로 봐야 할까요, 아니면 갈등의 신호로 봐야 할까요?
▲국회 개헌특위를 통해 권력구조, 기본권, 지방자치 등 각론에 대해 많이 논의해 왔고 다듬어 왔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개헌안을 효율적으로 논의하기 위해서는 각 정당별 입장을 제시되어야 합니다.

 각 당의 입장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개헌특위를 운영한들 현실적으로 타협을 이루기가 어렵고, 무엇을 어떻게 논의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뿐 만 아니라, 먼발치서 이견을 좁히기도 어려워 공전을 거듭할 뿐입니다. 

따라서 하루빨리 자신들이 생각하는 개헌안을 확정해주길 바라고, 이를 토대로 타협하는 장이 마련되길 바랍니다. 권력구조 개편과 같은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서 지도부 차원의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나머지는 양보와 타협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의장님께서 최근 주요간부회의에 참석해 국민투표법의 신속한 개정을 주문하셨습니다. 언제가 마지노선이 될까요?
▲이번 2월 임시국회에서 하루빨리 처리해야 합니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2014년 7월에 주민등록이나 국내 거소신고가 안 된 재외국민의 투표권 행사를 제한하는 국민투표법 관련조항에 대해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2015년 말까지 법을 보완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개헌이라는 큰 과제가 아니더라도 국회는 개별 법률들이 헌법정신을 잘 반영하고 있는지, 위헌시비가 없는지 수시로 점검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위헌소지가 발견된 경우에는 지체 없이 이를 개정해서 굳이 헌법재판소의 훈수를 받기 전에 법률을 고치는 자정노력이 필요합니다. 

더욱이 개헌을 추진하기 위해 국민투표법 개정을 놓쳤다면 이것은 중대한 직무유기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조속히 관련 상임위에서 국민투표법을 심사해서 개헌이라는 국가적 대사를 추진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도록 처리해주길 바라겠습니다.

-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손봐야 한다고 보십니까?
▲아무래도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논의가 이번 개헌의 핵심 의제가 될 것입니다. 권력구조의 구체적인 형태에 관해서는 여야별, 의원 개인별, 일반 국민들과 전문가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모델이 서로 다른 것이 현실이나, 대통령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자 하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대통령 권력을 그대로 두고 4년 중임제를 하면 그건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며, 분권이라고 하는 방향에만 합의를 한다면 4년 중임이든 단임이든 혼합형대통령제 든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의장실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결과,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자는 여론이 79.8%가 나왔고, 대통령임기는 4년 중임제가 72.3%로 압도적으로 나왔습니다. 저도 국민들의 뜻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뜻을 모아 임기는 ‘4년 중임’ 정부형태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합리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청소근로자 직접고용’ ‘국회 미래연구원’ 등 의장님 임기 동안 달성한 성과가 상당합니다.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습니까?
▲국회가 해야 할 일은 국민의 뜻을 담아내고 국가의 미래를 밝혀주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그 원동력이 있다고 봐야겠습니다. 이러한 차원서 20대 국회가 시작할 때부터 저는 국회를 운영하는 주요원칙과 철학을 제시했고 국민에게 힘이 되는 국회, 미래를 준비하는 국회가 되자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 결과 2016년 12월, 국회 청소근로자들을 직접 고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해 중앙 공공기관이 청소근로자를 직접 고용하는 첫 사례를 만들어냈고 지난해 12월에는 ‘국회 미래연구원법’을 통과시키기도 했습니다. 
 

특히 국회 미래연구원의 경우 그 필요성에 대해 꾸준히 생각해왔습니다. 정권교체 때마다 되풀이되는 정책번복에 부수되는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되는 실정입니다. 국가정책에 대한 국민들 신뢰가 훼손되어가고 국가성장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젠 장기적인 안목서 특정정권의 영향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 오롯이 ‘국가 경쟁력’과 ‘국민 행복’만 바라볼 수 있는 중장기적인 국가전략이 절실히 요구될 때입니다. 입법부 산하에 설치되는 미래연구원이 정파를 뛰어 넘는 협치의 실천이자 산물이 될 수 있기를 늘 기원하고, 그 성과가 국민행복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싱크탱크가 되기를 바랍니다.

- 국회의장직이 정치인으로서 마지막 행선지인지 궁금합니다.
▲지금 맡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최선의 목표입니다. 그 이후 국회와 국민의 거리가 저로 인해 조금이라도 좁혀졌다면 저는 성공한 의장이었다고 자부할 것 같습니다. 항상 그랬듯이 의장 퇴임 후에도 제게 맡겨진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 5월말 임기가 종료됩니다. 의원 신분으로 복귀하시면 어떤 점에 집중해 의정활동을 할 계획이십니까?
▲그동안 의장으로 있으면서 국회를 대표하고 여야를 아우르는 조정자 내지 중재자로서의 역할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의장이 끝나면 평의원으로서 남은 임기 2년을 마치게 될 텐데 그동안 부족했던 지역주민들과의 소통은 물론 원래 정당으로 돌아가 정당의 구성원, 의원들과 활발히 소통할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어디서든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 설 명절을 맞은 국민들께 덕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넉넉해지는 설 명절입니다. 입춘도 지난 지금, 아직 겨울추위가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만, 우리기 처해있는 민생 현실 또한 녹록치 않은 때입니다. 그러나 국민 여러분 모두가 어려움을 떨쳐내고 고향의 따뜻한 정을 함께 나누시길 기원합니다. 평창올림픽을 지켜보시면서 모두 모여 서로를 격려하며 즐거운 민족 명절이 되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chm@ilyosisa.co.kr>


[정세균 의장은?]

▲전라북도 진안 출생
▲전 쌍용그룹 상무이사
▲제9대 산업자원부장관
▲전 민주당 대표
▲제15·16·17·18·19·20대 국회의원
▲제20대 국회 전반기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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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